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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영화를 읽다

가족, 따로 또 같이


후배가 아이 셋을 남겨두고 친정엄마, 동생과 함께 캄
보디아로 짧은 여행을 떠났다. 지난 7년간 육아에 매달리느라 외출 한 번 하기도 힘들었다고 하니 정말 꿀같은 휴식이리라. 

 

한창 말썽쟁이인 아이 셋을 시부모님께 맡기고 가자니 죄송스런 마음도 들었겠지만, 때론 꼭 잡아야 하는 기회가 있는 법이다. 몇 달째 ‘월화수목금금금’의 삶을 살고 있는 내 남편은 요즘 부쩍 “이렇게는 못 살겠다”는 말을 많이 한다. 

 

나는 위로의 술잔을 부딪치며 “너무 힘들면 그만두고 당신의 행복부터 챙기라”며 호기롭게 말했다. 물론 나는 안다. 남편은 돈 들어갈 일이 구만 리 같은 아이들을 두고 쉽게 회사를 그만두지 못할 것이며, 후배 역시 유네스코 문화유산을 앞에 두고도 집에 있는 아이들 생각이 먼저 떠오를 것이다. 

 

그럼에도 개인의 행복을 생각해 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내가 즐겁고 건강해야 가족도 단란해지기 때문이다. 세상에 즐거운 희생이란 없다.


가정의 달 5월에 어울리는 영화를 찾던 중 일본 영화 <녹차의 맛>이 떠올랐다. 2000년대 중반, 넘쳐나는 회사 일에 질식해가던 내게 큰 위로가 된 영화인데 결혼하고 아이가 생긴 지금 다시 보니 느낌이 좀 달랐다. 

 

개인의 소소한 일상을 다룬 이 영화에서 진짜 가족이 보였기 때문이다. <녹차의 맛>은 흔히 생각하는 가족 영화의 뜨겁고 끈끈하고 질긴 감성과는 거리가 멀다. 함께 저녁을 먹고 차를 마시는 몇몇 장면을 제외하면 가족들이 함께 어울리는 경우도 별로 없다. 

 

영화는 한적한 시골 마을에 사는 하루노 가족의 일상을 보여준다. 더 정확히 말하면 가족 구성원 개개인의 고민과 상상, 성장에 더욱 집중한다. 

 

괴짜 할아버지부터 최면술사 아빠, 애니메이터 꿈을 키워가는 엄마, 사춘기 아들, 자신의 환영에 시달리는 딸, 사랑의 추억을 안고 고향을 찾은 삼촌까지 모두가 자신만의 고민을 안고 있다. 

 

큰 사건이나 화끈한 카타르시스가 없기 때문에 <녹차의 맛>은 호불호가 갈리는 영화일 수도 있다. 일단 영화 속 인물들의 일상이나 고민이 어찌나 평범한지 시답잖게 느껴지기도 한다. 

 

전학 온 여학생에게 고백을 할 것인가, 옛 애인을 만날것인가, 혹은 철봉 거꾸로 오르기에 성공할 것인가. 이들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일상의 피로와 두려움, 갈등을 품고 있다. 

 

그러나 이런 작고 평범한 것 들이야말로 삶의 기본 단위이며, 이것들이 가장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곳이 바로 가정이다. <녹차의 맛>은 가족들의 평범한 일상사에 기발한 상상력과 엉뚱한 판타지를 가미한다. 

 

그것이 황당하고 때로 엽기적이기까지 하지만, 한편으론 사랑스럽다. 또한 화면을 꽉 채운 초록빛 전경과 푸른 강, 흔들리는 구름 등은 위로의 여백을 선사한다.

 

이 영화의 매력은 ‘녹차의 맛’이라는 제목에서 찾을 수 있다. 녹차는 자극적인 음료들에 비해 향이나 맛이 약하지만 지친 위장과 영혼을 달래는 데 특효약이다. 조용히 차를 음미하다 보면 혀끝의 미각이 살아나는 걸 느낀다.

 

가정의 본능이란 그런 게 아닌가 싶다. 가족들과 함께 있을 때 짜릿한 재미를 느끼진 못해도, 모든 고민을 속속들이 공유하지 않아도, 그저 같은 공간에서 같은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위로를 받는 곳.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 때리는 것이 가장 어울리는 곳 또한 집이 아니던가. 가정의 행복은 각자의 일상을 소중하게 여길 때 유지 될 수 있다. 공동체는 중요하지만 그 무게에 지는 건 곤란하다.

 

따로 또 같이.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아이들을 보면서 이 말이 많이 생각난다. 그러니 얘들아, 앞으로 엄마의 일상도 존중해주렴. 엄마도 너희들한테 다그치거나 극성부리지 않을게. 알겠지?

신민경 씨는요…

신민경 씨는요…

여섯 살, 네 살배기 두 아들을 키우는 만년 초보 엄마이자 생계형 프리랜서 라이터. <스크린>, <무비위크> 등 영화잡지 기자로 일했고 지금도 틈틈이 보고 읽고 쓴다. 엄마가 행복해져야 아이도 행복해진다는 사실을 매일 깨닫고 있다.

Credit Info

기획
전미희 기자
신민경
일러스트
게티이미지뱅크(www.gettyimageba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