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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영화를 읽다

행동하는 여성들이 있었기에

 


개그맨 박명수의 어록 중에 이런 말이 있다. ‘가는 말이 고우면 얕본다.’ 처음 들었을 땐 마냥 웃어 넘겼는데 전 세계적으로 번지고 있는 ‘#미투(Me Too) 운동’을 보면서 더욱 공감하게 됐다.

요즘 영화계, 법조계, 문학계를 주축으로 성폭력 피해를 고발하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피해 사례는 대부분 오랜 세월 봉인됐던 것들이다. “왜 그 당시에 폭로하지 않았느냐”며 철모르는 소릴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피해자들이 정말 아무 말도 하지 않았겠는가.

처음엔 조용히, 상대방이 무안하지 않게, 조직의 분위기까지 신경 써가며 부드럽게 이야기했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엔 우아하게 말하면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피해자가 마녀사냥을 무릅쓰고 자신의 사생활까지 탈탈 털어버리는 지경에 이르러서야 다들 심각성을 인지하게 됐다. 이러한 움직임이 큰 기폭제가 될 거라 믿는다. 미안하고 고맙다.


20세기 초 영국에도 세상을 바꾼 여성들이 있었다. 영화 <서프러제트>는 투표권을 얻기 위해 거리로 나간 수많은 엄마와 딸들의 이야기다. 제목 ‘서프러제트(Suffragette)’는 여성 참정권 운동가를 가리키는 말로, 영화에선 귀족 여성들보다 가난하고 평범한 여성 노동자들에 더 주목한다.

세탁공장 노동자 모드(캐리 멀리건 분)는 한 가정의 아내이자 엄마로 살아가던 중 우연히 거리에서 투쟁하는 서프러제트 무리를 목격한다. 그들은 유모차에 돌을 숨겨놨다가 유리창을 깨뜨리는가 하면 우체통을 폭파시키는 등 과격한 방식을 택한다.

이 사건을 계기로 모드는 자신의 삶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왜 나는 남자보다 세 배나 더 일하면서 월급은 적게 받는가. 왜 내 아이에 대한 권리는 남편에게만 있는가. 왜 내게는 법을 제정할 투표권이 없는가.


모두가 동등한 투표권을 갖는 게 지극히 당연하지만 당시 세상의 반이었던 여성들에겐 이 당연한 권리가 없었다. “여성은 침착하지도 조화롭지 못해서 정치적 판단이 어렵다. 여성에게 투표권을 주면 사회 구조가 무너진다”는 게 기득권층 남성들의 주장이었다.

이에 맞서 서프러제트는 말보다 행동하기를 택한다. 그 중심에 있는 여성 운동가 에멀린 펑크허스트(메릴 스트립 분)는 행동과 희생만이 해답이라고 말한다. 영화는 투옥되고, 집에서 쫓겨나고, 아이와 떨어져 지내면서도 계속 싸우는 여성들을 보여준다.

앞장서서 걸었던 이들 덕분에 1928년 영국에서는 여자들이 동등한 투표권을 얻을 수 있었다. 이 움직임은 전 세계로 퍼져나가 불과 3년 전인 2015년 사우디아라비아에서도 여성들이 투표권을 인정받았다. 이렇듯 역사는 행동하는 이들이 있기에 바뀐다.


영화 속 모드의 남편은 아내가 직장에서 성희롱을 당하는 걸 알면서도 묵인하고 아내를 걱정하기보다 “다시는 창피하게 하지 말라”고 일갈한다. 당시 여성들이 가장 넘기 힘든 산은 여성의 참정권에 반대하는 정치가나 악덕 고용주가 아닌 이런 평범한 남편들이 아니었을까.

굳이 20세기와 2018년을 비교하고 싶진 않다. 어쨌든 세상은 더 나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 그럼에도 예나 지금이나 페미니즘은 가족끼리 나누기엔 여전히 무겁고 불편한 화두다.

남편과 나는 비교적 대화가 잘 통하지만 여성 문제에 관해선 어쩔 수 없는 간극을 느낀다. 그럼에도 아이들이 합리적이고 조화로운 젠더 의식을 갖기 위해선 가정에서부터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니 내 남편을 포함한 이 땅의 모든 아빠들에게 한 말씀 드리자면, 아내의 가사 분담 요구를 잔소리로 듣지 말아주시길. 그것은 다 우리의 아들딸들이 더 나은 세상에서 살기 위한 초석이 될지니 말이다.

 

 >  신민경 씨는요…
여섯 살, 네 살배기 두 아들을 키우는 만년 초보 엄마이자 생계형 프리랜서 라이터. <스크린>, <무비위크> 등 영화잡지 기자로 일했고 지금도 틈틈이 보고 읽고 쓴다. 엄마가 행복해져야 아이도 행복해진다는 사실을 매일 깨닫고 있다.

Credit Info

기획
한보미 기자
신민경
일러스트
게티이미지뱅크 (www.gettyimagesba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