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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영화를 읽다

우리가 사는 이유

 


아이를 키우다 보니 극장에서 영화 한 편 보기가 힘들다. 물론 넷플릭스나 다운로드 서비스 같은 통로도 있지만, 반드시 극장에서 봐야 하는 영화가 있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SF 영화 <그래비티>가 그중 하나다.

<그래비티>는 2013년을 뒤흔든 영화였다. 영화를 관람이 아닌 ‘체험’의 경지로 끌어올렸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전율과 패닉, 감동으로 꽉 찬 우주 모험을 선사했다. 평론가들조차 “<그래비티>가 영화의 존재 이유를 증명했다”며 흥분했을 정도다.

그도 그럴 것이, 그동안 우주를 배경으로 한 영화는 대개 외계인의 위협에 맞서 싸우거나 재난에서 살아남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그래비티>는 ‘살아서 지구로 가야 한다’는 아주 단순한 목표를 향해 돌진한다.

그것도 샌드라 블록과 조지 클루니, 단 두 배우만으로. 그러나 재난 속에 피어나는 로맨스나 끈끈한 동료애는 기대하지 않는 게 좋다. 조지 클루니는 예상보다 아주 빨리 영화에서 퇴장하니까.


지구에서 600㎞ 떨어진 우주 공간. 라이언 스톤(샌드라 블록) 박사와 지휘관 매트 코왈스키(조지 클루니)는 우주 망원경에 새로운 스캔 시스템을 설치하는 중이다. 두 사람은 우주의 심연과 끝내주는 지구 풍경을 나름 즐기고 있다.

하지만 지구 반대편에서 폭파된 인공위성의 잔해 폭풍으로 인해 순식간에 지구와의 모든 연결이 단절되고 만다. 우주왕복선은 파괴되었고 초보 비행사 라이언 스톤만이 홀로 암흑의 망망대해를 떠돈다. 공포와 패닉에 휩싸인 채 산소는 빠른 속도로 고갈되어간다.

우주는 더 이상 아름다운 공간이 아니다. 이쯤 되면 지켜보는 관객도 심히 고통스럽다. 살아서 무사 귀환할 가능성이 별로 없어 보인다. 게다가 생명체가 없는 곳에서 고립된다는 건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 이때부터 영화는 라이언 스톤이란 여자의 고독한 실존 투쟁으로 전환된다.


스톤은 살아서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 반면에 죽고 싶기도 하다. 지구에서 그녀의 삶은 그리 행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죽어도 슬퍼해줄 가족도 없고, 사랑하는 딸은 갑작스런 사고로 허망하게 세상을 떠났다. 딸이 죽은 뒤 그녀는 계속 일하고 운전하기를 반복했다.

스톤은 삶의 중력(그래비티; Gravity)을 느끼지 못한 채 무미건조한 삶을 살아왔던 것이다. 자식을 잃은 엄마는 살아갈 의미를 찾지 못한다. 그러니 잡음도 없고 상처 줄 사람도 없는 우주 공간에 영원히 남는 것도 괜찮을지 모른다.

스톤은 삶과 죽음의 이율배반적인 충동 앞에서 자신이 살아야 할 이유를 처절하게 찾는다. 그러고는 문득 그리워진다. 지구의 중력이, 누군가의 목소리가. 영화 중반 스톤 박사가 그린란드에 사는 이누이트족 남자와 교신하는 장면은 생을 향한 의지가 폭발하는 지점이다.


새해를 맞이하면서 굳이 5년 전 영화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그래비티>야말로 시작 혹은 탄생에 관한 아주 훌륭한 서사인 까닭이다. 스톤 박사는 살아야 할 이유를 느끼지 못했지만 태어났으니, 기왕 계속 가기로 했으니 끝까지 살아가기로 결심한다.

지구로 무사 귀환한 후 분명 그녀의 삶은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를 것이다. 우리는 삶에서 이유를 찾는 습관이 있다. 아이가 있으니까,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으니까, 혹은 주변에 소중한 사람들이 있으니까.

하지만 살아야 할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소중한 생명 그 자체로 태어났으니 주어진 시간을 두 발로 버티고 살아야 한다. 광활한 우주 공간으로 의식을 확장하면 인간의 번뇌는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인다.

2017년의 중력을 잘 버티고 살아왔으니, 2018년도 생명력 넘치는 한 해가 되길. 다들 해피 뉴 이어!

 

신민경 씨는요…
여섯 살, 네 살배기 두 아들을 키우는 만년 초보 엄마이자 생계형 프리랜서 라이터. <스크린>, <무비위크> 등 영화잡지 기자로 일했고 지금도 틈틈이 보고 읽고 쓴다. 엄마가 행복해져야 아이도 행복해진다는 사실을 매일 깨닫고 있다.

Credit Info

2018년 01월호


기획
한보미 기자
신민경
일러스트
게티이미지뱅크 (www.gettyimagesbank.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