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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집가

수집가들은 과거를 모으며 보존이라는 미래성까지 획득한다. 그들은 초시간성의 터널을 꿰뚫으며 소유를 통해 실존하고 있음을 증명한다. 여기 대한민국의 수집가 6명을 만났다. 그들의 수집 이야기는 저마다 흥미로운 모험담으로 뒤섞여 있다.

UpdatedOn November 08, 2011




대중가요 LP는 몇 점 보유했나?
대략 1만5천 점 정도.
LP 외에 비디오, 의상, 책 등 여러 종류를 갖고 있다. 규모는 어느 정도인가?
안 세어봤다. 가수 관련된 건 다 모으니까. 심지어 동방신기 과자도 있다. 이사오면서 이삿짐 날라주는 아저씨들이 세 봉지 까먹었다. 버전별로 다른 건데 말이다. 그런 가수들 상품이 나오면 다 산다. 1980년대 전화카드 유행할 때도 가수들이나 배우들 전화카드가 많았다. 그런 것들 수집하는 사람들도 많다. 비디오도 그렇고, 강원래 씨 사고 났을 때 입었던 옷도 기증받았다.
LP를 모으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친구 집에 놀러 갔는데 그 형이 음악을 듣고 있었다. 시끄러워서 보니까 까만 걸 가구 같은 것 위에 올려놓았는데 소리가 막 났다. 바로 딥퍼플의 하이웨이 스타였다. TV나 라디오에서 듣던 음악이 아니었다. 사람을 흥분시키는 음악이었다. 그건 뭐냐 했더니 LP라고 하더라. 그 형이 일명 ‘빽판’을 듣고 있었던 거지. 부모님은 그런 걸 못하게 했다. 어린아이가 가요를 불러도 좋지 않게 보는 시절이었으니까. 음반 모으기 시작하면서 중학생 때는 대담해져 이태원 극장 앞에서 오리지널 미국 원판을 샀다. 당시 공무원 한 달 봉급이었다.
수집하면서 우여곡절도 많이 겪었을 것 같다?
대학교 2학년 때다. 내 방의 음반이 모두 사라졌다. 아버지가 DJ박스가 있는 경양식집을 열어서, 내 음반을 가져간 거였다. 그땐 그런 음반이 인기가 많았으니까. 한 6개월 지났나? 어느 날 아버지가 안 나가시는 거다. 체질에 안 맞아서 다른 사람에게 넘겼다고 하더라. 내 음반도 함께 넘어간 거다. 그래서 쫓아가보니 중요한 음반은 벌써 빠졌고, 겨우 3백 장 건졌다.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아버지와 갈등도 심했고. 뭐든 다시는 안 모으겠다고 맹세를 했다. 한동안 안 모으다가, 1986년에 대학 졸업하고 <한국일보> 견습기자로 들어갔는데 모을 게 또 나타나더라.(웃음) 기자들 완장이라든가, 프레스 카드라든가 또 아시안게임, 올림픽 때 IOC 위원들 배지까지 수집하고 그랬다.
그렇게 모을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인가?
관심이다. 사랑이고, 음악도 너무 좋으니까. 대중음악은 좀 각별하다. 김광석의 노래만 들어도 그렇다. ‘이등병의 편지’라든가, ‘서른 즈음’은 대학 졸업하고 직장 생활할 때고, 모든 사람이 경험하는 얘기를 해주는 것 같다. 대중음악이 날 많이 위로해줬고, 음악적인 즐거움도 줬다. 대중가수를 영웅으로 생각하고, 대중음악을 통해서 받은 위로나 즐거움은 재단하기가 힘들 정도로 크다. 그 사람들이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폄하되는 게 남의 일 같지가 않았다. 또 시적인 가사에서 그 시절의 사람 냄새도 나고, 대중가요의 가사들이 굉장히 예술적이라는 걸 뒤늦게 자각했다.
희귀품을 수집하는 특별한 기술이 있나?
기술이라기보다는 열정이다. 옷 살 때 10만원 넘으면 떨면서 못 사고, 술도 끊고 그러지만 음반은 한 장에 2백만원이라도 구입한다. 최우선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전국의 고물상이나 헌책방, 유럽까지 발품을 판다. 로마에서 벼룩시장 갔는데 양희은 LP판을 발견했을 때는 기분 묘하더라. 그래서 천원 정도 주고 샀다. 늘 꿈꾸는 수집가들의 로망이었다. 황당한 곳에서 명품을 건지는 꿈.
가장 아끼는 수집품은 무엇인지?
여러 가지가 있다. 한국 대중가요의 효시인 곡들의 악보가 들어 있는 1929년도 노래책. 또 1950년대 대중문화의 중심은 영화였다. 그래서 당시에는 OST 유성기 음반도 등장했다. 최근에 5백만원 이상 고가 음반을 3장 발견했는데 그중 2장을 갖고 있다. 김기영 감독의 <초설>이라는 영화의 OST 유성기 음반도 구했다. 필름이 없어진 영화라 유일한 자료다. 닳을까봐 바늘도 못 올려놓는다.
물건을 모을 때 특별히 눈여겨보는 점은 어떤 건가?
수집가에겐 동물적 감각이 있다. 일례로 뉴욕의 재즈 클럽 공연을 보고 감동받아서 재즈 LP 숍을 찾아갔다. 재즈는 컬렉션 대상이 아니었지만 좋아서 일단 1백 장 골랐다. 근데 매니저가 희귀 곡과 중요한 음반만 고르는 나를 재즈에 조예가 깊은 전문가로 생각하더라. 재킷만 봐도 이 음반에 어떤 게 담겨 있는지 알 수 있는 동물적인 감각이 있다.
본인에게 수집 활동은 어떤 의미인지.
음반을 구하기 쉽지 않았을 때는 다양한 음악을 많이 듣고 싶다는 욕심에서 모으기 시작했다. 요즘은 우리 대중음악이 문화재라고 생각한다. 적극적으로 보존하지 않으면 뿌리 자체가 사라진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좀 더 사명감을 갖고 수집 활동을 하고 있다.
수집가로서 앞으로의 계획이나 포부가 궁금하다.
정부가 나서서 박물관을 건립했으면 한다. 그게 안 된다면 외국처럼 소박하게 연구실 겸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싶다. 가수들도 <놀러와> 공연도 하고, 연구하고, 책 작업도 하고, 각종 1차 자료를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아카이브 기능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으면 한다.


애플 제품을 얼마나 모았나?
컴퓨터와 주변기기까지 2백 점 정도다.
애플 제품을 수집하게 된 계기는?
중학교 2학년 때 우연히 세운상가에서 일명 ‘클론 애플2’를 운 좋게 구입했다. 애플이 뭔지 모르는 상태에서 말이다. 단지 컴퓨터란 게 뭔지 호기심에 구입했다. 시간이 지나 첫 직장인 신문사에 들어가니 클래식2라는 모델과 CI라는 고가 모델을 DTP 장비로 쓰고 있었다. 그때부터 맥과 인연을 맺게 됐다. 수집을 한 기간은 10년밖에 안 된다. 자연스럽게 써온 맥이 올드 맥이 됐다.
올드 맥을 어디서 구하나?
주로 새벽에 국내외 장터, 이베이, 야후 등 전 세계 사이트를 다 뒤진다. ‘매복’이라고 표현한다. 한 번은 새벽 2시쯤 메신저로 사겠다고 예약한 적이 있다. 시간을 놓치면 안 되니까 지금 올 수 있느냐고 해서 그 시간에 용인으로 갔다. 사러 가는 사람이나 팔겠다는 사람도 이상했지만 찾기 힘든 아이템이었으니까.(웃음)
요즘에도 옛날 모델들이 장터에 올라오나?
간간이 올라오긴 한다. 애플 클래식2는 국내 장터에 1년에 4번, 5번 정도 올라온다. 128K 같은 경우에는 몇 년에 한 번 장터에 등장할까 말까 할 정도로 희귀하다. 가격을 떠나서 원하는 제품이 많이 안 나오니까 가격은 많이 올라갈 거다. 최근에는 스티븐 잡스가 복귀한 이후의 작품들이 많이 올라온다. 그것도 초기 콤팩트 맥 수집했을 때 양상과 비슷한 것 같다. 몇 년 지나면 찾고 싶어도 못 구할 것 같다.
수집할 때 특별한 기준이 있는가?
컬렉터들이 가장 좋아하는 모델은 큐브나 조개북, 호빵 맥 등 비인기 맥들로 지금은 최고의 컬렉션이 됐다. 이유는 간단하다. 희소가치다. 애플은 그런 모델을 만들 때 많이 팔릴 걸 기대하지 않는다. 자사의 기술력이나 디자인을 과시하기 위해 만든 모델이다. 그런 목적으로 만든 맥들은 시대마다 하나씩 있었다. 현재로 따지면 맥북에어가 애플의 기술력, 디자인을 과시하기 위한 기종이다. 
가장 애착이 가는 맥은?
첫 회사에서 메인으로 썼던 맥 CI다. 굉장히 고가였다. 당시 본체 가격만 5백만원 정도였으니까. 정육면체 디자인으로 매킨토시 중 가장 정직한 디자인이다. 집착했던 기종은 커드락 840AV란 모델이다. 그 당시 PC 월드에서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고 강력한 컴퓨터로 선정했었다. 애착이 갔던 이유는 내 돈 주고 산 최초의 애플 컴퓨터라서다. 당시 1천만원이었다.
그럼 애플만의 매력은 대체 뭔가?
디자인 철학이 있다. 자동차에서나 볼 수 있는 히스토리와 정체성이 있다. 가령 BMW나 벤츠는 30년 전 모델과 현재 나오는 모델이 닮은꼴로 보일 거다. 애플 제품은 새 모델이 아니라 손자, 아버지, 할아버지 이런 식으로 DNA가 발전해왔다. 매킨토시를 오랫동안 관찰해온 사람들은 지금의 OS와 맥북에어에서 과거 클래식 모델의 디자인과 OS 운영체계를 그대로 느낄 수 있을 거다.
오래된 컴퓨터는 효용성이 떨어진다. 사용 가능한 물건을 모으는 건 아니다.
사용처가 현 시대에는 불분명할 수도 있다. 클래식2 같은 기종도 하드디스크가 10MB, 40MB밖에 안 된다. 일기장, 엑셀 정도만 사용할 뿐이다. 또 고장난 맥을 좋아하는 면도 있다. 전문가는 아니지만 전부 뜯어서 고쳐 사용한다. 그런 데에서 오는 대리만족이 있다. 밤새 술 마시고, 노래 부르다 매킨토시를 만지고 그런다. 몇 날 며칠 밤새도 전혀 안 피곤하다. 어른들의 장난감이라고나 할까? 얼마만큼 만질 수 있느냐에 따라서 현재도 충분히 사용할 수 있다. 피자 맥이라고 부르는 LC475는 아직도 웹 서버로 사용한다.
클래식 맥을 사용하면 이전에 못 누렸던 보상 심리도 작용하겠다.
그 시대로 돌아가는 거다. 가령 하드디스크도 없이 플로피디스크 교환하는 컴퓨터로 할 수 있는 게 얼마나 있겠나? 그런 컴퓨터를 이용해 내가 글씨 한 자를 쓰더라도 그 만족감은 경험해본 사람만 안다. 또 맥은 개인이 구입하기 힘들었던 컴퓨터였다. 그걸 구입했다는 해방감이라든지 복수심도 있다.
주변에선 수집 활동을 좋게만 보지 않을 법하다.
우표, 미니카는 고상하지만 누가 컴퓨터를 수집한다고 하면 미친 사람 내지 오타쿠로 생각한다. 근데 실제로 보면 맥의 디자인이 미려하기 때문에 이해를 한다. 물론 집에서는 장난 아니다. 밖에서 50만원 주고 사온 걸 주워왔다고 거짓말도 한다.(웃음)
수집 활동에 대한 자신만의 철학은?
우표, 동전, 회화 같은 경우엔 투자 목적도 있지만, 내가 수집하는 건 자기만족이다. 선비도 알아주는 맛에 한다는 얘기가 있듯이, 시인이 자기가 쓴 글이 책방에 전시되어 있고, 팔렸을 때 제일 큰 희열을 느끼는 것과 같다. 
앞으로 계획은 무엇인지.
대중성이 없기에 작은 카페 겸 박물관 형식을 띤 장소를 꾸리고 싶다. 노후에는 수집한 것을 벗 하면서 맥을 좋아하는 사람이 참여할 수 있는 장소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


얼마나 모았나?
온전한 것은 6백~7백 개. 쓸데없는 것들까지 합하면 1천 대 정도.
왜 하필 빈티지 미니카를 수집하게 됐나?
외국을 자주 오가며 빈티지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어느 빈티지 숍을 들어갔다가 작은 소품들이 눈에 띄었는데 그중 자동차가 있었다. 타이어와 휠이 약간 녹슬어 있었는데 그런 정교함이 실제 올드카를 마주하는 기분이었다.
수집 방법도 궁금하다.
파리에서 지하철을 타고 끝자락까지 가면 18구, 16구 등이 나타난다. 그곳에 이태원처럼 굉장히 큰 시장이 있는데 한두 개씩 미니카들이 굴러다닌다. 그럼 눈에 보이는 대로 모았다. 어느 정도 양이 되었을 때 직업이 포토그래퍼인지라 사진으로 표현해봤다. 그런데 어느 분이 내 전시 엽서를 보고 ‘진짜 멋진 자동차를 갖고 계시네요’ 하더라. 실제 자동차라고 착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게 너무 재미있다.
수집가들을 보면 특정 제품에 집착하는 경우가 있다.
브랜드가 여러 가지 있다. 딩키 토이즈와 매치박스 등이 생각나는데, 브랜드마다 크기가 다르다. 딩키 토이즈는 비율이 50:1 정도고, 매치박스는 72:1 정도. 사이즈가 작은 매치박스를 주로 모으게 된다. 작고 정교할수록 더 매력을 느낀다.
빈티지 미니카는 온전한 게 많지 않았을 텐데.
어떤 사람들은 씻고 수리해서 보관하는데 나는 그대로 놔둔다. 오히려 더 여기저기 부딪혀서 흔적이 남도록 한다. 서랍에 보관을 안 하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이것들도 어차피 수백 년이 지나면 없어질 것이다.
보관 방법이 방치에 가깝다. 그럼 따로 손질은 안 하나?
절대 안 한다. 거미줄이 치면 친 대로, 색이 바래면 바래는 대로 그냥 둔다. 가지고 있는 느낌 그대로 보관을 하고, 그대로 쓴다. 빈티지는 그게 맛이라고 생각한다. 가구도 흠집이 났다고 수선을 하는 건 의미가 없다. 쓰면서 그 값어치가 더 좋아진다고 생각하고, 필요한 공간에 써야 그게 오리지널이다. 그래야 본래의 생명을 다 하는 거고.
태생적인 역할은 해야 된다?
닳으면서 더 예뻐지는 건데, 눈요기로 갖다놓는 건 이해할 수 없다. 미니카도 그렇다. 애들이 던지고 놀던 걸 작업해서 그 상태 그대로 작품을 만든다.
물건을 수집하는 게 아니라 시간을 수집하는 것 같다.
시간의 흔적을 수집하는 거지. 지금 스피커를 좋아해서 만들고 있는데, 스피커 알맹이들이 전부 1960년대, 1970년대 생산된 제품이다. 그것들도 시간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그것들이 다치지 않는 범위에서 소리를 낼 수 있게끔 다시 전달을 해주는 것.
물건을 모을 때 주의 깊게 보는 기준은?
수집하는 것들은 무조건 매치박스 제품이다. 시중에 나와 있는 것들은 이미 갖고 있는 것들이 많다. 디자인은 똑같은 자동차지만 느낌은 각기 다르다. 왜냐면 흔적이 다르니까. 시간의 흔적 자체가 어떤 것은 깨끗하게 쓰인 것도 있지만, 심하게 훼손된 것도 있고, 그런 것들 나름의 매력이 있다.
수집이란 무엇일까?
처음에는 예뻐서 모으기 시작했다. 작업으로 이어가면서 의미가 조금씩 달라졌다. 수집이라 하면 편집증처럼 방 안에 가득 모아놓는 걸 떠올리는데 그건 소유의 목적이 더 강한 것 같다. 내가 가진 것들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 그래서 빈티지 미니카를 작품으로 표현해 모두와 나누려고 한다. 나의 1960년대 빈티지 미니카 작품이 21세기의 어느 집 거실에 걸려 있다면 그건 구성 요소가 된다. 진짜 빈티지 자동차를 가질 순 없지만 작품을 통해 대리만족을 할 수 있지 않나. 수집의 의미가 나눔이 된 셈이다.
아무리 귀한 수집품이라도 사용해야 한다는 건가?
지금 들고 있는 주전자는 도금한 게 아니라 진짜 은이다. 공예품은 사용해야 한다. 랩에 싸서 장식장에 보관해두는 건 잘못됐다. 용도에 맞게 사용해야 매력이 있고, 색이 변해야 디자인 느낌도 살아난다. 전시도 아크릴 박스에 넣어두는 걸 싫어한다. 관객들이 직접 만져보고, 떨어뜨리면서 다시 수정도 해야 한다. 그래야 마음에 와 닿는다. 결국 미니카도 애들이 만지고, 바퀴가 떨어져 나가고 해야 한다. 용도에 맞게 갖고 놀아야지. 그렇게 느끼는 게 미학이다. 아름다움이라는 것.
아름다움은 유용성을 갖춰야 한다?
그래야 제일 값어치가 있다. 수집의 형태도 대상물에 맞게 바뀌어야 하지 않나? 개인의 소유물이라기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
앞으로도 수집과 나눔을 이어갈 건가?
평생 작업을 관두지 않는다면 계속 이 형태로 갈 것 같다. 죽을 때까지 눈에 보이면 수집할 거고, 다른 형태로 보여주고 그 감상을 공유할 테다. 여력이 다 할 때까지는 꾸준히 모을 생각이다. 미니카는 계속 늘긴 할 거다. 1년에 한 대가 될지, 백 대가 될지 모르겠지만.


시계를 몇 점 정도 보유하고 있나?
세어볼 수는 없다. 수천 개 정도 갖고 있다.
왜 하필 시계를 모았을까?
이것저것 모으다 보니 어느 날 시계가 좋아졌다. 동기를 물어보면 ‘좋아서’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시계를 보면 문자반들이 있다. 디자인 공부를 해서 타이포그래피에 관심도 있고, 또 그런 것이 옛날하고 지금 어떻게 변했는지를 살펴본다. 또 스페이스에 대한 개념이 옛날 문자반에는 굉장히 잘 나타나 있다. 레이아웃을 잡는다고 할까? 좀 더 나가면 컬러 감각도 익힐 수 있다.
시계는 고가에 크기도 작은 물건이다. 분실한 적은 없나?
1억원이 넘는 브레게 시계를 잃어버린 적이 있다. 한참 후에 인사동 골목길을 걷다가, 찻집 입구에서 한 아저씨가 잃어버린 내 시계와 비슷한 시계를 팔고 있었다. 가서 일련번호를 확인해보니 내 시계였다. 그래서 동대문 경찰서에 신고해서 잡았다. 한데 그 사람이 비싸게 주고 샀는데 뺏기게 생겼으니, 시계 케이스를 열고 부품 번호를 확인해야 한다고 우기더라. 그래서 브레게 카탈로그가 있는 신라호텔에 가서 설명을 듣고 돌려받았다. 
시계를 원형 그대로 유지하는 게 아니라 변형도 하고, 리폼도 한다.
이런 것들은 새로 만든다고 봐야 한다. 모아서 사용하지 않으면 쓰레기가 된다. 시계 하나가 완성되려면 못 쓰는 시계 3개에서 5개는 필요하다. 부품을 재사용하고, 베젤을 교체하고 용접해서 줄만 끼우는 정도만 하고 있다. 시계 망가뜨린다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건 아니다.
명품 브랜드를 선호하는 이유가 따로 있나?
아무리 새로운 디자인일지라도 이전 시대 사람들의 지식을 흡수해서 만든 거다. 시계의 역사가 오래된 만큼 그 미적 감각을 요즘 사람들이 흉내 낸다고 되는 건 아니다. 명품 브랜드들은 옛날 것을 재현하되 최대한 장점을 살리고 현대적으로 만드는 작업을 하니까. 명품 브랜드들이 다른 게 그런 점이다.
시계를 모을 때 기준은 무엇인가?
디자인 원류를 찾으려 한다. 사람들이 자기 생각을 가미해서 시계에 대한 개념을 흐리는 경우가 있다. 원류를 찾아가다 보니까 가치 있고 인간의 감성을 아름답게 해주는 시계가 좋아진다. 남들이 하찮아서 버리는 것이라도 좋은 게 있고, 남들이 좋다고 경매에 올려도 하찮은 것들이 많다. 그러니 방향성이 맞아야 한다. 원하는 방향과 그 물건이 맞는지가 중요하다. 삶의 방향도 마찬가지고. 올바른 방향 같은 게 있다.
신제품이 별로 없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옛날 시계는 기능 중심이었지만, 지금은 비주얼과 기능을 조화시킨 것들 일색이다. 그게 요즘 시계들의 단점인 것 같다. 기능과 미적 요소가 결합되면서 비용이 상승하니까. 물론 중저가 시계들이 많이 나오기는 하지만 뭔가 부족하다. 그래서 수집하는 사람들은 딱 꼬집어 말할 수 없는 부분을 모으려고 한다. 시계는 물질이지만 결국은 지금 모으는 것은 미적 감각 내지, 옛날 사람들이 느꼈던 감성 같은 거다.
감성에도 일종의 클래식이 있다는 건가?
인간 세상의 오류를 여실히 보여주는 게 클래식이라고 생각한다. 사람 마음이 너무 한쪽으로 치우치고 안정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도시를 예로 들면 식민지나 제국주의 시대 같으면 옛날 중앙청처럼 대칭형 구조가 중심이 된다. 비주얼이 안정된 구조로 간다. 반대로 평화롭고 별로 부족함이 없는 시대에는 불균형하고 자유분방한 것을 추구한다. 옛날 것을 모으는 사람은 자기 속의 부족함, 그것을 계속 찾는 사람들이다.
염전을 운영한다. 소금을 만드는 것과 시계는 어떤 관련이 있을까?
사람한테 좋은 유기농 소금을 만들기 위해서는 간수가 완전히 빠지도록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소금이 스스로 호흡하도록, 공기 중에 있는 것을 흡수하고 속에 있는 노폐물을 배출하는 시간이다. 그런 기능이 눈에 안 보인다고 함부로 할 순 없다. 시계도 마찬가지다. 인류의 오랜 지혜, 기술을 간직하고 있다. 백 년 전 디자인이 아름다워 모으고, 그 시대의 빛깔,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오랜 시간을 간직했다는 건 값으로 매길 수 없는 가치가 있다.
수집 활동이란 무엇일까?
수집은 본능이다. 사람은 누구나 컬렉터인데, 무얼 모으느냐에 차이가 있다. 심지어 자기 귀지, 코딱지 다 모아서 작업하는 작가들도 있다. 그렇듯 물질 세상에서 자기 정신 세계를 어떻게 표현하느냐가 예술 세계이고, 평범한 사람들이 수집하는 것은 자기 삶의 방식 내지 틀을 잡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계획은?
여기(카페 몽테크리스토) 오는 예술가에게는 차가 반값이다. 각자의 내면에 있는 것들을 공유하고, 즐기는 곳이다. 그러다 보면 정말 좋은 것을 발견할 수도 있고, 서로에게 부족한 것을 대화를 통해 채울 수도 있다. 그런 일을 앞으로도 계속 해보고 싶다.


가장 많이 보유한 가구가 의자다. 총 몇 점 정도 갖고 있나?
의자는 만 점 정도. 오브제와 소소한 것까지 더하면 수만 점이 된다.
수집을 시작한 계기는 무엇인가?
카페 사업을 시작한 지 20년이 됐는데, 가구가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필수 아이템이었다. 그래서 구입했다. 내가 좋아하는 취향이랑 복합적으로 맞아떨어진 거지. 결국 필요해서 시작한 건데 그 안에 내가 원했던 것, 미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었다.
미칠 수 있었던 의자만의 매력은 뭔가?
의자가 주는 조형적 아름다움. 시대성 같은 것. 입식 문화의 필수 아이템이면서 디자인도 갖춘 것. 의자는 일반 디자인에서 볼 수 없는 매력이 있다. 패션은 시대성과 정체성은 있어도, 구조에 대해선 개의치 않는다. 옷은 소매가 하나 있든 없든 상관없지만 의자는 지구의 중력을 견딜 수 있는 구조를 갖춰야 하고, 인간의 신체적 구조에 플러스가 돼야 한다. 그건 일반 프로덕트 디자인이 갖고 있지 않은 의자 특유의 매력이다.
시대성과 실용성, 조형성을 수집 기준으로 삼은 이유는?
시대성이라는 것은 그 시대의 문화 특성과 트렌드를 상징하는 거다. 그래서 시대성이 중요하다. 또 조형성은 디자인의 정체성이기 때문에 필요하다. 카피냐 아니냐는 굉장히 중요한 가치다. 실용성은 내 성향이 그렇다.
의자는 가장 오래된 가구 중 하나다. 그런데 왜 하필 20세기 의자만 수집하나?
디자인이라는 게 실질적으로 알려진 시대이기 때문이다. 이전에도 디자인이라는 개념이 무의식 속에 있었지만 정확한 개념을 갖추진 않았다. 산업화 이후 생활의 질이 향상되고, 주택 구조가 바뀌면서 양산 체제에 돌입했다. 결국 좋은 디자인을 많은 사람들이 공유해서 정서적 교감을 하는 체제로 바뀌었다. 전시회를 통해 사람들이 디자인에 대해 공감하고, 스타 디자이너도 나오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문화 측면에서 한 1백 년간 디자인이 장족의 발전을 한 셈이다. 이제 디자인은 숨 쉬는 공기랑 똑같은 요소다.
디자인에서 아름다움이란 실용성을 토대로 한다는 뜻인가?
우리가 어떤 오브제를 볼 때 두 가지 방식으로 느낄 수 있다. 오로지 아트 피스 형태로 보는 것과 실용적인 도구로서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 어떤 한쪽이 절대 좋은 것은 아니다. 다만 개인의 성향 차이지. 나는 실용성과 조형성이 공존하는 걸 좋아한다. 하지만 아트 피스와 실용적 디자인 가운데 선택하려면 실용적 디자인 가운데 선택한다. 왜냐면 내가 굉장히 실용적인 사람이라서다.(웃음)
그럼 가구는 어떤 경로로 구하나?
20년 넘게 모으다 보니까 딜러들과 친분도 쌓고, 해외에 아는 사람도 있다. 또 옥션에 가기도 한다. 재수 좋으면 벼룩시장에서 줍기도 하고. 수십 가지 경로가 있다. 디자이너들, 아티스트들의 전시를 통해서 구입할 때도 있는데, 그건 주로 컨템퍼러리 작품들이다.
물건을 수집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사람은 살면서 집착하는 구석이 있다. 패션에 집착하는 사람, 보석, 도박, 여자에게 집착하는 사람. 나는 인테리어를 굉장히 좋아한다. 공간을 만드는 것. 가구는 공간을 채우는 데 필수 아이템이다. 그걸 즐기는 거고, 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곳이다. 그걸 통해서 존재감을 느낄 수 있다. 컬렉션을 통해 공간을 재구성하면서 내 재능과 에너지를 분출하는 것이다.
카페에도 수집한 가구들이 많다. 사람들이 만지고 사용하면 어떤 기분일까?
기분이 좋다. 거기서 존재감을 느낀다. 고가의 물건을 누구나 쓰도록 하는 게 이해가 안 될 테지만, 이게 내 성격이다. 난 굉장히 파괴적인 사람이다. 개념을 엎는 스타일을 좋아한다.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을 좋아한다. 사명감은 아니지만 누군가 그렇게 해야 변화가 생긴다고 본다. 어떠한 부분에선 상향평준화가 가능하다.
그럼 컬렉션을 통해서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준다는 건가?
그렇다.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타인과 커뮤니티 하며 공감대를 형성한다. 그럼 상대방은 나의 세계를 자기 정체성으로 흡수한다는 거지. 인간은 어차피 환경에 지배받는 동물이다. 이곳의 영향을 받아 다양한 버전의 aA디자인뮤지엄이 나올 거다. 그게 진화라는 것이고.
방대한 양을 수집하려면 현실적인 문제가 있다. 첫째가 자금인데 어떻게 해결하나?
20년 전부터 카페를 운영하다 보니까, 경제적 여유는 조금 있었다. 한데 다른 투자를 할 줄 모른다. 그래서 컬렉션도 열고 공간 만드는 데 썼다. 부가가치는 낮지만 인생을 효율성으로만 따질 순 없지 않은가. 내가 좋았고, 열중할 수 있는 일이니까. 25년 세월이 짧은 세월은 아니거든. 그 세월이 즐거웠다는 거지. 약간의 긴장감도 있고.
앞으로 미래는?
한국 디자이너들에게 집중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있다. 한국 디자이너와 함께 컬렉션을 재구성하기로 했다. 그래서 가구 브랜드 aA를 론칭했다. 학생들의 참신함과 컬렉터로서 내가 쌓아온 내공을 합친 셈이다. 거기서 디자인이 나오니까.


보유하고 있는 카메라의 규모는 어느 정도인지.
몸체만 3천 점이 넘는다. 그리고 렌즈가 한 5천 점에서 6천 점 정도.
카메라를 모으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취미로 사진을 찍다가 렌즈의 특성에 따라 세상이 다르게 표현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 여유가 있을 때마다 카메라를 사서 테스트해보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차츰 개수가 늘어나게 되었다.
많은 카메라를 사용해봤다. 그럼 좋은 카메라의 기준도 생겼을 법하다.
각 브랜드에서 만드는 카메라는 대부분 우수하다. 사활을 걸고 생산해내는 거니까. 그중에서도 신뢰가 가는 것이 있다. 다른 곳보다 내구성이 우수한 것, 유저들을 얼마나 배려하느냐에 따라 카메라에 대한 선호도가 갈린다. 지금도 라이카는 상당히 비싼데, 신뢰가 쌓여서 그런 것 아니겠는가.
기능적인 측면을 중요시하는 것 같다.
그렇다. 특히 렌즈에 관해서는 욕심을 부렸다. 잘 만들어진 카메라는 가능한 한 그 카메라와 같은 렌즈를 구했다. 또 옛날에 생산된 렌즈의 해상도에 대한 연구도 많이 했다. 각 렌즈별 특성을 알아보려고   하다 보니 집착하게 됐다.
보유하고 있는 카메라들은 전부 사용해본 것인가?
그렇지는 못하다. 테스트를 해본 것은 전체 5분의 1도 안 된다. 카메라를 써봐야 하는데 시간은 한정되어 있다. 실수도 적고, 내가 원하는 장면을 최고로 표현할 수 있는 장비를 주로 사용하다 보니 썼던 것들을 들고 나가는 경우가 많다.
수천 종의 희귀 카메라들을 전부 어떻게 구했는지 궁금하다.
실제 우리나라에 카메라가 들어온 시기는 베트남전 때와 중동에 근로자들이 파견되었을 때다. 그때 조금씩 보급되었다. 특히 일본 것은 구하기 쉬웠다. 그러나 카메라를 생산하는 곳은 주로 유럽 쪽이다. 한데 거리상 또 금전적인 문제로 우리나라에서 구하기 쉽지 않았다. 그래서 세계 1백여 곳을 돌아다녔다. 박물관에 필요한 카메라는 영국 크리스티 경매에서 샀고, 못 가면 영국 친구한테 부탁을 하곤 했다.
가장 정이 가는 수집품은 어떤 것인가?
콘탁스2 라이플이라고 단 4대만 생산했던 카메라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이 개최될 때 취재용으로 특수 제작한 것 같다. 총대 위에다 망원렌즈를 얹어서 방아쇠를 당기면 선을 이용해 셔터가 닫히게 되어 있다. 따라서 움직이는 것을 촬영하기 좋다. 이게 나한테 들어온 건 행운이었다.
컬렉션을 봤는데 매우 독특한 카메라들이 많았다.
꼭 사고 싶었던 카메라가 하나 더 있다. 책에서 사진을 보고 ‘아 이건 꼭 사야겠다’ 마음 먹었다. 이름은 콤파스. 만든 건 스위스고 영국에서 판매한다. 담뱃갑 3분의 2 크기 안에 일반적인 렌즈 파인더 방식부터 시작해서 모든 기술을 담아놓았다. 영국 크리스티에 나왔다고 해서 구했다. 모든 카메라들은 각각 에피소드가 있다. 무작위로 사 모은 것도 있고, 한꺼번에 양도를 받은 것도 있고.
그럼 주로 사용했던 카메라는 무엇인가?
지금 얘기를 하면 다 알 수 있는 카메라다. 라이카에서 만들었던 각종 카메라는 물론 핫셀블라드도 많이 들고 다녔다. 그후 좋은 일제 카메라들이 쏟아져 나왔다. 전자식을 도입한 카메라 보디만 구입하고, 렌즈는 세계에서 제일 좋다는 것들만 따로 장착해 사용했다. 지금도 촬영 갈 때는 보디는 이것저것 사용하지만 렌즈는 안 바꾼다. 내 감성을 그대로 표현하는 데 제일 적합한 색상, 선명도 등을 표현해주는 것을 사용한다. 지금 사용하는 렌즈는 60년 전에 만든 것으로 촬영 때마다 들고 다닌다.
처음 카메라를 만지기 시작했을 때는 언젠가?
중학생 때 소풍 가려고 빌려 쓴 것이다. 그때 카메라는 정확하게 기억할 순 없지만 사진은 기억난다. 빌려주는 사람이 알려주는 대로 찍었는데, 사진이 의외로 잘 나왔다. 그때부터 조금씩 빠져든 게 아닌가 싶다.(웃음)
본인에게 수집 활동이란 어떤 의미인가?
수집을 하는 사람은 두 가지 유형이 있다. 투자로 생각하는 사람. 나중에 이것을 되팔 때의 이익을 생각하면서 모으는 사람이다. 그런데 거의 대부분은 없어지는 것들을 보존하거나 문화에 기여해야겠다는 부류다. 사립 박물관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사회에 기여하겠다는 의지가 강한 사람들이다. 사립 박물관을 운영하려면 연각 몇억의 자기 돈을 써야 한다. 그런데도 박물관을 운영한다는 건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아주 지독한 집념으로 지속하는 거다. 박물관을 운영한 지 10년이 지났다. 그간 시간 빼앗기고, 돈에 허덕거리고 수익은 없고 지출만 하다 보니 이제 사람이 좁쌀 같아졌다.(웃음)
수집품은 자신의 취향을 드러내는 거울과 같다.
시간이 지나니까 양면성이 느껴진다. 처음 모으기 시작할 때가 좋았는데, 지금 저놈을 보면 원수 같다. 발목을 잡고 날 수렁으로 잡아끄는 것 같다. 저게 없으면 자유분방하게 살 수 있었는데 싶다. 한편으론 인생을 살면 얼마나 살겠나. 돈이 있어도 죽어서 들고 갈 것도 아닌데. 명예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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