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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지도 못하면서

누구나 대선 후보에 대해 말하지만 사실 나는 그들을 모른다. 함께 커피를 마시거나 게임을 한 적도 없고, 사우나를 간 적도 없다. 그래서 그들을 쫓아다녔다.

UpdatedOn November 01, 2012




“박근혜가 왜 싫어? 박정희 딸이라서? 그럼 새누리당이 왜 싫어? 보수라서?” 사람들은 한숨 쉬었다. 질문하는 나를 한심하게 쳐다봤다. 젊은 층이라면 응당 진보여야 한다고 믿는 듯했다. 그들에게 내가 진보 성향인지, 보수 성향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결국 그 술자리에서 나는 젊은 수구 세력이 되고 말았다. 그들이 잘못된 건지, 내가 얼토당토않은 질문을 한 건지, 우리가 소주를 너무 많이 마셔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중요한 건 우리가 한곳만 바라본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치에 대해 아는 건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 우리는 정치인이 아니니까.

뉴스의 톱기사는 언제나 정치다. 정치는 가장 뜨거운 이슈고, 사회의 일원이라면 예민해질 수밖에 없는 문제다. 지금껏 만난 사람들은 국회의원은 놀고먹는 직업이라는 편견을 갖고 있었고, 나 또한 그랬다. 국회의원 보좌관이 된 중학교 동창과 술을 마셨다. 그는 너무 바쁘다. 정치인들이 법안 마련을 위해 골머리를 쓰고, 민생을 살피려 애쓴다고 했다. 실제 그 친구의 일과는 이렇다. 새벽 6시 출근, 다음 날 새벽 퇴근. 국회의원을 보좌하는 일을 한다. 그 의원의 일과가 대략 짐작되는 지점이다. 4년 동안 그런 생활을 매일 한다는 건 끔찍하다. 한량이고, 정치를 잘 모르는 내가 봤을 땐 말이다. “몰라서 그래. 일단 배지를 달면, 없던 사명감도 생겨. 단지 미래에 대한 방향이 다를 수 있고, 사람이라 실수할 수도 있는 거지.” 그 친구의 생각은 그러하지만 다시 말하자면 나는 정치를 잘 모른다. 정치인이 아니고, 그들을 직접 대면하며 생활한 적도 없으니까. 그래서 그의 말을 믿지는 않기로 했다. 그도 정치인을 객관적으로 보고 있진 못하니까.
두 번 대통령 선거에 투표했다. 30년을 대한민국에 발붙이고 살면서 겨우 두 번 내 손으로 투표를 한 것이다. 처음에는 아무런 생각 없이 남들이 찍는 사람에게 투표했고, 큰 의의를 두지 않았다. 세상에 아무런 관심도 없는 나이였으니까. 두 번째에는 조사를 했다. 공약도 살펴봤고, 토론회도 봤다. 누가 돼선 안 된다고 논쟁도 여러 번 했다. 분별없는 정의감에 불타던 시기였다. 세 번째 투표를 앞두고는 침착해지기로 했다. 여러 관점에서 살펴보기로 했다. 대선 주자들의 공약과 행보에 대한 뉴스도 꼼꼼히 봤다. 정치에 대한 책을 읽은 건 아니지만, 칼럼은 읽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대선 후보들을 잘 모른다. 안철수나 박근혜, 문재인의 얼굴도 대면한 적 없다. 그들의 키가 얼마나 되고, 피부 상태는 어떻고, 냄새는 어떠한지 알 수 없다. 그런 세세한 면까지 알아야 그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직접 만나기로 했다. 하지만 대선 후보를 만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들은 이미 레이스를 시작했고, 다른 곳을 쳐다볼 여력이 없었다. 나를 만나줄 만큼 한가한 사람들이 아니란 거다. 그래서 그들의 일정을 쫓아갔다.

국정감사에서 박근혜의 친인척 비리 의혹이 제기되고, 새누리당 지도부의 사퇴 선언이 있던 날, 그녀가 안철수와 문재인 후보에게 지지율이 10% 넘게 뒤진다는 발표가 잇따랐다. 그날 아침 박근혜 후보를 만나러 갔다. 아니 보러 갔다. 광진구의 한 호텔에서 ‘세계지식인포럼’이 열렸다. 주차장에는 취재진들이 모여 있었다. 행사 주최자와 언론사 대표 등이 박근혜를 기다리고 있었다. 경호원들이 그녀의 도착을 알렸다. 분주했다. 검은 대형차가 들어오기까지. 대표들은 땀이 나는지 손을 닦고 있었다. 차 문이 열리고 박근혜가 나왔다. 웃고 있었다. 아니 웃으면서 내렸다. 습관처럼 보였다. 미소를 띠고, 대표들과 악수를 했다. 그 상황에서 빅토르 위고의 <웃는 남자>를 연상했다면 이상할까? 소설의 주인공 괭플랜은 어려서 입이 귀까지 찢어져 평생 웃는 표정으로 살아야 했다. 결국 프랑스 최고의 광대가 되지만, 비밀은 귀족 출신의 자제라는 것. 빅토르 위고는 평생 웃는 모습으로만 살아야 하는 괭플랜을 통해 당시 귀족 사회를 비난했다. 박근혜가 괭플랜에 이입되었다. 그녀가 웃으며 취재진, 대표들과 함께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것을 보며. 그리고 경제 민주화 정책을 주장하지만 재벌의 해체는 반대한다는 모순을 주장하는 그녀가 회의장으로 사라지는 걸 봤다. 그녀는 2012년 대한민국의 웃는 남자일까? 남자는 아니지만 광대는 어울릴까? 광대라기에는 너무 근엄하지만 독재자의 딸이기 때문에 비웃을 수 있을까? 괭플랜이라고 불러도 될까? 평생 웃어야 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그녀를 동정해야 할까? 아니면 모순을 제기하는 그녀를 비난해야 할까? 투표자로서 객관적이어야 하나, 인간적이어야 하나? 내 표를 내가 던지겠다는데 그딴 윤리가 왜 필요할까? 질문은 질문을 낳았다. 답을 고민하며 택시를 탔다. 문재인 후보가 소아암 환자를 방문하기로 한 날이었다. 오후 2시 30분. 점심을 거르고 그를 만나기 위해 아산병원으로 향했다.


문재인의 색깔은 노란색이다. 그리고 사람들도 그의 색을 노란색이라고 생각한다. 문재인의 문제다. 정당 개혁을 주장하는 그로서는 난처할 것이다. 사람들은 그와 노무현을 분리해 생각하지 못한다. 나조차 그렇다. 병원 방문 전 성남의 한 초등학교에서 정당정치는 정당을 통해서만 개혁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일리가 있다. 한편으로 정당이 없다면 어떨까란 생각도 들었다. 병원에 도착하니 이미 사진기자들이 모여 있었다. 문재인의 차량이 근접해올 때 즈음. 몸을 움직여 자리를 잡았다. 그들 틈을 파고들어 나도 사진을 찍었다. 아줌마들이 들이닥쳤다. 셔터를 누르려는 찰나 그녀들이 스마트폰을 들고 문재인 곁에 섰다. 잘생겼다며 서로 셀카를 찍겠다고 들러붙었다. 어쨌든 대선 후보 중에서 가장 미남인 건 확실했다. 그의 인기는 인정하기로 했다. 환갑의 나이에도 자세는 꼿꼿하고, 키는 크지 않지만 늠름해 보였다. 구부정한 나로서는 그것만 부러웠다. 인기는 나도 많으니까. 경호관과 보좌관, 기자들을 대동했지만, 그는 시민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눴다. 그가 소아암 병동으로 들어가는 순간 까지 쫓았다. 회의실까지는 쫓아갈 수 없었다. 소아암 환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차로 돌아오는 동안 그는 다시 시민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너무 시끄러워 대화 내용까지 엿듣지는 못했지만, 먼저 말을 거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봉화마을에서 관광객을 상대로 농담을 하던 노무현의 모습이 연상됐다. 그가 노란색이라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시민과 어울리려는 그의 모습 때문이었다. 하지만 우려됐다. 많은 젊은이들은 다음 대통령이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길 원한다. 국민들을 찾아가 일일이 이야기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대통령은 바쁘다. 그럴 여력이 없다. 우리는 SNS 시대를 살고 있다. 개인의 취향이 공유되고, 자기 취향에 맞춘 상품을 제안받는다. 하루아침에 미국인이 한국 가요를 따라 부르는 시대다. 소통을 위해 직접 발로 뛰겠다는 말은 촌스럽다. IT는 생활의 필수 요소다. 이를 잘 활용할 수 있는 리더를 원한다. 문재인은 그럴까? 그를 진보적인 인물로 봐야 할까? 아니, 진보적인 인물로 볼 수 있을까? 병원을 나서며 생각했다. 그는 여전히 노란색이다. 그의 노란색은 지난 세대의 색으로 굳어졌다. 노무현 장례식과 그것에서 파생된 만화, 수많은 웹툰, 인터넷 게시판을 달군 너무 많은 사진들이 노란색을 추모의 색으로, 클리셰로 만들었다. 이건 나에게만 유효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전히 문재인의 기사에는 노무현이 언급되고 있다. 심지어 그의 선거 캠프에 참여할 연예인으로 명계남이 거론됐다.


마지막으로 안철수 후보를 보러 갔다. 세종문화회관에서 언론사 행사에 참석하기로 되어 있었다. 부인의 다운계약서 작성에 대한 논평이 라디오에서 흘러나왔다. “청렴결백할 수는 있어도, 사람은 사람이에요. 그쵸?” 택시기사가 웃으며 말했다. 나도 웃었다. 안철수를 잘 아는 건 아니지만, 초등학교 때부터 그가 만든 백신을 사용했다. 성능이 괜찮았다. 안철수 백신이라는 상품명을 오랫동안 들었다. 그의 이름은 그래서 익숙했다. 세종문화회관 앞에는 방송사의 카메라가 잔뜩 설치되어 있었다. 따로 인터뷰가 내정된 건 아니었지만, 안철수의 행보를 찍고자 하는 기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지나가던 광화문의 인파들도 기웃거렸다. 안철수는 승합차에서 내렸다. 그의 붉은 얼굴은 경직되어 있었다. 피곤이 깃들어 있었다. 마중 나온 언론사 대표와 악수하며 말했다. “정말, 반갑습니다.” 그는 말버릇처럼 강조어를 사용했다. 진심의 캠프라서? 진심을 표현하려고? 하지만 그의 표정은 무거워 보였다. 기자들은 그를 둘러쌌다. 그는 조심스럽게 걸음을 내딛어 행사장으로 들어갔다. 기자들의 질문에도 답을 아꼈다. 그는 대선 출마 선언 이전에도 사회를 위해 헌신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행동하고 싶다고 했다. 정치권 진출을 염두에 둔 말일 수도 있고, 자신이 거둔 사회적 성공을 사회에 환원하려는 취지일 수도 있다. 하지만 개인의 희생이 따르는 행위다. 사람들은 대통령이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어주길 바란다. 지나친 욕심이지만, 사실이다. 안철수 후보는 그런 국민의 선택을 받고자 한다. 정당정치도 거부했다. 새로운 변화를 꿈꾸고 있다. 하지만 안철수는 행복할까? 선택을 받기 위한 과정. 출마 이전부터 언론으로부터 시달려온 생활. 모범을 보이고, 청년들에게 희망을 주어야 한다는 부담감. 그도 사람인데 어떻게 견디는 걸까? 혹은 그는 야망 덩어리이지만, 침착하고 내성적인 성격으로 그것을 감추고 있는 것일까? 정치인이 아닌 인간 안철수가 궁금해졌다. 안철수 후보가 다시 차에 오르는 것을 보고, 은색 승합차가 세종문화회관을 따라 골목으로 우회전하며, 사라지는 것을 지켜봤다.


세 명의 대선 후보를 하루 동안 만났다. 같은 공기를 나눠 마신 그들은 위대하거나, 화려한 존재는 아니었다. 안면근육이 굳어버리거나, 과거의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결코 쉽지 않은, 그래서 발로 뛰어야 하는 중년 남자이거나, 선택받기를 기다리는 피곤한 사람일 뿐이다. 여전히 정치는 알 수 없지만, 그들은 조금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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