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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cker Rooms

그라운드에서의 90분은,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을지 모른다. 축구 선수는 90분 전후로 더 사납고 긴 시간을 라커룸에서 보낸다. 라커룸은 운동장과 또 다른 모태인 거다. 그곳에서 선수는 저마다의 사연을 들어 주문을 외고 있는 힘껏 운동화 끈을 조이며, 감독과 동료와 일체로 숨 쉬고 무한 경쟁하며, 온몸을 땀으로 물들이고 거친 숨을 고르며 완전 연소된다. 2006년 독일 월드컵을 목 놓아 기다리는 10명의 영혼이 땀내만큼이나 짙게 밴 라커룸 안팎의 풍경.

UpdatedOn February 21, 2006

박지성
대한민국·1981년생·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박지성의 곤두선 촉수와 신경이 보이는가? 그는 섣불리 긴장을 늦출 수 없다. 프리미어 리거 1호와 태극 전사의 짐은 여전히 무겁기만 하다. 하지만 우리가 월드컵에서 보고 싶은 건 파울하거나 당했을 때 우리 선수도 콜리나와 웃으며 농을 주고받는 장면이다. 빅 리그에 몸담지 않으면 쉽게 흉내 내기 힘든 일. 이제 우리에게 빅 리거 박지성이 있어 그 모습을 볼 수 있을지 모른다. 아쉽게 콜리나가 은퇴해 세리에A에서만 뛰고 있지만. 이제 축구에 관한 한 그의 비중은 적지 않다. 박지성의 제스처도, 세리머니도 플레이만큼이나 월드 클래스에 근접하고 있다. 조금만 더 참으면 우리도 온 지구가 다 알고, 엄지손가락을 치켜드는 축구 선수를 갖게 될 것이다.  

호나우두 루이스 나자리우 데 리마
브라질·1976년생·레알 마드리드

스트라이커의 본색은 여전히 짙다. 마리오 켐페스(아르헨티나) 6골, 파울로 로시(이탈리아) 6골, 게리 리네커(잉글랜드) 6골, 살바토레 스킬라치(이탈리아) 6골, 호마리우(브라질) 6골, 그리고 다보 슈케르(크로아티아) 6골. 망령처럼 되풀이된 6골의 벽을 무너뜨린 ‘우리의 호프’ 호나우도는 아직 지지 않았다. 호나우두는 브라질 대표로서는 물론, 에인트호벤과 바르셀로나 때부터 그리고 인터 밀란을 거쳐 레알 마드리드까지, 자신만이 당대 최고 스트라이커임을 기꺼이 증명해보였다. 유일하게 남은 건 ‘득점 기계’ 게르트 뮐러(독일)의 14골을 넘어 역대 월드컵 최고가 되는 일. 겨우 3골 남았다.  

 

나카타 히데토시
일본·1977년생·볼튼 원더러스

박찬호 이전에 노모가 있듯이 박지성 이전에 나카타가 있었다. 세리아A의 페루자에 전격 진출했을 당시 나카타는 일본 관광객을 노린 희귀 상품 취급을 받았다. 그러나 페루자에서 성공적으로 적응한 뒤 명문 AS 로마에서 한때 토티보다 더 나은 플레이를 보여주기도 했다. 프리미어 리그의 스피드를 따라가지 못하는 벤치 워머 신세지만, 수비진을 일거에 무너뜨리는 킬 패스만큼은 여전히 아시아 최고 수준.

파비오 칸나바로
이탈리아·1973년생·유벤투스 FC

말디니가 떠나도 카데나치오(빗장 수비)는 영원하다. 적어도 칸나바로가 있는 한. 키가 작은 편(176cm)이지만, 교묘히 반칙을 섞는 거친 플레이로 골기퍼 부폰에게 가장 신뢰받는 수비수가 바로 칸나바로다. 유로 2000 결승에서 윌토르에게 동점골을 허용하기 전까지 루이스 피구와 MVP를 다투던 그가 아닌가. 한 번 더 생각하면, 2002 한일 월드컵 8강전에서 그를 보지 못한 건 우리에게도 불운이었다. 세대교체에 성공한 이탈리아의 자존심 회복 여부는 주장인 칸나바로에게 먼저 물어봐야 한다.

레이치 리베리오 아드리아누
브라질·1982년생·인터 밀란

과연 브라질이다. 호나우두의 아내와 서슴없는 연애 행각을 벌이는 아드리아누. 그래도 고수는 고수를 알아본다. 호나우두는 “만일 내가 주전 공격수가 아니라면, 그 자리를 아드리아누에게 주고 싶다”고 말했다. 2005년 알토란같은 A매치 10골, 국제 클럽 경기 8골을 넣은 아드리아누는 브라질 선수치고는 제법 당당한 체격과 호나우두보다 한결 나은 중거리 슛을 보유하고 있다. 인터 밀란에 첫발을 내디뎠다가 버림받았지만, 보란 듯이 복귀했다. 어느새 서른인 호나우두가 부상이라도 당한다면, 응당 득점왕 후보다.

 

티에리 다니엘 앙리
프랑스·1977년생·아스날 FC

어딘지 모르게 불안한 구석이 남아 있다. 앙리가 이번 월드컵에 누구보다 절실한 이유는 조국의 우승 이전에 그 놈의 망할 징크스를 내다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축구팬이 얼른 고치지 못하는 악습 중 하나는 소속팀의 열성 서포터도 선수를 평가할 때 어김없이 A매치 기록을 따진다는 거다. 그렇다면 앙리가 그의 조국에 공헌한 바는 변변치 못하다. 청소년 대표팀에서 그야말로 눈부셨고, 소속팀 아스날에서 역대 최다 골의 영예를 안은 그의 국가대표팀 경력은 초라할 정도다. 유로 2000의 우승은 프랑스였지만, 트레제게나 윌토르가 아니었다면 그라운드에 주저앉은 선수는 알베르티니(이탈리아)가 아닌 앙리였을 거다. 이번에야말로 르블레의 에이스는 앙리다. 누명을 벗어야 한다.

 

 

크리스티아누 호나우두
포르투갈·1985년생·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베컴을 많이 닮았다. 일찌감치 맨체스터에 입성한 것도, 백넘버 7번인 것도, 모델 뺨치는 용모도 그렇다. 다만 호나우두의 플레이는 베컴보다 무빙 플레이에 능한 대선배 라이언 긱스나 루이스 피구에 가깝다. 다만 호나우두의 기량이 이런 축복 속에서도 일순 정체된 감이 있어 아쉽다. 당장 애슐리 콜(아스날)만 나오면 그를 보기 힘들다. 조금 센 홀딩맨을 만나면 평정을 잃고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이야기. 유효 슈팅수와 크로스의 정확률도 떨어지고, 드리볼과 패스에 군더더기가 많으며, 수비력도 신통치 않다. 하지만 적어도 상대를 자극하는 현란한 개인기와 타고난 득점력만큼은, 진정 경이롭다.

 

 

웨인 루니
잉글랜드·1985년생·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5권 분량의 웨인 루니 자서전은 그 흔한 영국식 농담이 아니다. 신동과 악동 사이를 오가던 코흘리개 루니는 더 이상 없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모든 플레이에 관여하고, 경기의 흐름을 생각하는 조율사 루니만이 있을 뿐이다. 요즘의 루니를 보면 파울이나 경고를 받는 일이 현저히 줄었고, 수비에도 적잖이 기여한다. 코너킥 때는 박지성이나 폴 스콜스 등과 함께 2선에서 리바운드 이후 중거리 슈팅 또는 크로스 기회를 노린다. 거의 모든 게임을 풀타임으로 소화하며 팀의 살림꾼으로 거듭나고 있다. 정든 구디슨 파크에서 올드 트래포드로 무대를 옮긴지 1년반만의 일이다. 앨런 시어러는 호나우두 데 아시스 모레이라처럼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경기의 흐름을 뒤바꿀 수 있는 유일한 선수로 루니를 지목했다. 썩 잘 어울리는 한 쌍인 전방의 루니와 오웬, 당대의 람파드와 제라드, 조 콜, 베컴 등이 미드필더에 배수진을 친 잉글랜드의 큰 꿈이 영글고 있다.

 

 

호나우두 데 아시스 모레이라
브라질·1980년생·FC 바르셀로나

더 이상 그를 ‘호나우딩요(리틀 호나우두)’라 부를 필요가 없다. 또 한 명의 멀쩡한 호나우두일 뿐이다. 아예 공을 몸에 달고 사는 그는 FC 바르셀로나와 브라질을 모두 정상에 올려놓으며 2005년의 히어로가 되었다. 올해에도 호나우딩요, 아니 호나우두는 더 크고 환하게 웃으며 그 비상함을 유럽 전역에 과시하고 있다. 그가 있는 한 바르셀로나는 레알 마드리드는 당연하거니와 프리미어 리그나 세리에A, 분데스리가의 어떤 팀도 두렵지 않다. 이제 긴 머리칼 휘날리며 브라질의 세계 랭킹 1위를 유유히 지키고, 여섯 번째 별을 따는 일만 남았다.

 

 

루드 반 니스텔루이
네덜란드·1976년생·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지금 반 니스텔루이가 람파드와 프리미어 리거 랭킹 1, 2위를 다투기까지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진 않았다. 입단 첫해부터 부지런히 담아 넣더니 어느새 150호골이 목전에 있다. 문제는 8년차 국가대표 경력이 영 마뜩찮다는 점. 유로 2000에서 부상으로 빠졌고, 2002 월드컵 본선은 아예 TV로 봐야 했다. 유로 2004에서 팀을 4강까지 올려놓는 데 일조했지만, 그마저도 포르투갈과 그리스의 선전에 가려 빛을 보지 못했다. 이번 월드컵에서 명문을 되찾아야 하기는 반 니스텔루이나 ‘만년 우승 전력’ 네덜란드나 마찬가지. 로벤의 크로스와 반 데 사르의 선방만으로는 부족하다.

반 니스텔루이의 머리와 발이 결정지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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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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