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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호의 육아상담실

자연주의 육아

On August 24, 2017 0

최근 몇 달간 ‘자연주의 육아’에 대한 논란이 뜨거웠습니다. 소위 ‘안아키(약 안 쓰고 아이 키우기)’ 사태로 문제가 불거졌지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자연주의 육아’에 대한 제대로 된 정의조차 없는 게 현실입니다. 이번 호 ‘정재호의 육아 상담실’에서는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이자 두 아이의 아빠인 정재호 선생이 솔직한 의견을 전합니다. 잘못된 자연주의 육아가 생겨날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한국의 육아 환경과 의료 시스템에 대한 견해, 더불어 행여라도 우리 아이가 ‘잘못된’ 자연주의 육아의 피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 부모님들이 알고 있어야 할 최소한의 매뉴얼도 제공합니다.

 

PROFILE

PROFILE

 +  정재호 두 아이의 아빠이자 대전엠블아동병원 소아청소년과 원장. 소아청소년과야말로 부모들이 마음껏 육아 상담을 할 수 있는 곳이길 바라며 친근한 ‘동네 병원 선생님’이 되고자 노력 중이다. ‘정재호의 육아상담실’ 코너를 통해 아이들의 질병·성장·발달·훈육 등 보편적이지만 가장 중요한 육아의 기본을 짚어주고 있다.



 ->  ‘자연주의 육아’란 도대체 무엇일까?

‘자연주의 육아’를 표방하거나 추구하는 사람들의 의견을 듣다 보면 그래서 그 ‘자연주의’가 무언지 알기란 쉽지 않습니다. 친환경 농산물이라고 하더라도 저농약, 무농약이 다르고 유기농은 또 다른 분류인 것과 비슷한 듯합니다.

자연주의 태교, 자연주의 분만법만 하더라도 매우 다양하고 ‘자연주의 육아’라는 범주 안에서도 예방접종은 하자는 의견부터 접종을 하더라도 몇 가지만 하거나 아예 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또 아이에게 해열제 정도는 먹일 수 있지만 항생제나 스테로이드는 쓰면 안 된다는 입장부터 아예 병원 근처도 안 된다는 경우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이고 있지요.

그래도 공통점을 모아보자면 ‘사람은 모두 자연적으로 회복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가 그 주장의 핵심인 듯하고, 여기서 출발해 현대 의학의 도움은 그다지 필요치 않다거나 해롭다는 결론에까지 도달하는 모양입니다.


현대 의학을 공부한 소아청소년과 의사인 저도 모든 아이들이 지닌 ‘스스로 회복하는 능력’을 잘 알고 있습니다. 믿는 게 아니라 진료실에서 매일 눈과 귀로 직접 확인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저 같은 동네 의사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모두 대학병원 의사처럼 진료해야 하겠지요.

그러니 ‘스스로 회복하는’ 모습을 벗어나는 상황을 찾아내는 게 저의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모든 아이들이 ‘언제나’, ‘항상’ 자연스럽게 치유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또 그 과정이 너무 힘들고 길어질 때 가능한 상황 내에서 그 기간과 정도를 줄여주는 것도 제 일입니다.


보통 감기는 일주일에서 길어야 열흘이면 낫습니다. 이 경과를 벗어나면 감기가 낫지 않은 게 아닙니다. 이미 ‘감기’가 아니라 중이염이나 부비동염 등 합병증이 생긴 상황이지요.

하지만 이런 질병도 한 달이나 두 달 정도 기다리면 대부분 저절로 좋아집니다. 물론 그 기간 동안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고 쉬게 하면서 누군가 곁에서 돌봐줘야 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하지요.


과거에는 생명을 잃을 만큼 중한 병이었던 폐렴을 떠올려보세요. 폐렴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도 많았지만 분명 죽지 않고 살아남은 사람도 많았습니다. 이런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대처할지는 결국 각자의 선택입니다.

‘자연주의’란 그렇습니다. 일부는 ‘자연’을, 일부는 ‘인위’를 섞는다면 그건 결국 ‘인위’입니다. 자연스럽게 회복하길 바란다면 자연스러운 환경을 조성해주어야 하겠지요. 하지만 자연주의 육아는 주어진 상황 속에서 어쩔 수 없이 하게 된 선택이 아니라 신념에 해당하는 문제인 것 같아 걱정입니다.




 ->  자연주의 육아에 혹하는 이유를 짐작해보자면…
자연주의 육아에 열광하는 이유는 내성이나 면역에 대한 부정확한 개념 때문이기도 하고, 정확하지 못한 개념어를 서로 주고받는 ‘환자와 의사 사이의 간극’ 때문이기도 하며, 또 그 간극을 파고드는 일부 부도덕한 의료인의 잘못된 신념 때문이기도 합니다.

또한 설명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원가 보전도 못한 채 손해가 되어버리는 낮은 진료비 체계도 원인으로 꼽을 수 있습니다. 자연주의 육아에 혹하게 되는 이유는 더 있습니다.

대가족 시스템은 해체되어 양육을 내 일처럼 도와주거나 오랜 경험으로 안심시켜줄 사람 없이 엄마에게 양육의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사회 시스템도 한몫한다고 생각합니다.

믿을 수 있는 보육 시스템은 구비되지 않았으면서 엄마들에게도 남자들과 똑같은 직업 능력을 요구하기에 요즘 아이들은 충분히 아플 수도 없습니다. 더 빨리 나아야 하고, 덜 자주 아파야 하는 상황이 돼버린 것이죠.


‘자연주의 육아’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나 글을 보면 의사들은 아이가 조금만 열이 나고 콧물을 흘리거나 묽은 변을 보면 바로 항생제와 스테로이드를 쓰고 주사를 처방한다고 합니다. 그 결과 아이의 면역력이 점점 약해지고 더 나쁜 병에 걸리게 된다고 말하지요.

‘예방접종을 안 하거나 약을 먹이지 않으면 아이가 힘들거나 위험해질 것’이라는 의사의 경고가 실제로 일어난 사례를 주변에서 접하기란 확률상 희박합니다.

반면 의사의 조언을 무시해도 별일이 생기지 않는다는 걸 자꾸 경험하다 보면 의사의 조언을 따를 경우 오히려 ‘면역력이 떨어진다’는 저주 같은 경고에 상대적으로 귀가 솔깃해질 수밖에요.


잘못된 것들을 하나둘 바로잡으려면 진료 수가도 정상화되어야 하고, 보건복지부나 건강보험심사평가원도 지금보다 더 전문가의 의견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한의사나 동료 의사들에게도 하고 싶은 이야기도 많습니다. 더불어 엄마들도 보다 합리적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공부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면역력’이라는 말속에 담긴 함정
‘자연주의 육아’에 대해 단 한 가지만 이야기하라면 ‘면역 강화는 없다’ 는 겁니다. 아이의 건강과 관련해 합리적인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이 찾아왔다면 최소한 ‘면역 강화’를 내세우는 사람들은 피하라고 조언드리고 싶습니다.

결국 자연주의 육아에 빠져드는 이유는 자연주의 육아를 실천해야 아이의 건강에, 특히 면역 강화에 좋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반면에 예방접종이나 현대 의학은 면역 강화에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해롭거나 기능을 저하시킨다고 보기 때문에 기피하는 거죠.

그렇다고 하는 사람들도 나름대로 논리와 근거를 제시합니다. 그 주장의 역사가 짧지 않기에 근거 문헌의 양도 적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예방접종을 비롯한 현대 의학이 자연 상태 보다 ‘조금 덜’ 위험한 수준일 뿐이며, ‘더’ 해롭지 않다고 해도 이미 자연주의에 대한 신념을 굳힌 사람들에게는 음모와 술수로만 들릴 겁니다.

하지만 ‘면역 강화’라는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도 않거니와 존재해서도 안 되는 이야기라면 어떨까요.


면역이란 ‘외부 물질’이 우리 몸에 들어왔을 때 그것을 방어하는 능력입니다. 질병을 일으키는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침투한다면 당연히 활동과 증식을 방해하고 물리쳐야 하지요.

그러나 꽃가루나 달걀, 우유처럼 해롭지 않거나 오히려 유익한 물질임에도 ‘외부 물질’이라고 인식해 이에 대해 면역 반응이 일어난다면 곤란합니다. 그게 바로 알레르기입니다. 심지어 우리 몸 스스로에게 면역 반응이 나타난다면 이건 더 큰일입니다. 이건 ‘자가면역질환’입니다.

이렇듯 면역이란 저하되어서도 곤란하지만 필요 이상으로 강화된다면 이 또한 질병이 됩니다. 그렇기에 아이들에게 면역 부분에서 필요한 것은 ‘관용’일 뿐입니다. 해로운 외부 물질에는 강력하게 대응하고, 조금 해로운 것에는 적당히 대처하고, 해롭지 않은 물질은 무시하는 능력 말이지요.


흔히 면역을 강화시킨다고 할 때 어느 정도 강화시켜야 알레르기나 자가면역질환 수준이 아닌지 평가하고 정의 내릴 기준조차 없습니다. 면역 강화는 만병통치나 운수 대통처럼 덕담으로 쓰는 개념일 수는 있지만 건강을 강화하는 방법의 하나로 여기기엔 뜬구름 같은 이야기일 뿐입니다. 특히 얼마든 돈을 내고 하는 일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마찬가지로 어떤 행위나 투약을 통해 영구히 면역이 저하될 거라는 것 역시 밑도 끝도 없는 협박이라고 봐도 좋습니다. 사람의 몸, 특히 면역 체계는 그렇게 쉽게 강해지거나 약해지지 않습니다.

대단한 공부를 하거나 엄청나게 합리적인 생각을 할 것 없이 그저 ‘면역 강화’를 내세우는 사람들을 피하는 것만으로도 허무맹랑한 결정의 절반은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소아청소년과 의사인 아빠로서 바라보는 자연주의 육아
아이를 키울수록 부모로서 느끼는 게 있다면 피할 수 없는 운명의 거대함, 타고난 기질의 단단함 그리고 질병과 크고 작은 사고 앞에서 아이를 완벽하게 보호할 방법은 없다는 무력감입니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게 진정한 자연주의 육아의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이자 아빠인 저 역시 별수 없습니다. 오히려 더 뼈저리게 잘 알고 있습니다.

아무리 공부해봐도 건강이든 지능이든 혹은 성격이든 아이의 인생을 타고난 것 이상으로 훌륭하게 만들 방법은 찾기 어렵습니다. 제일 잘 아는 분야인 신체적인 건강에 관해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자연주의 육아는 이렇습니다. 조금 아플 때는 달래고 위로하며 곁에 있어주려 합니다. 많이 아파 보이면 안전하다고 인정받은 약제와 치료법을 정해진 양과 정해진 기간 동안 이용하겠습니다.

평소에 조금이라도 더 일찍, 더 오래 재우고 골고루 먹이도록 애쓰고, 열심히 놀아주며, 속상한 일이 있다면 잘 위로해주려 애쓸 뿐이지요. 그렇게 함으로써 무엇이든 좀 더 나아지길 바랄 뿐입니다.

그렇다고 항상 좋은 결과가 보장되는 것도 아니지만 그저 그게 부모로서 내가 할 일이니 그렇게 할 뿐입니다. 최고와 최선을 찾아서 신기루 같은 절대선과 절대 진리를 아이에게 안겨주려 하기보다는 게으름 때문에 벌어지는 사고와 최악의 선택을 피하고자 그저 애쓸 뿐입니다.

 

최근 몇 달간 ‘자연주의 육아’에 대한 논란이 뜨거웠습니다. 소위 ‘안아키(약 안 쓰고 아이 키우기)’ 사태로 문제가 불거졌지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자연주의 육아’에 대한 제대로 된 정의조차 없는 게 현실입니다. 이번 호 ‘정재호의 육아 상담실’에서는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이자 두 아이의 아빠인 정재호 선생이 솔직한 의견을 전합니다. 잘못된 자연주의 육아가 생겨날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한국의 육아 환경과 의료 시스템에 대한 견해, 더불어 행여라도 우리 아이가 ‘잘못된’ 자연주의 육아의 피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 부모님들이 알고 있어야 할 최소한의 매뉴얼도 제공합니다.

Credit Info

기획
박시전 기자
정재호(대전 엠블아동병원 소아청소년과 원장)
사진
추경미

2017년 08월호

이달의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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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전 기자
정재호(대전 엠블아동병원 소아청소년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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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경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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