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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영화를 읽다.

우리들의 격렬한 통과의례

2017-02-06


 

수줍음이 많은 첫째 아이는 늘 내 고민거리다. 애교 많고 넉살 좋은 둘째와는 달리, 첫째는 또래보다 자기 표현력이나 사회성이 떨어지는 편이다. 어린이집 선생님 말로는 시끌벅적한 아이들 틈에서 유난히 “사색하는 시간이 많다”고 하는데, 달리 말하면 ‘멍 때리는’ 때가 많다는 뜻이리라. 

 

주변에서는 엄마가 나서서 동네 친구들을 만들어주고 집에도 가끔 초대해 자주 어울리게 하라고 조언한다. 그런데 그 후에는? 엄마가 아이의 사회성에 어디까지 개입해야 할 것인가? 나는 이 문제에 대해 아직도 명확한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아이는 나름 자기만의 소우주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데, 나는 어른의 잣대로 아이를 평가하고 다그치고 있는 건 아닐까? 지금은 수월해 보이는 것도 어린 시절의 나 역시 얼마나 어색하고 힘들게 받아들였던가.


세월은 과거를 윤색하는 힘이 있다. 시간이 지나면 팩트만 남고 당시 느꼈을 세밀한 감정은 전부 휘발되고 만다. “그때가 좋았지”라며 추억을 즐길 수 있는 것도 우여곡절 끝에 그 시기를 무사히 통과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과연 과거에 순수하고 행복하기만 했을까? 영화 <우리들>은 이런 질문을 던지며 열한 살소녀들의 세계로 깊숙이 들어간다. 이 영화는 지난해 소규모로 개봉했지만 2016년 한국 영화계에 떠오른 수작으로 꼽힌다. 무엇보다 연기 경험이 전무한 어린 배우들에게서 맑고 강한 진심을 끌어낸 점이 높게 평가받고 있다. 거짓과 음모,배신이 판치는 한국 영화들 틈에서 모처럼 화사한 작품을 만났다.


<우리들>은 외톨이 소녀 선(최수인 분)과 전학생 지아(설혜인 분)의 관계를 따라 간다. 둘은 서로의 비밀을 나누며 즐거운 여름방학을 보내지만 개학 후 지아는 선을 따돌리던 보라(이서연 분) 편에 서면서 선을 외면한다. 

 

초등학교 4학년, 특히 여자아이들은 남자아이들보다 또래 집단에 애착이 강하다. 그래서 이 시기 소녀들에겐 ‘우리들’의 무리에서 배척당하는 게 무엇보다 큰 형벌이다. 이 영화는 난생처음 가족이 아닌 친구에게 마음을 주고 그 과정에서 상처받고 다시 회복하는 과정을 마치 멜로 장르처럼 그린다. 

 

윤가은 감독도 두 소녀의 관계를 스킨십이 없을 뿐 멜로 관계나 다름없다고 말한 바 있다. 함께 있을 때 두 소녀는 세상이 무섭지 않았다. 그래서 친구를 위해 문방구에서 물건을 슬쩍하기도 하고, 친구가 먹을 김밥을 싸달라고 엄마에게 조르기도 한다. 

 

그러나 아이들의 세계에도 힘의 역학관계가 미묘하게 존재하여 아주 사소한 일로 틀어지고 배신하는 지경에 이른다. 이를테면 내 스마트폰을 자꾸 빌려 쓰는 게 싫어서, 나보다 공부를 더 잘해서, 혹은 나보다 더 행복해 보여서 자꾸만 상대방의 마음에 생채기를 낸다. 

 

어느 정도 가식이 몸에 밴 어른들과 달리, 아이들은 상처를 숨기는 일에 서툴다. 그런 아이들의 모습이 너무 예쁘고 안쓰럽다. <우리들>은 뭉뚱그려진 추억만 갖고 사는 어른들에게 어린 시절의 생생한 감정을 환기시킨다.

 

지금은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친구들과 영원한 우정을 약속하고, 매일 보면서도 편지를 주고받으며, 때로는 견디기 힘든 질투에 휩싸이기도 했다. 그렇게 격렬하고 날카로운 통과의례를 거치다 보니 어느새 어른이 돼버렸다. 아이들도 언젠가는 그런 아픈 경험을 할 것이다. 

 

누군가를 좋아하며 ‘우리들’ 의 세계를 만드는 일에는 환희와 고통이 동시에 수반되기 때문이다. 부모 입장에서는 아이가 상처를 모르고 컸으면 좋겠지만 어쩌겠는가. 보다 넓은 세계로나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문을 열어야 하는 것을. 내가 할 일은 그저 아이가 커 가는 시간을 존중해주는 것이다.

신민경 씨는요…

신민경 씨는요…

여섯 살, 네 살배기 두 아들을 키우는 만년 초보 엄마이자 생계형 프리랜서 라이
터. <스크린>, <무비위크> 등 영화잡지 기자로 일했고 지금도 틈틈이 보고 읽고
쓴다. 엄마가 행복해져야 아이도 행복해진다는 사실을 매일 깨닫고 있다.

Credit Info

기획
전미희 기자
신민경
일러스트
이현주
사진제공
엣나인필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