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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간 베스트베이비에 ‘육아 상담실’을 연재해 온 정재호 선생의 진료실 이야기

소아청소년과 사용법, 책으로 배워볼까요?

On January 15, 2018 0

아기의 수면과 식이 문제에 관한 정보가 총망라된 블로그가 있다는 입소문을 타며 빠꼼이 엄마들 사이에서 ‘라트로 선생님’이라는 필명으로 불리던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정재호 선생이 <잘 자고 잘 먹는 아기의 시간표>에 이어 새 책을 펴냈다. 병원에 가는 부모들이 알아두면 좋을 만한 알짜 정보를 담은 이 책은 지난 2년간 <베스트베이비>에 연재하며 초보 부모의 고민을 해결해준 ‘정재호의 육아 상담실’ 칼럼을 정리해 묶은 것이다. 소아청소년과 잘 다니는 방법은 물론 아이들의 단골 질병, 그리고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로서 초보 부모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었던 그간의 이야기를 담았다는 정재호 선생과의 1문1답.


 

정재호 씨는요…
두 아이를 키우는 아빠이자 대전 엠블아동병원의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소아청소년과야말로 부모들이 마음껏 육아 상담을 할 수 있는 곳이길 바라는 의사 아빠.

<잘 자고 잘 먹는 아기의 시간표>(한빛라이프)에서 아이의 수면·수유·식이에 대한 고민에 솔루션을 제시하며 많은 부모들의 공감을 얻은 바 있다.

최근에 펴낸 책에서는 그간 진료실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병원에 다니는 초보 부모들에게 꼭 알려주고 싶었던 정보와 소아청소년과 보다 잘 이용하는 법, 아이들에게 흔한 단골 질병에 관한 이야기를 꼼꼼히 풀어냈다.

latro.egloos.com   facebook.com/kidsroutine


 

새로이 출간한 책은 어떤 책인가요?

 

Q 초보 부모들 사이에서 필독서로 손꼽히며 육아서 코너에서 꾸준히 스테디셀러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책 <잘 먹고 잘 자는 아기의 시간표> 이후 단독 집필로는 4년 만의 신간입니다. 새로 나오는 책은 어떤 책인가요? 기획 의도가 궁금합니다.

감기, 설사, 변비, 비염, 아토피피부염…. 아이들은 크고 작은 병을 달고 삽니다. 이렇게 아프면서 크는 건 어쩔 수 없는 아이들의 숙명일 거예요. 그렇다 보니 어릴 땐 병원 올 일이 참 많아요.

때 되면 예방접종 받아야지, 시기별로 영유아 검진도 받아야지 아이가 어릴수록 병원 문턱이 닳도록 소아청소년과를 드나들게 됩니다. 그런데 진료실에서 만나는 부모님들이 늘 묻는 공통된 ‘문고리 질문’이 있더라고요. 마음 같아선 한 분 한 분께 자세히 설명드리고 싶지만 늘 시간에 쫓기다 보니 충분히 답해드릴 수가 없었어요.

또 부모 입장과 의사의 입장이 다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관점 차이에서 비롯되는 오해도 있고요. 증상 하나 설명하는 그 짧은 순간에도 의사가 하는 말, 부모가 듣는 말이 제각각인 경우가 너무 많으니까요. 제 책에서는 부모의 언어와 의사의 언어가 서로 다르니 ‘진료실 번역기’가 필요하다는 표현을 썼을 정도예요.


이런 내용들을 정리해서 자료로 만들어두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했어요. 시간과 여건이 허락지 않아 진료실에서 못다한 이야기들 말이죠. 부모님들이 궁금해하는 내용, 알아두면 좋을 정보를 ‘여기 보기 쉽게 정리해두었으니 우선 읽어보세요’ 하고 싶었죠.

마침 <베스트베이비>에서 연재 제안이 왔고, 매달 쓴 칼럼을 파일링해서 병원에 비치해두면 좋을 것 같았어요. 차곡차곡 저축하듯 칼럼을 쓰면 나중에 보기 좋게 책으로 만들 수 있겠다는 기대감도 있었고요. 매달 ‘이번 호에는 무슨 주제로 글을 쓸까?’ 고민하며 한 달 한 달을 보냈는데 벌써 2년이 흘렀다는 게 믿기지 않네요.



Q 소아청소년과 잘 이용하는 법, 우리 아이에게 잘 맞는 의사 선생님 찾는 노하우, 영유아 건강검진 잘 받는 법, 진료실에 번역기가 필요한 이유, 진료실 언어 사전…. 목차만 봐도 내용이 정말 궁금해져요.

소아청소년과 의사들이 쓴 책을 보면 아이들이 자주 걸리는 질병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하는 내용이 많아요. 제 책 역시 질병 이야기도 다루긴 했지만 감기, 중이염, 수족구병처럼 아이들에게 가장 흔한 단골 질병 몇 가지를 꼽아 간추린 정도죠.

질병 자체에 대한 정보와 더불어 어떻게 하면 부모도 아이도 소아청소년과를 잘 다닐 수 있는지, 왜 동네 단골 병원 선생님이 필요한지, 어떻게 하면 잘 맞는 의사 선생님을 찾을 수 있는지 등에 대한 내용을 차근차근 정리했습니다. 진료실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상황을 복기하며 부모님들 입장에서 각각의 상황을 생각해 봤어요.

아이가 어릴수록 가까운 동네 단골 의사 선생님을 두는 게 정말 중요해요. 그래야 좀 더 양질의 진료를 받을 수 있거든요. 그런데 의사와 보호자의 입장 차이가 있다 보니 부모님들이 의사의 소견을 잘못 해석하거나 오해할 여지가 있어요.

가령 아이가 아플 때 의사는 ‘기다리며 지켜보자’는 쪽이죠. 그런데 부모 생각에는 첫 진료에서 명확한 병명이 안 나오니 어딘지 모르게 못 미덥고 불안한 마음이 들어요.

그래서 다른 병원을 찾게 되죠. 그 과정에서 이 병원 저 병원 소위 ‘병원 쇼핑’을 다니며 엄마도 애도 고생하는 걸 너무 많이 봤어요. 그럴 필요가 없는데 정말 안타까운 일이죠. 이런 경험이 쌓이면 ‘동네 병원 안 갈래’가 돼버려요.

왜냐하면 대개 처음에는 가까운 동네 병원부터 찾고, 나중엔 접근성은 떨어지지만 큰 병원으로 가게 마련인데, 대부분 나중에 간 병원에서 낫게 되어 있어요.

타이밍상 나을 때가 됐으니까요. 나을 때가 돼서 나은 거고, 좋아질 때가 되어 좋아진 건데 부모님들은 나중에 간 병원이 좋은 병원이고 잘 고쳐주는 곳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되면 결국 악순환이 반복되는 거죠. 결국 혼자 진료 보는 개인병원이 문을 닫는 추세예요.

이건 개인병원 의사에게도, 부모님과 아이들에게도, 저희 같은 2차 병원 의사들에게도 결코 좋지 않은 일이에요. 요즘 동네 병원은 아무데나 들어가도 북적이는 곳을 찾아보기 힘들어요.

반면에 아동병원이나 연합의원은 수십 명씩 대기가 밀려 있죠. 개인병원 선생님은 시간을 두고 차근차근 진료를 봐줄 수 있는데 그럴 기회를 잃게 되고, 큰 병원 선생님들은 ‘의뢰된 환자’ 위주로 보는 게 맞지만 그럴 수 없으니 과부하가 걸려요.
 



 

모든 아이들에게는 동네 단골 의사 선생님이 필요합니다

 

Q 평소 ‘동네 단골 의사 선생님’을 두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좋은 병원은 규모가 아니라 나하고 잘 맞는 의사가 있는 곳, 아이가 아플 때 언제든 부담 없이 갈 수 있는 곳이라는 얘기도 했고요.

동네 병원이 점점 사라지고 있어요. 그동안은 개인병원 아니면 대학병원이라는 두 가지 선택지가 대부분이었어요.

그래서 아이가 아프면 ‘음, 이 정도는 대학병원까지 갈 정도는 아니야’라면서 개인병원에 갔지만, 최근에는 의사 여럿이 모인 ‘연합의원’, ‘아동병원’이라는 시스템이 생겼어요. 이런 곳들이 좀 더 믿을 만한 ‘큰 병원’이라는 생각에 점점 몰리는 것 같아요.


2017년 5월 통계로 전국의 아동병원이 110개가 넘었어요. 엄청나게 늘어났죠. 제가 전문의 따고 처음 진료를 시작한 10여 년 전만 하더라도 아동병원이 손에 꼽을 정도였어요. 그러던 게 지금은 부산에 18개, 경남에만 26개입니다.

이렇게 큰 병원만 찾는 데에는 맞벌이가 늘어난 이유도 커요. 맞벌이 가정은 아무래도 야간·휴일 진료를 받을 수밖에 없는데, 그러려면 당장 의사부터 야간·휴일 진료를 혼자 감당할 수 없으니 여럿이 모이게 되고 병원 규모가 점점 커지죠.

큰 병원일수록 외래만으로는 안 되니까 입원 병실을 운영하게 되는 식이에요. 실비보험 혜택도 받을 수 있다 보니 더 몰리는 경향이 있고요. 예전과는 소아청소년과 분위기가 정말 많이 바뀌었어요.


외국은 좀 달라요. 물론 나라마다 차이는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개인 클리닉이 많아요. 아동병원도 대학병원에서 운영하는 부설 개념이지 우리나라처럼 2차 병원급은 아니에요.

반면에 일본은 분위기가 또 다릅니다. 소아청소년과 의사가 사라졌어요. 개인 소아과는 정말 찾아보기 어렵고 대학병원에서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합니다. 우리도 일본처럼 될 가능성이 없지 않죠.

부모님들 사이에 대기 인원 많은 큰 병원이 좋은 병원일 거라는 일종의 믿음 같은 게 있어요. 하지만 생각해보세요. 의사가 다른 게 아니거든요? 오히려 가까운 곳으로 가는 게 좋고, 여러 번 갈 수 있는 곳이 좋은 병원이에요.

여러 번 간 병원일수록 의사도 아이의 히스토리를 잘 알아요. 이 애가 어떤 아이인지, 평소 어디가 취약한지, 증상이 어떻게 변화하고 진전되고 있는지 보다 잘 파악할 수 있죠. 이런 정보는 당연히 진료와 처방에도 영향을 미쳐요.


단골 병원 의사 선생님의 장점은 또 있어요. 보통은 기본에 충실해 교과서적인 진료를 볼 수밖에 없어요. 처음 본 ‘의사-환자’ 관계일수록 더 그렇죠. 원칙 위주로 설명하고 처방하는 게 당연해요.

하지만 오랜 시간 봐온 부모와 아이라면 의사 입장에서 “제 자식이라면 이렇게도 해보겠어요”라며 좀 더 유연한 조언을 해주기도 해요. 그 ‘유연함’이 환자를 다독이고 실제로 치료에도 도움이 됩니다.




 

 

 

진료실 번역기, 진료실 언어 사전이 필요하다고요?

 

Q 소아청소년과 의사 선생님들이 집필한 다른 책들과는 결이 많이 달라요. 특히 ‘소아청소년과 사용설명서’라 할 수 있는 1장과 ‘진료실 언어 사전’이라는 제목의 2장이 흥미롭던데요.

의사와 부모의 입장 차이에서 오는 간극을 좁히고 싶었어요. 의사 훈련 자체가 ‘공감’하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의심하고 의심받는’ 과정의 연속이거든요. 레지던트 때 맨날 들었던 말이 ‘누가 그래?’, ‘어디 써 있어?’, ‘가져와봐’라는 거예요.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습니다’ 하고 답하면 ‘그래? 그건 무슨 논리인데?’, ‘설명해봐’란 질문을 또 받죠.

그걸 4년 내내 반복하다 보면 그 말투가 완전히 몸에 배요. 이건 의사 남편의 웃지 못할 에피소드인데요. 말투 때문에 결혼 초에 아내랑 정말 많이 다퉜어요.

한번은 모임에 다녀온 아내가 “여보, 이게 좋대~”라며 일상적인 대화를 건넸는데 제가 습관적으로 “누가 그래? 그거 맞아?”라고 대꾸한 거예요. 아마 아내 입장에선 추궁하는 것처럼 느꼈겠죠.


결혼 10년 차가 된 지금은 노하우가 생겨서 “그래? 그럴 수도 있겠네” 정도로 답하는 수준은 됐어요. 그런데 돌이켜 생각해보면 환자를 대할 때도 그랬겠구나 싶어요. 처음 진료하던 10여 년 전에는 부모님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딱 이거였거든요.

‘제발 좀 과학적으로 생각해보세요. 틀린 거잖아요. 논리적으로 생각해봐요. 말이 안 되잖아요?’ 이런 자세였죠. 의학적으로, 이론적으로 필요한 처방을 내렸는데 받아들이지 못하는 부모님들을 볼 때면 갑갑했어요.


그런데 아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더군요. “사람들은 ‘세균과 바이러스의 차이’ 같은 건 잘 모르고 별로 알고 싶지도 않아. 그게 보통 사람들의 생각이야. 그런데 진료실에서 엄마들한테 설명하면서 ‘이런 것도 몰라?’ 하는 태도라면 누가 좋아하겠어? 기분 나빠서 당신 말 아무도 안 들어.”


정말 그렇더라고요. 진료실에서 숱한 실전 경험을 쌓다 보니 ‘어라? 이렇게 얘기하니 더 잘 이해하네?’하게 되는 지점이 있더라고요. 제가 의사라는 이유만으로 가르치려 들면 ‘이 의사가 왜 이러지? 나한테 왜 이딴 소리를 하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는 걸 안 거죠. 의사랑 환자 사이에 벽이 생기면 귀도 마음도 닫아버리게 되니까요.

진료실에서 이뤄야 할 소기의 목적은 ‘나의 옳음’을 증명하는 게 아니라, 아픈 아이와 걱정하는 부모를 그저 도와주는 것뿐이에요. 그래서 이제는 ‘내가 널 도와줄 수 있어. 그러니 날 믿어줘’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쪽으로 많이 바뀌었죠.


Q 진료실 커뮤니케이션이란 게 참 흥미롭네요. 의사마다 특유의 어법이 있는 것 같아요. 어떤 병원, 어떤 의사 선생님을 우리 아이 단골 주치의로 정할지 고민할 때 ‘진료실 화법’도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될 듯하네요.

미국만 하더라도 의학교육을 하면서 의사 소통 교육을 중요시한다고 합니다. 의학적 지식 못지않게 환자와의 커뮤니케이션을 중요하게 여기는 거죠. 요즘엔 우리나라도 의사면허 시험 과목에 환자를 면담하는 실습 시험을 포함시키고 있지만 아직 괄목할 정도는 아니에요.

의사 개개인이 현장에서 알아서 익혀나가는 수준이에요. 재미난 점은 그 지역에서 유명하다는 선생님들의 진료 방식을 지켜보면 대개 두 부류로 나뉜다는 거예요. ‘끊임없이 공감해주는 자상한 스타일’과 엄청 카리스마 있게 ‘내 말만 믿고 따라와, 내가 책임질게’ 하는 스타일이죠.


저는 좀 단호한 진료 방식을 선호하는 편이에요. 공감해주는 진료의 장점도 많지만 저한테는 에너지 소모가 너무 크더라고요. 한정된 진료 시간 안에 보다 명확한 가이드를 전달하려고 일부러 ‘센’ 예를 들기도 해요. ‘빨리 나으려면 이렇게 해야한다’라는 걸 이해시키기 위해서요.

하지만 퍼블리싱 되는 책에선 그럴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저를 잘 아는 분들은 “정 원장님 책 보면 육성 지원은 되는데 되게 ‘착하고 순한’ 버전 같아요”라고 이야기들 하세요(웃음).


반면에 저희 병원에 정반대 스타일의 선생님이 계세요. 공감의 끝판왕이랄까요.(웃음) 경상도 분이신데 아이 엄마가 뭐라고 얘기만 꺼내면 “우짜꼬~ 우짜꼬~” 하며 맞장구를 치세요. 그래서 ‘우짜꼬 선생님’으로 통하죠. 병원 홍보 영상 만드느라 꼬맹이들한테 멘트 딸 때면 “우짜꼬 선생님, 사랑해요~” 한다니까요.


예를 들어 아이가 폐렴이라면 “우짜꼬~ 폐렴인데예~ 엄마도 고생하고 애기도 고생할 텐데 우짜꼬~ 우짜꼬~” 하는 식이라 위로받는 느낌이 들어요.

반면, 평소 제 진료 방식에 익숙한 엄마들이 이 선생님을 뵌다면 ‘왜 이렇게 야단인 거지? 입원할 정도는 아니라면서 선생님이 저러시니까 더 걱정되네’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거예요.

저 같은 경우에는 “폐렴입니다. 약 먹고 이틀 뒤에 봅시다. 폐렴이라고 다 입원하지는 않습니다”가 다거든요.


사람의 성격, 말투, 생김새가 다 제각각이듯 선호하는 진료 방식도 제각각인 게 당연해요. 심지어 지적당하는 걸 선호하는 부모님들도 있어요. 내가 지금 잘하고 있나 불안한데 의사가 이건 맞고 이건 틀려요 딱딱 지적을 해주면 오히려 안심이 된다고요.

저는 초면에 실례인가 싶어 “제가 잔소리가 너무 많죠?”라고 물으면 "아뇨, 아뇨, 더 많이 얘기해주세요" 하는 분들도 있어요. 이렇듯 의사마다 진료 방식도, 화법도 전부 다르게 마련이니 자기랑 잘 맞는 선생님을 단골 의사로 정하는 게 가장 좋아요.

‘의사소통’이 의학적 판단 못지않게 중요한 순간이 정말 많거든요. 만약 특정 의사 선생님이 잘 맞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면 그 선생님과 다른 선생님의 처방 내역을 찬찬히 비교해보세요.

아마 처방 자체에 큰 차이는 없을 겁니다. 그보다는 이야기를 들어주는 태도, 설명하는 방식이 잘 맞았기 때문에 진료가 만족스러웠을 가능성이 더 높아요.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이자 아빠로서의 이야기

 

Q 아이가 아플 때면 아무리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라 해도 별수 없는 아빠라 했습니다. 곁에서 지켜보며 돌봐주는 수밖에 없다고요. 하지만 의학 지식을 가진 의사이기 때문에 아픈 아이를 대하는 태도가 조금 다르지 않나요? 마냥 동동거리진 않을 것 같아요.

아내 이야기를 한번 더 소환해야겠네요. 결혼하고 5년 차가 되어서야 아기를 가졌어요. 그렇다 보니 비슷하게 결혼한 친구들은 이미 엄마 아빠가 되어 있었죠.

이 친구들한테 한밤중에도 전화가 막 와요. “우리 애 열이 나는데 어떡해야 돼?”, “이러저러한 증상을 보여. 많이 아픈 거 같은데 괜찮은 거야?”라고 묻는 전화를 숱하게 받았죠. 저야 일상적인 일이고 ‘그래, 너희들이 의사 친구 써먹는 것도 3~4년 바짝일 거다’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 모습을 지켜본 아내는 불안감이 컸던 모양이에요. ‘애들은 다들 저렇게 자주 아픈 건가’ 싶었던 거죠.


첫째가 태어나 집에서 며칠간 출산휴가를 보내고 출근하는데 아내가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당신은 진료 중에 전화도 안 돼, 카톡도 못 받아. 우리 애 아프면 어떡해야 해?”

그래서 이렇게 말해줬어요. “애가 병원에 꼭 가야 하는 상황이면 이런 고민 안 해. 그냥 들고 뛸 거야. 들고 뛸 정도가 아니라면 일단 기다려도 괜찮은 거야.” 아내는 그 얘기 하나로 지금까지 마음을 다잡으며 지내고 있어요.


소아청소년과 의사가 전문가이긴 하지만 진찰하자마자 척 보고 진단을 내릴 수 있는 건 아니에요. 그럼에도 진료를 마치고 아이를 집으로 돌려보낼 수 있는 이유는 ‘내가 아는 심각한 병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 그러니까 일단 지켜봐도 괜찮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그걸 판단하는 기준은 그렇게 특별하진 않답니다. 부모님들이 상식선에서 보는 것이나 의사가 상식적으로 판단하는 게 크게 다르지 않아요. 아이가 아프다 안 아프다 판단하고, 응급실에 가느냐 마느냐 결정 내리는 기준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 아니에요.

그러니 부모로서의 느낌과 촉을 믿으셔도 돼요. 심지어는 몇몇 질병에서는 ‘엄마가 걱정하면 입원시켜서 봐야한다’는 입원 기준도 있답니다.

의사 입장에서도 엄마가 저렇게나 걱정하는데 무조건 괜찮다며 돌려보내진 않거든요. 진짜 괜찮은 것처럼 보인다면 일단 귀가시키고, 이상하다 싶으면 오후에 다시 찾아오라고 해요. 혹은 내일 다시 보자고 하죠. 이런 식으로 진료 텀을 짧게 잡아가는 거예요.


물론 엄마 아빠 입장에선 ‘이 정도 증상으로 이렇게 자주 병원에 가도 될까’ 싶을 때도 많을 거예요. 그럴 땐 일단 병원에 데려오세요. 그러면서 배우는 거니까요. ‘이 정도일 때 병원에 오니 특별히 해주는 게 없네? 다음번에는 좀 더 기다리면서 지켜봐도 되겠구나’ 싶을 거예요.

반대로 내가 보기엔 괜찮은 것 같은데 주변에서 병원에 한번 데려가보라고 해서 갔더니 정말 좋지 않은 상황이었다면 ‘그래, 이럴 때는 좀 더 빨리 병원에 데려가야겠구나’ 하면서 배우게 되겠지요. 이렇게 하나둘 경험을 쌓아나가는 겁니다.


생각해보세요. 애 셋 키우는 엄마들, 병원에 잘 안 옵니다. ‘몇 명 키워보니 아플 때 별거 없더라. 다 잘 크고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더라’는 사실을 이미 숱한 경험을 통해 몸소 배웠으니까요.



Q 첫 책 <잘 먹고 잘 자는 아기의 시간표>도 그렇고, 이번에 출간한 책에서도 일관되게 이야기하는 키워드가 있습니다. 보편적인 육아, 기본적인 돌봄과 육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데요. 유난 떨 것 없다, 특별한 무언가를 해주려 애쓰지 말고 기본을 지켜라, 그걸로 충분하다는 게 이 책의 가장 핵심 메시지 같군요.

진료실에서 많은 부모님들을 만나오며 느낀 건 너무 애쓴다는 거였어요. 진료실에서 제가 늘 하는 얘기가 있어요. “부모인 우리가 무언가를 특별히 나쁘게 하지 않는 이상 아이를 망치지 못한다. 거꾸로 더 훌륭하게 만들어주지도 못한다. 그러니 지나치게 애쓸 필요도, 지나치게 미안해할 필요도 없다”는 말이죠.

최근 들어 육아와 관련해 가장 짚어보고 싶은 건 ‘면역’과 ‘애착’ 문제예요. 만약 제가 이 주제로 책을 쓴다면 ‘면역과 애착이라는 협박’ 정도의 제목이 붙겠네요.

‘어떻게 해야 우리 아이의 면역력을 높일까’, ‘어떻게 해야 애착을 좀 더 돈독히 할 수 있을까’, ‘혹시 내가 아이를 너무 빨리 어린이집에 보내서 아이가 잘못되는 건 아닐까’라며 고민하는 부모님들을 정말 많이 봐요.


그런데 이런 주제들은 전부 ‘맥락’ 안에서 이해해야 해요. 가령 면역력을 높여준다는 영양제만 하더라도 어떤 배경을 가지고 시작된 이야기인지 살펴 봐야 하거든요.

영양제며 비타민이 대두된 건 대항해 시대에서 비롯돼요. 사람들이 육지에 발을 딛지 못하고 저장 음식만 먹다 보니 영양 상태에 문제가 생긴 거죠. 그제야 ‘아, 우리가 평소에 먹던 비타민이 이런 역할을 하는구나’라는 걸 알게 된 거예요.

현대 사회의 우리처럼 과일과 채소를 충분히 먹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큰 효과를 보일 수 있는 것들이 아니지요. 애착이론도 마찬가지예요. 애착이론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그 맥락을 살펴보면 1차,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전쟁고아가 어마어마하게 많아졌어요.

그런 극단적인 상황에서 아이들이 어떻게 자랐는지 연구했고, ‘아, 아이들이 자라는 과정에 각인 효과라는 게 있고, 엄마와 아이 사이에 애착이란 게 이렇게 중요한 거구나’라는 걸 알게 되었죠.


애착이론은 미국의 존 보울비 박사 부부에 의해 널리 퍼지기 시작했어요. 아이를 절대 때리지 마라, 절대 No라고 하지 마라고 강조했죠. 그런데 지금 어떤가요? 아이들이 잘 지내야 될 텐데 범죄도 줄지 않고 정신병, 우울증도 더 늘었단 말이죠.

그러면서 다시금 주목한 게 프랑스식 엄한 육아예요. 이게 무얼 의미할까요? 각자 살고 있는 사회의 문화와 역사적인 맥락이 중요하지 단 하나의 절대 이론은 없다는 뜻이지요.


면역, 영양, 애착에 대한 이야기는 결국 부모를 불안하게 만들어요. 쓸모 없다는 뜻이 아니라 지나치게 강조되고 있다고 생각해요. 자꾸만 ‘부모로서 네가 무언가 놓치고 있다’라는 느낌을 줘서 죄책감을 갖게 만들죠. 장사치들은 그 부분을 놓치지 않고 파고들어요. 제일 안타까운 게 바로 그 지점이에요.

‘내가 뭔가 놓치고 있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에 매달려 있는 동안, 정작 아이와 신나게 놀아주며 즐거이 보낼 ‘이 순간’을 놓쳐버려요. 잘 재우고, 잘 먹이고, 잘 놀아주면 그것으로 충분한데 자꾸만 더 특별한 무언가를 찾으려는 모습이 안타까워요.

‘엄마 아빠로서 지금 내가 아이에게 하고 있는 일이 누가 봐도 부끄럽지 않아. 애한테 못할 짓 하고 있지 않아’라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이미 충분히 좋은 부모라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기본만큼 중요한 건 없으니까요.

부모라면 알고 싶을 소아청소년과에 관한 알짜 정보를 담았다.
지난 2년간 육아전문지 <베스트베이비>에 연재하며 초보 부모의 고민을 해결해준 ‘정재호의 육아 상담실’ 칼럼을 보기 좋게 정리하고, 새로운 내용을 더해 엮었다.

소아청소년과 잘 다니는 방법, 진료 잘 받는 법은 물론 아이들의 단골 질병, 그리고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로서 초보 부모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었던 그간의 이야기를 꼼꼼하게 정리했다. 비비북스, 14500원
● 책 구경하러 가기 : http://bit.ly/2mDQBAa

아기의 수면과 식이 문제에 관한 정보가 총망라된 블로그가 있다는 입소문을 타며 빠꼼이 엄마들 사이에서 ‘라트로 선생님’이라는 필명으로 불리던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정재호 선생이 <잘 자고 잘 먹는 아기의 시간표>에 이어 새 책을 펴냈다. 병원에 가는 부모들이 알아두면 좋을 만한 알짜 정보를 담은 이 책은 지난 2년간 <베스트베이비>에 연재하며 초보 부모의 고민을 해결해준 ‘정재호의 육아 상담실’ 칼럼을 정리해 묶은 것이다. 소아청소년과 잘 다니는 방법은 물론 아이들의 단골 질병, 그리고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로서 초보 부모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었던 그간의 이야기를 담았다는 정재호 선생과의 1문1답.

Credit Info

기획
박시전 기자
사진
이혜원
장소협찬
팔사진관(palstudio.co.kr)

2018년 01월호

이달의 목차
기획
박시전 기자
사진
이혜원
장소협찬
팔사진관(palstudi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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