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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박근형을 우러러보다

20여 년 만에 잡지 사진을 찍는다고 한다. 30여 년 만에 담배도 물었다. 몰랐다. 누구도 몰랐을 거다. 맞다. 우린 배우 박근형에 대해 잘 모른다. 모르는 게 죄는 아니다. 하나 반성할 필요는 있다. 그는 우리가 알아야 할 배우다. 지금이라도, 알면 된다.

UpdatedOn September 10, 2012




짙은 남색 수트 조르지오 아르마니, 흰색 셔츠 프라다, 보라색 보타이 16만8천원 드레이크스 by 유니페어 제품.
(여자) 검은색 니트 원피스 닐 바렛, 티아라로 활용한 뱅글·큼지막한 귀고리 모두 스와로브스키, 검은색 가죽 장갑 제이미 앤 벨 제품.

솔직히 고백한다. 에디터는 배우 지망생이었다. 지금은 배역 대신 사회인을 연기하지만, 한때 그랬다. 그래서인지 좌불안석, 박근형 인터뷰를 기다린다. 그는 50여 년 연기를 해왔고, 지금도 연기한다. 현장에서 후배 연기자를 가르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누가 성장했다느니, 누가 혼났다느니, 누가 칭찬받고 싶어 한다느니 하는 소리도 들린다. 직접 듣고 싶었다. 삶으로 살아온 연기에 대해. 그러면서 무섭다. 연기 못한다고 혼낼 정도다. 괜한 질문으로 심기를 거슬리면 어쩌지? 어릴 때 드라마에서 본 ‘호랑이선생님’이 떠오른다. 마른침만 삼킨다. 드디어 그가 스튜디오에 들어선다. 박근형은 호랑이도, <추적자>의 서 회장도 아니었다. 연기를,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려는 장인. 옆집 할아버지처럼 조곤조곤 얘기해주는 장인이었다. 지금도 극본만 보면 남의 역할이라도 가슴이 둥둥둥 떨린다는 대목에선 덥석, 그의 손을 잡을 뻔했다. 얼굴 가득 주름을 잡으며 설렘을 드러내는 일흔 넘은 남자 앞에서 뭘 할 수 있을까. 오직 손을 잡고 그 마음에 경의를 표하는 것뿐이리라. 인터뷰를 끝내고 그의 손을 잡는다. 단지 악수다. 단지 악수로만 느껴지지 않는다. 둥둥둥, 에디터 마음도 떨린다.

 

짙은 남색 수트 조르지오 아르마니, 흰색 셔츠 프라다, 보라색 보타이 드레이크스 by 유니페어 제품.
(여자) 검은색 니트 원피스 닐 바렛, 티아라로 활용한 뱅글·큼지막한 스와로브스키 장식의 귀고리 모두 스와로브스키, 검은색 가죽 장갑 제이미 앤 벨, 흰색 오픈토 슈즈 디올 제품.

일정을 들었는데 대단하다. 드라마 세 편에, 곧 영화 한 편이 대기한다.
그냥 꾸준하게 일해왔는데 이번에 <추적자>로 강한 인상을 남겨서 그런지 관심 받아서 바쁜 것처럼 보인 거다.
그건 그렇다. 언제는 이렇게 연기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으니까.
지금까지 내가 고수한 연기 철학은 본성을 바탕으로 한 연기다. 주위 환경에 따라 인물이 표현하는 걸 연기해왔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보고 공감할 부분이 많으면 아주 좋아하고 적으면 등한시하는 걸 많이 느꼈다. <추적자>에선 가족을 지킨다는 의미에서 나약한 아버지들의 자화상이랄까, 그런 걸 그려낸 거다. 아무리 돈이 많고 권력이 막강해도 자기 가족을 지키려고 하는 것. 가족과 헤어지고 파괴되어가는 부분을 중점적으로 생각하고 연기한 거다. <추적자>를 처음 봤을 때 깜짝 놀랐다. 이 작품처럼 논리적인 것이 별로 없었다. 그런데 <추적자>는 논리적으로 전개하고, 기승전결도 정확하고, 또 의미 표현이라든가 여러 가지 표현이 사회에 사는 모든 분에게 닿은 거다. 아, 내가 이런 세상에 살고 있구나, 그러면서 깜짝 놀란 거다. 거기에 자기 얘기가 나오자 더 가깝게 와 닿은 거 같다.
이렇게 말한 걸 기억한다. 배우에는 모방 배우, 직업적 배우, 창조적 배우가 있는데 자신은 창조적 배우라고. 자부심과 신념이 확고하지 않고선 말할 수 없는 단어다.
자기 생각은 매우 독창적인 것이다. 어느 누가 표현해도 그들만의 철학이 있는 것 아닐까. 그러니까 내 경우에만 한해서 그렇게 얘기했다. 젊은 시절에는 그렇게 얘기하기 매우 어렵다. 나이를 먹고 오랫동안 몸담아왔으니까 이제는 말할 수 있다. 그전에는 얘기하진 못하고 속에만 담고 꾸준히 노력해온 것뿐이다. 나는 후배들과 같이 작업하면서 그들에게 도움되라고, 너만의 독창성, 너만의 상상력, 이런 걸 자주 이야기한다. 또 역할을 만들어가는 방법론을 이야기한다. 그래서 훈련시키기 위해서 흉내 내게 한다든가, 내가 시범을 보인다든가 하는 것은 전혀 안 한다. 자신의 상상력으로 역할을 만들어야지 그 부분에 다른 사람이 영향을 끼쳐서는 안 되는 거다.
많은 배우들이 박근형을 거론한다. 칭찬 들었을 때 기뻤다는 얘기, 많이 혼나고 많이 배웠다는 얘기, 감사하다는 얘기 등등.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대선배로서 갖는 책임감과 의욕이 느껴진다.
우린 공동 작업이지 혼자만의 작업이 아니다. 서로 교류하고 화합된 걸 보여줘야 조화를 이룬다. 요즘에는 그 조화를 무시하고 스타성을 너무 부각시키니까 작품의 질이 떨어진다. 조화를 이루면 작가의 메시지, 연출의 메시지, 배우의 메시지가 합쳐져서 작품도 한 단계 높아진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젊은 친구들에게 의식의 문제라고 자꾸 말한다. 돈과 명예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꾸준히 하면 명예가 생기고 부도 따른다고. 자부심을 갖고 일하면 그건 부수적으로 따라오는데 반대로 생각하고 일하니까 우리나라에 배우가 많이 부족하다.
모든 대선배들이 후배들을 신경 쓰는 건 아니다.
요즘은 어릴 때부터 어떻게 빨리 배워서 배우를 할 수 있는지, 그런 교육기관을 많이 찾는다. 대학에 가더라도 2년은 교양, 나머지 2년은 전공을 공부한다. 그 기간이 너무 짧은 거다.
나 때는 그나마 여러 나라에서 공부한 교수님 대여섯 분이 가르쳤다. 그런데 지금은, 내가 1999년에 마지막 학기를 마치려고 다시 대학에 가보니까 한 나라에서만 공부한 선생으로 가득 차 있더라. 다양하게 영양을 공급받을 필요가 있다. 나는 그런 식으로 공부하며 나만의 이론적인 걸 정립하고, 배우로 살면서 실제적인 것도 정립했기 때문에 이제 후배들에게 말할 수 있는 거다. 그걸 모르고 이렇게 해봐라, 하는 건 안 된다. 나도 40대 후반, 50대 정도 되어서야 후배들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내가 어릴 때 그렇게 바라던 것, 공부해서 쟁취할 수 있었던 부분에 대해 빠른 길로 이끌어주는 거다.
처음 연기를 시작할 때만 해도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을 게다. 그런데도 계속 연기만 하게 된 원동력은 뭘까?
외골수라고 할까? 성격상 그러기도 했지만, 배우는 이성과 감성을 잘 조절해야 좋은 연기를 할 수 있는데, 그 부분에 내가 굉장히 흥미가 있었다. 하나씩 작업해나갈 때마다 그 느낌이 엄청 좋은 거다. 내가 좋아서 나 좋은 일을 한 거다. 배고픈데도 불구하고 떠나지 못한 건 무대 위에서 그런 희열을 느껴서다.


이게 정말 내 거다, 희열을 느낀다, 하는 걸 요즘 젊은이에게선 찾기 힘들다.
워낙 자본주의 체제에서 살다 보니까… 의식의 문제라고 본다. 학창 시절에 지향했던 예술, 그것에 집착하는 동안 느끼는 희열, 그 의식을 품고 완성해 나가려고 애쓰는 것. 물론 그건 완성할 수 없다. 하지만 그걸 지금도 계속 추구한다. 이건 의식의 세계다. 하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의식의 세계가 너무 얄팍하고 단순하다. 우리나라 교육제도에 문제가 있다. 우리 때는 자연, 도덕, 사회, 윤리 등 여러 가지를 접하며 살았는데 지금은 입시 하나다. 상상력의 세상이 오지 않는 거다.  그래서 감성만 있지 이성이 없다. 순간적으로 쟁취만 하려고 하지 멀리 내다보고 어떻게 살고 어떻게 이루어야 할지 생각하지 않는 거 같다. 우리 때는 전쟁 이후 가난한 삶을 살면서도 그런 의식을 가지고 살았다. 그런 면에서 의식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흰색의 얇은 터틀넥·흰색 셔츠·검은색 더블브레스트 베스트·짙은 회색 더블브레스트 코트 모두 프라다, 짙은 남색 팬츠 조르지오 아르마니, 검은색 페이턴트 슈즈 디올 옴므 제품.

자신이 정말 원하는 걸 진실로 알기란 힘들다. 20대 때 그걸 알았다니.
내가 엄청나게 틀릴 수도 있다. 하지만 단지 그렇게 좋고, 그것만 위해 살면 좋겠다는 외골수적인 생각으로 여기까지 와서 이제 내 얘기를 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30대 후반에 정말 이게 내 길이구나, 느꼈다. 그전에는 좌절도, 그만둔 적도 있었다. 그런데도 다른 일이 딱히 내게 맞지 않으니까 못한 거다. 용기 있게 덤벼들지도 못하고. 그런데 연기만큼은 덤벼들 수 있었거든. 경제적으로 엉망진창인데도 그렇게 용기가 있었다.  그래서 이걸 이루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리 것이 좋다는 말처럼 우리나라 고유의 것이 연기와 부합하는 부분이 너무 많다. 유교적인 것이나 희로애락, 도덕, 윤리 같은 것도 얼마든지 배합해서 쓸 수 있다. 또 국어가 굉장히 좋은 언어다. 구사하는 법도 다양하다. 그런데 요즘 젊은이들은 다양성이 없으니까 그냥 똑같다. 우린 어려서부터 국어를 놓고, 고저장단을 다 공부했기에 구사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 지금도 얘기하지만, 배우들은 꼭 국어를 지켜야 한다. 그러면서 자기 생각을 펼쳐야 한다. 자기 것이 가장 독창적인 것이니까. 자기 것, 자기 몸매, 자기 음성, 자기의 모든 것으로 자기만의 것을 만들어서 인정받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러려면 연기 외에 다른 분야에도 관심이 많아야겠다.
물론 관심이 많다. 그림 그리시는 분 만나면 얘기 듣고 그림이 뭐냐고 자꾸 물어보고, 또 다른 분야 분을 만나면 얘기하고 듣는다. 게다가 사회 각 분야에 대해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정보를 많이 알아야 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반드시 신문을 본다. 18면이면 18면 전부 다 읽는다. 한 시간 반 정도 걸리더라. 그걸 평생 해온 거다. 신문을 통해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보면서 내 도덕관으로 이런저런 부분이 좋지 않다고 개인적으로 담는다. 또 그런 부분을 역할에 은유적으로 담을 수도 있는 거다. 그런 면에서 아주 유리하다. 표현되는, 딱 그 부분만 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깊은 뜻도 없고. 생각을 담아서 연기하니까 좋다.
<추적자> 서 회장을 맡을 때도 살을 많이 찌웠다고 들었다. 사투리라든가 악독한 기업 회장만이 아닌 아버지의 마음이라든가 심지어 의상까지도 의견을 제시했다. 매번 그러나?
연출자와 꼭 상의한다. 이번에 이렇게 하고 싶은데 당신 생각은 어떻소? 아주 젊을 때는 상의가 잘 안 된다. 젊기에 서로 상충해서 이해도가 낮았다. 나이 먹고 나니 받아들일 수 있는 게 상당히 많았다. 우리한테는 좋다. 매번 어떻게 다른 인물을 창조해낼지, 난 캐릭터(character)가 아닌, 롤(role)을 연기하려고 한다.
롤과 캐릭터의 차이가….
말하자면 캐릭터는 상품화돼 있는 거다. 우리가 알고 있는 상업적인 부분이 많다. 롤은 진정한 역할을 말한다. 새롭게 창조하는 연기를 해야 한다. 캐릭터는 정해져 있다. 그런 부분에서 변화해봐야 폭이 아주 좁다. 그걸 나는 거부한다. 그래서 변신이라는 말을 싫어한다. 변신은 옷을 갈아입는 것이지 내부까지 변화를 줄 수 없는 것이라고 얘기한다.
그런 의미의 연장선에서 자신을 ‘굿쟁이’라고 한 건가?
나는 굿쟁이다. 처음에 굿쟁이라는 말은 아주 천하게 쓰이는 경우가 많았다. 남사당패도 굿쟁이, 창 하는 사람도 굿쟁이, 모두 다 굿쟁이였다. 그 이전은 광대였다. 그런데 광대는 오광대, 하면 문학, 철학 이런 게 다 들어가는 영역이다. 광대라는 게 넓을 광 자에 큰 대 자거든. 엄청난 예술가다. 그걸 천민이 하기 때문에 천하게 본 거다. 그게 굿쟁이로 이어진 거고, 또 딴따라로 불린 거다. 그래서 지금은 아주 영광스럽게 생각한다. 광대라고 하면 더 좋고 굿쟁이라고 하면 그냥 나 정도 수준에 머무를 수 있겠다, 생각한다. 굿쟁이는 무당부터 남사당패까지 영적인 세계가 더 많다. 현대에서 얘기하는 상상력, 상상의 세계다. 아무나 넘겨볼 수 없는 거다. 그걸 보고 느끼는 쪽도 자기 상상력이 깨이니까 어느 정도 정화되는 부분이 크다. 보는 동안에 모든 걸 다 잊고 몰입했다가 끝나고 나면 정화된 맑은 세상을 느끼는 일은 인생에서 그렇게 흔하지 않다. 우리 세계에서는 그게 목표다. 우리가 그 매개체가 돼 정화된 세계를 선물로 주는 거다.
지금은 그 정도로 짜릿함을 전하는 배우들이 많지 않다.
그게 참 안타깝다. 많은 숫자는 필요 없다. 요즘 한류를 말하지만, 그런 의식을 갖고 일하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면 지금의 한류보다 더 월등할 거다. 우리나라 국민성이 그렇다. 발전시키려면 교육적으로, 더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강화할, 특수하게 가르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는 좁다. 그러니 영적인 세계라든지 상상력을 외부로 내보내야 한다.
50여 년 계속 배우로 활동해오려면, 연기를 잘하는 것 외에 다른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결국 사회생활이다.
54여 년 동안 연기하면서 나는 작가라고 생각했다. 배우로서 상상해 독창성을 발휘하고 나만의 특성으로 역할을 창조하는 작가다. 배우는 시켜서 되는 사람이 아니다. 연출, 극본, 배우 이 세 사람이 합심해 순수예술인 연극을 만들어냈듯 대중문화도 마찬가지다. 이 안에서 셋이 적대 관계가 돼서는 절대 안 된다. 공동 작업을 이뤄내는 거다. 그러려면 반드시 작가 의식이 있어야 한다. 시켜서 하거나, 남을 흉내 내면 안 된다. 왜 쓸데없이 평생을 그렇게 사나? 세상을 사는 게 다 그렇다. 인생이, 자기 목표가 그런 거다.
지금까지 수많은 역할을 맡았다. 아직도 못해본, 혹은 해보고 싶은 역할이 있나?
거의 다 했다. 정신병을 앓는 사람부터 막강한 권력이 있는 사람까지 다 섭렵했다. 단지 아직도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 열정은 있되 용기가 없는 젊은이들의 얘기. 일본 식민지 시절 지식인들이 나서지 못하고 자진하는, 스스로 자신을 없애버리는 시절이 있었다. 자진이라고, 자기 스스로를 뭉개버리는 거다. 용기가 있으면 사상가가 돼야 하는데 나약해서 이도저도 못하는 사람. 배움이 나약한 거다. 논리적으로, 자신이 어떻게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뛰어들지 못하는, 소위 피 식은 젊은이가 있다. 젊을 때 그런 역할을 많이 좋아했다. 지금으로 보면 사회 고발 드라마 같은. 그런 건 아직도 하고 싶다. 지금은 나이를 먹어서 그걸 표현할 수 없다. 이제 노년에 대한 문제를 많이 얘기하려고 한다.
지금도 이렇게 왕성하게 활동하는 힘은 어디서 나오나?
너무 재밌다. 지금도 극본만 보면 남의 역할이라도 가슴이 둥둥둥, 떨린다. 나라면 이렇게 하겠다, 그 생각이 머리에 파노라마처럼 계속 떠오른다. 샘도 나고. 젊은 배우가 하는 역이라면 내가 젊었다면 이렇게 했을 텐데, 하고 나이 드신 분이 하면 아 그거 내가 하면 더 재밌게 잘할 수 있는데, 이런 생각이 막 난다. 그래서 많이 본다. 우리 어릴 때 내가 부반장 맡고 다른 사람이 반장이면 반장이 어디 아파서 안 나오길 바라는 것처럼, 지금도 그렇다. 그런 마음이 있다. 잘못돼서 내가 나가봤으면, 하고. 나쁜 의미가 아닌, 하고 싶은 좋은 욕심이다.

글렌 체크 무늬의 완벽한 스리피스 수트·옅은 하늘색 셔츠·짙은 갈색 타이 모두 빨질레리, 남색의 물방울무늬 행커치프 브로이어 by 유니페어, 갈색의 더블 몽크 스트랩 슈즈 로크 제품.

그게 식은 적이 없었나?
아직은 안 식던데. 열정이 넘치나 보다. 대신 오히려 사회생활을 잘 못한다. 잘 용납할 수 없어서 안 된다. 그래서 지금은 귀도 순하게 눈도 순하게, 다 순하게 잡고 사회생활 하는 거다. 이젠 다 늙어서, 가진 것과 하고 싶은 열정은 많지만 어떻게 하나. 주책이다. 글 쓰는 솜씨나 있으면 그런 걸 적어서 전해주고 싶은데 글 쓰는 재주가 없다. 글을 쓰면 자꾸 꾸미게 된다. 내가 전하고 싶은 건 소설 같은 것처럼 대중에게 보이는 형식이 아닌, 진짜로 전달하고 싶은 노하우니까. 우리보다 훨씬 전부터 계속 변형해서 내려오는 이야기를 전달하면, 또 답습한다고 얘기할까봐 하기도 힘들다. 하지만 말로는 그때그때 반박할 수 있으니까 이야기해주는 거다.
여러 배우를 보면, 어떤 작품의 한 역할이 전환점이 되기도 한다. 지금까지 많은 역할을 맡았는데 그런 경우는 없었나?
그런 건 없었다. 대신 연극 할 때 1년에 열한 편씩 2~3년 계속하면서 여러 장르의 연극에 출연했다. 희극 중에서도 유럽, 일본, 미국 작품을 하고, 장르도 코미디에서 살롱 드라마, 1인극까지 하고 나니까 그게 나한테 큰 자산이 되었다. 나중에 연극계에서 나와 상업적으로 연기할 때 그 경험이 큰 도움이 됐다.
드라마와 영화뿐 아니라 연극 무대에도 오른다. 연극에서 영화로 온 배우들을 인터뷰하다 보면 이런 말을 듣는다. 다시 연극 무대에 오르고 싶지만 이것저것 걸리는 게 많아서 힘들다고. 그건 변명이다. 내가 올해 3월에 국립극단에서 <3월의 눈>이라는 연극을 했다. 그때 보니 더블 캐스트라고 두 팀으로 만들어놓고 하더라. 연습하는 시간도 다르고, 출연하는 시간도 다르고, 두 팀이 분리돼 있다. 지금은 옛날처럼 연극 한 번 하면 낮 공연, 밤 공연 혼자 다 하는 시절이 아니더라. 충분히 할 수 있다. 연극이 옛날 같지 않다. 기계적인 설비도 잘돼 있더라. 영화나 드라마와 연극이 연기적으로 다를 거라고 생각하는데 다르지 않다. 옛날에는 (영화나 드라마 배우들이) 연극은 과장해서 연기한다고, 그쪽 가면 안 된다고 했는데, 거짓말이더라. 설비가 좋아 다 전달되고 조명도 좋아서 섬세하게 표정도 다 보인다. 배우들은 자기 계발하고 충전하기 위해 반드시 연극 무대에서 연기해봐야 한다. 40일 동안 모여서 조직적으로 공부하고 역할을 만들어내는 작업을 해봐야 한다. 주머니에 대본 하나 덜렁 넣고 와서 1주일 새 50분, 한 시간짜리 극 만드는 작업보다 연극을 거쳐야 연기의 방법론을 쉽게 알 수 있다.
연기 외에 지금 다른 목표는 뭘까?
젊을 때는 오직 나만의 작가 의식으로 뭔가 이루겠다는 꿈이 있었다. 그러다가 나이를 먹어 그 역할로 돌아갈 수 없으니까 젊은 사람들한테 이야기해주고 도움도 줬다. 어릴 때 연기하려고 할 때 교육기관이 없어서 고생한 걸 생각하면, 나를 잡아주신 선생님 생각이 난다. 그래서 고향에 조그맣게 학당 비슷한 거 만들어 한 대여섯 명과 같이 생활하면서 가르쳐주고 싶다. 걔네들이 그곳에서 배워 큰 사람이 되게끔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있다. 앞으로 한 2~3년 안에 그런 곳을 만들어 애들과 방학 때만이라도 앉아서 이야기하고 생활하면서 자꾸 불러일으켜주고 싶다. 원대하게 큰 학교를 세우는 게 아닌 조그만 학당을.
다시 태어나면 너무 힘들어서 연기 안 한다고 말한 얘기를 들었다. 그런데 아들딸 모두 배우의 길을 걷는다.
여자에게는 이처럼 좋은 직업이 없다. 하지만 남자는, 우리 한국적인 상황에선 가정을 이끌어야 하기에 경제적으로 궁핍하면 괴리가 생기고 나중에 파괴되는 부분이 많다. 내가 너무 고생해서 남자는 이걸 하지 말라고 한 거다. 남이 생각하기에 자신은 금방 될 것 같지만, 수만 대 수천 대 일이기 때문에 뽑힌다는 건 너무 어렵다. 그래서 아이들에게는 다른 길을 권했는데 다 돌아오더라. 그래서 아, 이게 타고나는 거구나, 생각했다.
후배들도 현장에서 가르치는데, 자식에겐 더 많이 연기를 가르치겠다.
아이들과는 많이 이야기한다. 막내아들은 내가 시간 나면 자기가 와서 이야기하고 많이 토론하기도 한다. 배우들에게 이론이 너무 부족하니까 그런 얘기를 많이 한다. 네 생각은 어떠냐? 내 생각은 어떻다. 강요는 안 하고 방법론만 이야기해서 상상력을 자극한다. 인상 깊은 건 아버지 그늘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는 점이다. 그 부분이 좋다. 이야기해주면 그거 말고 지금 현대에 맞는 식으로 생각하는 게 좋다.
자주 연기에 대해 얘기하다 보면 자연스레 어떻게 살아가라고 말해주겠다.
먼저 사람이 되라는 얘기가 있듯이 사람을 표현하려면 먼저 사람이 되라고 이야기한다. 근본적으로 이성과 감성을 고루 조율할 수 있는, 사회적인 생활을 할 수 있게끔. 도덕적인 사람이 되는 것도 원하지만, 그것보다 살아가면서 서로 배려하는 사람이 되라고 한다.
하고자 하는 일을 해왔고, 그러면서 인정도 받았다. 지난 시절을 후회하진 않겠다.
살면서 후회하는 게 딱 하나 있다. 연기는 나 혼자만 좋아서 한 일이다. 우리 가족 구성원에게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다. 나 고생해서 뭘 이루고 명예를 얻는 건, 결국 가족 구성원을 담보로 한 일이다. 뒤돌아보면 가족에게 준 부담이 솔직히 엄청나다. 그 부분이 항상 미안하다. 그렇다고 내가 세계적인 사람이 된 것도 아니고. 가족에게 경제적인, 그리고 서로 교류하지 못한 가부장적인 고통을 안겼다. 나의 길만 걸은 거다. 그걸 후회한다. 보통 자기만의 길을 걸으면서도 배려한다. 난 그걸 못했다. 그 고통을 생각하면 참 미안하다.
인터뷰를 마칠 때 되니 갑자기 이게 궁금하다. <추적자>에서 서 회장 대사가 많이 회자됐다. 지금도 잊히지 않는 대사는 뭔가?
자기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것. 지주가 마름을 두고 마름은 소작인을 두는데 마름이 꼭 자기가 지주가 된 것처럼 소작인을 핍박한다는 내용의 대사다. 나중에는 그놈이 지주의 아들을 다 죽일 수 있을 정도로 막강한 힘을 발휘하는 얘기다. 내가 그 부분을 좋아하는 건, 각자 자기 위치에서 일을 충실히 하면 그게 다 서로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서다. 그렇지 않으면 분란의 요소가 된다. 과욕을 부리고 자기 이상의 것을 추구하다 보면 남을 해치게 된다. 그 부분이 제일 마음에 들더라. 난 그거 하나밖에 기억이 안 난다.
그 숱한 대사가 기억나지 않는다?
지금까지 많은 작품을 했는데도 모른다. 보통 인기가 최고조에 달했을 때 멋진 대사라고 막 읊어대지 않나? 하지만 난 하나도 모른다. 기억하지 못한다. 그렇게 머리를 쉽게 비운다.
그래서 더 많은 작품을 할 수 있었겠다.
맞다. 지난 건 쉽게 잊는다. 그 잔재를 가지고 있는 분들이 많다. 빨리 없애버려야 한다. 대신 새로운 것을 자꾸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서인지 아주 세계적인 명작 연극들을 올렸는데도 내 대사를 잘 못 외운다.
내년 1월에 이순재, 신구 등 노배우들이 주역인 시트콤을 한다고?
8월에 편성을 받는다고 하는데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함께하는 분들이 정극파, 정통 극을 하는 분들이다. 그들과 함께하니 우선 굉장히 표현의 영역이 넓다고 본다. 단순하게 말장난이나 슬랩스틱으로 가는 게 아닌, 삶에서 우러나는 얘기가 많을 거다. 그 표현력을 아주 기대한다.


(여자) 은은한 분홍색 드레스·흰색 오픈토 슈즈 모두 디올, 큼직한 스와로브스키 장식이 나열된 목걸이 스와로브스키, 크림색 장갑 제이미 앤 벨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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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이티즈 여덟 멤버들은 해외 시장을 정확히 타격했고, 국내에서도 무서운 기세로 성장 중이다. 업계 관련자들이 눈여겨보는 신인 아이돌 언급에 늘 빠지지 않는 에이티즈를 만나 사소한 습관부터 원대한 야망까지 물었다.

  • CELEB

    오키의 영화

    재즈 뮤지션으로 불리길 거부하는 무규정 존재 김오키는 하고 싶은 걸 한다. 발라드도 하고 펑크도 하고 영화도 하고 그림으로 음악도 만든다. 윤형근 화백의 그림에서 영감을 받은 정규 11집 앨범 을 발매했고 연출을 맡은 영화 <다리 밑에 까뽀에라> 촬영을 마쳤으며, 곧 닥칠 디스토피아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도끼도 두어 자루 준비해뒀다.

MORE FROM ARENA

  • FASHION

    취향 표출 팔찌

    취향을 온전히 드러내는 포스텐 브레이슬릿.

  • FEATURE

    지구촌을 거머쥔 생존의 제왕, 넷플릭스

    가학성 논란을 일으킨 <365일>은 넷플릭스 흥행으로 이어졌다. 디즈니 플러스와의 치열한 경쟁에서 이기려는 전략처럼 보이지만 어딘가 익숙하지 않나? 흥행을 위해 영화 밖 이슈까지 끌어모았던 할리우드 영화 산업을 연상시킨다. 넷플릭스는 논란성 짙은 영화부터 블록버스터, 예술 영화 등 다양한 오리지널 콘텐츠를 제작하며 몸집 불리기에 한창이다. 할리우드 아래 있는 지구촌을 거머쥐기 위한 넷플릭스의 움직임으로 읽힌다. 넷플릭스는 코로나19로 인해 영화 개봉이 불투명해지며 영향력을 잃어가고 있는 할리우드를 대체할 수 있을까?

  • FEATURE

    안드레 키르히호프 '자유의 밴'

    낡은 밴을 구해 캠퍼 밴으로 개조한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자신의 캠퍼 밴을 타고, 세계를 돌아다니며 살아간다. 여행이 아니다. 삶의 방식이며, 자유를 갈망하는 사람들의 깨달음이다. 어디든 갈 수 있고, 어디서나 경이로움을 느끼는 움직이는 집. 밴 라이프를 실천 중인 7팀이 말하는 진정한 자유의 의미다.

  • ISSUE

    한국 문화를 해외에 전파하는 평범하고도 특별한 틱톡 크리에이터들

    한국 문화를 전파하는 일등공신이 새로운 플랫폼 틱톡에 대거 등장했다. 각자의 개성으로 그들이 기획하고 편집하는, 지극히 평범하지만 특별한 그들은 한국 문화 교류의 장을 스스로 만들어내고 있다. 외국인들이 ‘어메이징 코리아!’라고 연신 댓글 달게 하는 그들의 매력을 들어보았다.

  • FEATURE

    연애하는 텔레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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