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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영화를 읽다.

여성 특유의 그 무엇

 


새 정부 출범과 함께 여자들의 유리천장이 조금씩 깨지는 듯이 보인다. 남녀 채용 비율을 고려하는 차원을 넘어 남성 일색이던 요직에까지 범위를 넓혔다는 점이 더 의미 있다. 기분 좋은 소식이다. 

 

그런데 인사 발표와 함께 ‘여성 특유의 섬세함’ 운운하는 소릴 들으니 이 사회가 여자들에게 어떤 고정관념을 갖고 있는지 알겠다. 정말 여자는 남자보다 부드럽고 섬세하고 꼼꼼하고 유연한가? 

 

어느 정도 맞는 말이긴 하지만 화성 남자와 금성 여자의 차이점을 풀어놓기 전에 개인이 가진 강점과 캐릭터를 짚어보는 게 먼저가 아닐까 싶다. 직장 생활을 돌이켜봐도 꼼꼼하고 감성적인 남자들이 있었던 반면 마초 기질이 다분한 대장부 스타일의 여자도 많았다. 

 

영화나 드라마에 묘사된 것처럼 여자들이 반드시 가족에 맹목적인 것만은 아니며, 성공한 여자라고 해서 꼭 독하고 인간미가 떨어지는 것도 아니란 말이다.




 


<미스 슬로운>의 주인공 매들린 엘리자베스 슬로운(제시카 차스테인 분)은 성공한 여성의 상징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그녀는 워싱턴 DC의 잘나가는 로비스트로 총기 규제를 강화하는 ‘히튼 해리스’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러려면 하원의원 60명의 지지를 끌어내야 하는데 거물급 정치인들을 상대하는 일이 만만치 않다. ‘워싱턴에서 로비스트보다 더 혐오스런 직업은 없다’는 말이 있듯 슬로운이 일하는 방식은 거침없고 무자비하며 때론 교활하다. 

 

흐트러짐 없는 옷과 단정하게 자른 단발머리에선 한 줌의 온기도 찾을 수 없다. 총기에 반대하는 사람이니 좀 인간적이지 않느냐고? 그건 그저 슬로운의 신념일 뿐이고 현재 매달린 일이 개인의 신념과 운 좋게 맞아떨어졌을 뿐이다. 

 

영화는 히튼 해리스 법안을 둘러싼 슬로운과 상대편 로비스트들의 대결에만 집중한다. 여기에는 슬로운의 과거나 가족사, 사소한 연애담마저 끼어들 틈이 없다.
 

로비스트라는 소재가 우리에겐 생소한 직업이라 자칫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속도감과 통쾌한 반전 덕분에 <미스 슬로운>은 막판으로 갈수록 몰입도가 상승한다. 무엇보다 나는 슬로운이라는 캐릭터가 마음에 들었다. 
 

주인공이 벤 애플렉이나 러셀 크로우 같은 할리우드 남자 배우였다면 ‘비정한 남자들의 세계’를 다룬 그저 그런 영화로 그쳤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 세계를 여성 캐릭터가 장악한 풍경을 보니 기분이 새로웠다. 

 

이제껏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가 일하는 여자를 이야기하면서 ‘누군가의 아내이자 엄마이자 딸’임을 강조하곤 했다. 슈퍼맘의 고뇌를 그리고 싶었거나 ‘저 못된 여자가 알고 보니 과거의 상처가 있었어, 내면은 인간적인 사람이야’ 식의 동정심을 자극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미스 슬로운>은 그런 강박에서 자유롭다. 슬로운은 자신의 행동에 대해 변명하지 않는다. 그녀는 남자와 여자를 떠나 그저 승리를 열망하는 로비스트다.
 

영화를 본 한 남성 관객은 “이 여자 사이코패스 아닌가요?”라고 물었다고 한다. 후문처럼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2017년을 사는 아이들이 보는 프로그램은 ‘놀랍도록’ 여전하다. 

 

요즘 우리 아들이 즐겨 보는 <헬로 카봇>을 예로 들자면 전문직 종사자는 죄다 남자다. 아빠는 반말을, 엄마는 존댓말을 쓴다. 집안일은 엄마만 한다. 선생님은 딱 남자들이 좋아할 만한 ‘베이글녀’(얼굴은 아기 같고 몸매는 글래머인 여성) 모습이다. 

 

여자 경찰서장은 도저히 능력 있는 리더로 보이지 않는다. 이 틈에서 벌써 남자는 어떻고 여자는 어떻고를 외치는 여섯 살짜리 아이를 바라본다. 나는 이 아이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 고민이 깊어진다. 

 

 

 >  신민경 씨는요…
여섯 살, 네 살배기 두 아들을 키우는 만년 초보 엄마이자 생계형 프리랜서 라이터. <스크린>, <무비위크> 등 영화잡지 기자로 일했고 지금도 틈틈이 보고 읽고 쓴다. 엄마가 행복해져야 아이도 행복해진다는 사실을 매일 깨닫고 있다.

Credit Info

기획
전미희 기자
신민경
사진제공
메인타이틀 픽쳐스
일러스트
게티이미지뱅크(www.gettyimageba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