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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응답하라 1988> 속에 담긴 육아 코드

On January 27, 2016

2016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1988년, 그때 그 시절의 육아법.


 

쌍팔년도 쌍문동…. 한 골목 다섯 가족의 이야기를 유쾌하면서도 진한 감동으로 그려낸 <응답하라 1988>이 최근 종영했다. 다섯 가족의 훈훈한 에피소드도, 언제나 응답 시리즈의 큰 줄기를 끌어오던 키워드 ‘남편 찾기’도 흥미로웠지만, 육아지 에디터의 눈에는 또 다른 관전 포인트가 존재한다. 그 시절로 돌아갈 순 없지만 그 시절에서 배울 건 있는 법. 2016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1988년, 그때 그 시절의 육아법. 

 

 

육아코드 01 골목은 그저 시간만으로도 친구를 만든다…


 

뜨뜻한 방구들에 배 깔고 누워 한 이불을 덮고 빌려온 만화책과 비디오를 보는 오총사. 어릴 때부터 골목을 누벼온 다섯 친구는 서로에 대해 모르는 게 없는 둘도 없는 ‘동네 친구’다. 남의 집 초인종 누르고 달아나는 건 기본, 몰려다니며 사고 치고 그러다 넘어져 팔에 깁스를 하는 악동들은 ‘똑같은’ 골목의 추억을 지녔다.

그렇게 서로에 대해 모르는 거 빼곤 다 아는 오총사의 우정은 성인이 되어서까지 이어진다. 지금 부모 세대는 쌍문동 다섯 친구가 어울려 노는 장면을 보며 아스라이 사라져간 어린 시절의 추억이 떠올랐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요즘은 ‘동네 친구’라는 존재가 아예 사라져가고 있는 듯하다. ‘유년의 고향’이란 게 우리 아이들에게도 존재할까? 학교에 진학할 무렵이면 학군 찾아 집을 옮기는 일이 다반사고 요즘 같은 시기엔 전세대란 피해 이사다니느라 사는 동네가 바뀌는 일도 허다하다. ‘깨복쟁이’ 친구가 있을 수 없는 구조. 어디 친구뿐인가. 놀 공간, 놀 시간조차 사라져버린 지 오래다. 드라마 속 덕선은 ‘골목은 그저 시간만으로도 친구를 만든다’고 하였지만 2016년을 살아가는 아이들에겐 놀 골목도, 그 흔한 시간도 허락되지 않는다.

놀이는 아이들의 특권이다. 놀이를 통해 아이는 성장하고 삶의 에너지를 채운다. 지금 우리가 아이들을 위해 해줘야 할 것은 ‘놀 친구, 놀 터, 놀 시간’을 돌려주는 일이다. 잃어버린 골목을 다시 만들어 줄 수는 없겠지만 복작복작 친구들과 놀 수 있는 사랑방은 얼마든지 만들어줄 수 있다. 서로의 집을 기꺼이 놀이방으로 내어주고 친구들과 같이 놀 시간을 만들어주면 된다. 시간과 공간만 있으면 아이들은 알아서 친구를 사귀고 서로에게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치며 함께 성장할 것이다. 

 

 

 

육아코드 02 우리 아이들은 ‘시간의 주인’이 되어본 적이 있는가

 


 

지금 30~40대가 부모에게 “예전에 나 어릴 때 어땠어?”, “난 뭐 하고 지냈어?” 하고 묻는다면 대부분의 부모님들은 제대로 답을 못할 것이다. 너무 오래전 기억이라서가 아니다. 그 시절 부모들에겐 부모 나름의 생활이 있었고 아이들에겐 아이대로의 생활이 있었기 때문이다. 꼬맹이들은 고삐 풀린 망아지 마냥 저희들끼리 골목을 누비기 바빴고, 부모는 아이의 일과에 꼬치꼬치 관여하지 않았다. 끼니때가 되면 밥 챙겨 먹이고 해질 무렵 집에 안전하게 들어오면 그뿐이었다. 그러니 어린 시절 모습을 알려달라 채근한들 “글쎄, 종일 나가 노느라 바빴지 뭐” 하는 대답 정도나 들려줄 거다. 반면 지금 부모들이라면 “아기 땐, 주로 문센 가서 놀았어. 베이비 마사지도 하고 발레도 배웠지. 놀이학교도 다녔는데 넌 인형이랑 비눗방울을 진짜 좋아했어. 나중엔 영어유치원 보낼까, 일반 유치원 보낼까 고민도 했지….” 이 정도의 답을 하지 않을까.

1980년대에 유년을 보낸 지금 부모 세대와 2016년에 유년을 보내고 있는 우리 아이들의 ‘현재’를 동일한 잣대로 비교해선 안 된다. 세상은 늘 바뀌어왔고 그에 따라 육아 환경도 달라져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확실하게 안타까운 한 가지가 있다면 더 이상 시간이 ‘아이들의 것’이 아니란 점이다. 

 

<응답하라 1988>에 등장하는 그 시절의 아이들을 보자. 골목의 주인은 아이들이었고 아무리 어린애라 할지라도 24시간은 온전히 ‘아이의 것’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부모라는 이유로 이 사실을 쉽게 간과한다. 아이의 시간을 부모가 써버린다. 요즘은 아이들에게도 엄연히 ‘스케줄’이란 게 있다. 취학 무렵만 되어도 노란 버스에 몸을 싣고 영어학원으로, 수영장으로, 피아노학원으로 뿔뿔이 흩어져 시간을 보낸다. 경쟁력을 갖춰야한다는 압박과 아이들을 돌보지 못하는 사회 시스템이 서로 공조하여 아이를 학원으로 내몬다. 그러나 자기 시간을 제 의지대로 써보지 못한 아이가 과연 인생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 스스로 좋아서 몰입해본 경험이 없는 아이가 자기주도성을 갖기란 힘든 법이다. 몰입하는 즐거움, 스스로 하나하나 일구어 나갈 때의 짜릿한 기쁨을 경험한 아이야말로 자기가 좋아하는 게 무언지, 잘할 수 있는 게 무언지 알며 스스로 행복을 찾을 수 있다.

 

물론 <응답하라 1988>이 드라마적인 판타지를 담고 있다는 점도 간과해선 안 된다. 아이에게 시간의 주인이 되게 하는 것도 좋지만 ‘무관심’이라는 양날의 검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1988년도에 덕선이었던 지금의 엄마들은 때로 자신이 부모에게 충분히 사랑받지 못했다는 설움을 토로하며 그 부작용으로 자식에게 지나친 관심과 애정을 쏟아붓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1988년과 2016년 엄마들의 양육이 만나는 적당한 지점을 찾아내야 한다. 아마도 무관심한 척 아이를 방임하며 아이 스스로 선택할 기회를 많이 주되,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고 지켜봐주는 정도가 아닐까 싶다. 

 

 

 

육아코드 03 21세기형 인재 ‘정봉’에게 배우는 ‘덕후의 성공 전략’

 


 

“어머니, 100원이면 올림픽 영웅과 하루 종일 함께 놀 수 있습니다.”

“루즈벨트 대통령은 말씀하셨습니다. 학교에서 배운 것보다 우표에서 배운 게 더 많다고.”

칠수생 아들을 바라보며 한숨을 푹푹 쉬는 엄마는 안중에도 없다. 시대를 앞서간 원조 덕후 정봉이는 주위의 시선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무엇이든 한 번 빠지면 끝을 보고야 만다. 쌍문동 오락실을 평정하고, 대학가요제 LP를 빠짐없이 모으고, 택이만큼은 아니지만 제법 빠른 손놀림으로 큐브를 맞춰내는 정봉이를 보며 일찌감치 누리꾼들은 그의 성공을 점쳤다. 

8비트 게임에 홀릭된 모습에 DDR 개발자가 되어 대박을 터트렸을 거라며 응팔 주인공들 중 가장 성공한 모습일 거라 기대를 모았다. 아니나 다를까. 시중에 판매되기도 전에 대패 삼겹살 레시피를 자체 개발해낸 정봉이의 현재 모습은 쿡방 시대에 걸맞게도 ‘집밥 봉선생’. 맛깔나게 절 밥을 두 그릇씩 비워내고, 라면에 소시지와 열무김치를 넣어 자기만의 레시피를 개발해냈을 때 알아봤어야 했다. 

우리가 ‘봉블리’ 김정봉 군을 통해 배워야 할 게 있다면 아이가 무언가에 빠져 있을 때 그 모습을 그대로 인정해주는 것이다. 아이가 무언가에 몰입했다면 그것이 좋기 때문이고, 재미있기 때문이고, 그 순간이 행복하기 때문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 무언지 스스로 아는 것은 요즘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이다. 최근 중고등학교 교사들이 흔히 하는 말이 ‘아이들이 무기력하다’는 거다. 늘 누군가의 손에 이끌려 마지못해 공부를 해온 아이는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른단다. 좋아하는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단다. 그렇기에 부모인 우리가 할 바는 매우 간단명료하다. 아이가 좋아하는 걸 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 무얼 좋아하는지 곁에서 지켜봐주는 것. 그리고 아이가 도움을 필요로 할 때 한껏 지지해주고 격려해주는 것. 자율성, 자기주도성은 최근 양육 트렌드에서 가장 중요하게 꼽히는 키워드이기도 하다. 

 

 

 

육아코드 04 ‘식탁’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다

 


 

해질 무렵이면 집집마다 “밥 먹어라~” 하고 아이들 부르는 엄마 목소리가 들려오던 시절이 있었다. 1988년 쌍문동 골목의 저녁 6시. 덕선이네 집도 정환이네 집도 선우와 택이네 집도 식사 준비로 분주하다. 부엌의 노란 백열등에 불이 들어오고 도마에선 탁탁탁탁 경쾌한 소리가 울려 퍼진다. 보글보글 된장찌개 끓는 소리와 고소한 밥 냄새가 부엌을 가득 채운다. 반지하방에 살든, 복권에 당첨되어 대궐 같은 집에 살든 부엌은 온기로 가득 찬 곳이다. 

꼬막 반찬이 있든 없든, 비록 마지막 남은 ‘계란후라이’가 아빠 동일과 큰딸 보라의 밥 위에만 올라갈지언정, 식구는 오늘도 한자리에 둘러앉아 함께 밥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같이 TV를 본다. 글자 그대로 ‘식구(食口)’이기 때문이다. 응답 시리즈 중에서도 ‘응팔’은 유난히도 함께 밥 먹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식탁의 의미를 더 생각하게 만든다.

지금은 하루 세끼는커녕 한 끼 식사조차 같이하기 힘들 정도로 가족이 해체되어가고 있다. 식사시간도 바쁜 시간을 쪼개어 얼른 한 끼 때워야 하는 요식행위가 되어가는 것 같다. 그러나 가족이 함께 모여 밥을 먹어야만 하는 이유는 셀 수 없이 많다. 식탁은 제각각의 시간을 보낸 가족 구성원이 한데 모여 모처럼 자신의 하루 일과를 풀어낼 수 있는 소중한 자리다. 함께 밥을 먹고 대화를 나누다 보면 가족의 결속력은 더욱 탄탄해지고 정서는 풍요로워진다. 

사랑이 넘치는 식탁은 아이의 정서를 안정되게 만든다. 특히 유아기 아이들은 밥을 먹으며 필요한 영양소를 채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못지않게 ‘심리적 포만감’을 얻는 것 또한 중요하다. 그 역할을 ‘식탁’이 해준다. 

 

 

 

육아코드 05 덕선이와 보라를 통해 본 맏이와 둘째의 생존 법칙

 


“청카바 어디 있어! 내 옷 어딨어!”

동생은 평생 언니 옷만 물려 입었는데 그거 하나 빌려갔다고 목에 핏대를 세우는 보라. 단지 ‘첫째’라는 이유로 언제나 당당하다. 언니의 생일 초가 꽂혔던 케이크 말고, 온전한 ‘내 생일 케이크’ 하나 사수하려고 울음을 터트리는 동생 앞에서 “안경 바꿔줘”라고 눈썹 하나 까닥 안 하고 당당하게 말하는 보라, 그야말로 ‘이 골목 최강 미친뇬’이라는 별명이 걸맞다. 동생이 화장품 좀 찍어 바르면 어떤가. 그게 맞아 죽을 짓이란 말인가. ‘보라 바라기’ 선우는 ‘알고 보면 속마음 따뜻한 보라 누나’라고 말하지만, 모든 지지를 한 몸에 받으며 큰딸로 자라온 육아 환경은 무시할 수 없는 법. 언제나 가장 좋은 건 자기 차지였던 맏이이기에 ‘보라 월드’에서 모든 좋은 기회는 우선적으로 내 차지여야 했다. 이런 보라의 성격은 부모의 잘못된 육아 방식에서 온 결과일 확률이 높다. 부모가 맏딸에게 거는 기대감은 유별난 구석이 있다.

이런 육아 환경에서 자란 둘째는 생존 본능을 타고난다. 부모의 지대한 관심과 지지를 받아온 첫째와 달리 제 살길을 스스로 찾아야 하기에 세상 적응력이 뛰어나다(연탄가스를 마시고도 스스로 기어나올 만큼!). 둘째는 첫째와는 다른 방식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어필해야 하기에 애교도 많고 다른 사람의 마음도 잘 알아챈다. 보라가 덕선이처럼 아빠에게 앵겨붙지 못하는 성격을 갖게 된 것도 사실 보라 탓으로 돌릴 수만은 없다.

이렇듯 맏딸과 둘째 딸의 인생 항로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하지만 자매 관계는 결혼할 무렵 서서히 바뀌어간다. 자매는 형제나 오빠·여동생, 누나·남동생 등 어떤 구성보다도 동질감과 연대의식이 강하다. 남자에 비해 ‘관계 지향적’인 자매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긴밀함을 유지하며 서로 우호적인 관계를 갖는다. 또한 여자라는 동질감 덕분에 나이가 들수록 친구 같은 사이가 될 확률이 높다. 

 

 

 

육아코드 06 골목이 키운 아이, 택이와 진주

 


 

응팔에 가장 자주 등장하는 키워드 중 하나로 ‘공동체 문화’를 꼽을 수 있다. 아이를 함께 돌보고, 이웃이 아프면 기꺼이 도시락을 나른다. 힘든 일이 있으면 골목 평상에서 수다로 풀고 작은 것도 나누어 먹으며, 서로의 형편을 생각해 수학여행 용돈을 몰래 챙겨준다. 팍팍한 2016년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응팔에 열광했던 이유 중 하나는 서로를 살뜰히 챙기는 모습이 마음을 따뜻하게 데워주었기 때문일 거다.

‘동네가 아이를 키운다’라는 말은 1988년 쌍문동에서는 가능했다. 그래서 아빠 없는 진주도, 엄마 없는 택이도 쌍문동 동네 사람들 틈에서 복닥복닥 잘 살아갔다. 응팔은 쌍문동 골목에 아빠와 단둘이 이사 온 택이가 온전한 성인이 되는 과정을 따스하게 보여주었고, 아빠 없는 진주가 동네 사람들 품에서 사랑 받으며 부족함 없이 자라는 모습을 그려냈다. 1화에 저녁 6시 땡 치면 밥 먹으라는 엄마의 부름에 택이 방에 모여 있던 아이들은 제각각 집으로 돌아가는 장면이 나온다. 

외로이 혼자 남은 택이의 모습이 클로즈업되지만 이 에피소드의 마무리는 그렇게 쓸쓸하진 않았다. 저녁을 먹으려는 택이와 아빠. 찌개 하나만 놓여 있던 식탁은 어느새 ‘사라다’, ‘상추와 불고기’, ‘잘 익은 깍두기’로 한 상 잘 차려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금에 비해 1988년도란 시대가 상대적으로 정이 넘치는 시대이기도 했겠지만, 어쩌면 이 드라마는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그런 온정이 필요하다고 역설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홀로 육아’는 힘이 들고 버겁다. 하지만 함께하는 육아는 한결 낫다. 요즘은 사라져가고 있는 공동체 문화야말로 21세기 독박육아 중인 엄마들이 육아의 고단함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해법이 되어줄 것이다. 아파트 촌에서도 ‘품앗이 육아’가 생기고 아이를 함께 키우자는 취지의 ‘공동육아 어린이집’이 꾸준히 관심을 끄는 것도 이 때문이리라. 

 

 

 

육아코드 07 아빠도 아빠가 처음이라서 그래…

 


 

둘째의 설움이 폭발한 열일곱의 생일 날, 덕선이를 따스하게 위로해주는 아빠 동일의 말이다. 아빠도 아빠가 처음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른단다. 그래서 미안하고 이해해달란다. 아빠의 솔직한 고백과 수줍은 사과에 쓰렸던 덕선의 마음도 눈 녹듯 따스하게 풀린다. 이런 말이 있다. 아이가 한 살이면 엄마도 한 살 엄마라는 것. 정말로 태어날 때부터 부모인 사람은 없다. 아기가 태어나야만 비로소 ‘엄마’, ‘아빠’라는 이름을 갖게 된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육아에 대한 부담이 한결 덜어질 것이다.

응팔 최종회 ‘안녕 나의 청춘 굿바이 쌍문동’ 편의 정환이 엄마 라미란 여사의 대사도 가슴을 울린다. “내가 애들을 키운 게 아니라, 애들이 날 키운 거더라고”.

그녀의 말 역시 100퍼센트 옳다. 육아(育兒)는 아이를 키우는 동시에 나(我)를 키우는 일이다. 그러니 어설픈 엄마라고, 오늘도 실수했다고 속상해하거나 자책하지 말자. 아이와 함께 오늘 하루 잘 보냈고 아이가 자란 만큼 나도 자랐으면 그것으로 당신은 최선을 다했다. 

2016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1988년, 그때 그 시절의 육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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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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