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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PD의 엄마를 말하다

자기 몫의 육아

On March 29, 2018 0

 


작년 여름, 남편이 육아휴직을 했다. 지금 우리 집에서 ‘임금노동’을 하는 건 내 몫이고, 육아와 살림 등 ‘돌봄노동’은 남편의 주 업무다. 특히 평일에는 남편이(시어머님의 도움을 받아) 거의 모든 살림을 도맡아 한다.

육아도 비슷하다. 내가 지금 맡고 있는 프로가 심야 음악방송이다 보니 규정된 근무 시간이 오후 3시부터 밤 12시까지다. 퇴근해서 집에 오면 새벽 1시, 당연히 아이들은 자고 있다.

아침에 어린이집에 가기 위해 씻고 밥 먹고 준비하는 한두 시간, 그게 내가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의 전부다. 나는 자식과 대화다운 대화 한번 나누지 못하고 ‘바깥일’에 바빴던 예전 아버지들과 비슷하게 살고 있다.


남편이 휴직을 하기 전에는 조금이라도 더 아이들과 함께 있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하루 종일 엄마의 퇴근을 기다렸을 아이가 안쓰러워 피곤하지만 억지로라도 몸을 일으켜 같이 병원놀이도 하고 책도 읽어주려 노력했다.

그런데 남편이 휴직을 하고 나니 슬금슬금 마음이 풀어진다. 부모 중 한 사람이 집에 머문다는 데서 묘한 안도감이 들며 아이들이 덜 안쓰러워진 것이다.

‘아빠랑 같이 있었는데 뭘’, ‘아이들 노는 동안 침대에 잠깐 누워 있어도 되지 않을까’, ‘남편한테 등원 맡기고 늦잠 좀 자야지…’ 하며 전처럼 기를 쓰고 아이 곁을 지키려고 하지는 않게 됐다. 안방 침대에 누워 있으면 거실에서 남편이 아이들에게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린다.

“엄마는 피곤해서 잠을 자야 해. 아빠랑 놀자~.” 마음 한구석이 찜찜하지만 모른 척 눈을 감는다. 아이가 서운해하는 게 느껴졌지만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빠라는 ‘믿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에.


그러다 일이 터졌다. 어린이집 선생님과 정기 상담을 했다. 하율이를 어린이집에 보낸 지 4년 만에 처음으로 남편과 같이 상담을 하러 갔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왔는데 이틀 뒤 선생님이 나에게 전화를 하셨다.

어머님만 따로 뵙고 싶다고. 긴장되는 마음으로 어린이집엘 갔더니 선생님 말씀이 하율이가 엄마에 대해 부정적인 표현을 부쩍 많이 한다는 것이었다.

“아빠는 우리를 사랑해서 잘 돌봐주시는데 엄마는 늘 바빠요.” 주말에 엄마랑 뭘 하고 싶은지 얘기 나누는 시간에 하율이가 그러더란다. “어차피 엄마는 바쁘거나 잠자야 해서 우리랑 놀아줄 수 없어요.”

직장 어린이집이다 보니 선생님이 방송국에서 일하는 학부모들의 근무 현실을 잘 이해해서인지 필요 이상으로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말씀하셨다. “어머님이 알고 계셔야 할 것 같아서 뵙자고 했어요….”


창피하고 미안하고 속상하고 억울한 마음에 울컥 울음이 올라오는 걸 간신히 눌렀다. 아마 죽을 때까지 내 인생에서 가장 부끄러웠던 시간, 가장 지우고 싶은 장면으로 기억될 것 같다.

한국 사회에서 자란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나 역시 ‘아빠는 돈을 벌고 엄마는 가정을 돌보는’ 식의 분업에 익숙하다.

그래서 남편이 육아휴직을 한 뒤로는 아이와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것에 죄책감을 덜었던 것이다. ‘임금노동과 돌봄노동의 분담’에서 우리 부부는 그저 성역할이 바뀐 것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누가 무엇을 맡느냐와 상관없이 그런 식의 분업 자체에 회의감이 든다. 아이와 시간을 보내며 맺어야 하는 ‘내 몫’의 관계를 남편이 대신해줄 수는 없는 노릇인데 이 당연한 사실을 나는 최근에야 깨달았다.

방법을 궁리하고 있다. 업무 시간을 조절해서 일주일에 몇 번이라도 하율이의 하원을 내가 맡으려 한다.

집까지 걸어가는 15분여의 시간 동안 하율이와 맞잡은 손에서 내 마음이 전해지기를 바랄 뿐이다. 내 인생에서 하율이가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스스로에게 상기시키는 시간이기도 하다.

 

장수연 PD는요…

장수연 PD는요…

딸 둘의 엄마이자 페미니스트, 취미는 독서, 장래 희망은 작가인 MBC 라디오 PD. 

책 <처음부터 엄마는 아니었어>를 냈으며, 현재 팟캐스트 <쓰리맘쇼>를 진행하고 있다. 

Credit Info

기획
강지수 기자
장수연
일러스트
게티이미지뱅크 (www.gettyimagesbank.com)

2018년 03월호

이달의 목차
기획
강지수 기자
장수연
일러스트
게티이미지뱅크 (www.gettyimagesban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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