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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레전드

장효조, “다른 선수보다 항상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느냐 하는 점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후배들에게도 자신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제2의 누군가는 없다고 얘기한다. 자신의 특기, 특징을 살려야 선수로 성공할 수 있다고 항상 주장한다.” 한대화, “대전 원정경기를 가서 역전 홈런을 쳤는데, `한대화 배신자`라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그때는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마음이야 고향팀 가고 싶은 게 당연한데 그게 선수 마음대로 될 수 있나. 빙그레와 경기를 하면 관중이 온갖 험한 소리들을 내뱉었다.”

UpdatedOn August 02, 2011



1. 장효조 + 외야수

야구는 기록이다. 다른 스포츠도 매한가지 아니냐고? 무슨 말씀. 특히 야구가 유별나다. 그런 까닭에 야구 좀 본다 하는 사람에게 기록지는 경기 그 자체다. 고수들은 기록지만으로 그날 경기를 시뮬레이션하는 신공을 발휘하기도 한다. 그만큼 야구의 한 경기에는 숫자와 숫자가 종횡무진 기록지를 누빈다는 얘기다. 그 기록지들이 모여 타율이, 방어율이 탄생한다. 기록지를 좀 더 많이 모으면? 1년, 2년, 3년… 30년. 숫자가 쌓이고, 전설이 탄생한다.


기록은 그 자체만으로 칭송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굳이 저울질한다면, 에디터는 통산 타율에 한 표 던진다. 통산 타율이 무엇인가. 선수 생활을 시작하고 은퇴할 때까지 모두 포함한 타율이다. 보통 타율을 논할 때 2할대면 준수하고, 3할대면 잘한다고 말한다. 타자가 30% 치기가 어렵다는 거다. 그 어려운 일을 선수 생활 동안 꾸준히 이룬 사람만 얻는 영예가 통산 타율 1위다. 무엇보다 꾸준하다는 면에서 의미 있다. 홈런왕이 예술가라면, 타율왕은 엘리트 직장인인 셈이다. 그것도 장기근속 엘리트다.


한국 프로야구 기록 중 통산 타율 1위는 3할3푼1리다. 앞으로 깨지기 힘들다고 예측하는 기록이다. 그 기록의 소유자는 장효조다. 삼성 라이온즈의 프랜차이즈 선수이자 삼성의 10번. 그가 롯데로 간 후 등번호 10번은 양준혁이 넘겨받는다. 축구에서 10번이 에이스의 상징이면, 삼성의 10번은 최고 타격 선수의 상징인 셈이다. 그만큼 장효조는 타격 재능에 관해선 모두 우러러보는 교타자였다. 괴력으로 한 방을 날리기보다는 기술로 승부하는 예리한 선수가 장효조다. 보통 타자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타격법이 있다. 당겨 치거나 밀어 치거나. 하지만 그는 밀든 당기든, 좌측이든 우측이든 중앙이든 상황에 따라 툭툭 쳐내며 투수를 좌절시켰다. 더구나 그는 교타자이자 장타자다. 라인 드라이버로 뻗어나가는 장타로 투수의 간담도 서늘하게 했다. 그리고 이제 그는 외야수 부문 레전드로 등극했다.

수트 입은 자신을 보면 어떤가?
나이가 있으니까 행사나 모임에 갈 때 자주 입는 편이다. 옷 입는 걸 좋아한다. 옷이 날개니까. 더구나 나이가 들수록 옷에 대해 신경 쓰게 된다. 화려하게 입는다기보다는 남 보기에 추하게 다니면 안 된다. 보통 선수는 유니폼을 입지만, 후배들에게 옷에 대해 강조한다. 옷에 따라 상대방에게 좋거나 나쁜 이미지를 줄 수도 있다. 그래서 잡지도 자주 본다.
레전드라는 단어가 과거를 회상하게 한다. 과거를 돌아볼 때 무엇이 가장 기억에 남나?
다사다난했다. 그건 다른 선수들도 다 그럴 거다. 내게는 아무래도 삼성 시절에 한국시리즈 네 번 진출해 정상에 도전했는데도 승리하지 못한 게 가슴 아프다. 개인적으로도 치욕스럽고. 거기까지 갈 땐 좋았는데, 결과가 참담해서…. 어쩔 때는 연속 4패한 경우도 있으니까. 정기시즌 우승에, 팀 타율이 3할이 되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기록도 세웠지만, 안타깝다.


그 안에서 명승부를 꼽는다면?
1984년도 롯데와 한국시리즈를 치를 때. 그때 만약 우리가 우승했더라면 전용 구장을 세웠을 거다. 그렇다면 야구장의 판도가 완전 달라졌다고 자신 있게 얘기하고 싶다. 우리가 전용 구장을 세우면 연쇄적으로 다른 구단도 움직일 테니 야구의 발전 속도가 빨라지지 않았을까.


국내 제일의 교타자다. 선수 생활 시절 라이벌이 있었나?
언론에서 몇 명 얘기하지만, 난 거기에 대해 별로 생각한 적이 없다. 홈런 타자는 홈런 타자대로, 단거리 타자는 단거리 타자대로 각각 잘하는 게 있다. 라이벌 구도가 자극을 주긴 하지만 다른 선수보다 항상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느냐 하는 점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후배들에게도 자신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제2의 누군가는 없다고 얘기한다. 자신의 특기, 특징을 살려야 선수로 성공할 수 있다고 항상 주장한다.


고교 야구의 스타였다. 처음 프로 선수가 됐을 때 어땠나? 자신감이 넘쳤나?
자신감보다 불안감이 더 많았다. 아마추어의 명성도 있었지만, 프로 데뷔 당시 이미 스물여덟 살이어서 체력적으로 부담스러웠다. 나이에 대해 상당히 두려웠다. 위기의식을 느꼈다. 결국 극복하려면 연습밖에 없었다. 그런 위기의식이 성공과 실패로 내몰 수 있으니까.


연습벌레란 소리를 들었다. 특히 경기가 잘 풀리지 않으면 그날 룸메이트를 다른 방으로 보내고 혼자 스윙 연습을 했다고?
당연한 거라고 생각한다. 프로 선수니까 잘 풀리지 않으면 연습할 수밖에 없다. 연습 방법이야 사람마다 다르니까. 공부할 때도 혼자 하는 게 좋지 않나? 여러 명이 하는 것보다 집중도 되고. 그래서 혼자 방에서 한 거다.


선수 생활을 돌아볼 때 이룬 것과 잃은 것이 있다면?
선수로는 기록도 세웠지만 반대로 선수 외의 생활은 좀…. 둘 다 얻을 순 없으니까. 한쪽은 잃어야 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가족 생활, 친구 관계 같은 게 원활하지 못한 건 사실이다. 크게 흠잡을 건 아니지만 내가 만족할 정도로 잘해나가지 못했다.

 

2. 한대화 + 3루수

스튜디오 문이 열리자 ‘야왕’이 고개를 내밀었다. 기자들의 시선이 일제히 문 쪽으로 향하고 야왕은 희끗한 머리를 긁적이며 들어선다. 은테 안경에 단정한 머리. 온화해 보이지만 사실 그는 한화 이글스의 명장이자 이번 시즌 전반기 프로야구계를 각종 유행어로 들썩이게 한 장본인. 그가 이 정도로 ‘핫’한 인물이었나? 저절로 그에 대한 기억이 리로드되기 시작했다.


때는 1994년. LG 트윈스의 신인 삼총사가 맹활약하며 여성 야구팬을 늘려가던 해(물론 그땐 잘 몰랐고 나중에 그렇다고 들었다), 나는 초등학생 신분으로 잠실구장을 찾았다. 3루를 지키고 있던, 은테 안경을 쓴 단단한 체격의 선수가 유독 눈에 들어왔으니 그가 바로 한대화였다. 어린 나이에 정확한 야구의 룰 따윈 알 리가 없었지만 팀이 위기에 처하면 관중석에 앉아 있던 팬들은 하나같이 ‘한대화’라는 이름 석 자를 외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정적. 해결사는 늘 그래 왔듯이 홈런 아니면 끝내기 안타로 승리의 포문을 열었고 잠실벌은 함성으로 뒤섞였다. 그날 이후로 내게 한대화는 기적을 만드는 사나이로 각인되었다. 사실 그의 전성기를 따지자면 해태 타이거즈 시절과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다. 세계야구선수권대회는 건국 이래 가장 큰 스포츠 축제이자 일본의 역사 왜곡이 시작되던 해에 개최됐으니, 결승인 한일전에 대한 국민의 기대는 상상 그 이상이었다. 전문가들은 일본의 승리를 낙관했고, 예상대로 한국은 고전을 면치 못하던 상황. 하지만 언제든 역전이 가능한 게 야구의 매력 아니겠는가. 8회 김재박의 번트 이후 연속 안타로 주자 1, 2루 상황이 벌어졌다. 연극으로 본다면 클라이맥스 지점. 타석에는 동국대 4학년생 한대화가 올랐고, 기다렸다는 듯 스리런 역전 홈런을 쳤다. 그렇게 한국 야구 사상 최초의 히어로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최고의 3루수, 거포, MVP 등 화려한 선수 생활을 했다. 그럼에도 아쉬웠던 부분이 있었나?
사실은 개인 성적에 무심했다.  통산 타율에도 집착하지 않았고 심지어는 2천 안타를 얼마 안 남기고 은퇴해버리기까지 했으니. 지금 생각해보면 개인 기록에 크게 신경 쓰지 않은 게 가장 아쉽다. 1994년에 LG로 이적해서 그 첫해에 우승을 했다. 이듬해도 멤버 구성으로는 충분히 우승 후보였는데 2연패를 못했다. 전력상으로는 최강이었고 우승할 능력이 충분히 있었는데 말이다. 그것도 조금 아쉽다.


해태 시절 투수에 선동열이 있다면 타석에는 한대화가 있었다. 그러니 그렇게 막강한 팀이 될 수밖에 없었겠지, 당시 스스로 라이벌이라고 느낀 선수가 있었나?
故 김정수 선수가 대학 때부터 라이벌이었다. 나는 동국대를 거쳐 OB 베어스에 입단했고, 그 친구는 고려대 나와서 MBC 청룡에 들어갔다. 대학 시절 라이벌이었는데 프로팀에서도 라이벌이 되었다. 함께 국가대표 생활도 했고, 좋은 라이벌 관계를 유지했다. 서로 계약금 연봉도 더 받으려고 노력하고, 하하. 그런데 교통사고로 너무 일찍 죽었다. 좋은 선수였는데 참 아쉽다.


선수 시절 중 최고와 최악의 순간은 언제였는지?
1982년 세계 야구선수권대회에서 펼친 일본과의 결승전이다. 그때 역전 3점 홈런 친 게 야구 하면서 평생 잊지 못할 장면이고, 또 앞으로도 평생 잊지 못할 순간이다. 그리고 1994년 LG로 이적하고 나서 신인 삼총사와 같이 우승했던 게 기억에 남는다. 최악의 순간은 1983년부터 OB 베어스에 3년간 있을 때인데, 간염에 걸려서 고생을 많이 했다. 그래서 OB에서 해태로 트레이드됐고, 항상 피곤하니까 훈련도 많이 못했다. 지금은 건강하지만 젊은 시절 상당히 낙담했던 기억이 또렷하다.


대전이 고향이다. 아이러니하게 해태 시절 2년 연속 대전 연고의 빙그레를 격파하고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했다. 솔직한 기분은 어땠는지?
우승했으니 기쁘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이 불편하기도 했다. 한 번은 대전 원정경기를 가서 역전 홈런을 쳤는데, ‘한대화 배신자’라는 플래카드가 경기장에 걸려 있었다. 그때는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마음이야 고향팀 가고 싶은 게 당연한데 그게 어디 선수 마음대로 될 수 있나. 빙그레와 경기를 하면 관중이 온갖 험한 소리들을 내뱉었다. 어린 마음에 상처를 많이 받았다.


결국 고향팀인 한화 감독이 되었다. 앞으로 목표나 고민은 어떤 건가?
앞으로는 우리 팀 순위가 좀 더 올라갔으면 한다. 한참 방황하다가 이제야 조금씩 잘 풀리고 있다. 그런데 아직도 순위가 뒷자리란 말이지. 일단 팀 순위부터 올리고 나서 다음 목표를 생각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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