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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 수학 첫걸음, 알고보면 심오한 '수 세기'활동

수학은 거리를 재고, 무게를 달고, 수를 헤아리고자 했던 인간들의 필요에 의해 비롯된 지극히 ‘생활적인 학문’입니다. 인류의 역사와 함께 지식의 깊이를 더해왔을 뿐 복잡한 수식과 계산으로 우리를 괴롭히고자 탄생한 학문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수학만 생각하면 식은땀이 흐르는 공포의 과목’이 되어 수많은 수포자를 양산하고 있는 게 지금의 현실입니다. 나온교육연구소 박영훈 소장은 더 이상 문제풀이식 수학으로 아이들을 괴롭혀선 안 된다고 말합니다. 그러려면 유아기 때부터 수학에 대한 개념을 올바르게 세워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수학의 첫걸음을 제대로 뗄 수 있을까요? 수학교육자 박영훈 선생의 세 번째 이야기는 ‘다섯 이하의 수 세기’입니다.

 ->  수 세기,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요?
‘접시에 담긴 딸기는 모두 몇 개?’, ‘버스에 타고 있는 사람은 모두 몇 명?’
아이들에게 있어 최초의 수학 학습은 ‘몇 개인가?’에 대한 답을 구하는 데서 시작합니다.

즉, 생애 첫 번째 수학 문제가 ‘수 세기’인 셈인데, 수를 센다는 것은 단순히 몇 개라는 해답을 구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이번 호에서는 아이에게 ‘수 세기’를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에 대해 집중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아름이가 2층 할머니 방에서 이렇게 소리치는 거예요.
“엄마, TV가 두 개예요. 두 개!”
할머니 방에 있는 TV를 보고 말하는 것 같더군요. 아마도 거실에 있는 TV를 떠올리며 TV가 두 개라고 말한 모양이에요.
- 23개월 아름이 엄마


아름이는 1층 거실에 하나 있는 TV와 2층 방에 하나 있는 TV 모두를 헤아릴 수 있습니다. 직접 눈으로 보고 있지는 않지만 머릿속에 그 이미지를 그릴 수 있는 거죠.

이는 생후 두 살쯤 되면 가능합니다. 물론 그 이전에 ‘하나, 둘, 셋’ 같은 수 세기 단어를 알고 있다는 전제가 있어야겠지요.


이때 가족의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코, 코, 코! 코는 하나. 눈은 두 개요, 둘! 귀도 두 개요, 둘!’ 하며 눈, 코, 입을 가리키는 생활 속 놀이는 젖먹이 때부터 자연스레 즐길 수 있는 놀이인 동시에 매우 중요한 학습입니다.

물론 이때 사용하는 수 단어는 ‘일, 이, 삼’ 같은 한자어가 아니라 ‘하나, 둘, 셋’ 같은 순우리말입니다. 한자어 수 단어는 더 나중에 습득하게 됩니다. 그런데 종종 ‘수 단어를 익히는 것’이 곧 ‘수학 학습’이라고 오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이가 말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하나, 둘, 셋’을 말하더라고요.
세 살도 채 되지 않았을 때 이미 이십까지 또박또박 차례로 말하는 걸 보고 깜짝 놀랐어요. 남편이 수학을 잘했다던데 그 머리를 타고났나 봐요. - 38개월 경희 엄마


경희 엄마는 ‘수 단어 말하기’를 수학적 능력과 동일시하고 있습니다. 물론 수를 세려면 수 단어부터 습득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수 단어 익히기’가 ‘수 세기 활동’으로 곧바로 이어지는 건 아닙니다.

모종의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만 유감스럽게도 그 미묘한 진행 과정을 우리 눈으로 확인하기란 힘든 일입니다. 어쨌든 수 세기는 아이가 자신을 둘러싼 주위 환경과 끊임없는 상호작용을 통해 서서히 점진적으로 발달하는 지적 활동의 결과물인 것은 틀림없습니다. 다음 예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이가 삐삐(고양이)를 쓰다듬다가 “삐삐 꼬리!” 하는 거예요. 그러다 잠시 뭔가 떠오른 듯 “보들이(강아지) 꼬리” 하더군요. 그러고는 “꼬리 두 개”라고 말하는 거예요. 주변에 강아지는 없었어요. 아이가 전에도 ‘두 개’라는 말을 해왔지만 그때는 눈앞에 실제로 물체 두 개가 보일 때만 그랬거든요. - 22개월 유리 엄마

이제 유리는 둘이라는 수 개념을 완벽하게 파악한 거로 여겨도 됩니다. 그리고 유리의 수 개념은, 2층 할머니 방의 TV를 보면서 1층 거실의 TV를 떠올리며 ‘TV가 두 개’라고 말한 아름이보다 한 단계 발전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아름이와 유리에게 무슨 차이가 있는 걸까요?

고양이와 강아지는 서로 종류가 다른 동물입니다. 하지만 두 동물에게는 공통적으로 ‘꼬리’가 있지요. 유리는 이 사실을 파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앞에 있는 고양이를 쓰다듬으며 보이지 않는 강아지의 이미지를 떠올리는 동시에 꼬리를 생각할 수 있어야겠지요.

유리는 서로 다른 동물의 분류 체계를 인지하고 있으며 꼬리의 개수를 헤아리는 능력을 갖춘 것입니다. 따라서 이제부터 수 세기 활동에 집중할 충분한 준비가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앞으로는 모양과 크기가 조금씩 다른 사물을 제시하고 개수라는 특성에 초점을 두어 수 세기 활동에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데 힘써야 합니다. 이때 반드시 똑같은 모양과 똑같은 크기의 대상을 반복적으로 세어보게 할 필요는 없습니다.

아름이와 유리의 사례는 아이들에게 수 세기를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에 대한 단서를 줍니다. 처음에는 다음과 같은 문제를 제시하는 게 바람직합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같은 수 단어를 익히려면 위에 제시한 그림처럼 종류와 모양, 크기까지 모두 동일한 대상을 보여주는 게 좋습니다. 수를 헤아릴 대상은 사과나 바둑돌 같은 실물도 되고, 책 속 그림이어도 괜찮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각각 똑같은 색깔과 크기, 모양을 지닌 대상을 제시해야 한다는 겁니다. 아이가 다른 특성에 신경 쓰지 않고 오직 수 세기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실제로 아이에게 수 개념을 가르치는 부모와 교사들은 이미 이러한 사실을 직관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나의 바구니에 담긴 사과 한 개와 참외 한 개를 가리키며 ‘둘’이라는 개념을 알려주는 식으로 가르치는 사람은 드물 겁니다.

어느 정도 이런 수 세기에 익숙해진 다음에는 탁자에 놓인 유리컵 한 개와 종이컵 한 개를 보고 컵이 두 개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요. 만약 인절미 한 개와 가래떡 한 개를 보고 떡이 두 개라고도 말할 수 있는 아이라면 이젠 추상적 수 개념이 형성되었다는 증거입니다.

이때부터는 종류나 용도 또는 색깔 등 속성이 다른 대상을 제시하더라도 서로 다른 특성에 신경 쓰지 않고 오직 ‘수량 자체’에만 집중할 수 있습니다. 이 단계에 도달했다면 다음과 같은 문제 풀이가 많은 도움이 될 겁니다.



위 그림을 보며 아이 스스로 문제를 만들어보게 해도 좋습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문제가 가능합니다.

 

Q 셔츠는 몇 개? Q 바지는 몇 개? Q 운동화는 몇 개?
이런 질문도 가능합니다.
Q 빨간색은 몇 개? Q 파란색은 몇 개? Q 노란색은 몇 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여러 색깔에 대한 사전 지식을 갖고 있어야겠지요. 물론 이 문제를 계기 삼아 다양한 색깔과 사물의 종류를 배워볼 수도 있습니다.

한 가지 팁을 드리자면 부모님들이 직접 질문을 만들어도 좋지만, 나중에는 아이 스스로 문제를 만들어보게 하면서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의 역할을 바꾸어보라는 겁니다.


수 세기는 ‘분류’와도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모자나 셔츠, 블록의 개수를 구할 때는 색깔이라는 특성을 무시해야 합니다. 반면에 색깔별로 개수를 구할 때에는 ‘어떤 물건인가’ 하는 특성은 고려하지 않고 오직 색깔에만 집중해야 합니다.

이런 분류 작업이 어른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하고 간단한 작업이지만 세상에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이들에게는 특성에 따라 사물을 분류한다는 게 그리 쉽지 않겠지요. 수학 문제를 풀이하면서 분류의 개념도 함께 배울 수 있다면 일거양득이 아닌가요?





 ->  생활 속 수 세기 놀이
지금까지 살펴본 아이들의 수 세기 활동은 대체로 5를 넘지 않는 수로 한정하였습니다. 5 이상의 수, 즉 ‘여섯, 일곱, 여덟’ 등의 수 세기는 아이들에게 또 다른 험난한 과제입니다.

이를 극복하려면 5까지의 수 세기 연습이 일상생활에서 반복적으로 이루어져야만 합니다. 그러면 어떤 활동이 필요할까요? 실생활에서 응용 가능한 몇 가지 방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우선 개수를 셀 때 반드시 눈으로 보이는 대상으로 한정 지을 필요는 없습니다. 청각을 사용하는 식으로 확장해도 좋습니다. 예를 들면 세 시를 알리는 세 번의 시계 종소리, 손바닥으로 박수 세 번 치기, 책상을 두 번 두드리기 식으로 말이죠.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횟수를 파악하는 수 세기 또한 매우 훌륭한 배움의 방식입니다. 평소 집에서 체조를 하거나 줄넘기를 할 때, 혹은 공을 던질 때 ‘하나 둘~’, ‘하나 둘~’, ‘하나, 둘, 셋~’ 식의 구령을 붙이는 것도 수 세기를 위한 좋은 활동입니다.

물론 이때 율동과 함께 이삼 박수(짝짝, 짝짝짝) 등 박자 맞추기도 곁들일 수 있습니다. 수 세기 활동뿐 아니라 신체 활동도 되는 것이죠.


“자, 밥 먹자. 셋까지 셀 동안 식탁으로 오는 거다! 하나, 둘, 셋.”

이렇게 식사 예절을 가르치며 수학 학습을 병행하거나, 아파트 계단을 오르며 차근차근 계단의 수를 헤아려도 좋습니다. 수 세기 활동은 이렇듯 우리의 삶에서 자연스럽게 접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합니다.

그리고 이 때 아이의 학습 과정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사람은 가족, 그중에서도 부모입니다. 유아 수학의 첫걸음이라 할 수 있는 ‘수 세기’ 능력은 가정에서의 가르침과 배움의 산물이라 할 수 있으니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일상 속에서 차근차근 연습해보시기 바랍니다.


다음 호에서는 5 이상의 수 세기 활동을 집중적으로 다루어보려 합니다. 이는 덧셈과 뺄셈으로 대표되는 ‘연산’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걸 살짝 귀띔해드리며 이번 호 글을 마무리합니다.
 

- 박영훈의 수학 탐험대 ③편 끝.

 

PROFILE

PROFILE

박영훈 소장 서울대 수학교육과를 졸업하고 미국 몬타나주립대학에서 수학 M.A.를 취득, 현재 홍익대 수학교육과 겸임교수와 나온교육연구소 소장으로 재직 중이다. 수학이란 학문이 숫자와 기호의 조합이어서는 안 되며 삶의 온기가 느껴지는 수학, ‘생활 속의 수학’이 되어야 한다고 여기며 수학 대중화에 힘쓰고 있다. 제7차 교육과정 중·고등 수학 교과서를 집필했으며 저서로 <당신의 아이가 수학을 못하는 진짜 이유>, <새로 쓰는 초등수학 교과서> 시리즈가 있다. <베스트베이비>의 칼럼 ‘박영훈의 수학 탐험대’를 통해 유아 수학의 기본을 짚어주고 있다.

수학은 거리를 재고, 무게를 달고, 수를 헤아리고자 했던 인간들의 필요에 의해 비롯된 지극히 ‘생활적인 학문’입니다. 인류의 역사와 함께 지식의 깊이를 더해왔을 뿐 복잡한 수식과 계산으로 우리를 괴롭히고자 탄생한 학문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수학만 생각하면 식은땀이 흐르는 공포의 과목’이 되어 수많은 수포자를 양산하고 있는 게 지금의 현실입니다. 나온교육연구소 박영훈 소장은 더 이상 문제풀이식 수학으로 아이들을 괴롭혀선 안 된다고 말합니다. 그러려면 유아기 때부터 수학에 대한 개념을 올바르게 세워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수학의 첫걸음을 제대로 뗄 수 있을까요? 수학교육자 박영훈 선생의 세 번째 이야기는 ‘다섯 이하의 수 세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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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전 기자
박영훈
사진
추경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