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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윤이를 허하라

태생부터 `아이돌`이란 꼬리표를 단 뮤지션에게 시간은 가혹하다. 하지만 허가윤에게 시간은 약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름답고 현명하고 강해진다. 그녀가 무대 위에서 맞이하는 네 번째 봄이 오고 있다.

UpdatedOn February 27, 2013




노란색 튜브톱과 플라워 골드 네크리스는 모두 디올,
검은색 쇼츠는 아메리칸 어패럴, 레이스 스타킹은 아장드보카퇴르, 검은색 슈즈는 슈즈원 제품
.

 

정신없이 등장하는 아이돌 그룹들의 이름조차 헛갈렸다. 이미 시장은 포화 상태였다. 그때 포미닛이 등장했고, ‘Hot Issue’가 히트했다. 섹시하기엔 너무 어리지 않나, 오지랖 섞인 걱정이 앞설 정도로 현아는 섹시했다. 그렇게 ‘포미닛=현아’라는 공식이 머릿속에 자리 잡아갈 즈음, 허가윤이 2인조 유닛, 투윤으로 컴백했다. 바쁜 스케줄을 피해 느지막이 잡힌 촬영 시간, 종종걸음으로 밝게 웃으며 스튜디오에 도착한 그녀가 카메라 앞에 섰다. 셔터 소리와 동시에 눈빛이 변했다. 억지스럽지 않게, 딱 지금 나이만큼 아름답고 성숙했다. 스무 살 소녀로 데뷔한 그녀가 스물넷 여자가 되었다.

2009년에 데뷔해 이제 5년 차다. 연습생으로 트레이닝을 시작한 건 더 오래됐겠다.
우연히 캐스팅돼서 열네 살부터 시작했어요. 그 사이 회사도 여러 군데 옮겼고.


어렸을 때부터 꿈이 가수였나?
네. 근데 너무 어렸을 때 시작해서 그런가, 노래는 이제 저에겐 당연한 게 됐죠. 생활이고 일상이죠. 요즘은 노래하는 거 말고도 매력적인 일들이 눈에 많이 들어와요. 이렇게 화보 찍는 거나, 연기에도 관심이 가고… 새로운 걸 많이 해보고 싶어요. 데뷔했다가 조용히 사라지는 아이돌도 굉장히 많다. 포미닛은 데뷔 때부터 주목받았고, 지금까지 잘해오고 있다.  그래도 여전히 불안해요. 멤버들이 다 욕심이 많아요. 더 잘돼야 하는데, 생각해요. 뭔가 2% 부족하단 이야기도 우리끼리 많이 하고. 우리가 항상 1위 후보까지는 가요. 그것도 몇 주 동안. 아주 근소한 차이로 진 적도 많아요. 1위에 집착하는 건 아닌데 사람들 머릿속에 우리가 항상 2등으로 떠오를까봐서요. 그래도 항상 얘기해요. 우리가 너무 잘돼서 항상 1위 하면 언제 떨어질지 걱정만 하지 않겠느냐, 목표가 있는 게 더 좋은 거다. 현명한 친구들이다.

사실 같은 소속사에서 가족처럼 지내는 비스트 오빠들이 너무 잘되고 있으니까 우리는 아직 멀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1년에만도 몇백 팀의 가수가 데뷔한대요. 그중에 우리가 손가락 안에 꼽히는 게 어딘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현재에 만족하면 안 돼요.

현아에게 포커싱이 맞춰진 게 섭섭하지 않나?
그래서 처음에 포미닛이 주목을 받은 거잖아요.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질투 나거나 섭섭하진 않아요. 현아가 잘 표현하는 이미지들이 있으니까.

투윤 콘셉트를 컨트리 스타일로 잡은 건 누구 아이디어였나?
노래가 나온 후 스타일팀을 바꾸면서 제가 직접 전체적인 콘셉트나 시안을 잡았어요. 패션이나 스타일링에 워낙 관심이 많아서 포미닛 때도 아이디어를 많이 냈는데 이번에 좀 더 본격적으로 참여한 거죠. 여자 가수 선배님들이 요즘 애들 무대 의상 보면 누가 누군지 모르겠는데 우린 뻔하지 않아서 좋다고 칭찬을 많이 해주셨어요. 패션에 관심이 많아 이것저것 찾아보면서 느낀 건 두 가지예요. 보고 배우거나, 보고 피하거나. 패션지를 보고 무조건 따라 입는 건 한계가 있어요. 그래서 전 패션지를 보고 오히려 그걸 피해요.


음악성보다 퍼포먼스 위주의 아이돌에 대한 비판이 어제오늘 이야긴 아니지만, 당사자로선 억울한 면도 있을 거다. 1990년대생 아이돌 입장에서 하고 싶은 말 있나?
TV나 컴퓨터, 모바일 등 매체부터 예전과 다르잖아요. 듣는 것보다 보는 거 위주로 발달했죠. 요즘엔 음악뿐 아니라 메이크업, 의상, 헤어, 춤까지 어떻게 보면 신경 쓸 게 더 많아지고 더 어려워졌어요. 노래만 잘해서 되는 게 아니니까. 물론 노래도 좋아야 하지만 의상이나 콘셉트가 이슈가 되기도 하잖아요. 여러 가지를 다 잘해야 한다는 게 어떻게 보면 장점이기도 해요. 근데 또 그게 너무 완벽하다 보니 단점이 되기도 하죠. 멤버 지윤이가 얼마 전에 작곡 공부하려고 미국에 다녀와서 이런 얘길 했어요. 거기서 유명 작곡가나 프로듀서를 만났는데 하나같이 K-팝에 대해 이렇게 말하더래요. 구성이나 사운드, 안무 등 모든 게 너무 완벽하게 잘 짜이고 정형화되어 있어서 즐길 수 있는 음악이 아니라고.
빈틈없이 잘 짜인 하나의 쇼처럼 보이는 거구나.

뮤직비디오도 다 똑같다는 거예요. 개인 샷에서 군무로 넘어가는 구성이나 따라 하기 어려운 춤도 그렇고. 저한텐 확 와 닿는 얘기였어요. 한 팀만 그런 게 아니라 대부분 팀이 그러니까. 그래서 우리는 좀 다르게 해보자 한 게 투윤이에요. 일렉트로닉 계열에 전자음 위주의 음악 말고 다른 거. 그래서 컨트리 팝을 시도했고, 안무도 쉽고 간단하게 갔어요.

포미닛 이름처럼 4분 안에 무대 위에서 모든 걸 휘어잡아야 하니까 화려하고 요란해지는 건데 모든 팀들이 그렇다는 게 문제다. 메인 보컬로서 음악성이나 보컬보다 퍼포먼스 위주로 활동한다는 면에서 고민은 없나?
사실 포미닛이 노래가 중요한 그룹은 아니에요. 저는 노래를 잘하는데 사람들이 그걸 몰라줄까봐 처음엔 불안하기도 섭섭하기도 했어요. 저뿐만 아니라 그룹의 메인 보컬을 맡은 친구들 다 그럴 거예요. 그런데 이번 투윤 앨범에서 보컬로서 제 색깔을 많이 표현했어요. 한을 풀었죠.


사람들에게 잘못 알려진 모습이 있다고 생각하나?
제가 좀 무덤덤하고 직설적이거든요. 친해지면 말이 많은데 그렇지 않을 땐 낯을 가리는 편이죠. 근데 가끔 사람들이 상황의 단면만 보고 저를 판단하는 경우가 있어요. 예전에 <인기가요>에서 가사 틀리는 실수를 한 적이 있었거든요. 그때 파리에 갔다 와서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컨디션도 안 좋은 상황에서 가사를 받자마자 바로 무대에 오른 거였어요. 사람들은 그런 사정을 전혀 모르죠. 제가 데뷔하고 한 번도 운 적이 없었거든요. 그때 처음으로 방송 끝나고 엉엉 울었어요. 사람들이 무대 위의 그 순간만 보고 나를 노래 못하는 애로 판단할까봐 너무 두려워서…. 그때 이후로 노래할 때 사람들 눈치를 많이 봐요.


트라우마가 생겼나 보다.
네. 더 잘하면 되죠. 알죠. 근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더라고요. 저에게 무대는 일터고 노래하는 건 일인데 프로 마인드로 그런 부분에서는 지키고 싶은 게 있어요.


SNS나 인터넷에서 당하는 공격엔 예민하지 않나?
악성 댓글에도 저는 상처 안 받아요. 안 좋은 반응도 관심이 있으니까 가능한 거지, 그냥 그러려니 하죠. 근데 그 무대만 제가 유독 못 잊어요.


지금 포미닛은 어디쯤 온 것 같나?
아직 멀었어요. 우리 색깔이 좀 더 뚜렷하게 나타나면 좋겠어요. 사실 포미닛은 대중성 있는 그룹이 아니에요. 우리 노래는 발표될 당시엔 좋긴 한데 뭔가 애매한 게 있거든요. 그러다 몇 달 지나면 노래가 좋단 이야기가 나와요. 그런 걸 보면 우리가 조금 앞서 가는 게 아닌가 싶어요. 요즘 이런 게 유행이라고 따라가면 똑같은 음악 중 하나가 되는 거잖아요. 우린 그게 싫은 거예요.


반보 앞서 간다는 게 참 어렵다.
모두 피해 가려는 길이죠. 우리 목표는 ‘Best’보다 ‘Only’예요. 여럿 중에 하나가 아니라 유일한 그룹이 되고 싶어요.

 
한류라는 좋은 물살을 타고 잘 가는 것 같다.
네. 이번엔 운도 좋은 것 같아요. 해외에서 K-팝이 주목받으면서 현아 개인 활동도 그렇고, 포미닛도 투윤도 반응이 좋아요. <스핀>에서도 우리를 기사로 다뤘고, <타임>지에서도 인터뷰 요청이 들어왔대요. 한국 아이돌 중에 <타임>지와 인터뷰하는 건 우리가 처음이라고 하더라고요. 포미닛 새 앨범도 준비 중인데 잘될 거 같아요.
아이돌이고 스타다. 본인처럼 되고 싶어 하는 어린 친구들도 많고. 그런 면에서 힘들진 않나?
겉으로 보이는 화려한 모습 말고 겪어보지 않고는 절대 알 수 없는 힘든 일들, 많죠. 이 생활을 미리 체험해보는 기간이 있으면 좋겠어요.(웃음) 이 일을 꾸준히 할 건지 말 건지 결정이 쉽도록 말이에요.


뮤지션의 생활과 평범한 대학생의 삶이 구분되어 있나?
아직 제가 잘됐다고 생각하지 않아서인지, 스스로 연예인이고 뮤지션이라는 자각이 없어요. 지금 이 생활이 저에겐 오히려 평범한 생활인 거 같아요. 웬만하면 밖에 돌아다니지 않는 성격이라 그럴 수도 있어요. 누가 취미를 물으면 ‘집에서 누워 있기’라고 대답할 정도예요.


안 답답한가?
잘 모르겠어요. 근데 이런 건 있어요. 어렸을 때부터 이쪽 일을 시작해서 그런지 제가 감정 표현을 확실히 못해요. 좋다 싫다 하는 거 말고, 울고 싶은데 참고 너무 기쁜데 참고, 그런 거 있잖아요. 연습생 생활을 하다 보면 텃세 같은 것도 있고 혼나기도 많이 혼나니까 알게 모르게 참는 법을 배운 거 같아요.


마음에 굳은살이 많이 박여 강해진 건가?
멤버들은 잘 안 울고 참는 모습이 멋있다 그러는데 엄마는 안쓰럽다고 하세요.
또래들은 찐~한 사랑 한번 해보고 이제 한창 진로 고민할 때다.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스타로 살면서 놓치고 있는 삶도 있나? 평소엔 잘 못 느껴요. 근데 연예 활동 안 하는 친구들 만나고 돌아오면 외로워지고 부럽고 그래요. 지금 내가 제대로 가고 있나, 하는 생각도 들고. 저는 데뷔하고 클럽 한 번 가본 적이 없어요. 포미닛 공연하러 간 거 빼고요. 친구들이 남자친구 얘기하고 그러면 나는 결혼은 할 수 있을까, 대학 졸업은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스무 살 때 데뷔해서 이 생활 하느라 청춘을 놓쳤구나, 앞으로 즐겨야겠다고 결심해도 그럴 수 없다는 것에 슬프고. 그러면서도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기 위해 어쩔 수 없다는 걸 아니까 괜찮아요. 모든 걸 다 잡을 순 없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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