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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독후감 #달과 6펜스

가을이라 독서를 하자는 건 아니지만, 가을이라 괜히 고전소설에 눈길이 간다. 세 명의 에디터가 각자 고전소설을 읽고, 자신을 돌아본다. 가을은 성찰의 계절이다.

UpdatedOn September 13, 2022

시인이 직업이 되지 못한 시인이 <달과 6펜스>를 읽고

이 책엔 이런 문장이 나온다.
나는 스트로브에게 요즘도 그림을 그리고 있느냐고 물었다.
“그림을 그리고 있느냐고? 요즘처럼 잘 그려지는 때가 없네.”
비슷한 질문을 받는다. “요즘도 시 써요?” 나는 대답한다. “시인이 그럼 시를 안 써요?” 가끔은 속상해서 덧붙인다. “물 마시는 것처럼, 저에게 일상의 일이에요, 시를 쓰는 건.” 그런데 저런 말을 듣고 굳이 ‘속상’한 건, 누군가에게는 내가 더 이상 시인처럼 보이지 않는 것 같아서, 혼자 집에서 시를 쓰건 말건, 시인으로서 활동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것 같아서, 시인으로서의 내 가치가 소멸한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리고 인정하긴 싫지만 아마도 나는, 아마도 열심히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달과 6펜스>의 주인공(이라는 표현이 적절할지 모르겠다) 찰스 스트릭랜드는 아내와 아이들을 버리고 파리로 간다. 그림을 그리려고. 사람들은 그가 바람이 났다고 생각했다. 그는 증권 중개인이었고 부유했다. 그는 여생을 가난한 화가로 살아간다. 이상한 사람이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 굳이 풍족한 생활을 포기해야 할까? 아내와 아이들까지도? 기이해. 그땐 그래야 진정한 예술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훗날 세계적인 예술가로 거론되는 이들은 모두, 정말 예외 없이 이딴(!) 기행을 벌였다. 동일한 성을 사랑하는 사람이 많았으며(나는 이것에 대해 가치 판단을 하고 싶지 않고, 굳이 적자면 개인의 자유를 존중한다. 그러니까 비난하지 말 것!), 친구의 부인 심지어 형제의 부인을 탐하기도 하고, 가족을 버리는 것은 예사이고, 총으로 애인을 쏜다거나, 돈을 빌리고 갚지 않는다거나 음, 적으면서 생각해보니 그때나 지금이나 뭐 많이 달랐던 것 같진 않네.

다만 그때의 예술가들은 저런 행동을 아무렇지 않게 벌였다. 그래서 2022년에도 사람들은 종종 말한다. “작가들은 특이하잖아.” 결이 다른 예이지만, 시인이라고 하면, 긴 갈색 코트를 입고 중절모를 쓰고 낙엽을 밟으며 걷는 사람을 떠올린다. 그래서 나에게도 “어? 시인인데, 왜 이렇게 멀쩡해?”라고 말하는 아주 기이한 사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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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딱한 친구야,
자넨 예술가가 된다는 게 뭔지 모르고 있구먼.”

 

다시 찰스 스트릭랜드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그는 그림을 배우지 않았으나 천재적인 작품을 창조해낸다. 내가 생각할 때 그의 천재성은, 굳이 가족까지 버리는, 욕망, 자유로운 열정에서 비롯된다. 그 도덕성에 대해서는 위에 적었으니 그만 말하고, 그저 의지에 대해서만 말하자면, 그건 너무 소중하고 위대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찰스 스트릭랜드는 실존한 화가 폴 고갱의 삶을 바탕으로 창조한 인물이다. 현실과 소설의 이 위대한 화가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나에게 던진다. “너는 예술가로서 어떤 삶을 살 거니?” 물론 부인과 아이들을 버리지 않을 것이다. 결혼을 안 했으니 버릴 것도 없다. 아, 재미없나? 나는 나를 한심하게 생각하지는 않지만, 시를 열심히 쓰지 않는 내 모습이 안타깝긴 하다.

나는 시인을 직업이라고 말할 수 없다. 시를 쓰고 싶어서 등단하고 시인이 되었는데, 직업이 뭐냐고 물으면 ‘시인’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직업란에 시인이라고 적으면, 거의 무직에 가깝게 취급받는다. 당연히 은행에서 대출받을 수 없다. 아무도 시인에게 월급을 주지 않고, 시인은 음, 프리랜서 같은 건데 돈을 많이 벌지 못하고, 그래서 변변하게 직업이라고 말하기 애매하고, 직업이라고 나 스스로 생각하기도 이상하지? 소설가도 있고, 미술가도 있고, 뭐 다른 예술 장르도 많은데 유독 시는, 그것을 하는 사람이 그것을 직업으로 삼기가 참 어렵다. 진정한 예술가라면, 이 자체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시인으로서 자부심을 느껴야 하는 거겠지? 한때 시가 사랑받던 시절, 수많은 문학 청년들이 추앙했던 건, 맑은 영혼을 지닌 시인이 조탁한 언어의 흐름일 테고. 나는 그런 시인이 아니다. 가난해야 영혼이 맑아질까?

2009년, 그러니까 내가 데뷔하던 해, 등단 동기인 친구 시인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나는 언젠가 BMW 7을 타며 여유롭게 살면서 시를 쓸 거야. 친구가 대답했다. 네가 그렇게 물질적인 것에 관심을 갖는다면, 그래서 네가 부유해진다면, 좋은 시를 쓰지 못할 거고 좋은 시인도 되지 못할 거야. 나는 그 말에 동의했다. 가난이 영혼을 순수하게 만든다고. 다만 나는 그렇게 순수한 영혼을 갖고 싶지 않았고, 좋은 시인이 되고 싶지도 않았다. 유명 출판사와 계약해 시집을 출간하는 시인이 되고 싶었다. 나는 유명 출판사와 계약했다. 그 친구보다 빨리 시집을 출간했고 그 친구보다 시집도 많이 팔렸다. 나는 그런 사실에 자괴감을 갖지 않았다. 다만 나는 시인으로서 나를 사랑하거나 존중하기가 어려웠다. 내 주변 사람들이 낯선 사람에게 나를 소개할 때, 얘는 신춘문예로 등단한 시인이야, 라고 이야기하면 나는 몸을 비틀며 난처해했다. 나는 말을 할 때마다 입에서 꽃이 쏟아지는 시인이 아니니까.

나는 너무 부자다. 직업은 콘텐츠 회사 대표다. 등단 동기 중 가장 먼저 시집을 출간했으나 두 번째 시집을 출간하지 못했다. 그 사이 동기들은 대부분 시집을 세 권이나 출간했다. 그들도 생계를 위해 열심히 일하겠지만, 꽤 많은 시간을 시를 쓰기 위해 존재한다. 그들 중 일부는 시를 쓰기 위해 일한다. 나는 대부분 회사에서 일한다. 물 마시는 것처럼 시를 쓴다고 했지만, 시를 쓰는 것처럼 물을 마셨다면 진작 말라 죽었겠지.

찰스 스트릭랜드의 기행을, 예를 들어, 자신을 도와준 친구의 부인과 사랑에 빠지는 것 같은, 나는 당연히 경멸한다. 그런 기행이 예술과 무슨 상관이 있겠어. 그는 자유롭게 살고 싶어 했고, 욕망을 따르고 싶어 했다. 그 이외 다른 것은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예술에 대한 그의 열정만은 존중하고 부럽냐고? 그 몰입, 집착이 나에게서 실종되어서, 그 부분은 부러운 것 같기도 한데, 음, 아니야, 아니다. 하나도 안 부러워. 내 차는 포르쉐다. 나는 매일 이 차를 타고 출근한다.

두 번째 시집도 곧 출간한다. 속도는 느리지만 내가 원하는 형태의 시를 쓰고 있기는 하다. 순수한 언어, 이런 거 관심 없고, 문학사를 뒤집어놓을 작품을 쓰면 좋겠지만, 그것 자체가 목적도 아니다. 생각해보니 나의 게으른 창작은 그 나름 시에 대해 오래 탐구하는 여유로운 과정이 되었다. 나는 포르쉐를 타고 시의 본질을 생각하는 시를 조만간 쓸 예정이다.

“이 딱한 친구야, 자넨 예술가가 된다는 게 뭔지 모르고 있구먼.” 별 생각 없이 펼쳤는데 이 문장이 보인다. 마치 고갱이 나에게 하는 말 같다. 조용히 해, 이 꼰대 예술가야! 방금 크게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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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YWORD

CREDIT INFO

Words 이우성 (시인, 크리에이티브 콘텐츠 에이전시 ‘미남컴퍼니’ 대표)
Photography 박도현

2022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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