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검색

FEATURE MORE+

소리를 보는 낮

미술가 이미연이 존 케이지와 백남준의 만남을 회고하는 전시 <x_sound: 존 케이지와 백남준 이후>에 다녀왔다. 두 명의 위대한 예술가에게 영향을 받은 14명의 작가가 참여한 전시다. 소리에 관한 놀라운 풍경화다.

UpdatedOn March 28, 2012



소리는 귀로만 듣는 것이 아니다. 소리는 피부와 몸통을 통해 느끼는 공감각적 영역 안에 있다. 백남준이 ‘음악의 전시’에서 밝혔듯이 공간은 소리를 풍부하게 할 뿐만 아니라 필수적인 반쪽이다. 공간에 반응하며 공간을 장악하고 채운다. 그렇게 소리는 촉각적인 것이 된다. 그런데 소리는 그렇게 만질 순 있지만 움켜잡을 수는 없다. 형상 없이 자유자재로 출몰하고 지나간다. 또 소리는 과학적이고 물리적인 감각적 자극만 있는 것이 아니다. 심리를 자극하고 감정을 환기시키는 중요한 작용도 한다. 우리를 침잠시키고 동요시키고 그러다가 벌떡 일으켜 춤을 추게도 한다. 안리 살라의 작업엔 큰 소리가 작은 소리를 억압하고 외면하는 드라마틱한 감정적 구조가 있다. 하룬 미르자의 음향 장비들은 그 기능과 무관한 방식으로 빛에 반응하고 비트를 만들어낸다. 수잔 필립스는 가장 오래되고 친숙한 목소리라는 악기를 환경 속에 비치한다. 이렇게 소리가 그냥 단순히 소리로만 있을 수 없는 것, 그 탐구의 단면들을 전시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오토모 요시히데는 소리를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나눌 것인가를 탐구한다. 빈 턴테이블이 만들어내는 소음의 협주곡은 그가 일본의 한 소도시 시민들과 진행한 퍼레이드나 작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진행하고 있는 페스티벌 후쿠시마를 떠올리게 한다. 눈에 보이지 않고 어디에나 갈 수 있는 방사선과 유사한 소리. 그렇지만 사람들이 자존감을 지키고 타인과 관계를 회복하는 방법으로 기능하는 소리, 그리고 함께 만들어내는 협연. 존 케이지와 백남준이 선취한 모든 관습적인 것을 거부한 소리를 이제 더 많은 사람들과 같이 듣고 같이 연주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전시장의 모든 소리들-작가들의 소리, 관람객들의 소리-은 전시작의 가벽을 뚫고 서로 간섭하며 하나의 커다란 앙상블을 이룬다.
전시는 7월 1일까지 백남준아트센터에서 열린다.


동아시아에 한국이란 나라가 있다. 그렇게 말하면 잘 모르고 보통은 South Korea라고 한다. 거기에 이상한 소설을 쓰고 미심쩍은 시를 짓는 인간들이 있다. 그들은 하나같이 어떤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있지만 그것을 지켜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들은 하나같이 파스칼 키냐르를 좋아한다고 말하지만, 파스칼 키냐르를 아는 사람 또한 많지 않다. 그들이 모여서 파스칼 키냐르를 읽었다. 3월 13일 홍대 카페 커먼(common)에서.
파스칼 키냐르는 프랑스 사람이다. 그렇게 말하면 대부분 안다. 프랑스는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는 문화와 문학의 나라. 보들레르와 랭보, 앙드레 지드와 프루스트의 나라다. 아직 모르겠다고? 베르나르 베르베르와 알랭 드 보통의 나라다(물론 나는 미셸 우엘벡을 좋아한다). 그런 프랑스에서 파스칼 키냐르는 보석으로 불린다. 값나가는 보석이기에 많은 독자가 손가락에 끼진 못했다. 그러나 그것은 빛난다. 파스칼 키냐르는 문학의 명품이다.
우리나라 사람들 명품 참 좋아한다. 2012년 3월 파스칼 키냐르의 신작 <빌라 아말리아>가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그전에 <옛날에 대하여> <심연들> <세상의 모든 아침> 등의 작품을 냈다. 물론 많이 팔리지는 않았지만, 산 사람들은 거의 환장했다. 프랑스 영화보다 독한 난이도에 프랑스 와인보다 진한 중독성을 그는 지녔다. 도전해보겠는가? 쉽진 않을 것이다(라고 겁을 주고 싶다. 키냐르를 너무 여럿이서 좋아하는 건 싫어!).
그날 홍대 카페 커먼에는 인디 밴드 대신에 시인과 소설가가 모였다. 시인 김소연과 김언, 소설가 한강과 정용준이 번역된 키냐르의 문장을 읊었다. 번역가(송의경, 류재하)와 연극 평론가(안치운)도 자리에 함께했다. 그러나 가장 중한 손님은 한국의 독자였다. 동아시아에 한국이라는 나라가 있고, 거기에 프랑스 작가 파스칼 키냐르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아, 이것으로 우리나라는 충분히 훌륭하다. 모두 다 보석들이다!



<에스엠라운지>의 모든 기사의 사진과 텍스트는 상업적인 용도로 일부 혹은 전체를 무단 전재할 수 없습니다. 링크를 걸거나 SNS 퍼가기 버튼으로 공유해주세요.

KEYWORD

CREDIT INFO

디지털 매거진

MOST POPULAR

  • 1
    찰수록 변하는 ‘브론즈’ 시계가 대세라며?
  • 2
    2억으로 주식을 샀다
  • 3
    더 보이즈의 소년들
  • 4
    태민의 진심
  • 5
    주식 탐험가 강방천

RELATED STORIES

  • ISSUE

    일본 대중문화는 왜 낡은 미래가 되었나

    일본의 것이 가장 힙하고 새로웠던 시절이 있었다. 1998년 한국에 일본 문화가 개방된 후 ‘일드’를 보며 일본어를 익히던 친구들이 있었고, 더 거슬러 가면 오스 야스지로를 비롯한 거장들이 걸출한 작품들로 영화제를 휩쓸던 시절이 있었다. 일본 대중문화는 왜 멈췄을까? 조악한 옷을 입은 아이돌들이 율동을 하는 가운데 K-팝 산업에서 공수받은 JYP의 ‘니쥬’가 최고 인기며, 간만에 대형 히트작의 공백을 메운 애니메이션 <귀멸의 칼날> 완성도는 초라하다. 한국인이 지금도 좋아하는 일본 대중문화는 레트로 시티팝, 셀화 애니메이션으로 대변되는 20세기 버블 경제 시대의 산물일 따름이며 과거의 영광은 재현되지 못한다. 그 시절 꽃피운 <세일러문>과 <도쿄 바빌론>에 대한 향수를 지니고 최신 리메이크작을 찾아본다면, 그 결과가 얼마나 처참한지 이미지 한 장만으로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일본 대중문화는 왜 그리운 느낌 때문에 들춰보게 되는 낡은 미래가 되어버린 걸까?

  • ISSUE

    엔터테인먼트는 가상 아이돌의 꿈을 꾸는가

    인간 본체와 아바타 캐릭터가 함께 활동하는 SM 신인 에스파가 데뷔했다. 아주 새로울 건 없다. 일찍이 한국엔 사이버 가수 아담이 있었다.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는 여성 영웅 캐릭터 4인을 K-팝 그룹 K/DA로 데뷔시켰고, 일본에선 보컬로이드 하츠네 미쿠가 10년간 인기를 끌고 있으며, AI와 가상현실이 시대의 키워드가 되기 전부터 할리우드는 영화 <아바타>를 선보였다. 왜 엔터테인먼트 업계는 아바타의 꿈을 꾸는가? 근미래엔 실제 인간보다 완벽한 가상 아이돌이 그 자리를 대체할 수 있을까?

  • ISSUE

    제15회 에이어워즈

    언택트 시대를 슬기롭게 극복한 제15회 에이어워즈의 우아한 순간들.

  • ISSUE

    2억으로 주식을 샀다

    시인 이우성은 전세 보증금을 빼서 주식에 투자했다. 미리 알았다면 멱살 잡고 말렸을 것인데, 원고를 받고서야 알았다. 주식 시장이 요동친 지난 한 달간 2억원을 굴린 주식계의 큰손, 아니 빠른 손의 주식 투자기다. 잃은 것보단 얻은 게 많다고 한다.

  • ISSUE

    전종서라는 이상하고 새로운 얼굴

    이충현 감독의 <콜>은 서로 다른 시대의 두 여자가 한 집에서 전화기 하나로 연결되는 스릴러다. 관객은 전화를 안 받아서 짜증난 영숙 캐릭터 때문에 시종일관 무시무시한 공포에 시달려야 한다. 그 두려움과 떨림의 대가가 나쁜 것만은 아니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 <버닝>에 이어 전종서가 왜 새로운 스타일의 배우인지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얼굴과 새로운 목소리의 전종서는 천진하고 자유로운 연기로 이야기에 예측할 수 없는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지금 우리가 전종서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MORE FROM ARENA

  • FEATURE

    뭐 이런 계정이 다 있어

    @theclub_homeplus와 @binggraekorea 두 계정은 SNS를 통해 독창적인 홍보 방식을 선보인다. 계정에 자아를 부여해 정보 전달을 위한 딱딱한 공식 계정이 아닌 개인이 운영하는 SNS로 보이게끔 했다. 그래서 대화체를 쓰고, 계정은 감정을 가지며, 서사도 구축하고 있다. 규칙을 깨고 독창적인 방식을 선도하는 두 계정과 이 상황을 분석하고 브랜딩의 관점에서 깊어지는 고민을 정리한다.

  • INTERVIEW

    지금 강다니엘

    지난해 9월 이후 다시 강다니엘이 <아레나>의 카메라 앞에 섰다. 1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강다니엘은 두 가지 색을 더 보여주었고, 조금 더 여유가 생겼으며, 어조에선 성숙함이 묻어났다. 변한 건 많지만 머릿속을 새하얗게 만드는 미소는 여전했다.

  • TECH

    기대 이상

  • FEATURE

    4인의 사진가

    라운디드 A 에디션(Rounded A edition)은 고감도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라운디드와 <아레나>가 함께 기획한 프로젝트다. 라운디드 A 에디션에 참가한 사진가 네 명의 목소리와 그들의 작품이다.

  • FEATURE

    국뽕클럽 K-MOVIE

    한국인을 몰입하게 만드는 2020년 국뽕 콘텐츠들을 모았다. 이들과 클럽이라도 하나 결성해야 할 판이다.

FAMILY SI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