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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영화를 읽다

 


“여러분의 목숨을 지키는 건 부모님인가요? 무기인가요? 여러분의 생명을 지키는 믿음직한 친구, 그건 청소년법이에요. ‘14살 미만 청소년은 형법 41조에 의해 형사 책임을 지지도 않고 체포되지도 않는다.’ 정말 좋죠?”

미나토 가나에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고백> 초반에 나오는 대사다. 봄방학을 앞둔 어느 중학교 교실, 교사 유코는 학생들 앞에서 자신의 딸 마나미를 죽인 범인이 교실 안에 있음을 고백한다. 그녀에 의하면 범인은 둘이다.

살인 의도는 없었지만 살인을 한 소년 B와 살인 의도는 있었으나 살인에 실패한 A. 유코는 방금 두 사람이 마신 우유에 에이즈 환자의 피를 주입했다며 폭탄선언을 한다.

극중 학생들뿐만 아니라 지켜보는 관객도 머리를 얻어맞은 듯 충격적인 장면이다. 이렇게 근사하고 강렬한 선전포고를 본 적이 있던가. 영화가 시작되고 30분간은 숨 쉴 틈 없이 극한으로 달려간다.


<고백>은 마나미의 죽음을 둘러싸고 유코와 가해자 소년 그리고 주변 인물의 다양한 고백을 차례대로 들려준다. 진실이 뒤집히는 반전 따윈 없다. 이들의 고백이란 진실에 접근하는 과정이 아니라 변명 혹은 뒤틀린 자아를 과시하는 것에 가깝기 때문이다.

사실 이는 그리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소년법에 의거해 법적으로 처벌받지 않는 어린 범죄자와 직접 단죄에 나선 피해자의 대결은 우리에게 이미 익숙하다.

한국 영화 중에서는 <돈 크라이 마미>나 <방황하는 칼날>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특별히 <고백>을 이야기한 이유는 이 영화가 품고 있는 통쾌한(혹은 찜찜한) 에너지 때문이다.


이 영화는 피해자의 고통을 드러내기보다 피해자가 가해자를 벌하는 방식에 더 집중한다. <돈 크라이 마미>나 <방황하는 칼날>이 들끓는 모성애 혹은 부성애를 드러냈던 것과는 확연히 다르다.

유코는 가해자 A가 자신의 소중한 것을 사라지게 했던 것처럼 A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을 타깃으로 삼는다. 성숙한 교사가 되는 길을 포기하고 중학생의 눈높이에서 가해자를 조롱하고 똑같은 방식으로 되갚아주는 것이다. 자신이 저지른 죄를 반성하지 않는 이에게 이보다 더 완벽한 복수는 없다.





최근 부산 여중생 폭행 사건을 비롯해 강릉, 세종, 부천 등에서 청소년들의 범죄 소식이 연달아 들린다. SNS를 통해 이미 폭행의 전말과 가해자의 신상까지 낱낱이 알려졌다.

아이들의 잔인한 행각에 치를 떤 사람들은 ‘소년법 폐지’를 외치고 나섰다. 피해자 가족의 입장에서 생각하니 나도 피가 거꾸로 솟는다. 아마도 이런 상황에서 <고백>을 떠올린 이들이 많을 것이다.

그런데 막상 영화와 현실을 나란히 놓고 보니 마음이 어지럽다. 물론 용서는 피해자만이 할 수 있다. 하지만 영화처럼 그대로 되갚아준다고, 법적으로 형량을 높인다고 문제가 다 해결될까?


‘호통 판사’, ‘비행 청소년의 대부’로 불리는 천종호 판사는 최근 일어난 폭력 사건을 두고 “아이들이 스스로 범죄를 세상에 드러내는 시대가 된 것이 사건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가족과 사회 공동체가 해체되면서 타인의 아픔을 공감하는 능력이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마음의 브레이크가 고장 난 건 청소년만이 아니다. 특수학교를 짓게 해달라며 무릎까지 꿇은 부모 앞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혐오시설’, ‘기피시설’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본다. 차라리 위선이라도 떨면 좋으련만. 피해자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가해자 부모를 본다.


서열, 권력 같은 어른들의 비뚤어진 문화가 학교에 고스란히 녹아 있는 살풍경을 본다. 잃어버린 마음을 회복하려면 어른들부터 갈 길이 멀다. 소년을 벌하는 방법이 과연 있기나 한 건지, 나도 잘 모르겠다.

 

 >  신민경 씨는요…
여섯 살, 네 살배기 두 아들을 키우는 만년 초보 엄마이자 생계형 프리랜서 라이터. <스크린>, <무비위크> 등 영화잡지 기자로 일했고 지금도 틈틈이 보고 읽고 쓴다. 엄마가 행복해져야 아이도 행복해진다는 사실을 매일 깨닫고 있다.

Credit Info

기획
한보미 기자
신민경
일러스트
게티이미지뱅크(www.gettyimageba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