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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면 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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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On August 02, 2011


브랜드의 시작은 언제부터였나.
2009년이다. 준비한 기간까지 합해 론칭한 지 딱 2년 됐다.
시장 반응이 좋은 것으로 알고 있다.
아직 부족하다.
궁금하다. 도대체 얼마 갖고 시작했나?
처음엔 3천만원 가지고 시작했다. 내가 갖고 있던 돈의 전부다.
레이라는 자신의 옷을 만들기 전에 무슨 일을 했나?
패션 디자인을 전공하고, 내셔널 브랜드와 디자이너 선생님 밑에서 일했었다. 그러다 2008년 12월 31일자로 퇴사하고, 7개월 동안 영국에서 놀다 왔다. 돌아오자마자 레이(Leigh)란 브랜드를 론칭했다. 
레이란 무슨 뜻인가.
내 성이기도 하고, 애칭이기도 하다.
당신에게 옷은 무엇인가.
그냥 좋았다. 고등학교 때 자연스럽게 외국 잡지들과 한국에 막 등장한 라이선스 패션 잡지를 찾아보곤 했다. 그렇게 관심을 갖게 되면서 의상학과로 진로를 정했다. 이제 옷은 나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일이자 생활 그 자체다.
왜 하필 옷을 디자인하는 일이었나.
액세서리도 좋긴 했는데, 그냥 막연히 옷이 좋았기 때문이 아닐까. 왜 옷이어야 했는지 그 이유를 고민해본 적은 없다.
초기 투자 비용, 3천만원이 충분했나?
처음 시작할 땐, 그런 개념이 없었다. 그래서 추가 자금이 들어가긴 했다. 단지 옷만을 만드는 게 아니라 사업을 하는 거다. 패션 디자인이란 제조업이기도 하니까 규모가 커짐에 따라 지속적인 투자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번에 알게 된 사실인데, 회사가 성장 궤도에 오르면, 큰돈이 필요한 시점이 찾아온다. 현재 판매된, 그러니까 번 돈을 회전시켜 회사를 유지하는 건, 아직까지 힘든 일이다.  
회사 규모가 좀 더 커지면, 어느 시점엔 크게 폭발 성장하는 날이 있겠지?
현재는 굉장히 적은 예산 안에서 컬렉션도 해야 하고, 투자도 해야 한다. 비용이 꽤 많이 든다. 지금까지 투자된 총 금액을 다 말할 순 없지만, 경비가 많이 들기 때문에 도움을 많이 받는다. 스태프들도 그렇고, 외부 지인들도 그렇고, 사람들이 참 많이 도와주고 있다. 나중에 회사 규모가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그들에게 적절한 대우를 해줘야 한다는 것을 잊지 않고 있다. 그건 내가 감당하고 보은해야 하는 일이다. 그들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해줘야 한다.
레이의 옷을 구입할 수 있는 장소를 알려달라.
이태원에 있는 프로덕트 서울, 8월 중순부터 므스크샵에서 살 수 있을 거다. 해외엔 홍콩 하비 니콜스에서 만날 수 있다. 
존경하는 디자이너가 있겠지?
디자인 성향을 떠나 꼼 데 가르송은 많은 것들을 하면서 제대로 잘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편집매장 도버 스트리트 마켓을 진행하고, 브랜드를 하나하나 보여주는 방식이 여전히 젊고, 쿨하다. 어떻게 계속 그 감각을 유지하는지 정말 대단하다. 그리고 내가 스태프로 일했던 우영미 사장님도 굉장히 존경스럽다. 재촉해 달려 나가지 않으며 시간을 두고 천천히 움직이는, 그리고 결국엔 이뤄내는 점이 좋다.
옷에 대한 철학을 말해달라.
새로운 디자인 그리고 새로운 남성상을 제시하는 게 내 역할인 것 같다. 우리나라 남자들은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정형화된 스타일을 은근히 강요받고 있다. 내 자유의지와는 상관없이 좁은 범위 안에서 움직인다. 일례로 셔츠와 면바지를 깔끔하게 입는 게 남자의 바른 룩처럼 생각된다는 것이다. 나를 표현하는 건 인생에서 굉장히 중요하고 행복한 일이다. 난 좋다 나쁘다의 관점이 아닌 남자들이 아직 닿지 못한 미지의 영역을 찾아가고 있다. 남자들의 영역을 확장하는 새로운 디자인을 하고 싶다. 
판매에 대한 압박은 분명 있겠지.
당연히 있다.
그래도 현재 당신을 웃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브랜드의 성장이 날 웃게 한다.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 것.
장기적인 계획을 말해달라.
차곡차곡 단계를 잘 쌓아서 내년 파리에서 시작될 비즈니스에 초점을 맞추려 한다. 나중에 파리에서 쇼도 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당신과 같은 일을 하려는 후배들에게 조언을 부탁한다.
독립 디자이너로 보는 시선도 있겠지만, 나는 브랜드를 만들어가는 사람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많은 경험이 중요하다. 브랜드를 이끌어간다는 건, 옷 디자인만 좋다고 가능한 건 아니다. 작지만 회사이므로 경험과 경영자 마인드, 그리고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갖는 게 중요하다. 세상 돌아가는 것에도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한 브랜드에는 대표라는 사람의 색이 많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자기 자신을 내보이게 되므로 그런 것에 대한 준비도 많이 해야 한다.



언제 론칭했나?
2006년 6월 16일부터 시작했다. 제대로 론칭한 건 재작년 비욘드 클로젯과 협업을 진행했을때 쇼장 앞에서 퍼포먼스를 했었다. 그때 정식으로 알려진 것 같다.
얼마로 이 일을 시작했나?
2006년 6월에 1백50만원으로 시작했다.
그게 가능한가? 구두를 만드는 데 겨우 1백50만원?
처음엔 병행 수입을 했다. 우리 제품 중에 무로라고 멕시코에서 수입하는 게 있는데, 그 제품이 대박이 났다. 그렇게 돈을 모아 신발을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떤 단계를 거쳐 이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나?
의상학과를 졸업하고, 제대하자마자 시장조사한 후 바로 24세쯤에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했다. 그러면서 전반적인 걸 배웠다. 그때 운영하던 온라인 쇼핑몰에서 신발만 따로 빼서 슈즈 바이 런칭 엠을 시작한 거다. 쇼핑몰은 지금은 팔았다.
왜 구두였나?
우리나라엔 남자 신발이 정말 없다. 나 또한 신고 싶은 게 별로 없어서 하나씩 만들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시장이 보이더라. 우리나라는 신발 만드는 기술은 수준급인데, 디자이너 감각은 거기에 미치지 못한다. 대량생산에 밀려 장인의 수가 현격히 줄었다. 우리나라 장인들이 일본으로 가서 일하고 있다. 그 수도 굉장히 많다. 현재의 한국 구두 시장의 분위기를 바꿀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럼 지금 디자인 말고 또 어떤 일을 하고 있나?
공장에 있는 스승에게 핸드 소운 웰트 제법을 배우고 있다. 그 과정을 완벽히 구사하려면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거다. 그래도 꾸준히 배울 거다. 지금은 디자이너라 소개하지만, 나중에는 메이커가 되는 게 목표다.
수익이 많이 나고 있나? 판매는 잘된다고 들었는데.
지금은 좀 힘들다. 좋은 가죽을 구하려면 해외에서 수입을 해야 한다. 그 양이 대량이다. 그러면 돈이 많이 묶인다. 묶이는 돈에 비해 판매되는 수량은 적기 때문에 풍족할 수가 없다. 슈즈 바이 런칭 엠을 유지하기 위해 다른 일도 하고 있다. 그게 현실이다.
브랜드 이름이 지닌 뜻이 궁금하다.
별 뜻은 없다. 우리는 시즌별로 제품을 출시하지 않고, 프로젝트를 세운 후 그에 맞춰 신제품을 출시한다. 그런 의미를 담고 있다. 어떤 것을 론칭해 신발을 만들고 있다는 정도. ‘M’엔 많은 의미가 담겨 있긴 한데, 그냥 ‘어떤 것’ 정도로 이해하면 되겠다.
구두는 일반 개인이 하기엔 쉽지 않을 정도로 투자 비용이 큰 사업인 것 같다.
가죽에 욕심이 많다. 신발 하나 만들 때 테스트도 굉장히 많이 한다. 현재 라스트도 50개가 넘지만 더 늘려 나갈 것이다. 기본적으로 들어가는 비용이 많다. 더구나 우리는 편집매장에 입접돼 있지 않다. 그것도 좀 힘들다. 운영 수익만으로 이 브랜드를 이끌어가는 건, 만만치 않다.
직원은 몇 명인가?
나 빼고 3명인데, 외부에서 홍보와 소싱을 해주는 사람이 2명 더 있다.
구두를 만드는 철학은 무엇인가?
구두를 만드는 사람은 다 똑같을 텐데, 정말 발이 편한 구두를 만들고 싶다. 그리고 디자인도 디자인이지만, 분명히 동양인에게 맞는 라스트도 찾을 것이고. 품질도 정말 중요하다.
하루에 몇개 정도 팔리나?
가격대가 좋아서 하루에 쇼룸을 방문하는 사람이 5~10팀 정도 된다. 홈페이지에서 구입하는 고객들도 있으니까 나쁘진 않다.
카피에 대한 오해를 떨쳐낼 수 있는 특징은 무엇인가.
우리 신발은 손맛이 있다. 기계가 아닌 옆 창을 손으로 다 깎는다. 정말 손맛이 느껴지는 신발이다.
실질적인 소득을 말해줄 수 있나.
한 달 평균 매출은 온·오프 합쳐서 3천만원 정도 된다. 순수익이 발생한다 하더라도 모두 자재 구입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거의 남는 게 없다.
온라인 말고 오프라인 매장은 어디에 있나?
쇼룸만 있다. 하얏트 호텔에서 경리단 길로 내려오다 보면 있다. 2층에 있는데, 간판이 없다. 아시는 분들만 거의 찾아온다.
좋아하는 구두 브랜드를 말해달라.
일본 브랜드 중에서 풋 더 코처, 유럽 브랜드 중엔 바커블랙을 좋아한다. 실제로 보면 차이는 없다. 하지만 그 내부를 뜯어보면 완전히 예술이다.
신발의 생명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가죽 두께다. 그리고 신기 전 모습이 아닌 신은 다음 완성되는 형태 변화가 멋스러워야 한다. 그게 진짜 좋은 구두다.
잊어버리고 싶은 것이 있을까.
공장이다. 항상 의견 조정이 쉽지 않고, 의도한 것과 다르게 만들어지는 것들을 잊고 싶다. 어제 지방 공장에 다녀왔는데 복잡하다.
후배들이 이런 사업을 하고 싶다고 하면 어떤 조언을 해주겠나.
난 신발에 대한 기본 지식이 별로 없었다. 신발에 대한 기본 그러니까 메이킹에 대해 먼저 알고 뛰어드는 게 좋을 듯하다. 그래서 난 지금 배우고 있다. 
앞으로 계획을 말해달라.
1~2년 앞의 계획은 슈즈 바이 런칭 엠을 열심히 하는 것이고, 장기 계획은 기술을 빨리 배워서 내 신발을 직접 만들고 싶다는 것.



얼마 가지고 시작했나?
처음엔 1천만원이 조금 안 됐다.  
언제 론칭했나?
시작한 지 9개월 됐다.
왜 하필 양말이었나?
제품 디자인을 전공했다. 제품 디자인 회사를 다녀야 했는데, 흥미가 없었다. 요즘 뜨는 아이템이 무엇인가 생각하다가 소자본으로 운영할 수 있는 게 양말이란 결론에 도달했다. 마침 큰 아버지도 양말 공장을 하고 계셔서 도움이 되었다.
큰아버지의 도움이 있었으니 좀 편했겠다.
처음엔 도움을 받았는데, 몇 달 지나서 원사 구입이라든지, 염색이라든지 내가 직접 다 해서 만들었다. 그렇게 하다 보니 공간이나 비용이 많이 들더라. 그래서 투자를 좀 했다.
어려움 없이 성공 가도를 달리는 게 아닌가? 부럽다.
그건 아니다. 부모님께서 완강히 반대하셨다. 그래서 진심을 보여드리고자 했다. 낮에는 쇼핑몰을 운영하고 밤에는 대리운전을 하며, 부모님의 마음을 바꿔놓았다. 물론 중간 중간 양말 사업을 준비했다. 시작한 이후로 계속 투자를 하고 있다. 따로 번 돈은 없고, 계속 투자를 해서 덩치가 예전보다 많이 커졌다.
아비루즈란 이름은 무슨 뜻인가?
불어과 친구가 알려줬다. 빨간 망토를 두르고 말을 타는 기수를 뜻한다. 아비루즈가 붉은 망토란 뜻이다.
지금 판매처는 어디인가?
에이랜드, 롯데백화점 대전에서 살 수 있고, 빈폴 유플랫, 온라인 매장으론 힙합퍼, 위즈위드 등에서 살 수 있다.
9개월 만에 흑자 전환인가?
아직 흑자 전환은 아니다. 2년 정도는 투자를 계속 할 생각이다.
카피 의혹에서 벗어날 수 있는 아비루즈만의 특징을 말해달라.
소비자가 원하는 좋은 품질로 만들려고 한다. 남자 양말의 경우엔 뒤꿈치는 원래 스판을 쓰는데 나는 나일론을 써서 오래 신어도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한다. 디자인은 심플하되 색깔의 다양성을 추구하고 있다. 지금 보유하고 있는 색만 해도 2톤이 넘는다. 양말이 작은 아이템이긴 하지만, 나름대로 뭔가를 해보려고, 실 염색을 많이 시도했다. 실 종류도 많아졌고, 앞으로도 좋은 색을 찾을 생각이다.
장기 계획은 무엇인가?
우선 공장을 차리고 싶다. 내가 세운 계획은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되었다. 6개월 걸린다고 생각했던 게 2~3개월로 앞당겨졌다. 공장도 6개월 안에 완성할 계획이다. 그 작업이 마무리되면 광주에 가게를 오픈해 점차 늘리고 싶다. 




이일을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
LG패션에 다녔었다. 경영학과 출신으로 MD로 일했다. 그때 선배들 어깨너머로 배운 걸로 현재 가방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얼마나 가지고 시작했나?
신용 대출받아 5천만원으로 시작했는데, 지금 마이너스다.
론칭한 지 얼마 됐나.
2년 차다.
요즘 반응은 어떤가?
갑자기 반응이 좋아졌다. 장밋빛이다.
왜 가방이었나?
카메라 가방을 만들었다가 망할 뻔했다. 워낙 가격 경쟁이 치열해서 쉽지 않더라. 부모님이 의류 쪽 일을 하신다. 그래서 많이 영향을 받았고, 들고 싶은 가방 한번 만들어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루치카만의 디자인 특징을 설명해달라.
경영학도였고, 숫자를 좋아하다 보니 정직하면서도 기본적인 걸 좋아한다. 그래서 내가 만드는 가방엔 디테일이 별로 없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비전공자란 이유도 있고, 내가 색약이다. 그게 약점이긴 한데, 그래서 노력을 많이 하고 주변의 도움을 받는다. 그래서 좀 더 노력이 많이 첨가된 가방이라 말하고 싶다. 
도움을 많이 받는다고?
LG패션에 있던 선배들이 많은 도움을 줬다. 가방 완성도 7할은 가죽이 결정한다. 좋은 재료가 있어도 사실 마음대로 구매할 수가 없는데, 선배들 도움으로 LG패션의 기본 거래처들을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루치카란 이름은 무슨 뜻인가?
LG패션에 있던 동료가 이탈리아 사람이었는데, 그가 지어줬다. 이탈리아 말로 ‘반짝거리다’란 뜻이다.
론칭 이후 손해를 봤다면 어느 정도인가?
마이너스였다가 이제 플러스로 전환됐다. 물론 전체 예산 5천만원을 생각하면, 아직 손해를 보고 있지만.
판매처는 어딘가?
에이랜드 일모스트릿, 위즈위드 등이다. 바이뵤의 김민수가 친구다. 그가 많이 도와줬다.
이런 일을 하는 후배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관련 업계에서 먼저 일을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많이 배우기도 하고, 인맥 네트워크도 중요하다. 자신이 원하는 분야에서 먼저 일하는 게 최선이다.


얼마나 되었나?
1년 3개월 됐다.
얼마 가지고 시작했나?
적금 들어놓았던 6백만원으로 시작했다. 2~3개월 되니까 많이들 찾더라. 그래서 아버지에게 5백만원 빌렸다. 물량을 늘려야 했기 때문이다.
당신에게 가방은 무엇인가?
실생활에 필요한 것 정도. 아이러니하게도 난 가방을 잘 들고 다니지 않는다. 필요할 때 아주 큰 가방 하나만 사용한다. 가방을 만들 땐, 이런 사람이 들었으면 좋겠다고 상상하며 내가 아닌 다른 자아를 만들어놓고, 거기에 맞춰 가방을 디자인한다.
왜 하필 가방이었을까.
일 때문에 그랬던 거 같다. 회사에서 액세서리 디자이너로 가방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과거의 경력을 말해달라.
시각디자인을 전공했고, 회사에서 구매와 기획을 6개월 정도 담당했다. 그리고 한섬에서 타임 옴므 액세서리 디자이너로 일했다. 그때 가방에 관한 것들을 알게 됐다.
브랜드 이름은 무슨 뜻인가.
별 의미는 없고, by 는 ‘~에 의한’이란 영어 그대로의 뜻이고, byo는 내 별명이었다. 그냥 김민수가 만든 뭐 그런 의미다.
브랜드 철학이라는 게 있나.
보통 가방을 만들고 싶었다. 부담 없이 들고 다닐 수 있는 가방 말이다. 생각보다 그런 가방이 많지 않다. 기발하고 센스 넘치는 가방이 아니라 적당하게 멋있는, 그런 가방을 만드는 게 내 철학이라 할 수 있겠다.
현재에 만족하나.
만족한다. 재밌다.
초기 투자 이후, 더 이상 들어간 투자금은 없나?
없다. 거기서 더 투입된 비용은 없고, 수익으로 계속 운영하고 있다.
실질적인 소득을 말해달라.
일정치는 않다. 매월 7백만~8백만원 정도 벌긴 하지만, 그 돈이 다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다. 올해 1~2월쯤부터 수익이 나기 시작했다. 그전엔 조금 손해거나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였다.
살 수 있는 매장은 어디인가?
에이랜드 각 지점, 위즈위드, W컨셉트 스토어, 일모스트릿, 일모, 영등포 타임스퀘어, 빈폴 유플랫 매장, 부산의 매료라는 편집매장, 인천 모옌 등에서 살 수 있다.
좋아하는 가방 브랜드가 있겠지.
미즈모나 필슨을 좋아한다. 미즈모의 정체성이 뭐냐 물어보면 그들이 어떻게 대답할지 궁금하다. 되게 단순하다. 근데 참 매력적이다. 나도 그런 쪽을 추종하고 있고. 
본인 이미지와 비슷하다.
맞다. 심심하다.
최근에 잊어버리고 싶은 에피소드 같은 게 있을까. 
가방을 다 완성했는데, ‘불박’이 모두 거꾸로 찍혀 도착했다. 공장에서 실수를 한 거다. 그때 좀 많이 만들었는데, 다시 작업했다.
힘이 되는 사람이 있나.
부모님이다.
5백만원을 주셨으니까?
갚았다. 우리 집은 그런 거 다 갚아야 한다.
자신의 가방을 들었으면 하는 셀러브리티를 꼽는다면.
맷 데이먼이다. <리플리>에 나왔던 이미지의
맷 데이먼 같은 사람이 들었으면 좋겠다.
장기 계획을 세워두었나?
큰 계획은 솔직히 없다. 지금까지도 큰 계획 없이 하다 보니 온 것이고, 이렇게 계속 조금씩 커 나갔으면 좋겠다.
계속 가방으로만 직진할 것인가?
가방, 필통, 파우치, 벨트, 가죽과 관련된 부문으로 확장할 것 같다. 브리프케이스까진 확장할 생각이지만, 더 큰 가방을 만들 계획은 아직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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