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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훈의 수학 탐험대

숫자 쓰기보다 '읽기'에 먼저 주목해야 하는 이유

On March 13, 2018 0

‘수학’ 하면 복잡한 수식과 계산이 떠오르나요? 식은땀이 나고 골치가 지끈지끈 아파오나요? 나온교육연구소 박영훈 소장은 더 이상 문제풀이식 수학으로 아이들을 괴롭혀선 안 되며, 수학의 진정한 즐거움을 알기 위해서는 유아 때부터 수학에 대한 개념을 올바르게 세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어떻게 해야 수학의 첫걸음을 제대로 뗄 수 있을까?’ 이 질문에서 시작된 <박영훈의 수학 탐험대> 일곱 번째 칼럼은 생각만큼 쉽지 않은 ‘숫자 읽기’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PROFILE

PROFILE 박영훈 소장
서울대 수학교육과를 졸업하고 미국 몬타나주립대학에서 수학 M.A.를 취득, 현재 홍익대 수학교육과 겸임교수와 나온교육연구소 소장으로 재직 중이다. 수학이란 학문이 숫자와 기호의 조합이어서는 안 되며 삶의 온기가 느껴지는 수학, ‘생활 속의 수학’이 되어야 한다고 여기며 수학 대중화에 힘쓰고 있다. 제7차 교육과정 중·고등 수학 교과서를 집필했으며 저서로 <당신의 아이가 수학을 못하는 진짜 이유>, <새로 쓰는 초등수학 교과서> 시리즈가 있다. <베스트베이비>의 칼럼 ‘박영훈의 수학 탐험대’를 통해 유아 수학의 기본을 짚어주고 있다.

 


 -> 
한국어가 정말 수학에 적합한 언어일까요?

2014년 9월 13일, 저녁 뉴스의 진행자는 밝은 표정과 약간 들뜬 목소리로 다음 소식을 전했습니다. 과학적 언어인 한국어가 수학 학습에 매우 유리하며 그 때문에 한국 아이들이 수학을 잘한다는 내용이었죠. 뉴스를 접한 국민들은 아마도 이를 사실처럼 받아들였을 겁니다.

물론 가짜 뉴스는 아니었습니다. 뉴스의 출처는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미국 일간지 <월스트리트 저널>에 게재된 ‘수학에 가장 적합한 언어(The Best Language for Math)’라는 제목의 기사였습니다.

이 칼럼에는 한국을 비롯한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지역에서 사용하는 언어가 매우 과학적이며, 그 이유는 십진법 체계에 꼭 들어맞는 숫자 읽기가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기술되어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6432는 ‘육천·사백·삼십·이’라고 읽는데, 1000이 6이므로 ‘육천’, 100이 4이므로 ‘사백’, 10이 3이므로 ‘삼십’, 1이 2이므로 ‘이’가 결합된 겁니다.

이런 방식으로 아무리 큰 숫자도 0부터 9까지 열 개의 숫자와 자릿값을 뜻하는 ‘일, 십, 백, 천, 만…’으로 표기할 수 있으니 정말 과학적이고 편리하기 짝이 없다는 거죠.

우리에겐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라 과연 이런 내용이 <월스트리트 저널> 같은 유명 일간지의 기사가 될 수 있을까 라는 의심이 들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영어권 문화에서는 이런 숫자 읽기가 참으로 신기했나 봅니다. 가령 두 자리 숫자인 ‘10, 11, 12, 13…’과 ‘20, 21, 22, 23…’을 영어로 어떻게 읽는지 살펴볼까요.

 

 10

 ten

 20

 twenty

 11

 eleven

 21

 twenty-one

 12

 twelve

 22

 twenty-two

 13

 thirteen

 23

 twenty-three

 14

 

 24

 


위 표에서 알 수 있듯 ‘ten, eleven, twelve, thirteen…’과 같이 어떤 특정한 규칙을 찾기 어렵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십, 십일, 십이, 십삼’처럼 십에다 일의 자리 숫자를 결합하는 것과는 딴판입니다.

20부터는 ‘twenty, twenty-one, twenty-two, twenty-three’와 같이 규칙적으로 읽는 게 가능하지만, 10부터 19까지는 어쩔 수 없이 암기해야만 합니다. 뿐만 아닙니다.

이외에도 13과 30은 각각 thirteen과 thirty로 읽어야 하는 등 숫자 읽기를 처음 배우는 아이들에겐 정말 쉽지 않습니다. 아마도 해당 기자는 영어로 숫자 읽기의 이런 불편함과 비교해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의 수 읽기 방식에 주목했을 겁니다.


하지만 숫자 읽기를 익히는 데 어려움을 느끼지 못할 만큼 우리언어가 규칙적인 속성을 지녔을까요? 정말 그럴까요? 다음 숫자를 읽어보세요.


“2번” 아마도 대부분 ‘2(이)번’이라고 읽을 겁니다. 가령 네 개의 문항 중 하나를 택할 때 ‘문제의 정답은 2번입니다’라고 말하니까요. 그런데 똑같은 숫자 표기임에도 ‘이번’이 아니라 ‘두 번’이라고 읽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컨대 약봉지에 ‘하루 2번 복용하시오’라고 쓰여 있을 때에는 ‘두 번’이라고 읽어야 합니다. 같은 아라비아숫자지만 맥락에 따라 이처럼 다르게 읽을 수밖에 없습니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아래 시각은 어떻게 읽어야 할까요?

 



‘10(열)시 10(십)분’입니다. ‘열시 열분’ 또는 ‘십시 십분’이라고 읽으면 안 됩니다. 시각을 나타낼 때에는 ‘1(한)시, 2(두)시, 3(세)시’로, 분을 나타낼 때에는 ‘1(일)분, 2(이)분, 3(삼)분’으로 읽습니다. 참 복잡하죠.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날까요?

이는 한자어권에 속하는 우리나라의 지정학적 위치 때문입니다. 순우리말과 한자어라는 이중구조가 숫자 읽기에 적용된 거죠. 이러한 이중구조의 혼란은 우리나라를 비롯해 일본에서도 나타납니다.

고로 우리 아이들은 ‘하나, 둘, 셋’ 같은 순우리말 수 단어와 함께 ‘일, 이, 삼’ 같은 한자어 수 단어를 모두 익혀야 합니다. 그렇다면 외신에서 보도한 ‘수학에 적합한 언어’라는 찬사는 명백한 오보입니다.

기사를 쓴 기자는 우리나라가 한자어권에 속한다는 사실만 알았지 한국 고유의 언어가 따로 존재한다는 사실은 미처 몰랐을 겁니다.

어쨌든 우리나라 아이들의 ‘숫자 읽기 공부’가 다른 나라 아이들에 비해 결코 유리한 입장에 있다고 볼 수 없습니다. 여기 제시한 그래프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래프에서 보듯 만 2세 무렵의 아이들은 우리말 수 단어를 ‘넷’까지, 그리고 한자어는 ‘일’만 알고 있습니다. 사실 ‘하나, 둘, 셋, 넷’ 같은 순우리말은 아이들도 일상생활에서 쉽게 접합니다.

반면 ‘일, 이, 삼’ 같은 한자어는 구어보다 문어에 많이 등장합니다. 이 때문에 한자어보다 우리말 단어를 더 많이 아는 건 당연합니다. 만 3세에 이르러서야 역전이 되는데 우리말은 ‘일곱’까지 그리고 한자어는 ‘구’까지 확장됩니다.

한자어는 ‘일, 이, 삼, 사, 오, 육, 칠, 팔, 구’와 같이 한 음절로 이루어져 쉽게 터득할 수 있지만, 우리말은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등 두 음절이라 발음도 쉽지 않고 암기하기도 어렵기 때문일 겁니다.


이러한 현상은 5세부터 더욱 급격하게 가속화 됩니다. 우리말은 ‘스물(20)’까지만 알고 있는 반면, 한자어는 ‘사십구(49)’까지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급격한 차이가 발생하는 이유는 만 4세가 지나면서 아이들 또한 한자어 수 단어 내에 포함된 ‘일종의 패턴’을 알아채기 때문일 거라 짐작합니다.

사실 한자어 수 세기 단어는 ‘일, 이, 삼…구, 십’까지만 익히면 그다음은 규칙에 따라 자동적으로 생성됩니다. 예를 들어 ‘20(이십), 30(삼십)…80(팔십), 90(구십)’은 각각 십이 두 개, 십이 세 개… 십이 아홉 개임을 한눈에 파악할 정도로 단순하고 일정합니다.

반면 순우리말인 ‘스물, 서른, 마흔, 쉰, 예순, 일흔, 여든, 아흔’에서는 규칙성을 찾기 힘듭니다. 따라서 일일이 암기할 수밖에 없지요.


이를 체계적으로 익히지 못하면 초등학교 입학 후에도 숫자 읽기에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실제로 1학년을 지도하는 교사가 다음과 같이 말하더군요.

“아이들 대부분이 1부터 9까지 아라비아숫자로 잘 읽고 잘 써요. ‘하나, 둘, 셋, 넷…’도 순차적으로 잘 세고 개수도 잘 파악하고요. 그런데 아라비아숫자가 각각의 상황에 따라 읽는 방법이 달라진다는 걸 잘 몰라요.

예를 들면 2개를 ‘두 개’로, 2일을 ‘이 일’로, 2자루를 ‘두 자루’로, 2층을 ‘이 층’으로 읽어야 하는데 2개(이 개), 2자루(이 자루) 등으로 섞어 쓰는 식이죠.”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숫자 쓰기보다 ‘읽기’를 제대로 익혀야 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  그렇다면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요?
일반적으로 대부분 유아용 학습지에는 다음과 같이 숫자를 보여주고 ‘1(일, 하나)’, ‘2(이, 둘)’과 같이 우리말과 한자어 읽기를 병행하는 문제가 제시됩니다.



하지만 위 문제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앞서 설명에서 보았듯 중요한 것은 단어 자체를 익히는 게 아니라, 앞뒤 ‘맥락’에 따라 어떤 수 단어가 적절한지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니까요. 따라서 다음과 같은 형식의 문제를 접해야 수 단어 학습에 도움이 됩니다.



숫자를 익힐 때 쓰기 못지않게 ‘읽기’가 왜 중요한지, 그리고 숫자 읽기가 능숙해지기 위해 얼마나 많은 연습이 필요한지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위 연습이 충분히 이루어진다면 한자어와 순우리말이라는 한국어 특유의 이중구조로 인해 숫자를 읽을 때마다 겪었던 혼란이 많이 줄어들 겁니다. 다음 호에서는 숫자를 제대로 쓰는 법에 대해 다루어보겠습니다.

- 박영훈의 수학 탐험대 ⑦편 끝

 

‘수학’ 하면 복잡한 수식과 계산이 떠오르나요? 식은땀이 나고 골치가 지끈지끈 아파오나요? 나온교육연구소 박영훈 소장은 더 이상 문제풀이식 수학으로 아이들을 괴롭혀선 안 되며, 수학의 진정한 즐거움을 알기 위해서는 유아 때부터 수학에 대한 개념을 올바르게 세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어떻게 해야 수학의 첫걸음을 제대로 뗄 수 있을까?’ 이 질문에서 시작된 <박영훈의 수학 탐험대> 일곱 번째 칼럼은 생각만큼 쉽지 않은 ‘숫자 읽기’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Credit Info

기획
박시전 기자
박영훈
일러스트
곽은지

2018년 03월호

이달의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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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전 기자
박영훈
일러스트
곽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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