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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의 리더십

야구는 단체 경기지만 개인이 팀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특히 감독과 주장의 리더십은 팀의 성패에 절대적이다. 그런데 리더십이란 어떻게 생긴 물건일까? 김성근, 김응용, 김인식, 양승호 그리고 주장 홍성흔 등을 통해 구체적으로 밝힌다.

UpdatedOn January 28, 2013




유난히 논쟁적이었던 프로야구 스토브리그에서 홍성흔이라는 이름도 화제가 됐다. 홍성흔은 지난 11월 20일 두산 베어스와 4년 31억원에 프리에이전트(FA) 계약을 했다. 그에게 있어 두 번째 FA 장기 계약이며, 1999년 데뷔했던 두산으로 복귀하는 계약이었다.
홍성흔은 역대 최고의 FA 야수로 꼽힌다. 롯데 자이언츠에서 뛴 2009~2012년 4시즌 동안 타율 0.330에 연평균 59홈런, 321타점을 기록했다. 시즌 막판 부상으로 결장하긴 했지만 타율 0.350에 26홈런, 116타점을 기록한 2010년 시즌은 역대 최고의 우타자 시즌 후보에 꼽히기에 손색이 없다. 하지만 4년 계약이 만료되는 2016년에 홍성흔은 40세가 된다. 지금의 기량을 유지하기는 매우 어려운 나이다. 원 소속 구단인 롯데는 홍성흔과의 협상에서 ‘4년 계약은 절대 불가’라는 입장이었다. 경영 측면에서 롯데의 선택은 합리적이다.
하지만 홍성흔에게 4년 계약을 제시한 두산도 또 다른 합리성을 갖고 있었다. 두산은 홍성흔을 영입하며 “리더십을 높이 샀다”고 밝혔다. 홍성흔의 기량이 떨어지더라도 계약 기간 중에 팀워크를 단단하게 다지는 역할을 한다면 1년 치 연봉은 기꺼이 지불할 수 있는 비용이다. 그러니까 홍성흔의 4년째 시즌 연봉은 그의 ‘리더십’에 매겨진 가격이다. 리더십의 가치를 계량화하기는 어렵다. 미국의 세이버매트리션들은 ‘클럽 하우스 리더십’과 같은 검증하기 어려운 요소는 과대평가되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쨌든 두산은 내년 도약을 위해 팀에 꼭 필요한 요소를 홍성흔의 리더십으로 판단했다.
홍성흔은 입담이 좋고, 미디어 친화적인 선수다. 하지만 유쾌한 이미지로만 홍성흔을 평가해선 안 된다. 그는 감독들이 사랑하는 팀 플레이어다. 개인 성적 못지않게 팀 내에서 각자의 역할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2010년 홍성흔은 생애 최고의 타격 성적을 냈다. 특히 우람한 상체 근육에서 나오는 장타력의 상승이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홍성흔은 2011년 양승호 감독 취임과 함께 체중을 감량하고 상체에서 하체 위주의 웨이트트레이닝에 주력했다. “나이가 들면 힘에만 의존해선 안 된다. 균형이 더 중요하다”고 했다.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신임 양승호 감독이 그에게 요구한 외야수 겸업을 위한 준비였다. 양 감독 자신도 한 시즌에 홍성흔이 외야수로 뛸 경기는 그다지 많지 않다고 여겼다. 포수와 지명타자로만 뛰었던 홍성흔에게 외야수 변신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홍성흔은 군말 없이 감독의 뜻을 따랐고, 적극적으로 외야수에 적합한 몸을 만들려 했다.
후배에게도 엄격하다. 서울대 체육교육과의 한 교수는 “야구는 단체 경기지만 개인의 비중이 너무 큰 경기”라고 말한다. “축구는 비주전 베테랑이 주장을 맡을 수 있어도 야구에선 어렵다”는 말도 있다. 각각의 상황이 단속적으로 이어지는 야구는 팀 스포츠지만 개인 경기의 조합이라는 성격이 강하다. 팀에서 비중이 큰 선수라면 코칭 스태프도 눈치를 본다. 롯데에서라면 이대호가 그런 비중을 갖고 있는 선수였다. 그리고 홍성흔은 팀 내에서 유일하게 이대호에게 쓴소리를 할 수 있는 선배로 꼽혔다.
그런데 홍성흔의 계약이 발표된 뒤 의외의 반응이 나왔다. 두산 팬 커뮤니티에서는 홍성흔 영입에 반대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홍성흔은 사상 최고의 FA 타자에 원래 프랜차이즈 스타였던 선수다. 그리고 리더십을 갖췄다. 그 리더십이 문제였다. 두산 팬들이 반발한 이유는 홍성흔이라는 이름에서 김동주라는 또 다른 이름을 읽었기 때문이다.
두산은 전통적으로 선수단 내 결속력이 강한 팀으로 꼽힌다. 몇 년 전 한 두산 프런트 관계자는 “우리는 일하기가 편하다”고 말했다. 프런트는 광고나 홍보 목적 등으로 경기 외에 선수단에게 이것저것 요구할 일이 많다. 한창 시즌 중인 예민한 선수에게는 번거로운 일이다. 이 관계자는 “우리 팀은 선수단 내에 질서가 잡혀 있다. 베테랑 선수 한 명에게 말하면 선수단이 알아서 움직여준다”고 말했다. 당시 두산의 최고참 선수는 안경현이었다. 안경현에게 리더십에 대해 물었더니 “우리 팀의 리더는 김동주”라고 했다. 그는 김동주에 대해 “많은 말을 하는 선수는 아니다. 그러나 존재만으로 팀의 중심이라고 인정받는 선수”라고 했다.
두산 팬들에게도 오랫동안 팀의 중심은 김동주였다. 팬들에게 홍성흔 영입은 구단 프런트가 인위적으로 팀의 리더를 교체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명 3루수였던 김동주의 지금 포지션은 지명타자다. 복귀한 홍성흔과 겹친다. 당연한 말이지만 한 포지션에 주전 선수는 한 명뿐이다. 두산은 올해 김진욱 신임 감독 체제로 시즌을 치렀다. 정규 시즌 성적은 승률 0.523으로 3위. 나쁘지는 않지만 만족할 만한 성적은 아니다. 신임 감독이 팀을 한순간에 ‘장악’하기란 쉽지 않다. 많은 이들은 새 코칭 스태프와 김동주의 불편한 관계를 의심한다.

김응용 감독은 노쇠한 베테랑을 젊은 선수로 교체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나타냈다.
 어떤 조직이든 세대 교체에는 반발이 따른다. 김응용은 이 과정에서 반발을
 최소화하고 팀의 ‘보스’가 누구인지 명확하게 보여준 감독이었다.

 

여기에서 구체적인 소문과 이야기를 옮기는 건 큰 의미가 없다. 코칭 스태프와 프런트는 ‘변화’를 선택했고 그 이유를 ‘리더십’으로 설명했다. 남은 문제는 김동주와 홍성흔이라는 두 거물 선수가 조화를 이루며 팀을 하나로 만드는 것이다.
오프시즌에는 선수만 움직인 게 아니다. 김시진 감독은 시즌 도중 넥센 히어로즈에서 경질됐고, 시즌 종료 얼마 뒤 선수로서 은퇴했던 팀인 롯데의 새 사령탑으로 임명됐다. 양승호 전임 감독은 2년 연속 팀을 포스트시즌에 올려놓고도 재계약에 실패했다. 이로써 롯데의 최근 감독 지휘봉은 제리 로이스터(2008~2010)에 양승호(2011~2012), 다시 김시진으로 이어지게 됐다. 이 변화 과정도 리더십과 관계가 있다.
2010년 시즌 뒤 로이스터와의 재계약을 포기한 롯데 구단은 새 감독 인선 작업에 들어갔다. 프로야구 정식 감독 경력이 없는 고려대 감독 양승호를 영입한 건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 표면적인 로이스터의 경질 이유는 ‘한국시리즈 우승 실패’였다. 그렇다면 ‘명장’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롯데가 로이스터 감독을 해임한 실제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구단은 로이스터의 미국식 야구 철학에 의문을 가졌다. 훈련 시간을 줄이고 세밀한 작전 야구를 하지 않는다는 게 주된 비판이었다. 둘째, 구단 수뇌부와의 관계가 원활하지 못했다. 로이스터는 프런트의 권한을 존중하는 편이었지만 야구 철학과 감독의 권한이라는 점에서는 양보를 몰랐다.
롯데 구단이 처음 생각했던 감독은 강한 훈련을 지시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여기에는 위험이 따랐다. 로이스터식 ‘자율 야구’에 익숙한 선수단에 갑자기 큰 변화를 주는 건 모험이었다. 그래서 ‘로이스터보다는 한국식 야구를 하지만 부드러운 유형의 지도자’에 시선이 갔고, 양 감독이 낙점됐다. 최근 불미스러운 사건에 연루됐지만 양 감독은 2년 동안 롯데를 잘 이끌었다. 하지만 세 번째 시즌을 치르지 못하고 옷을 벗었다. 구단 고위 관계자는 “부드러운 리더십이 전부는 아니더라”고 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양 감독의 역할은 과도기 관리에 맞춰졌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야구에도 다양한 유형의 지도자가 있다. 지도자 수만큼 리더십의 유형도 각각이다. 그리고 어떤 리더십 유형의 감독을 택할지는 구단의 몫이다. 물론 롯데의 선택이 과연 옳았는지는 결과만이 말해줄 수 있을 것이다.
내년 시즌 새 유니폼을 입은 감독 가운데는 김응용 한화 감독도 있다. 프로야구 최고의 명장에서 최초의 현장 출신 구단 사장이 된 거물이 복귀했다. 한화는 2011년 후반기부터 그룹 차원에서 대대적인 선수단 지원에 들어갔다. 그러나 2012년 성적은 최하위에 그쳤다. 돈으로는 안 된다. 그렇다고 현행 프로야구 시스템이 원하는 선수를 제약 없이 데려올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위기에 빠진 한화는 옛 명장의 리더십에 의존한다는 답을 냈다. 프런트의 역할마저 상당 부분 김 감독에게 준 것으로 보인다. 이종범 코치 영입이나 장성호 트레이드 같은 굵직한 결정은 사실상 김 감독이 전권을 쥐고 결정한 것이다.
양상문 전 롯데 감독은 지난달 부산에서 열린 한 조찬 모임에서 “요즘은 감독이 선수 눈치를 보는 게 사실”이라고 고충을 털어놓았다. 이 점에선 김응용 감독만 한 사람이 없다.
김 감독이 명장인 이유는 여러 가지다. 그중 하나는 강팀을 오랫동안 강팀으로 만들었다는 점이다. 1980년대만 하더라도 많은 야구 감독들은 “해태 같은 팀 구성이라면 나도 우승을 일굴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김응용은 해태 감독으로 18시즌을 보내며 한국시리즈 우승을 9회나 차지했다. 한두 시즌이라면 몰라도 18년 가운데 절반이나 우승을 했다는 건 ‘전력’ 만으로는 설명이 어렵다. 김응용 감독은 노쇠한 베테랑을 젊은 선수로 교체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나타냈다. 어떤 조직이든 세대 교체에는 반발이 따른다. 김응용은 이 과정에서 반발을 최소화하고 팀의 ‘보스’가 누구인지 명확하게 보여준 감독이었다.
양 감독의 고백대로 이런 카리스마는 지금의 젊은 감독이 따라가기 어렵다. 다만 김 감독의 문제는 2013년 한화는 그가 이전에 맡았던 해태나 삼성 같은 강팀이 아닌 지난해 최하위 팀이라는 점이다. 김 감독이 한화를 강호로 끌어올린다면 그에게 붙은 ‘명장’ 타이틀에는 새로운 색채가 더해진다. 그러나 만일 실패한다면 ‘카리스마형 감독’이라는 단어는 역사의 페이지 속으로 사라질지 모른다.
최근의 감독 가운데 선수단으로부터 가장 존경을 받았던 인물은 김성근 전 SK 감독이다. 그를 비판하는 이들도 많지만 SK 선수들에게는 여전히 존경의 대상이다. “사람 좋으면 꼴찌”라는 말은 야구계의 유명한 격언이다. 결국 프로야구의 목적은 승리이며 최고의 리더십은 ‘이기는 리더십’이다. 김성근의 SK는 왜 강팀이었을까, 어떻게 김성근 감독은 팀의 중심이 됐을까.
전 SK 관계자는 그 이유 가운데 하나를 ‘교육’으로 들었다. 김성근 감독은 독서가다. 발음은 어눌하지만 야구계의 누구보다도 뼈대가 갖춰진 말을 한다. 독서의 힘이다. 그가 책을 읽은 이유는 선수단을 이끌기 위해서였다. 이 관계자는 “프로야구 신인 선수에게 가장 중요한 건 인내심”이라고 말한다. 프로 유니폼을 입을 정도라면 누구나 자신을 야구 천재로 생각한다. 그러나 주전이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자존심에 상처를 입고 좌절한 천재는 방황하기 쉽다. 김성근 감독은 스프링캠프에서 매일처럼 선수단과 ‘정신 교육’ 시간을 가졌다. 선수에게 인내심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납득시키는 과정이었다. 김 감독의 리더십에는 자기식의 ‘소통’이 포함돼 있었다. 그리고 소통 과정에서 ‘팀의 보스’가 누구인지를 명확하게 했다. 이 점은 SK 감독 시절 그와 대척점에 섰던 제리 로이스터에게서도 발견할 수 있는 공통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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