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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입장에서 생각하고 찾아낸 ‘육아의 해법’

누군가와 트러블이 있을 때 ‘저 사람은 도대체 왜 저러는지 몰라’ 싶어서 화가 나다가도 한 번쯤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면 ‘그래, 저런 상황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다’라고 이해됐던 경험 누구나 한두 번쯤 있을 것이다. 이 단순한 ‘역지사지’의 원리를 육아에도 적용해보자.

기획
박시전 기자
사진
추경미
모델
이다연(5세), 이현우(5세)
도움말
김이경(관악아동발달심리센터 소장)
스타일리스트
김지연
헤어·메이크업
박성미
의상협찬
타이니플렉스(02-544-3677), 탐스(02-514-9006), 빅토리아슈즈(02-514-9006)
2017.08.15

 


왜 아이들은 자기 뜻대로 안 되면 일단 드러눕고 보는 걸까. 잘못된 행동이라고 수십 번을 지적해도 여간해선 고쳐지지 않는 이유는 무얼까. 공공장소에서만큼은 조금만 참아주면 좋을 텐데 잠시도 가만있지 못하고 더 산만해지는 건 왜일까.

엄마 아빠도 분명 아이였을 때가 있었건만 그때 그 시절은 죄다 까먹은 게 틀림없다. 사랑하는 내 아이임에도 ‘아이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뒷목 잡을 때가 자주 있으니 말이다.

일상생활에서 아이가 소소한 트러블을 일으킬 때 과연 아이의 속마음은 어떤지, 또 아이 머릿속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들여다볼 수 있다면 육아가 한결 쉬워지지 않을까.

‘아이’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이해할 수도 있고 그에 따른 해법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부터는 화내는 엄마 아빠가 되는 대신, 사고뭉치 내 아이의 마음을 읽어주는 부모가 되어 보다 ‘따뜻한 육아’를 실천해 보자.






 Situation 1  한자리에 잠시도 가만있지 못하는 아이
 Kid 저건 뭐지? 와, 진짜 신기해! 이건 또 뭐지? 
 Mom 제발 좀 한자리에 앉아 있으라고! 



아이의 속사정 → 여기 재미난 게 이렇게 많은데 왜 가만있어야 하죠? 답답하다고요.
아이 데리고 외출할 때면 부모는 주변 눈치를 살피느라 바쁘다. 혹여 내 아이가 ‘민폐의 아이콘’이 될까 싶어 외출 내내 주위를 살피며 아이를 단속하느라 예민해진다. 열이면 열, 아이들 대부분은 바깥에서 더욱 산만해진다.

워낙 활동적인 기질의 아이라면 더 심할 수 있다. 식당에서도 카페에서도 여기저기 참견하며 돌아다니느라 바쁘고, 지하철이나 버스에서는 주변 사람 아랑곳하지 않고 큰 소리로 떠들곤 한다.

이뿐 아니다. 식당의 수저통을 뒤집어놓는 건 기본이요, 수저로 식탁을 탕탕 두드리며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존재감을 200% 과시한다. 제발 좀 얌전히 있어주면 좋겠는데 아이는 결코 그럴 생각이 없어 보인다. 도대체 왜? 왜! 그러느냔 말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몸을 움직이고 싶어서다. 오랜 시간 한자리에 가만히 있기란 아이들에게 고문과 같다. 교통체증으로 꽉 막힌 도로 위에 옴짝달싹 못한 채 운전대만 붙잡고 있어야 하는 상황을 떠올려보자. 애꿎은 시계만 들여다보며 속에서 천불이 났던 경험 다들 있지 않은가.

더군다나 아직 ‘참을성’이라는 덕목을 알지 못하는 아이에게 ‘가만히 있기’를 요구하는 건 정당치 못하다. 아이는 ‘엄마, 이렇게 신기하고 재미난 곳에 나를 데려다놓고 가만있으라니 정말 너무해요!’라고 생각하진 않을까.


해법은 다음과 같다. 우선 새로운 곳에 간 아이의 뇌는 자동반사적으로 재미난 뭔가를 찾으려는 게 본능이란 사실부터 받아들일 것. 더불어 한창 자라나는 아이에게 필요한 건 ‘얌전하게 가만있기’가 아니라 마음껏 움직이며 에너지를 발산하는 것이란 사실도 인정하자.

그러기 위해선 당분간 민폐를 끼칠 거라 예상되는 장소는 거리를 두는 수밖에 없다. 아니면 공공장소에서도 아이를 컨트롤할 대안을 미리 준비해야 한다.

가령 일정 시간 아이의 호기심을 붙들어줄 놀잇감을 챙겨 간다든지, 한동안 아이의 눈과 입을 집중시킨 핑거푸드를 챙기는 식으로 말이다. 물론 아무리 어린아이라 하더라도 공공장소에서 지켜야 할 기본적인 예의범절을 가르쳐야 한다. 최근까지도 부모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는 ‘프랑스 육아’의 핵심 메시지이기도 하다.


이렇듯 아이를 양육하는 일정 기간 동안 부모가 마음 편히 갈 수 있는 곳은 한정적임에 틀림없다. 그렇지만 다행인 것은 아이가 이렇게 제멋대로인 시기도 얼마간이라는 사실이다. 육아의 고행길도 끝나는 지점이 분명히 있다.




 Situation 2  하는 일마다 어쩜 사고만 치는거야
 Mom (우당탕탕! 쏟아지는 물건들) 또, 또! 도대체 왜 이렇게 말썽이니? 
 Kid 나는 정말 사고뭉치, 구제불능, 말썽쟁이인가 봐. ㅠㅠ 


아이의 속사정 → 이렇게 될 줄은 정말 몰랐어요 그냥 궁금했던 것뿐이라고요.
하고 싶은 것도 많고 호기심도 많은 아이. 하지만 아이가 궁금해하는 건 대부분 손 닿지 않는 ‘저 높은 곳’에 있고 아이 키는 고작 식탁 높이에 지나지 않기에 원하는 걸 얻는 과정에서 늘 ‘우당탕탕 사고’가 동반되게 마련이다.

설령 운 좋게 원하는 걸 손에 넣었다 하더라도 소근육 조작이 미숙한 나머지 엎지르고, 쏟고, 망가트리기 일쑤. 결국 아이는 하루에도 여러 차례 물건을 쏟고, 컵을 깨트리고, 형아가 애써 만든 블록을 망가트리고, 엄마가 아끼는 장식품을 와르르 무너뜨려 “또, 또! 도대체 왜 그러는 거니?”라는 분노의 멘트를 불러오게 만든다.

그 탓에 매번 쓸고 닦고 수습해야 할 거 천지인 엄마 아빠 입장도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아이가 무언가를 능숙하게 해내고 실수를 줄이기 위해서는 적정한 양의 경험 데이터가 쌓여야 한다.

그러기 전까지 아이는 자신이 특정 행동을 했을 때 어떤 행동이 결과로 따라올지 예측하지 못한다는 점을 이해해주자. 굳이 언성을 높여 꾸짖어봤자 드라마틱한 변화를 보이지도 않는다. 부모는 부모대로 속 터지고 아이 역시 자기가 말썽쟁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니 효과적인 양육법이라 할 수도 없다.


아이가 사고를 쳤다면 심호흡 한 번 크게 하고 마음부터 가다듬자. 이미 일은 벌어졌고 화를 낸다고 달라질 것도 없다. ‘빽’하고 고함을 지른다면 순간의 불같은 화를 밖으로 분출할 순 있겠지만 그 불길의 대상이 사랑하는 내 아이라면 너무 슬픈 일 아닌가.

전문가들은 이럴 때 아이가 저질러놓은 눈앞의 상황을 ‘말’로써 표현해 객관화하면 감정을 다스리는 데 도움이 된다고 조언한다.

예를 들어 “대체 이게 뭐야? 제발 정리 좀 해”라고 화내는 대신, “장난감 바구니 속 블록이 몽땅 쏟아졌네? 재밌게 갖고 논 거구나”하며 현재 상황부터 짚어보는 것이다. 그다음 “그럼 어떻게 하면 원래대로 정리가 될까?”하며 아이와 함께 솔루션을 찾는 식이다.



위와 같이 ①번에서 ②번 과정으로 가는 대신 ③번으로 바로 건너띄는 ‘사고 알고리즘’을 익혀두자. 부모 마음은 한결 편해지고 아이의 자존감도 해치지 않을 수 있다. 게다가 아이 입장에서는 문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어떻게 하면 좋을지 생각해보는 연습을 하게 되므로 문제 해결 능력도 키우게 된다.



 Situation 3  언제나, 늘, 더! 오래 놀고픈 아이
 Mom 어머, 시간 좀 봐. 이제 그만! 집에 갈 시간이야. 엄마 말 안 들리니? 
 Kid 왜요? 왜 집에 가야 해요? 이렇게 재미난데? 


아이의 속사정 → 왜 정해진 대로 해야 하죠? 시간은 꼭 지켜야 하는 건가요?
어른들은 늘 시간에 쫓긴다. 해야 할 일이 언제나 있으며 그 일들은 스케줄에 따라 세팅되어 있다. 그리고 어른들의 타임스케줄은 육아에도 적용된다. 가령 놀이터에서는 30분 정도 놀고 그다음에는 집에 가서 아이를 씻기고 밥을 챙겨 먹인 뒤 잠잘 준비를 해야 한다는 대략의 계획이 잡혀 있는 식.

하지만 엄마 아빠가 이렇게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있을 때도 아이는 오로지 놀이에만 집중한다. 아이는 ‘지금 이 순간’에만 몰두하는 존재이며 ‘다음’ 일과에 대해 예측하지 않는다.

아이는 ‘내일’, ‘나중에’, ‘다음에’라는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반면, 지금 이 순간 재밌게 놀고 즐기는 것이 지상 최대 과제다. 그렇기에 집에 갈 시간이라며 손을 끌어당기는 엄마를 이해할 수 없다.


‘놀이터 실랑이’는 어린아이를 둔 집이라면 늘 부딪히는 일상인데 이럴 때 제법 효과를 발휘하는 묘안이 있다. ‘집에 가야 하는 상황’조차 놀이가 되면 아이는 곧이곧대로 부모의 말을 따른다.

놀이터뿐 아니라 다른 곳으로 장소를 옮기거나 지금 하고 있는 걸 끝내야 하는 상황일 때도 효과를 발휘하니 참고해보자. 아이에게 일종의 ‘놀이 미션’을 주는 것인데, 예를 들어 놀이터에 있는 상황이라면 직선 미끄럼틀 두 번, 시소 한 번, 마지막으로 회오리 미끄럼틀을 한 번 더 타고 집으로 가서 비누거품을 내어 손 씻기 놀이를 하자고 제안하는 것.

실제로 해내는 데 5분도 채 안 걸리는 미션이고 아이는 놀이라는 생각에 이 제안을 즐거이 받아들인다. 집에 가느냐, 마느냐로 실랑이할 이유는 자연스레 사라진다.





 Situation 4  마트에서 장난감 사달라며 구르고 드러누웠다
 Kid 나도 옥토넛 탐험선 사달라고요! 
 Mom 얘가 왜 이렇게 떼를 써? 버릇을 단단히 고쳐놔야겠네. 


아이의 속사정 → 귀는 쫑긋! 눈은 번쩍! 마트에만 오면 기분이 둥둥 떠올라요.
현대인에게 마트는 생활 깊숙이 침투해 있는 공간이다. 그날그날 식탁에 올릴 식료품은 물론 생필품을 얻을 수 있는 소비 공간인 동시에 잠시 집을 벗어나 차 한잔 마시고 문센 프로그램도 누리며 콧바람을 쐴 수 있는 문화공간이기도 하다.

게다가 대부분 집에서 지척인 거리에 위치해 있기에 아이 데리고 가벼운 마음으로 들르기도 좋다. 여기까지는 부모 입장에서 바라본 마트의 사회학. 그렇다면 아이에게 마트는 어떤 공간일까. 마트에 들어서는 순간 아이 귀는 쫑긋, 눈은 번쩍 뜨인다.

수백 개의 형광등 불빛 덕에 해가 진 저녁 시간에도 대낮처럼 환한 비현실적 공간이다. 마트 곳곳의 시식 코너에서는 온갖 냄새가 코를 자극하고, 매대 가득 놓인 상품과 저절로 움직이는 무빙카트는 아이의 호기심을 사로잡기 충분하다.

복잡한 도시의 삶에 익숙해진 어른과 달리, 마트는 아이의 말초신경을 자극한다. 뿐만 아니다. 아동 코너에 가면 TV에서 보았던 터닝메카드며 갖고 싶었던 레고 장난감이 유혹의 손길을 보낸다.

아이들은 어른보다 주변 자극에 훨씬 민감하게 반응하는데, 한마디로 마트는 모든 감각을 사로잡는 자극체인 것. 게다가 엄마 아빠는 필요한 물건을 카트가 미어터지도록 담으면서 정작 장난감은 하나도 못 넣게 하니 아이 입장에서는 ‘불공정’하기 이를 데 없다.

그래서 목 놓아 울거나 드러눕는 아이가 부지기수다. 하지만 아이 때문에 마트에 안 갈 수는 없는 노릇. 아이와 마트에 동행할 땐 적당한 기준을 정해야 한다. 다음 몇 가지 해법이 도움이 될 것이다.


우선, 아이에게 보상의 대가로 ‘마트 가자’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아이가 떼 부린다고 “○○ 하면 이따 마트 갈 거야. 그러니까 엄마 말 들어야지?”라는 말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런 경험이 쌓인 아이는 되레 자기가 먼저 보상을 요구하며 ‘엄마, ○○ 할 테니 마트 가자’라고 협상을 걸어올 것이다. 애초에 마트를 보상의 결과물로 삼지 않아야 한다.


둘째, 마트에서 가장 난감해지는 순간이 장난감 코너에서의 실랑이다. 아이 입장에서는 카트 가득 물건을 실은 엄마가 계산대에서 네모난 플라스틱 카드나 종이(지폐) 몇 장만 건네는 단순한 행동으로 원하는 걸 얻는데 도대체 왜 내 장난감은 안 된다는 건지 이해되지 않는다.

아직 말귀가 안 통하는 2~3세 이전 아이라면 마트 동선을 미리 파악해 장난감 코너는 애초에 피하는 것이 좋다. 의사소통이 가능한 세 돌 이후 아이라면 마트 방문을 경제교육의 계기로 삼자.

예를 들면 정당한 값을 지불해야 원하는 것을 살 수 있다는 걸 알려주고 500원짜리 동전으로 살 수 있는 게 무언지, 1000원으로는 무얼 살 수 있는지 실생활과 연관 지어 알려주는 것이다.

물론 돈이 모자라면 원하는 만큼 물건을 살 수 없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때로는 “이 스티커는 1000원인데 우리는 500원밖에 없으니 사탕도 사고 스티커도 사려면 좀 더 돈을 모아야겠네. 어쩔 수 없어”라며 좌절 경험을 갖게 하는 것도 소비 개념을 익히는 데 도움이 된다. 마트에 가기 전에는 무얼 살 거고 무얼 살 수 없는지에 대해 미리 약속을 단단해 해두는 것도 중요한 원칙이다.




 Situation 5  대신 해주고 싶은 엄마 VS ‘내가 할래’를 주장하는 아이
 Mom 이리 줘봐. 엄마가 해줄게. 
 Kid 내가 할래~ 내가 하고 싶어~나도 할 수 있다고요(시무룩… ). 


아이의 속사정 → 내가 하고 싶은데 엄마는 왜 다 해주려 할까?
아이가 서툰 손길로 단추 채우는 모습을 지켜보노라면 인내가 필요한 게 사실. 언젠가는 스스로 밥도 잘 떠먹겠지만 그날이 오기 전까지는 어미새가 먹이를 물어 나르듯 엄마는 정성스레 아이 입에 밥을 쏙쏙 넣어주곤 한다.

아이는 ‘내가 할 거야’를 입에 달고 사는데도 부모들은 아이가 잘할 수 있을까 불안해하며 숟가락에 대한 권한, 옷 입는 권한 등을 아이에게 넘기지 않는다. 부모들은 늘 아이가 어서 독립하길 바란다고 입버릇처럼 이야기하지만 정작 아이가 독립하려는 시도는 참아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두 돌 무렵의 아이는 ‘나’에 대해 알아가며 자아가 급격히 발달하기 시작하는데 이때부터는 아이 스스로 하려는 시도를 충분히 응원하며 스스로 조절하는 연습을 시켜야 한다. 물론 아직 미숙한 아이를 대신해 부모가 결정해줘야 하는 것들이 당연히 존재한다.

하지만 부모가 알아서 모든 것을 결정하고 아이를 조종하면 아이의 ‘조절’ 능력은 결코 키워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아이와 분리되지 않은 채 늘 한 몸처럼 지낼 수는 없다. 이는 아이도 엄마도 망치는 길이다.

아이를 자신의 분신처럼 여기는 것도, 자신과 하나라고 여기는 것도 위험한 발상이다. 육아의 최종 도착지는 늘 아이의 더 나은 ‘독립’에 있다는 걸 염두에 둘 것.





 Situation 6  아무리 불러도 들은 척도 안한다
 Mom 얼른 와서 밥 먹어. 엄마 말 안 들리니? (버럭!) 당장 식탁으로 오라고! 
 Kid ( … ) 진짜 안 들렸다고요, 엄마! 


아이의 속사정 → 엄마 말을 무시한 게 아니라 정말로 안 들렸어요!
오늘도 식사 준비로 분주한 엄마. 이제 막 식탁을 다 차렸고 어서 식구들이 자리에 앉아 밥을 먹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한창 장난감을 갖고 노느라 정신이 팔린 아이는 불러도 불러도 대답이 없다. 엄마는 화가 난다.

아무리 놀이에 푹 빠졌어도 그렇지 이렇게 큰 목소리로 대 여섯 번을 불렀는데 꼼짝도 않는 아이를 보면 ‘엄마 말을 못 들은 척하는 거다’, 나아가서는 ‘나를 무시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에 이른다.


하지만 아이 입장은 조금 다르다. 이런 상황에서 대부분 아이들은 정말 엄마 말이 귀에 안 들렸을 확률이 높다. 그 순간 그 놀이에 전적으로 몰입해 있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목청 터지도록 아이를 불러대는 것보다 아이 곁으로 가서 어깨를 살며시 잡으며 ‘이제 그만 정리하자.

식사 시간이야~’라고 말하는 게 한결 낫다. 아이와 대화하거나, 무언가 요구해야 할 상황일 때 이렇게 언어와 스킨십이 함께 이루어지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그래야 아이는 비로소 자신이 하던 일에서 시선을 돌릴 것이다.

 

누군가와 트러블이 있을 때 ‘저 사람은 도대체 왜 저러는지 몰라’ 싶어서 화가 나다가도 한 번쯤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면 ‘그래, 저런 상황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다’라고 이해됐던 경험 누구나 한두 번쯤 있을 것이다. 이 단순한 ‘역지사지’의 원리를 육아에도 적용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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