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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신년, 산책에 나서며

On December 30, 2012

발걸음을 내딛어 산책에 나선다. 코듀로이 팬츠에 품이 낙낙한 스웨터, 소소하게 들이치는 눈발을 막아줄 발마칸 코트를 슥 걸친 채 잿빛으로 짙게 물든 광화문 거리를 지나, 서촌 옆 청와대 앞길을 거쳐 부암동 목전까지 걸어가다, 우직하게 한기를 내뿜는 겨울바람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인파에 이리저리 휩쓸리다 보면 문득, 신년은 그렇게 찾아오는 것이다.

발걸음을 내딛어 산책에 나선다. 코듀로이 팬츠에 품이 낙낙한 스웨터, 소소하게 들이치는 눈발을 막아줄 발마칸 코트를 슥 걸친 채 잿빛으로 짙게 물든 광화문 거리를 지나, 서촌 옆 청와대 앞길을 거쳐 부암동 목전까지 걸어가다, 우직하게 한기를 내뿜는 겨울바람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인파에 이리저리 휩쓸리다 보면 문득, 신년은 그렇게 찾아오는 것이다.

그리하여 보들레르가 말했던가. “완벽한 산책자에게 있어 수많은 사람들 속에, 물결처럼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 한가운데에 거처를 마련한다는 것은 무한한 기쁨이다.”


보들레르의 경구를 끊임없이 되뇌며 ‘19세기의 수도’ 파리의 한복판을 산책하던 발터 벤야민도 그렇게 신년을 맞이하였을 것이다. 결국 먼 훗날, 나치의 박해 탓에 피레네 산맥을 넘다 스스로 음독할 수밖에 없었을 테지만,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철학자 중 한 사람이자 도시의 냄새, 모던의 향취를 명민하게 캐치해 ‘멜랑콜리’가 물씬 풍기는 빼어난 문장으로 풀어낸 최고의 산문가이기도 했던 발터 벤야민은 파리 거리 곳곳에 흘러넘치는 신년의 미묘한 흥취를 그렇게 온몸으로 받아냈을 것이다.


위대한 저작 ‘아케이드 프로젝트’의 첫 번째 시리즈인 <파리의 원풍경>에는 그렇게 파리의 거리를 걸으며 영민하게 캐치해낸 결과물 즉, 럭셔리 제품들이 넘쳐나는 아케이드, 하늘로 우뚝 솟은 철골 건축물, 북적북적한 박람회의 원풍경, 대화와 교감과 낙관이 넘쳐나는 카페, 무엇보다 도시를 무대로 장엄한 서정시를 써 내려갔던 보들레르의 자취가 뚝뚝 묻어난다.

동시대 미국. 후대에 재즈 피아니스트의 시초라 불리게 될 아트 테이텀은 또 어땠나. 가난했던 어린 시절, 동네 아이들에게 얻어맞아 원래 잘 보이지 않았던 시력을 완전히 잃어버린 그에게 집 근처 허름한 술집에 놓여 있던 자동 피아노는 거의 유일한 위안이었을 터. 쉴 새 없이 날고뛰는 자동 피아노의 건반을 밤새도록 손으로 더듬어 따라 치다 삭막한 할렘에도 여지없이 울려 퍼지는 “Happy New Year!” 함성에 이끌려 더듬더듬 뉴욕의 뒷골목을 걸어 집으로 향하는 그의 머릿속에 끊임없이 울려 퍼지던 영혼의 운율. 결국 2인용 자동 피아노의 곡조를 혼자서도 완벽하게 칠 수 있는 세계 유일의 테크니션이라는 역설은 신년의 찬바람을 맞으며 느리게 걸었던 그 길 위에서 창조되었던 것이다.

또한 1935년,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에 지각하는 줄도 모른 채 할렘의 허름한 클럽에서 아트 테이텀의 현란한 피아노 독주를 넋을 잃고 바라보던 노(老) 마에스트로 토스카니니. 젊은 시절, 제대로 된 음악 교육은커녕 지독한 근시 탓에 악보를 통째로 외우지 않으면 연주회에 나설 수조차 없는, 가난한 첼리스트였던 그는 세계 순회 연주차 들른 ‘세계 3대 미항’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미려한 해안선을 따라 걸으며 무슨 생각을 떠올렸을까. 계절이 거꾸로 뒤집힌 탓에 땀이 뚝뚝 흘러내리는 신년의 아침 산책길에서 1백50곡의 오페라와 1백 곡의 관현악 곡들을 통째로 외워낸 그의 끈기와 집념이 결국 현대의 지휘법을 확립한 위대한 마에스트로의 밑거름이 될 거라는 걸 짐작이나 했을까.

그렇다면 <아레나>는? 창간 7주년을 맞는 첫 달, <아레나> 또한 경쾌한 스텝을 앞세워 산책에 나선다. 이른바 ‘뉴 아레나’를 기치로 가슴 떨리는 발걸음을 내딛는 것이다. 굳이 산책이라고 표현한 건 매거진이란 원래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한 달을 기준으로 움직이는 지상에서 가장 느리며 아날로그적인 미디어. 그렇지만 지극히 트렌디하며 경쾌한 콘텐츠들을 지면에 그득 담아내는 존재. 시간을 들여 좋은 비주얼을 관찰하려는 노력과 며칠을 걸려 꼼꼼하게 텍스트들을 읽고 흡수하려는 노력이 없다면 결코 그 참뜻을 파악할 수 없는 책.


2013년, 당신에게 그 느릿하지만 의미 있는 산책길에 함께 나서자고 권하고 싶다. 3개월을 야심차게 준비한 ‘The Styling Book’이 그 첫걸음이다. <아레나>는 올 한 해 내내 당신의 지성과 감각과 감성을 공히 만족시킬 수 있는 단단한 콘텐츠들을 끊임없이 생산하고 유통해내겠다는 다짐을 다시금 앞세운다.
우리가 감히 걸음을 내디딜 수 있는 건 모두 당신 덕분이다. 수준 높은 감식안으로 우리를 끊임없이 충동질하고 질책하고 보듬는 바로, 당신 말이다.

 

 

 

발걸음을 내딛어 산책에 나선다. 코듀로이 팬츠에 품이 낙낙한 스웨터, 소소하게 들이치는 눈발을 막아줄 발마칸 코트를 슥 걸친 채 잿빛으로 짙게 물든 광화문 거리를 지나, 서촌 옆 청와대 앞길을 거쳐 부암동 목전까지 걸어가다, 우직하게 한기를 내뿜는 겨울바람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인파에 이리저리 휩쓸리다 보면 문득, 신년은 그렇게 찾아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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