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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반니와 피구

2006년 7월 10일 베를린 스타디움. 눈물과 환호로 점철된 피파컵을 들어올릴 두 명의 유력 후보. 바로 그곳 베를린 스타디움에서 만났다.

UpdatedOn March 21, 2006

 길지 않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유럽도 아닌 동북아시아의 축구 변방에서 살면서 루이스 피구나 루드 반 니스텔루이 정도의 선수를 직접, 그것도 지근거리에서 마주 본다는 것. 그것은 안톤 오노가 쇼트트랙 1,500m에서 안현수를 제치고 금메달을 따는 것만큼이나 쉽지 않은 일이다.

세상에는 여러 부류의 선수가 있다. 펠레나 마라도나처럼 축구의 아이콘으로 여겨지는 선수가 있는가 하면, 레알 베티스를 나락에 몰아넣은 데니우손처럼 돈 값 못하는 선수도 있다. 또 축구 스타 중엔 베켄바워나 지단처럼 피파컵을 조국에 선물한 선수들도 있고, 크루이프나 카레카처럼 정상 바로 직전에서 눈물을 흘려야 했던 선수들도 있다.

루이스 피구와 루드 반 니스텔루이. 아직까진 요한 크루이프 쪽에 가까워 보이는 선수들이다. 또, 앞으로 그들이 야구의 배리본즈처럼 나이 들어서 더욱 분발하지 않는 한 펠레나 마라도나, 혹은 디 스테파뇨급의 선수로 기억될 가능성은 없다. 하지만 이들은 태양까지는 아니더라도 밤하늘을 아름답게 수놓는 별 정도는 충분히 되는, 말 그대로 스타들이다.

지난 2월 12일, 독일 베를린에서는 수백 명의 외신기자들이 한데 모인 시끌벅적한 행사가 있었다. 오는 6월 독일 월드컵에서 나이키가 만든 유니폼을 입고 뛰게 될 8개 국가의 유니폼 발표회였다. 이 행사를 위해 브라질의 아드리아누, 네덜란드의 루드 반 니스텔루이, 포르투갈의 루이스 피구 그리고 우리나라의 박지성 등 8개 국에서 한 명씩 뽑힌 선수들이 독일월드컵의 결승전이 열릴 베를린 스타디움에 모였다. 그곳은 우리에겐 고 손기정 선수가 올림픽 마라톤 경기에서 일장기를 달고 금빛 레이스를 펼쳤던 슬픈 장소이기도 하다. 그런 사연 많은 곳에서 에디터가 짝사랑해 마지 않는 두 스타의 거친 숨소리를 직접 들었다. 그건 분명 짧은 이력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이었다. 그 둘, 루이스 피구와 루드 반 니스텔루이.

 

루이스 피구

이 글을 읽고 있는 여성 독자들이 여기까지 읽다 페이지를 넘겨버릴지도 모를 일이지만, 군대 이야기를 해야겠다. 게다가 축구까지 곁들인…. 루이스 피구의 플레이를 처음 본 것은 유로 2000때였고, 그곳은 군대였다. 전역을 얼마 남기지 않아 지루한 나날을 보내고 있을 무렵에 본 피구는 에디터가 본 축구 선수 중 가장 역동적인 플레이를 선보였다. 그 후 피구의 열혈팬이 됐음은 당연지사. 나이키 유니폼 발표회장에서 처음 피구를 봤을 때의 첫인상은 겉모습이 마치 한국의 40대 아버지처럼 조금은 지쳐 보인다는 것. 커리어의 대부분이 엄청난 실적으로 채워져 있지만, 쌩쌩한 미스터 김 같은 신입사원들의 활기가 부러운 CEO처럼…. 그래도, 축구 선수가 많이 쓰는 근육만은 같이 자리한 7명의 젊은 선수들 못지않았다. 최고 경주마의 그것처럼 곧게 뻗은 종아리와, 머스큘러를 연상케 하는 그의 어깨 근육은 TV 화면에서 보면 조금은 가냘퍼 보이는 피구가 왜 여전히 최고의 윙으로 꼽히는지 수긍 가는 대목이었다. 오랜 시간 축구계의 별로 남아 있어서인지 - 1989년과 1991년 세계 청소년 축구 대회부터 그의 스타 이력은 시작된다 - 피구의 행동 하나하나에는 여유가 묻어났다. 포토 라인을 빼곡히 메운 사진가들의 요구에 일일이 웃으면서 센스 있는 포즈를 잡아주는 것이라든지, 추운 베를린 스타디움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을 때, 점퍼를 벗어달라는 기자들의 요구에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옆에 있던 브라질의 아드리아누와 장난치는 모습에서 베테랑의 여유가 느껴졌다. 이제는 확실히 내리막길로 접어든 피구. 기자들의 질문도 노장보다는 브라질의 아드리아누나 네덜란드의 반 니스텔루이에게 집중되었다. 에디터의 눈에는 피구는 아직 그런 대접에는 익숙지 않아 보였다. 그보다 스포트라이트를 덜 받는 5명은 생각지도 못한 채. 자신이 주인공이 아닌 그 자리를 빨리 뜨고 싶어 하는 듯, 결국 그날 참석한 선수 중 유일하게 예정된 인터뷰 시간을 채우지 못하고 비행기 시간을 핑계로 먼저 일어나버렸다. 그런 행동으로라도 관심을 끌고 싶었을까? 그를 좀 더 오래 보고 싶었는데, 공항으로 황급히 가기 위해 복도로 나갈 때도 쏟아지는 플래시 세례에 조금은 짜증을 내는 듯한 모습이 아쉬웠다.

확실히 루이스 피구가 세리에 A로 간 뒤로 - 사실 그 전부터 - 좌긱스 우피구라 불리던 시절에 비해선 부족해 보이는 감이 있다.

더 이상 그의 화려한 드리블은 광채를 뿜어내진 않는다. 그렇지만, 만약 포르투갈이 유로 2004의 성적을 뛰어넘는다면, 그 주인공이 젊고 잘생긴 호나우도가 아니라, 후반전만 되면 피곤한 기색이 역력해 보이는 피구였으면 하는 게 바람이다.

 

루드 반 니스텔루이

베를린 출장이 잡혔을 때, 그리고 그날 유니폼을 선보이는 선수의 명단을 받았을 때, 개인적으로 가장 흥분시켰던 선수는 단연 반 니스텔루이였다. 반니에 대한 첫인상은 전형적인 타깃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에디터가 가장 좋아하는 오렌지군단의 스트라이커는 패트릭 클루이베르트였고, 반 니스텔루이는 어쩐지 리그용이라는 생각을 떨쳐버리지 못했다. 적어도 유로 2004 전까진…. 유로 2004에서 그가 보여준 사각에서의 시저스 슛은 베르캄프가 1998년 월드컵에서 보여준 시저스 슛보다 훨씬 멋있었다. 또 한국인으로서, 언론에도 많이 나왔듯이 박지성의 친한 팀메이트이다 보니 더욱 애정이 갔음도 부인하진 않겠다.

행사 당일 같은 유럽권 선수여서인지는 몰라도- 그날 모인 3백여 명의 외신 대부분은 유럽 각국에서 왔다 -  

반 니스텔루이는 그날의 주인공이었다. 거의 모든 기자들이 반 니스텔루이의 뒤를 쫓아다니며, 각종 질문을 했다. 경기장 안에서는 상대편에게 비열한 행동도 서슴치 않는 걸로 소문난 반니지만, 경기장 밖에서는 무척 친절했다. 그 많은 질문에도 결코 허투루 대답하지 않고, 심사숙고한 뒤,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하지만, 박지성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한국 기자의 질문에는 물어보자마자 일 초도 안 돼서 마치 녹음기를 튼 것처럼 답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박지성은 데뷔 시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팀에 잘 적응하고 있어요. 게임을 할 때마다 발전을 거듭하고 있고, 동료들의 신뢰를 쌓아가고 있어요.” 얼마나 많은 한국 기자들이 물어봤으면 그 흔한 “음~, 웰, 혹은 유 노?”같은 거 하나 없이 술술 말할까? 상상이 갔다. 비슷한 질문을 하면, 짜증을 내는 선수들도 많은데, 반니는 그 말을 하면서도 시종 웃음을 잃지 않았다. 에피소드 하나. 8명이 베를린 스타디움의 그라운드로 내려와 포토타임을 가질 때였다. 나이키 측에서는 사진가들을 위해 가장 비중 있는 플레이어인 피구, 반니 그리고 아드리아누의 자리를 미리 지정해주었다. 그리고 나머지 선수들의 자리는 미리 선정되지 않았는데, 순간 에디터는 ‘반니라면, 자신의 팀메이트를 챙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고, 그 예상은 보기 좋게 맞아떨어졌다. 매년 학기 초 짝꿍을 구하지 못해, 어슬렁거리는 초등학생처럼, 혼자 있던 박지성의 팔을 잡아 자기 옆에 세우고, 농담을 하는 것이 아닌가?

재미있는 상상을 해보았다. 결승전이 열리는 이곳, 베를린 스타디움에서 다시 한번 반 니스텔루이와 박지성이 이 잔디를 밟고 서 있는 장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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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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