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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까지 말할 수 있는 우리 아이, 정말 수를 셀 줄 아는 걸까?

On September 27, 2017 0

‘수학’을 떠올리면 지끈지끈 골치부터 아파오고 진절머리가 난다는 사람이 부지기수입니다. 수학을 완전히 포기했다는 의미의 ‘수포자’란 단어가 일반명사처럼 쓰이고 있지요. 자그마치 4000년 역사를 지닌 인류의 학문인 ‘수학’이 어쩌다 이렇게 애증의 대상이 돼버린 걸까요. 실은 수학이야말로 ‘인간의 본성’에 가장 맞닿은 학문인데 말이지요. 수학은 거리를 재고, 무게를 달고, 수를 헤아리고자 시작 된 지극히 ‘생활적인 학문’이었습니다. 결코 아이들을 괴롭히기 위해 탄생한 학문이 아닙니다. 그러던 것이 입시 도구로 전락하고 공부법이 왜곡되며 수많은 수포자를 양산하게 된 게 지금의 현실입니다. 나온교육연구소의 박영훈 소장은 더 이상 ‘문제풀이식 수학’으로 아이들을 괴롭혀선 안 된다고 단언합니다. 무엇보다 우리 아이들이 수학의 본질에 가까워질수록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하면 유아 수학을 제대로 시작할 수 있을까요? 수학교육자 박영훈 선생님의 첫 번째 이야기는 ‘수 세기’입니다.

 ->  ‘내비게이션 수학’, 더 이상은 안 됩니다
“아이가 아직 유치원에 다니고 있어요. 이렇게 어린 아이에게도 수학을 꼭 가르쳐야 하나요?”
대학원 강의 <유아 수학의 원리> 첫 시간에 한 학생에게 받았던 질문입니다.

교육대학의 늦깍이 학생이자 초등학교 현직 교사, 그리고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던진 질문이었지요. 진지하고 심각한 표정에는 사뭇 많은 고민이 담겨 있는 듯 보였습니다.

그녀에게 수학 학습이란 곱셈구구, 평행사변형과 사다리꼴 넓이 공식, 이차방정식 근의 공식을 거쳐 시험에 나올 문제를 수차례 반복해 풀어야 했던 힘들고도 기나긴 과정을 뜻하는 것 같았습니다.


불안과 공포,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경험을 안겨준 대상…. 많은 이들에게 수학은 그런 존재일 겁니다. 그렇기에 그 대학원생 엄마도 아직 학교에도 입학하지 않은 어린 아이에게 수학 공부를 시켜야 할지, 아니면 아직은 그냥 지켜봐도 될지 고민스러운 마음에 던진 질문이었을 테죠.

저는 그런 ‘끔찍한 수학’이라면 아이에게 결코 강요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더 나아가 어쩔 수 없이 해야 했던 중·고등학교 시절의 수학은 ‘진짜 수학’이 아니며 ‘내비게이션 수학’에 지나지 않는다고 일찌감치 말해왔습니다.

운전석에 앉아 내비게이션의 지시대로만 간다면 누구나 목적지에 정확하게 도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어떤 길을 지나쳐 왔는지 알 수 없으며, 종국에는 내비게이션 없이는 더 이상 운전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말지요. 수학도 비슷합니다.

일단 ‘내비게이션 수학 공부법’에 익숙해지면 다른 사람이 풀어놓은 해답을 따라가는 것밖에 못합니다. 수학을 가르치는 이들 역시 문제풀이를 보여주는 게 교사의 역할이라 여기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사고하는 학문’이라는 수학의 본질과는 거리가 멀어지는 셈이지요.

많은 이들이 ‘내비게이션 수학’의 희생자입니다. 앞으로 제가 펼쳐놓을 유아 수학은 내비게이션 수학과는 궤를 달리합니다. 수학은 그 본질을 알아야 하는 학문입니다.

당연히 어린아이들도 수학의 본질을 알아야 하며, 스스로 그 본질을 발견해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다음의 큰 전제가 깔립니다.


‘내 아이는 스스로 생각할 수 있다’


그렇습니다. ‘유아에게 수학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를 탐색하기에 앞서 우리는 내 아이가 스스로 사고하는 존재라는 사실에 먼저 동의해야 합니다. 이는 저 혼자만의 생각이 아닙니다.

피아제 이론을 토대로 구성주의 수학 학습 이론을 교실 수업에 구현하는 데 생애를 바쳤던 수학교육자 콘스탄스 카미(Constance Kamii)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수학 문제 풀이에서 오답을 적은 아이는 스스로 생각하고 있다는 걸 보여준 동시에 스스로 지적인 존재임을 드러낸 것이다.”

그렇습니다. 생각하지 않고 오답을 제시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더욱 분명해졌습니다.

‘어린 아이들’이란 존재는 과연 ‘어떻게’ 생각하는지부터 알아내야 합니다. 유아 수학의 기본이자 시작점이 되는 ‘수 세기’부터 차근차근 설명해보겠습니다.




 ->  유아 수학의 시작은 제대로 된 ‘수 세기’부터!
어른들 눈에 유아 수학은 단순하기 짝이 없어 보입니다. 몇 개인지 헤아리는 ‘수 세기’와 간단한 덧셈과 뺄셈이 전부인 것 같지요. 그런데 이게 생각만큼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면요? 수 세기 하나만 하더라도 아이들의 사고방식은 어른들과는 무척 다릅니다.

우리에게는 너무 쉬운 수 세기가 아이들에게는 얼마나 어려운 활동인지부터 짚어보겠습니다.

아래 사과가 있습니다. 몇 개일까요?
 



답은 3개. 하지만 이 문제의 의도는 사과가 3개란 걸 알아보려는 게 아닙니다. 과연 어떻게 세는지 되짚어보기 위한 것입니다. 아마 ‘하나, 둘, 셋’ 이렇게 일일이 세어본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림을 보는 순간 단박에 3개란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어른들의 경우 그렇다는 겁니다. 이번에는 개수를 늘려보겠습니다. 아래 그림에 제시된 사과는 몇 개인가요?




8개입니다. 하지만 이번엔 그림을 보자마자 바로 8개라고 말한 사람은 많지 않을 겁니다. 첫 번째와 달리 두 번째 문제를 접했을 땐 순간 멈칫거리게 되고 직접 개수를 세어보게 됩니다.

그런데 이때 사람들마다 수 세기 방식이 제각각입니다. 처음 수 세기를 배운 유아들은 대개 ‘하나, 둘, 셋… 일곱, 여덟’ 이렇게 일일이 세어봅니다. 어른들 중에는 이런 방식으로 세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대부분 ‘묶어 세기 전략’을 구사합니다. (# 아래 그림 참고)




‘2, 4, 6, 8, 그러니까 8개’. 이렇게 두 개씩 짝을 지어 세는 방식이 가장 많습니다. 또는 ‘4개 그리고 또 4개, 그래서 8개’. 이렇게 네 개씩 짝을 짓기도 합니다. 다른 방법도 있습니다. ‘5개 그리고 3개가 있으니까 모두 8개’. 이 방법은 손가락이 5개여서 5개씩 묶어 세는 게 익숙해져 쓰는 전략입니다.

그렇습니다. 사과 8개를 셀 때에는 사과 3개를 세었을 때처럼 한눈에 직관적으로 알아보기 힘듭니다. 그렇다고 일일이 세어보진 않습니다. 위와 같이 ‘2개, 2개, 2개, 2개’ 또는 ‘4개와 4개’, 아니면 ‘5개와 3개’ 등 자기에게 편한 방식으로 묶은 뒤 개수를 세어봅니다.

이를 다음과 같이 간략하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우리가 할 일은 아이가 몇 개씩 묶을 것인지 스스로 판단하고 전체 개수를 정확하게 말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 겁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지도할 것인가’부터 고민해야 합니다. 이 과정은 몇 단계를 거쳐야만 합니다.

이때 우리가 놓쳐선 안 될 것은 ‘개수 세기’가 아이들에게는 고난이도의 수학 문제라는 사실입니다. 수 세기는 결코 단순한 활동이 아닙니다.

내비게이션이 길을 가르쳐주듯 풀이 과정을 보여주고 그대로 따라하라고 강요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수 세기의 핵심은 몇 개씩 묶어 셀 것인지를 ‘스스로 결정해야 하는 사고의 과정’이니까요.




 ->  ‘수 세기’가 유아 수학의 어려운 관문인 이유
수 세기를 할 때 어른들이 쉽게 간과하는 문제가 또 있습니다. 다음 문장을 읽어보세요.
‘2층에 있는 2개의 교실 가운데 1학년 2반이라고 표시된 우리 반은 이번 달 2번째 날인 2일에 대청소를 실시하겠습니다.’

이번엔 수사를 모두 빼보았습니다.

‘이층에 있는 두 개의 교실 가운데 일학년 이반이라고 표시된 우리 반은 이번 달 두 번째 날인 이일에 대청소를 실시하겠습니다.’

이 문장을 제대로 읽기 위해서는 숫자 2를 각각의 상황과 맥락에 맞게 ‘이(二)’라는 한자어 또는 ‘둘’이나 ‘두’라는 우리말로 읽을 줄 알아야 합니다. 어른들은 의식하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읽는 게 가능합니다.

하지만 이제 막 수 단어를 배우기 시작한 아이들에게는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 이는 우리나라가 한자어 문화권에 속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입니다.


비슷한 예를 하나 더 들어보겠습니다. ‘10시 10분’이라는 시각을 말할 때에도 ‘열’이라는 순우리말과 ‘십(10)’이라는 한자어를 함께 써야 합니다.

‘열 시 열 분’이라고 하거나 ‘십 시 십 분’이라고 말하는 오류를 범해선 안 됩니다. 이 모든 작업이 숫자를 처음 배우는 아이들에게 결코 만만치 않습니다. 한국어를 처음 배우는 외국인들도 어려워하는 대목이지요.


이렇게 한국어의 수 세기 단어는 ‘하나, 둘, 셋’이라는 순우리말과 ‘일, 이, 삼’ 같은 한자어가 공존하기에 수 단어와 수 세기 학습은 더욱 어려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일선에 계신 초등학교 선생님들도 저학년 아이들 중 우리말의 이중 구조를 이해하지 못해 힘들어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토로합니다. ‘2개, 2일, 2자루, 2층, 2장’을 ‘두 개(2개), 이 일(2일), 두 자루(2자루), 이층(2층), 두 장(2장)’으로 읽지 못하고 ‘이 개’, ‘이 장’으로 읽는 경우가 허다하답니다.

그렇다면 유아 수학을 다룰 때 짚고 넘어가야 할 과제가 또 하나 늘어난 셈입니다. 수 세기를 하기에 앞서 아이가 우리말로 된 수 단어와 한자어 수 단어를 상황에 맞게 제대로 구사하고 있는지 주의 깊게 살펴야 합니다.

설령 아이가 하나부터 백까지 숫자를 줄줄 왼다 해도 기계적인 암송에 지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수학적 사고는 입으로 하는 게 아니라 머릿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됩니다.


이렇듯 수 세기만 하더라도 유아 수학은 상당히 많은 범위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덧셈과 뺄셈은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요? 왼쪽과 오른쪽의 구분은요?

공간 감각이라는 어려운 용어도 곧 등장할 테고 모양을 다루는 기하학도 배워야 하는데 과연 어떻게 접근하는 게 좋을까요? 어떠신가요. ‘수 세기’와 ‘덧셈 뺄셈’ 정도만 마스터하면 될 거라 여겼던 유아 수학이 이제야 비로소 다른 시각에서 보이지 않으신가요?

이 글을 읽고 이런 생각의 변화를 갖게 되었다면 우리 아이들의 수학적 사고 과정을 탐색하기 위한 여행에 동참할 준비가 되신 겁니다. 자, 함께 가봅시다!

- 박영훈의 수학 탐험대 1편 끝.

 

PROFILE

PROFILE

박영훈 박사 서울대 수학교육과를 졸업하고 미국 몬타나주립대학에서 수학 M.A를 취득하였다. 홍익대 수학교육과 겸임교수를 역임했으며, 수학교육 전문가들과 함께 ‘생활 속의 수학’을 만들고자 수학 대중화에 힘쓰고 있다. 아이스크림 연수원에서 초등학교 교사들을 대상으로 온라인 강의를 하고 있다. 제7차 교육과정 중고등 수학 교과서를 집필했으며 <당신의 아이가 수학을 못하는 진짜 이유>(동녘), <기적의 유아수학>(길벗) 시리즈 등 다수의 수학서를 집필했다. 앞으로 <베스트베이비>의 컬럼 ‘박영훈의 수학 탐험대’를 통해 유아 수학의 기본을 짚어주고자 한다.

‘수학’을 떠올리면 지끈지끈 골치부터 아파오고 진절머리가 난다는 사람이 부지기수입니다. 수학을 완전히 포기했다는 의미의 ‘수포자’란 단어가 일반명사처럼 쓰이고 있지요. 자그마치 4000년 역사를 지닌 인류의 학문인 ‘수학’이 어쩌다 이렇게 애증의 대상이 돼버린 걸까요. 실은 수학이야말로 ‘인간의 본성’에 가장 맞닿은 학문인데 말이지요. 수학은 거리를 재고, 무게를 달고, 수를 헤아리고자 시작 된 지극히 ‘생활적인 학문’이었습니다. 결코 아이들을 괴롭히기 위해 탄생한 학문이 아닙니다. 그러던 것이 입시 도구로 전락하고 공부법이 왜곡되며 수많은 수포자를 양산하게 된 게 지금의 현실입니다. 나온교육연구소의 박영훈 소장은 더 이상 ‘문제풀이식 수학’으로 아이들을 괴롭혀선 안 된다고 단언합니다. 무엇보다 우리 아이들이 수학의 본질에 가까워질수록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하면 유아 수학을 제대로 시작할 수 있을까요? 수학교육자 박영훈 선생님의 첫 번째 이야기는 ‘수 세기’입니다.

Credit Info

기획
박시전 기자
박영훈
사진
추경미

2017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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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전 기자
박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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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경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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