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우리는 가장 먼저 ‘문제’가 무엇인지 원인부터 찾는다. 그 중에는 해결되는 진짜 문제도 있지만 결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도 있다. 육아에 임하는 엄마들에게도 문제의 순간은 있다.

아이의 평소 태도나 발달 속도가 영 마뜩찮거나 아이가 내 맘 같지 않을 때 엄마들은 자신의 육아법에 도대체 무슨 문제가 있는지 고민한다. 육아서적을 들추고 부모교실 등 전문가들의 강의에서 답을 찾으려 노력하기도 한다. 그러나 육아에는 정해진 답이 없다.
정신분석 전문의이자 <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묻다> 저자인 김혜남(55세) 소장은 육아가 힘든 이유를 ‘엄마 스스로의 문제’라고 자책하는 데 있다고 말한다.
육아는 엄마 스스로의 감정을 읽는 것부터 시작
대부분 엄마들은 육아가 힘에 부치고 육아 때문에 자신의 마음이 힘든 것을 본인에게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원래 힘든 일이다.
이는 아이를 바라볼 때도 마찬가지다. 3세 정도의 남자아이는 지나치게 활발하기도 하고 약이 오를 정도로 미운 행동을 보이는 경우가 다반사.
“물론 유난히 아이와 자주 갈등을 겪는 경우도 있겠죠. 그럴 때도 서로에게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엄마와 아이의 사이클이 맞지 않는 건 아닌지 점검해보세요.
아이들에게도 솔직한 감정을 표현하자
김 소장은 우리 사회가 모든 부정적인 감정을 나쁜것으로 치부하는 것이 문제이듯이 엄마가 힘든 것도 결국 사회적인 시선 때문이라고 말한다.
“요즘 엄마들은 보통 20대 중후반에서 30대 초반의 젊은 사람들이에요. 이런 엄마들에게 우리 사회는 50~60대가 된 후에나 가지게 되는 지혜와 견문을 요구하거든요.
사실 사회적으로 정한 바람직한 엄마의 기준이 아이의 학업 성취나 경제적인 풍요와 연관되어 있는 게 문제다. 더 큰 문제는 모든 양육의 책임을 엄마에게 돌리는 전반적인 사회 분위기. 거기에 엄마 스스로도 아이에게 지나칠 정도로 완벽한 모습을 보이려 한다.
“아이들은 엄마는 항상 옳고 자기는 틀리다고 생각해요. 엄마가 잘못하거나 실수하는 모습을 한 번도 보지 못한 아이는 커서 자신의 잘못과 실수를 결코 인정하지 못하게 돼요.

국립서울정신병원에서 12년 동안 정신분석 전문의로 일한 후 현재 인천나누리병원 소장으로 재직 중이다.
아이의 자율성을 존중할 것
“한번은 5대 독자를 데리고 병원을 찾은 부모가 있었어요. 아이가 말도 안 하고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니 발달장애인지 살피러
왔더군요. 결과는 뻔했죠. 너무나도 정상이었어요. 알고 봤더니 5대 독자로 귀하게 자란 탓에 아이의 눈짓 하나에도 할머니부터 고모,
엄마가 어쩔 줄 몰라 하더군요.”
김 소장은 과한 애정은 무관심보다 못하다고 강조한다. 무관심한 부모를 둔 아이 중에는 스스로 알아서 잘 자라는 경우도 많지만,
지나친 애정과 보호를 받고 자란 아이는 엄마는 물론 주변 사람들과의 갈등을 피할 수 없다는 것.
인간은 원래 부족한 점을 스스로
메워가는 존재라는데 이는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엄마가 반드시 아이의 필요를 모두 충족시켜야 하는 것도, 그럴 필요도 없다.
몇 년 전부터 육아 카페와 방송, 출판계를 들썩이게 했던 ‘3세 애착 불패론’. 아이가 3세가 될 때까지 엄마가 품에 끼고 키워야
올바른 애착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는 말에 전업맘은 육아 우울증을 호소하고 워킹맘은 죄책감에 시달렸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요즘은
워킹맘도 많고 아이와 온종일 부대끼며 3년을 보내는 건 해보지 않고는 짐작도 할 수 없을 만큼 힘든 일이다. 이에 대해 김 소장은
양보다 질을 택하라고 말한다.
“워킹맘 대부분이 집에 돌아오면 아이 밥부터 챙겨주고 어질러진 집부터 치우려 하죠. 밖에서 일하는 동안 충실하지 못한 전업주부
역할을 해내려는 것인데요. 그러기 전에 먼저 아이를 한번 바라보세요. 엄마 품에 안겨 볼도 비비고 낮에 있었던 재미난 일도 얘기하고
싶을 거예요. 칭얼거리고 싶기도 하고요.
그러니 집에 돌아오면 ‘엄마가 얼른 밥 해줄게’라고 말하는 대신, 아이를 품에 안고 30분이라도 오붓한 시간을 보내세요. 밥이야 30분 늦게 먹어도 되고, 아이와 노느라 밥할 여력이 없다면 시켜 먹어도 되는 거 아닌가요?
그런
순간이 쌓이면 3년 동안 품에 끼고 살지 않았더라도 아이는 엄마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걸 충분히 느낄 거예요. 그렇게 자신이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만 인지해도 아이들은 잘 자란답니다.”
심리학자를 대표하는 프로이트도 정상의 기준을 ‘약간의 히스테리, 약간의 편집증, 약간의 강박증’을 가진 정도로 정한다. 결국 엄마들이
아이를 키우며 걱정하는 정도의 문제 대부분은 정상적인 ‘당연한’ 반응일 때가 많다.
정말 문제가 되는 병이라면 이미 엄마 자신은
물론 주변 사람들을 죽을 만큼 고통스럽게 만들었을 것이다. 부정적인 감정이나 감정 기복 역시 마찬가지.
김혜남 소장은 감정은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이므로 두려워할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라고 조언한다. 부정적인 감정도 소중한 감정의 하나이므로 다소 감정
기복이 심하다 해도 ‘그러려니’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아이들에게는 감정이 소중하다고 말하며 갖가지 감정을 제대로 느낄 수 있게 교육하면서 정작 엄마들은 왜 스스로의 감정을 무시하는가 말이다. 그러니 엄마부터 자신을 잘 들여다보고 감정 상태에 귀를 기울이자. 감정은 ‘진단’하는 게 아니라 ‘인정’하는 것이다.
전에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이니 육아는 당연히 불안하고 힘들 수밖에 없다. 내가 느끼는 감정을 걱정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그것만으로도 육아의 부담이 한결 가벼워질 것이다.
세상을 숙제처럼 사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이 아니면 안 되는 것처럼 세상의 모든 짐을 혼자 지고 가는 사람들, 직장에서든 집에서든
어려운 일은 도맡아 하는 사람들, 항상 주기만 하고 받지는 못하는 사람들, 그들에게는 자신이 어떻게 느끼느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들을 움직이는 것은 항상 자기 자신의 감정이나 판단이 아닌 타인의 필요와 감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오늘도 자기주장을
하기보다는 언젠가 남들이 자신의 희생을 알아줄 거라 믿으며 힘든 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런 ‘천사’들은 그들이 노력한 만큼 인정과 대우를 받지 못한다. 힘든 일은 늘 도맡아 하는데도 말이다. 왜
그럴까? 주변 사람들이 모두 천사를 이용하려 드는 사악한 존재라서? 물론 그런 경우도 있겠지만 대개의 경우 천사들 스스로 무덤을
판다.
그들은 무의식중에 희생을 대가로 애정을 갈구하고, 희생함으로써 상대보다 도덕적으로 우월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 하며,
이로써 상대를 꼼짝 못하게 하고 싶어 한다.
그런데 이러한 마음은 상대에게 고스란히 전해지게 마련이다. 따라서 사람들은 천사에게 고마움을 느끼기보다는 왠지 편치 않은 감정을
느끼고 거리를 두게 된다.
<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묻다> 중에서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우리는 가장 먼저 ‘문제’가 무엇인지 원인부터 찾는다. 그 중에는 해결되는 진짜 문제도 있지만 결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도 있다. 육아에 임하는 엄마들에게도 문제의 순간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