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바로가기 본문바로가기
네이버포스트 카카오 스토리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통합 검색

인기검색어

HOME > 도서

워킹맘 육아

늦둥이 워킹맘의 아이 유치원 보내기


 

300:9. 다시 봐도 믿기지 않는 숫자다. 지난 12월 9일에 참여한 딸아이 유치원 추첨 경쟁률은30:1이 넘었다. 내 인생에서 이런 경쟁률을 뚫어본 적이 있었던가. 고작 만 네 살의 아이에게 벌써부터 이런 무지막지한 경쟁을 거치게 해야 하는 걸까.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든 숫자다. 

 

실제로 비슷한 경쟁률의 한 유치원에서 반일반 추첨, 종일반 추첨, 대기 추첨까지 연달아 낙첨되었는데, 통계의 원리상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임을 머리로는 명확히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마음은 대단히 울적했다(중복 응시자가 많았다는 점은 꼭 말하고 싶다. 그 난리통 와중에 눈물을 보이는 부모들도 있었지만 몇 달이 지난 지금, 아이들은 모두 어딘가에 잘 다니고 있는 것 같으니 너무 걱정은 마시기를). 

 

그렇게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당첨된 유치원이지만 등원을 앞두고 마음이 분주해졌다. 아이가 어린이집 공간보다 훨씬 크고 복잡한 새 건물에 잘 적응할지, 식당이 있는 지하에서 교실이 있는 4층까지 가파른 계단을 사고 없이 잘 오르내릴 수 있을지, 새로운 친구들을 잘 사귀게 될지, 한 반 인원이 두 배 이상으로 늘어나는데 선생님의 지도를 잘 따라갈 수 있을지…. 마음뿐 아니라 몸도 분주해졌다. 

 

오리엔테이션과 상담을 위해 반차를 내고, 지원금을 받기 위해 아이행복카드를 만들고, 보육료 지원을 교육비 지원으로 전환하고 스쿨뱅킹에 가입하고, 실내화와 덧신을 구입하고, 각종 개인 용품에 이름을 새기거나 이름표를 달고… 숙제가 한꺼번에 쏟아졌다.

 

 무엇보다 나를 가장 긴장시킨 것은 새로운 시간표다. 오전 10시 10분쯤 집 앞으로 오는 셔틀버스를 타고 어린이집에 가던 아이가 이제 8시30분에 집에서 나가야 한다. 취침 시간과 기상 시간 모두 2시간 이상 앞당겨졌다. 

 

저녁때 엄마가 퇴근하면 아이는 바로 목욕을 한 다음 짧은 잠자리 독서 시간을 갖고 저녁 8시부터 잠들 준비를 해야 했다. 그런데 몇 년간 밤 11~12시 취침을 고수해오던 아이는 의외로 쉽게 새로운 시간표에 적응했다. 아이들의 적응력이란! 육아 초기부터 늘 그런 식이기는 했다. 

 

엄마가 선배들과 전문가들의 조언을 구하고 열심히 공부해가면서도 자신 없어 하는 길을 아이는 그냥 당차게 걸었던 것 같다. 태어날 때도 그랬고(엄마는 석 달짜리 라마즈 분만법 강의도 들었는데), 수유를 할 때도 단유를 할 때도(역시 엄마는 국제모유수유 전문가와 통곡마사지 전문가의 도움을 수십 번도 넘게 받았지), 이유식을 할 때도(이때도 이유식 책만 몇 권을 샀더라…), 아이는 책대로 안 해도 잘못되지 않는다며 자신만만하게 자기 길을 갔고 나는 망설이면서 아이를 따라가곤 했다. 

 

잘 다니던 가정 어린이집을 졸업하고 유치원으로 갈아타는 상황에서도 늙은 엄마의 근심은 끊이질 않았지만, 아이는 큰 고민 없이 자기 앞의 선택지를 집어 들고 신나게 그 길로 뛰어들었다. 

 

생각해보니 내가 아이에게 반한 것은 바로 이런 아이의 지혜를 깨달은 순간이었다. 이제 자기가 세상으로 나갈 시간이라고, 준비됐으면 나만 따라오라고 아이가 온몸으로 전하던 순간.

 

앞으로도 책이 가르쳐주지 않는 세상의 많은 문제에 대해 부지런히 아이에게 물으면서 살아가야겠다고 결심한다.그리고 아이의 이런 지혜를 오랫동안 지켜주는 부모가 되자고 결심한다.

김희진 씨는요…

김희진 씨는요…

5세 딸 여울이의 엄마이자 인문학 도서를 출간하는 출판사 반비의
편집장. 아이를 기르면서 어떤 글을 썼을 때보다 ‘의미 있는’ 활동을
하고 있다고 느낀다. 또한 누군가를 돌본다는 것의 위대한 가치를
온몸으로 깨닫고 있다.

Credit Info

기획
이원지 기자
김희진
사진
성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