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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부티크 호텔을 엿보다

한국형 부티크 호텔이 당신의 섹스 라이프에 미칠 공헌도를 생각한다면, 당장 무릎 꿇고 소리 높여 찬양해도 부족하다. 프라이빗 풀과 당구대 위에서의 섹스가 바로 지금 가능하다. 당신은 다음 중 집이나 사무실에서 가까운 호텔 하나만 고르면 된다.

UpdatedOn March 21, 2006

최근 스스로를 부티크 호텔이라고 부르는 호텔(혹은 모텔)이 등장했다. 아는 체 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뉴욕의 ‘갱스부르’, 런던의 ‘샌더슨’ 파리의 ‘프티 물랑’ 같이 명망 높은 곳을 들먹이며 한국형 부티크 호텔을 폄하한다. 적어도 ‘W’나 ‘파크 하야트’가 아니면 부티크라고 말할 수 없다면서. 부티크 호텔이란 모름지기 크지 않은 소박한 규모와 트렌디한 인테리어 디자인 그리고 최상의 서비스를 갖추어야 한다고 한다. 이들의 식견을 비웃고 싶지는 않다. 맞는 말이니까. 그런 관점에서 우리나라는 부티크 호텔이 아닌 러브호텔의 천국이다. 하지만 ‘부티크(Boutique)’의 정의에 100% 충실하지 않아 굳이 ‘한국형’을 붙인 몇몇의 부티크 호텔들은 찬양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한국형 부티크 호텔이 나의 섹스 라이프에 공헌한 바는 크다. 1990년대에 시작한 나의 섹스는 곰팡이가 슬어버린 벽을 훔쳐보며 섹스를 마치면 허둥지둥 ‘업소용’ 샴푸로 머리를 감고 쾌남스킨을 바르고 나와야 했던 찝찝함으로 점철되어 있다.

지금의 한국형 부티크에서 이루어지는 섹스는 얼마나 다른가. PDP와 DVD를 보며 큰 욕조 그리고 수영장까지 갖춘 그곳에서 창밖을 보며 ‘아쿠아 패팅’을 하며, 개인 사우나실을 나와 아베다로 정리하는 상쾌함. 나의 사랑은 불륜의 수렁에서 로맨스의 요람으로 옮아갔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부티크 호텔과 21세기에 감사한다.  

 

수원 메이트

클라이언트 측에서 제시한 납기 6개월을 맞추기 위해서는 주말을 반납해야 했다. 프로젝트 동안 작은 즐거움은, 더블 커프스 셔츠 밑으로 보이는 플라워 패턴, 일요일 아침의 브런치, 그리고 그녀의 머리에서 나는 샴푸 냄새가 전부였다. 3개월쯤 지나서 나는 푹 쉬어볼 요량으로 반얀트리의 리조트를 예약했다. 남은 3개월을 달릴 경주마에게 주는 당근으로 리조트에서의 일주일 휴가는 상상만으로도 달콤했다. 프로젝트 종료 미팅. 후다닥 나오는 순간 PM의 목소리가 들린다. “잠깐 나랑 얘기 좀 하죠?” 수업이 끝나고 선생님이 따로 남으라고 하는 학생이 좋은 소리 듣는 경우는 많지 않다. 결론은 간단했다. 작은 프로젝트가 하나 더 생겼는데, 거기에 파견을 나가야 한다는 소식. 이틀만 쉬고 다시 출근을 하란다. 하지만 나의 리조트는? 나의 샴페인과 태닝은? 리넨 셔츠와 선글라스는?

그날 밤 그 소식을 들은 그녀는 어깨를 토닥이며 “내일 12시까지 픽업하러 갈 테니까 속옷하고 양말 준비해와” 라며 싱긋 웃는다. 음. 속옷, 양말? 나 항상 입는다구.

그녀가 나를 데리고 간 곳은 수원의 메이트 호텔이었다. 아, 이 아가씨가 굶주렸구나. 딱 이틀 쉬는데 대체 나를 얼마나 혹사시키려는 거냐. 6개월간의 프로젝트가 끝나면 이틀간 성욕의 노예가 되어야 하는 것인가. 키를 들고 들어간 1301호. 복층 구조로 되어 있어 시원하게 보이는 창밖(물론 밖에는 별로 볼 게 없지만), 55인치 PDP TV, DVD, 컴퓨터, 에어컨, 공기정화 시스템, 최신식 노래방 시스템, 홈바, 사우나, 월풀욕조가 눈에 들어온다. 하루 묵으면서 성욕의 노예로 있다 보면 별로 쓸 일이 없을 것 같긴 하지만, 이 시설과 더불어 블랙과 아이보리 화이트로 깔끔하게 마감한 인테리어에 마음이 설레기만 했다.

“리조트는 못 가도 여기서 하루 쉬자” 라며 그녀가 보여준 곳에는 수영장이 있었다. 객실별 실내 수영장.

버터플라이를 날렵하게 할 수 있는 사이즈는 아니지만, 하늘을 보면서 어떤 소음이나 누군가의 시선에 신경 쓰지 않고 ‘Bob James’를 들을 수 있는 공간. 대한민국에서 잠시 도망을 온 듯한 기분. 간단하게 샤워와 사우나를 하고 수영장에 앉아 샴페인을 한잔 하면서 나는 이틀 뒤에 다시 뛰어들 프로젝트를 잊을 수 있었다. 그냥 하늘 한번 보고 샴페인 한잔 마시고 아이팟에서 음악을 고르며 오후를 보냈다. 저녁에는 영화도 한 편 보고 아침에는 나름대로 먹을 만한 조식 서비스도 즐기면 꽤 즐거운 하루가 된다. 특급호텔 패키지에 맞먹는 가격이지만, 단둘이 풀을 독점하며 듣는 음악과 샴페인, 하늘은 확실히 가치가 있다.

 

●팁 그녀가 이런 곳을 어떻게 알고 있는지 절대 묻지 말 것. 누구랑 왔었는지도 묻지 말 것. 그냥 당신을 위해 고민한 그녀의 마음을 감사하게 받아들이고 푹 쉴 것.

●강점 누누이 말하지만 나만의 음악과 둘만의 풀사이드를 즐길 곳은 대한민국에서 여기밖에 없다. 또 인덕션과 전자레인지가 갖추어져 있어 요리가 가능한 한국형 부티크는 여기가 유일하다.

●약점 하늘 아래 근사한 풍경이 없어 조금 황량한 느낌. 더불어 주변에 근사한 레스토랑이 없다는 것. 또 이 욕조에서 얼마나 많은 커플이 섹스를 했을까를 떠올리며 욕조 속을 헤엄치는 정자를 떠올린다면 당신은 이곳을 즐길 자격이 없다(물론 손님이 바뀔 때마다 물을 새로 채운다고 한다).

 

라이프 스타일 호텔

인천공항에서 여자를 기다려본 사람은 알 것이다. 글로리아 진스에 앉아 에스프레소를 마시며, 바로 옆 수화물 창구를 바라보며, 시계를 보며, 높고 높은 천장을 보며, 잡지를 보며, 흡연구역에서 담배를 피우며, 몇 주간 보지 못한 그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며, 마지막으로 지낸 밤의 체취를 생각하며 얼마나 가슴이 두근대는지. 도착 시간보다 30분 정도 일찍 가서 글로리아 진스에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 나는 그 기분을 즐긴다. 그녀 비행기편의 옆자리에 ‘Arrival’ 메시지가 뜨면(물론 영화에서처럼 차라라락 넘어가지는 않는다. 그냥 깜빡인다) 자리에서 일어나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1층 입국장으로 간다. 옷매무시를 다시 살펴보고 핸드폰에 얼굴도 살짝 비춰본다. 그리고 입구에 서서 자동문을 뚫어지게 쳐다보면 준비 끝. 보스턴백 하나와 캐리어 하나를 끌고, 조금 흐트러진 블랙 스커트와 재킷의 수트 차림으로 그녀가 걸어 들어온다. 코트를 받아주고 보스턴백을 넘겨받고 “반가워”하며 싱긋 웃는다. 이런저런 소소한 이야기를 들으며 차에 올라 기어스틱 위에 그녀의 손을 얹고 인천공항 고속도로를 달린다. 하지만 벗은 재킷 속, 단추 두 개 풀린 셔츠를 보는 순간 이 모든 산뜻함은 끈적임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그녀의 냄새가 코 끝에서 떠나지 않고 스타킹의 촉감이 손 끝에 전해져 오기 시작하면, 머릿속에서는 섹스에 대한 욕망이 솟아올라 나의 페니스는 분기탱천하고 아드레날린은 엔진의 rpm에 맞추어 분출되기 시작한다. 올림픽대로로 접어들었다. 양화대교를 지나자 길은 밀리기 시작했고 팬티는 페니스와 사투 중이다.

“길 막히네. 많이 피곤하지? 월풀에 몸 담그고 음악 들으면서 마사지해줄까?” 이런 뻔한 멘트를 날릴 수밖에 없는 나를 용서해줘. 나는 남자야. 제발 ‘이놈아 나 피곤하단 말이다’라고 질타하지 말아줘. 난 너와 둘이 있고 싶어.

“그래… 좀 피곤하다.”

인간 네비게이션 가동. 올림픽대로 양화대교 부근에서 제일 근접한 그럴 듯한 한국형 부티크 호텔은? 라이프 스타일 호텔 파티 스위트가 정답이다. 복잡한 영등포로터리를 끼고 돌다가 골목길로 들어가면 위압적이고 약간은 생경한 네 동짜리 건물이 나온다. 시설만은 최상급에 속하니까 일단 들어가면 그녀도 별말 없으리라.

월풀에 물을 채우면서 그녀에게 잠시 기다리라고 말한 뒤 영등포 롯데백화점에 가서 그녀를 위로할 몇 가지를 사왔다. 간단한 아로마테라피 용품과 스시 그리고 오가닉 샐러드와 과일.월풀에 라벤더 오일을 뿌리고 들어가 간단하게 스시와 과일을 먹으며, 그녀의 뒤에서 목과 어깨를 마사지해주었다. 무척 피곤했던지 차츰 근육이 풀리면서 그녀의 몸이 나른해졌다. 그 뒤는 생략하겠다. <아레나> 독자라면 그다음 일은 잘 그려낼 수 있을 테니까. 중요한 것은 나는 최선을 다했고, 그녀는 편히 쉴 수 있었다는 것.

이 모든 과정은 내 집에서는 생각도 하기 싫은 일이다. 그녀가 자는 사이에 욕조 옆에 널린 과일 껍질과 포장지를 치우고 분리수거함에 넣고, 마사지와 아로마 배스에 쓰인 오일이 욕조에서 끈적이고 미끈대는 것을 욕실전용세제로 벅벅 닦는 생각만 하면 말이다. 그리고 끈적이는 아로마 오일을 몸에 바른 채 침대 시트 위에서 뒹굴면, 그건 누가 세탁하겠는가! 이 모든 작은 사치에 고역이 따르지 않음은 모두 한국형 부티크 호텔에 감사할 일이다.

 

●팁 영등포로터리에서 들어가는 길을 찾기가 쉽지 않다. 자칫 하면 휘휘 돌아가야 하니까 가는 길을 숙지하자. 아니면 친절한 카운터에 문의하면 상세하게 알려준다. 더불어 필요한 물건이 있다면 영등포 롯데백화점에 걸어갈 것을 추천한다. 차를 타고 가면 주차하기가 힘들어 시간에 쫓기게 된다.

●강점 서울 시내에서 복층 구조의 널찍한 부티크 호텔은 이곳이 유일하다. 넓은 곳에서 호연지기를 기를 것까지는 아니지만 자연채광이 되므로 (역삼동 근처의 성냥갑 객실을 떠올려라) 답답하지 않아 좋다.

●약점 아무래도 영등포는 서울의 다른 곳으로의 접근성이 좋지 않다. 더불어 주변은 ‘모텔촌’의 생경함이 물씬하므로 입장 전후로 살짝 민망함이 감돌 수 있다.

 

젤리 호텔

컴퓨터를 사용하는 현대인이 하루에 한 번쯤 꼭 사용하는 게 있다. 메신저와 검색엔진. 우선,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주고받을 수 있는 훌륭한 매체 메신저. 일터에서 그녀와 주고받는 메신저의 재미는 다들 알지 않을까. 가볍게 한두 마디 던지고 일을 하다 보면 대화창은 반짝이고 나의 눈도 반짝이면서 입꼬리가 올라가는 경험. 검색엔진에 대해서는 길게 말할 필요가 없다. 하루 수천 번씩 네X버에게 물어봐야 하니까. 메신저와 검색엔진의 축복 속에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판타지를 현실화한 기억이 하나 있다. 어느 날 아침이었다. 그날 아침 메신저에 로그인하자마자 그녀는 대뜸 말을 걸었다. ‘비트 봤어?’ ‘응. 정우성이 당구장에서 싸우는 장면에서 진짜 흥분했는데 남자들 그땐 다 그랬지’ ‘난 그 당구대 위에서 섹스하고 싶더라’

직접 얼굴을 맞대고 말하기엔 껄끄럽지만 왠지 메신저에서는 용감해지는 그녀의 도발적 언어. 직업 윤리에는 위배되지만, 잠시 업무를 미루고 서로의 에로틱한 판타지를 펼쳐놓았다. 당구대에 드리운 조명 아래 누운 그녀의 몸을 나의 차가운 큐가 훑어내리고, 스커트를 밀어올리고 등등…, 어찌 보면 뻔한 클리셰를 나열했지만, 메신저가 주는 긴밀함과 용기를 빌미로 살짝살짝 흥분도는 올라갔다.

하지만 이성적으로 판단하건대 실현 불가능한 망상이다. ‘Private Pool’은 들어봤지만, 그 ‘Pool’이 ‘Billiard Pool’인 적은 없었으니까. 공공장소에서 몰래 하는 섹스가 짜릿하다는 건 알지만 당구장 한가운데서 섹스를 하는 게 ‘몰래’라고 생각할 만큼 사고가 정지되지는 않았다. ‘당구대를 하나 사버려?’라고 또 다른 망상을 할 무렵, 나는 검색엔진에 희망을 걸어보기로 했다. Google.com에서 검색했다. 키워드는 ‘당구대 모텔’. 세 번째 검색 결과에서 딱 걸렸다. 젤리 호텔. 당구대가 있는 방이 있단다. 게다가 위치도 사무실과 가까운 역삼동! 홈페이지를 보니 사진도 그럴듯하다. “점심시간에 역삼동에서 보자. 샌드위치 싸갈게”

역삼동의 한낮, 당구대가 있는 호텔방에서 그녀와 나는 오전 내내 쌓여 있던 둘만의  판타지를 격렬하게 풀어내기 시작했다. 물론 당구대 위에서. 짧은 한 시간의 점심시간이 끝나고, 다시 옷매무시를 가다듬고, 머리를 스타일링하고, 아쉬움을 뒤로하고 각자의 차를 타고 일터로 떠났다. 오후 내내 개운하고도 긴 여운이 있었다.

 

●팁  당구대가 있는 방뿐만 아니라 각 방마다 콘셉트가 돋보인다. 바가 설치된 방도 있고 중국풍 인테리어와 페르시아풍 인테리어의 방도 있다. W호텔의 인테리어를 벤치마킹한 듯한 ‘더블류방’도 있으니 그야말로 ‘골라먹는 재미’가 있다.

●강점 역삼동의 건물들처럼 딱 떨어지는 실내 인테리어가 돋보인다. 구석구석 신경을 많이 써서 재떨이 하나조차도 이용하는 사람의 편의를 고려했다는 느낌이다.

●약점 아무래도 회사가 많은 구역이므로 걸어서 들어가다가는 호텔 입구에서 아는 사람(직장 동료, 클라이언트)을 만나는 낭패를 당할 수도 있다. 꼭 차를 타고 들어갈 것. 더불어 햇빛이 들지 않아서 조금 답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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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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