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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소희의 여행육아

산책학개론

 

“저도 아이가 36개월이 되면 터키에 갈 수 있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막상 되어 보니 이 천방지축을 데리고 어떻게 그 먼 델 가나 싶어요. 우린 왜 안 되는 걸까요?”

 


“해외여행을 꼭 가고 싶지만 시간도 돈도 힘들어요. SNS의 넘치는 여행사 진들을 보면 상대적 박탈감이 들어요.”엄마들의 이러한 푸념을 들을 때 나는 그녀들의 어깨를 두 손으로 꼭 붙잡고 이렇게 말하고픈 충동에 사로잡힌다.

“아니, 어디에 가는가는 중요하지 않아요. 무엇을 하는가가 중요해요. 우리 집 앞산책부터 한번 제대로 해봅시다.”

아이와 제대로 하는 산책은 무엇일까?첫째, 느려야 한다. 아이가 화단의 제비꽃을 발견할 만큼. 그것을 손바닥에 올리고 꽃잎 개수를 세어볼 만큼. 엄마는 아이를 보고 있지 말아야 한다. 스마트폰도 보지 말아야 한다. 아이가 꽃을 발견한 것처럼,

엄마도 느긋함 속에서 자신만의 무언가를 발견해야 한다. 생각보다 포근한 봄날이구나. 이 정도만으로도 좋은 발견이다. 저 구름은 곰 인형을 닮았구나. 이건 더 좋은 발견이다.

엄마가 어른의 짐을 내려놓고 유년의 시선으로 산책을 즐기기 시작했으니. 이 순간, 엄마와 아이는 나란히 길동무가 된다. 각자 자신이 발견한 것에 대해 동등하고도 신나게 소통할 수가 있다. 매일 걷는 길이라도 느리게 걸으면 발견은 매일 새롭다.

둘째, 자유로워야 한다. 목적이 없어야 한다. 은행 가는 길에 하는 산책보다, 오롯이 산책을 위해 하는 산책이 더 좋다. 움직임에도 자유로움이 있어야 한다.

이 길로 갔다가 수틀리면 저 길로 가면 된다. 깽깽이로 뛰어다녀도 되고, 풀밭에 드러 누워도 된다. 가장 편한 신발을 신고, 돌아와 빨아버릴 옷을 입어라. 현대인은 모두 네모난 실내에서 무균실의 환자들처럼 산다. 산책할 때만이라도 세상의 다양한 촉감을 만지고 냄새 맡아야 한다. 


그렇게 접촉하며 건강한 내성을 키워야 한 다. 방귀벌레를 건드렸다가 그 강렬한 냄새에 놀라 깔깔 웃으며 도망치는 순간, 그런 순간이 산책에서는 ‘심봤다!’ 외치는 순간이다.

엄마와 아이는 이 드문 감각적 체험으로 인해 최고의 동료 의식으로 똘똘 뭉칠 뿐 아니라 잊지 못할 추억을 쌓게 되는 것이다.

셋째, 만남이 있어야 한다. 햇볕을 쪼이시는 할머니에게 다가가 엄마가 먼저 “안 녕하세요, 날씨 참 좋죠?” 말을 걸어라. “너는 몇 살이냐?” 할머니가 다시 아이 에게 말을 거실 것이다. 슈퍼에 들르거든 “또 올게요. 여기 슈퍼가 있어서 얼마나 편한지 몰라요.” 말하라. 그런 만남이 세 번만 반복되어도 이웃이 생긴다.

아이는 ‘인사하는’ 엄마의 예의와 사교성을 배울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점점 더 많은 이웃의 사랑과 관심 속에 놓이게 될 것이다. 그렇게 산책은 점점 더 많은 등장인물과 다양한 스토리를 지니게 된다.

여행을 떠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여행자의 마음으로 일상을 사는 것이다. 파리에 간다 해도 물건이나 사고 음식 사진이나 잔뜩 찍는다면 한국에 있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집 앞 산책이라도 느린 자유로움 속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 하고 온정을 만난다면, 그것이야말로 참여행이다.

오소희 씨는요…

오소희 씨는요…

여행 작가이자 에세이스트. 13년 전 당시 세 살이던 아들 중빈이를 데리고 터키로 배낭여행을 다녀온 후 라오스, 아프리카, 남미 등 세계 구석구석을 누볐다. 학교에서 체득한 지식보다 길을 걷고, 보고 체감하는 여행의 힘을 믿는다. 블로그 (blog.naver.com/endofpacific)에서 그녀의 여행기를 만날 수 있

Credit Info

기획
황선영 기자
오소희
일러스트
게티이미지뱅크(www.gettyimageba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