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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의 영어두뇌 만들기>

READ ALOUD! 소리 내어 읽어야 합니다!

On March 09, 2018 0

영어 사교육에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이지만 정작 외국인을 만나면 ‘제대로 된 영어’를 구사하지 못해 절절매는 현실이 ‘대한민국 영어의 현주소’입니다. 그 괴로움을 너무 잘 알기에 내 아이만큼은 영어로 고통받지 않길 바라며 지금 이 순간에도 아이에게 영어 동요를 불러주고 좋다는 영어 전집을 들이며 입소문난 영어 학습법을 따라하지요. 그런데 뭔가 조금 아쉽지 않던가요? 왜 이런 교수법이 좋은 건지, 그렇게 따라하는 게 정말 맞는 건지 의문이 들 때가 있지 않던가요? <박순의 영어두뇌 만들기>에서는 ‘외국어로서’ 영어를 학습하려면 우리가 무엇을 알아야 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접근하는 게 효과적인지 신경학적 관점에서 분석했습니다.

PRO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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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
어떻게 하면 좀 더 재밌고 효과적으로 영어를 배울 수 있을지 고민하는 영어교육자.

‘외국어로서의 영어’를 학습하는데 있어 뇌과학이 제공한 중요한 단서를 바탕으로, 신경학적 관점에서 ‘영어두뇌’에 대해 연구 중이다.

서울대학교 대학원 영어교육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고 국제영어대학원대학교에서 ‘신경언어학과 영어교육’을 강의했다.

<아이의 영어두뇌>, <뇌과학으로 알아보는 혁신적 영어 학습법>의 저자이며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서 <중학사이버영문법>과 EBSLang 등의 교재를 개발했다. KBS <스페셜다큐>, EBS <다큐프라임>의 자문위원으로 활동했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한 우리나라의 최종 발표에서 유창하고 격조 있는 영어 및 불어 실력으로 세계를 감동시킨 나승연 대변인은 뛰어난 외국어 실력을 갖게 된 비결을 묻자 이렇게 답합니다.


“대학에서 불어를 전공했어요. 따로 통역대학원을 다니진 않았습니다. 어릴 때부터 소리 내어 책 읽는 버릇이 있었는데 그게 큰 도움이 되었어요.

오랫동안 이런 습관이 붙다 보니 외국어에 익숙해진 것 같아요. 외국에서 공부한다고 다 잘되는 건 아니니 영어로 말을 잘할 수 없으면 소리 내어 읽는 연습을 꾸준히 해야 합니다.”


제 첫째 아이도 ‘소리 내어 읽기’로 영어를 익히고 있습니다. 두세 살 무렵 외국어인 영어 소리에 거부감을 분명히 표했던 터라 우리말과 우리글을 우선시했습니다.

그리고 일찌감치 한글 읽기가 능숙해진 다음, 영어를 많이 들려주고 영어 책도 직접 읽어주었더니 외국어에 거부 반응보다는 호기심을 차차 드러내더군요.

ABC 알파벳보다 영어 말소리에 익숙해지도록 ‘소리가 먼저(Sound First)’ 단계를 충실히 거쳤고, 7세 때부터는 영어 읽는 법을 명시적 훈련으로 가르쳤더니 차츰 스스로 영어 단어를 소리 내어 읽으며 흡족해했습니다.

저는 아이가 소리 내어 읽은 영어 문장을 우리말로 고스란히 번역해준 적이 없어요.

그럼에도 첫 칼럼에서 이야기했듯이 영어권 국가인 뉴질랜드에 갔을 때 아이는 복잡한 영어 안내문을 저보다 빠르게 읽으며 이해했죠. 지금은 선물로 사준 영어 게임 매뉴얼을 반 친구들에게 한글로 번역해줄 정도의 독해 실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다음 칼럼에서 자세히 설명할 테지만 사람, 특히 어린아이의 뇌는 소리 회로가 탄탄히 구성될 때 의미와 개념이 확립되고, 더불어 빠르게 문자를 읽는 자동성과 유창성까지 획득할 수 있습니다.

세계 여러 언어 중에서 소리 내어 읽는 능력 자체만으로도 실력을 가늠해볼 수 있는 언어 중 대표 격이 영어입니다.



 ->  소리 내어 읽기 어려운 ‘미친’ 영어 철자법
영어는 문자를 소리로 옮겨서 말하기에 가장 어려운 언어 중 하나로 어떤 미국인 학자는 영어의 철자법이 ‘미쳤다’고 한탄한 바 있지요.

문자를 소리로 옮기기 쉬운 한글 같은 문자 시스템을 ‘투명하다’고 하고, 문자를 소리로 ‘음운 디코딩(phonological decoding)’ 하기 쉽지 않으면 ‘불투명하다’고 합니다. 영어는 극히 불투명한 문자 체계를 사용합니다.

 

 언어

 음소 개수

 철자하는 방법

 이탈리아어

 33

 25 

 스페인어

 35

 38

 프랑스어

 32

 + 250

 영어

 ± 42

 + 1,100

 

<미친 영어 철자법(Sousa, 2006)> 

음소(phoneme)란 단어의 뜻을 다르게 만드는 소리의 최소 단위를 말합니다. ‘가위’와 ‘바위’의 경우 첫 음소인 ‘ㄱ’과 ‘ㅂ’의 차이 때문에 다른 뜻을 가진 단어가 됩니다.

이탈리아어와 스페인어 말소리에는 33~35개의 음소가 있는데 글로 옮기는 방법도 그 수가 비슷해서 이탈리아어나 스페인어로 쓰인 책은 쉽게 소리 내어 읽을 수 있어요.

반면에 30개 정도의 음소를 250개 이상의 철자법으로 문자화하는 프랑스어 책은 쉽게 낭독하기가 만만치 않습니다. 그런데 영어는 놀랍게도 42개 정도의 말소리 단위를 1100가지가 넘는 방식으로 문자로 옮깁니다.

예를 들어 똑같은 gh도 high, ghost, enough에서 ‘하이’, ‘고스트’, ‘이너프’처럼 모두 다르게 소리 납니다. 특수한 역사적 배경으로 인해 수많은 언어와 문화가 뒤섞여온 영어는 알파벳을 쓰는 문자 중 소리 내어 읽기 가장 어려운 언어가 되었습니다.


만일 문자를 말소리로 옮기지 못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다음 두 표기를 잠깐 보고 손으로 가린 뒤 외워보세요.

 

① tomorrow morning                  ② #$@^

①번 ‘tomorrow morning’은 15자인데도 금방 외웠겠지만, 4자밖에 되지 않는 ②번 ‘#$@^’은 잘 기억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①번은 소리 내어 읽을 수 있지만 ②번은 소리로 옮기기 어렵기에 시각적 기억에만 의존하기 때문이죠.

전화번호를 잠시 기억해야 할 때 숫자를 되뇌어본 적이 있지요? 우리의 뇌에는 당장 필요한 정보를 잠깐 담아두는 작업기억(working memory) 부위가 있는데, 여기에 새로운 정보를 입력할 때 ‘소리’가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작업기억에 새로운 정보가 일단 담겨야만 중기기억(intermediate memory)이나 장기기억(long-term memory)으로 보관될 수 있습니다.


낯선 외국어인 영어 단어나 문장도 기억 속에 오래 저장하려면 문자를 소리로 옮기는 음운 디코딩이 가능해야 훨씬 유리합니다. 작업기억에 담기지 않는 새 정보는 장기기억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매우 낮거든요. 그래서 영어는 소리 내어 읽는 연습이 필수적인 외국어입니다.


이런 배경으로 인해 영어권 국가에서는 1분 동안 책을 읽힌 다음 잘 읽는 단어 수에서 틀리게 읽은 단어의 수를 뺀 개수를 세어 난독증 등 읽기장애가 있는지 여부를 상당히 정확하게 진단할 수 있습니다(이 단위를 WCPM, 즉 word correct per minute라고 합니다).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의 일반적인 낭독 속도는 1분에 약 150개 단어입니다.



 ->  유창하게 읽는다는 것의 의미는?
아홉 살 무렵부터 영어책 소리 내어 읽기를 매일 30분씩 해온 초등학교 4학년짜리 첫째 아이는 현재 1분에 140개 단어 이상의 속도로 영어 책을 읽습니다. 이 정도면 상당히 ‘유창하다’고 볼 수 있죠.

우리나라 공교육의 영어 교육과정에서는 지난 수십 년간 정확성(accuracy)과 유창성(fluency)이 서로 대립된다는 게 핵심 쟁점이었습니다. 하지만 정확성은 유창성에 포함되는 개념이에요.

유창성을 구성하는 하위 요소가 정확성, 자동성(automaticity), 말소리의 운율적 특성(prosody)이라는 데 대다수의 연구자들은 동의합니다. 말소리의 운율적 특성에 대해서는 다음 칼럼에서 설명하겠습니다.


다변이 달변은 아니듯, 아무리 말이 많아도 정확성이 떨어지면 유창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유창성을 구성하는 요소에는 정확성이 포함됩니다. 문자를 처음 배우는 아이들은 처음에는 정확성에 집중하므로 읽는 속도가 느리지만 반복해서 익히고 연습하며 점차 속도가 빨라집니다.

특별히 의식하지 않아도 글자를 인식하게 되는 단계를 자동화라고 하는데, 힘들이지 않고 저절로 글을 읽게 되면서 얻는 최고의 이득은 여유 시간입니다.

덕분에 아이는 읽은 내용의 구조와 의미를 이해하기 위한 정신적 자원을 확보하게 됩니다. 자동화로 인해 유창성이 생기면 읽은 내용에 대한 독해력(comprehension)도 향상되겠지요.

정확성, 자동성, 운율적 특성이라는 세 요소가 조화를 이루어 글에 대한 이해력까지 좋아질 때 비로소 영어 읽기 유창성이 뛰어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과정 전반에 걸쳐 가장 강력한 효과를 발휘하는 방법이 같은 글을 서너 번 반복해서 소리 내어 읽는 겁니다.



 ->  눈으로 책을 읽고 있어도 소리 정보가 필요하다
소리 내지 않고 눈만으로 유창하게 읽는 묵독이 가능해지려면 왜 소리 내어 읽는 바탕 실력이 필수적일까요?

다음 그림은 여러 실험심리학자들이 정밀한 시선 추적 장비를 이용해서 각종 실험을 거쳐 발견한 결과로서 우리 눈이 영어 책을 읽을 때 한 번에 읽을 수 있는 시야 범위를 나타냅니다.

 



한쪽 눈을 감아보세요. 그리고 감은 쪽 눈의 눈꺼풀에 손가락을 대고 글을 읽으면 안구가 점프하듯 움직이는 걸 느낄 겁니다. 책을 읽을 때 안구가 잠깐 멈추는 0.25초 정도의 찰나에 초점 지점(+)에서 왼쪽으로 4글자, 오른쪽으로는 14글자까지 볼 수 있습니다.

두 단어로 이뤄진 pineapple juice 정도는 한눈에 담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우리 눈이 고정되어 한곳에 초점이 맺혔을 때 선명하게 보이는 글자는 몇 개에 불과하며, 의식적으로는 느끼지 못하지만 나머지 부분은 흐릿하게 보입니다.


예를 들어 pineapple juice에서 a에 안구의 초점이 맞을 때 전체를 모두 볼 수는 있지만 juice는 망막에 뚜렷하게 상이 맺히지 않습니다.

그런데 비록 눈으로만 글을 읽는 상황이더라도 juice의 ‘주스’라는 소리 정보가 자동적으로 뇌에 떠올라야 더욱 빠르게 다음 단어로 초점이 이동하게 된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소리 없이 글을 읽더라도 시야 가장자리에 맺힌 단어의 음성 정보가 뒷받침되어야만 평균적인 묵독 속도인 분당 250개 단어 정도의 속도로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죠.

내용이 익숙해서 일부 단어를 건너뛰며 술술 읽으면 분당 500개까지도 읽는 게 가능합니다. 소리 내어 읽을 수 있어야 읽기 유창성의 핵심 요소 중 하나인 자동성을 진정으로 획득하게 됩니다.


이 연구는 영어 원어민을 대상으로 한 실험이므로 외국어인 영어 책을 읽을 때에도 해당되는 현상일지 의문을 품을지 모르지만 관련 학술 연구에서 이끌어낼 수 있는 답변은 ‘적어도 초등학교 저학년까지는 그렇다’입니다.

소리 내어 읽기는 얼핏 단순해 보이지만 그 무엇보다 강력한 영어 학습법입니다. 또한 모든 이론적 논의를 떠나 부모와 아이가 같이 책을 소리 내어 읽는 것은 어른과 아이 모두에게 더할 나위 없는 즐거움의 원천이 될 겁니다.

- 박순의 영어두뇌 만들기 ③편 끝

 

영어 사교육에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이지만 정작 외국인을 만나면 ‘제대로 된 영어’를 구사하지 못해 절절매는 현실이 ‘대한민국 영어의 현주소’입니다. 그 괴로움을 너무 잘 알기에 내 아이만큼은 영어로 고통받지 않길 바라며 지금 이 순간에도 아이에게 영어 동요를 불러주고 좋다는 영어 전집을 들이며 입소문난 영어 학습법을 따라하지요. 그런데 뭔가 조금 아쉽지 않던가요? 왜 이런 교수법이 좋은 건지, 그렇게 따라하는 게 정말 맞는 건지 의문이 들 때가 있지 않던가요? <박순의 영어두뇌 만들기>에서는 ‘외국어로서’ 영어를 학습하려면 우리가 무엇을 알아야 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접근하는 게 효과적인지 신경학적 관점에서 분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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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박시전 기자
박순
일러스트
이현주

2018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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