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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지 않는 휴가

바빠서, 이 도시가 더 좋아서, 쉬고 싶어서. 휴가를 떠나지 않는 이들에게 그 이유에 대해 물었다.

UpdatedOn July 29, 2022

해변 가는 목적이 꼭 휴가여야 할까?

사계절 내내 여름만 원하고, 바라고, 꿈꾼다. 이토록 푹푹 찌고, 습하고, 뜨거운 계절을 삶의 방식이라 여기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5년째 서핑을 좋아하고, 해변을 즐기는 편이다. 서핑에 적합한 파도가 들어올 때는 한 주에 두세 번씩 강원도로 달리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휴가라는 말에 대번 떠오르는 바다로 향하는 게 바캉스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차라리 두세 시간 거리에 있는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기분이다. 2~3년 전에는 휴가라는 낭만이 사라져 슬프기도 했지만, 요즘은 그 짧은 낭만이 일상이 된 것 같아 안정감을 느낀다. 진정한 휴가란 뭘까? 비행기를 타고 훌쩍 떠나야 하는 걸까? 혹은 안 하던 걸 하며 며칠을 보내야 하는 걸까? 그런 모든 것을 잠깐 반짝이는 로망이 아닌, 일상처럼, 기대하지 않고 뻔뻔하게 즐기는 게 더 나다운 일이다.
Contributing Editor 양보연

다채로운 극장이 서울에 많은 이유는 뭘까?

여름에 극장을 가는 즐거움을 안다. 보고 싶은 영화를 고르고, 검색하며 두 시간 남짓한 시간을 환상적으로 보내는 상상. 극장이 주는 압도적인 시간은 내 삶에서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귀중한 시간이다. 특히 여름에만 볼 수 있는 시원한 영화들이 있다. 미국식 토일릿 코미디부터 통쾌한 블록버스터 영화들까지 줄줄이 개봉을 앞두고 있다. 그런 영화들을 두고 어찌 휴가를 떠날 수 있으랴. 서울을 떠날 수 없는 이유는 또 있다. 아트하우스 모모, 아트나인, 서울아트시네마 등 독립 영화와 주목받아 마땅한 저예산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들이 더러 있기 때문이다. 사실 ‘집순이’인 내가 멀리 떠난다는 건 엄청난 결심이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집만큼 편안하고, 안락하며, 온전히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장소는 없기 때문이다.
Words 김유진(영화 칼럼니스트)

  • 서울만큼 멋진 클럽이 많은 곳이 또 있을까?

    클럽이 좋아서 DJ가 된 건 아니다. 클럽에서 퍼지는 멋진 음악에 빠져 DJ가 됐다. 8년째 DJ로 활동하고 있지만, 여전히 클러버이기도 하다. 그야말로 육체적 경험이라 말해도 무방한 테크노, 세련된 하우스 등 전자음악에 매료된 삶을 살고 있다. 또한 전자음악을 만드는 프로듀서인 내게 클럽이란 동시대 사람들이 어떤 음악에 반응하는지 확인할 수 있는 가장 빠른 장소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바다를 비롯한 여행을 싫어하는 건 아니다. 다만 지금은 팬데믹이 끝난 직후라 여행지가 포화 는 서울 언더그라운드 신이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지금을 놓치고 싶지 않다.
    Words 클로젯 이(DJ, 프로듀서)

  • 골프장에 가는 것도 휴가일까?

    재작년부터 골프웨어 브랜드 전문 마케터가 됐다. 그전까지는 골프를 몰랐다. 관심도 없었다. 어쩌다 일을 맡게 되어, 어쩔 수 없이 관심을 가져야 했다. 억지로 스크린 골프장에 갔다. 비즈니스를 위해 시골처럼 먼 지역에 있는 골프 필드도 갔다. 그러던 어느 날, 골프의 재미에 빠지게 됐다. 실력이 향상되는 것은 물론, 자연 경관이 펼쳐진 골프 필드를 사람들과 누비며 농담도 따먹고, 스크린 골프장에서 작은 내기도 하며 친목을 다지는 게 새록새록 즐거웠다. 현재 나의 삶은 골프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다음 주 날씨를 확인하며 필드에 갈 수 있을지를 결정하고, 주 3회 스크린 골프장에 가서 연습하며, 업무를 맡은 골프웨어 브랜드를 골프를 즐기는 사람들에게 더 널리 알릴 궁리를 한다. 올해는 골프를 위해 휴가도 반납했다.
    Words 나상효(마케터)

  • 집에서 보내는 순간을 휴가라 말하면 어떨까?

    좋아하는 모든 걸 집에 들였다. DJ 장비, 수많은 아트북, 예쁜 그릇, 멋진 친구들까지. 덕분에 집에 있어도 심심하지 않고, 친구들이 자주 오가는 터라 지루할 틈이 없다. 낮 시간에는 주로 그림을 그린다. 즐거웠던 추억을 떠올리거나, 가고 싶은 장소를 몽상하며 그림에 담는다. 때때로 막연한 SF적 상상을 캔버스에 수놓기도 한다. 젯소를 칠하고, 내 머릿속에 떠오른 그림에 알맞은 색을 고르며, 붓으로 선을 그릴 때의 안정감은 내 삶에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즐거움이 됐다. 또한 시끄러운 하루를 보내고 싶을 때는 턴테이블로 신나는 노래를 크게 플레이한다. 관객이 없어도 괜찮다. 나의 즐거움은 내가 기준이 된다.
    Words 다니엘오(아티스트)

  • 고양이와 보내는 시간을 바캉스라 해도 될까?

    2년 전, 첫 번째 반려묘 태리가 내게로 왔다. 너무 귀엽고, 너무 예쁘다. 보고만 있어도 행복하다. 내 이상형인 배우 김태리의 이름을 따서 지을 만큼 사랑하는 생명체다. 그러다 외출이 잦은 탓에 태리와 보낼 시간이 부족해졌고, 친구를 선물해주기로 마음먹었다. 올해 초, 아기 고양이를 한 마리 더 입양했다. 이름은 앙리, 진한 회색과 연한 회색이 절묘하게 섞인 빼어나게 아름다운 고양이다. 두 마리는 보고만 있어도 좋고, 멋대로 집 구석구석을 누비는 것도 귀엽다. 빠진 털이 수북하게 쌓여도 밉지 않다. 자식을 보는 부모의 마음이 이런 걸까? 휴가를 떠나지 않기로 했다. 그 시간을 오롯이 태리와 앙리 곁에서 보낼 것이다.
    Words 이현민(스타일리스트)

  • 지루한 도시에서 찾은 새로운 친구

    파리에 있는 회사로 이직한 지 5년 차, 내내 심심했다. 10년 넘게 연애한 탓인지 사랑이라는 말이 어색해졌을 만큼 당연한 애인은 물론, 함께 나이 먹고 있는 친구들, 가족도 서울에 있다. 사실 서울에서의 삶은 한편으로 지루했다. 새로운 자극을 위해 이 도시에 왔다고 해도 무방하다. 그렇게 4년을 보내던 어느 날, 기적처럼 새 친구들이 등장했다. 세트 스타일리스트, 포토그래퍼, 패션 스타일리스트, 모델 등 반짝반짝한 친구들이 더러 생겼다. 그들이 알려준 파리는 내가 알던 것과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패션계를 들여다보고, 파티에도 가고, 일요일에는 단체로 농구도 하며 추억을 쌓으면서 이 도시에 대한 인상이 180도 바뀌었다. 어쩌면 서울을 떠나며 꿈꾸던 삶이 현실이 된 기분이다. 더 늦기 전에 이런 친구들을 만났다는 게 매일 감사하다. 요즘 내게 휴가란 친구들과 함께하는 시간 그 자체다.
    Words 이나라(건축가)

  • 신혼부부의 일상은 매일이 휴가가 아닐까?

    결혼 두 달 차, 3년간의 연애를 마치고 혼삿길에 올랐다. 우리는 연애 기간 동안 여행을 자주 다녔다. 3개월 유럽 배낭여행은 물론, 울릉도를 비롯한 전국팔도를 누볐다. 그래서 결혼을 결심했을 때, 당분간은 여행보다는 함께 한 집에서 보내는 시간에 집중하기로 했다. 청소와 빨래, 설거지 담당을 구분하고, 매일 다른 저녁을 함께 맞으며, 시시콜콜한 서로의 농담에 활짝 웃는 일상을 만들기로 했다. 처음 한 달은 불같이 싸웠다. 서로의 삶의 리듬을 한 집에 몰아넣으니 질서가 없었고, 규칙을 세우기 위해 대화가 필요했다. 그런 시간을 보낸 요즘은 서로 조심해야 할 것과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분간하기 시작했다. 부부에게 중요한 건 존중이라는 말을 다시금 깨달았다. 지금은 꿈에 그리던 부부의 일상을 누리는 중이다. 대단한 건 없다. 매일의 시작과 끝을 한 사람과 함께한다는 축복을 누리고 있을 뿐이다.
    Words 유성웅(한식당 오너 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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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ributing Editor 양보연
Photography 게티이미지뱅크

2022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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