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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를 위한 건축

묵도하는 공간을 설계한 건축가들은 건물에 어떤 가치를 담았나. 자연, 빛, 장인정신으로 추렸다.

UpdatedOn July 12,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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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장에 트러스 구조를 구현한 모습이다.

천장에 트러스 구조를 구현한 모습이다.

철학적인 사원

템플로 데 라스 세니사스 사원

애도만이 허락된 공간은 어떤 건축이어야 할까. “건물 내부에서 구 형태로 넓게 파낸 중심부를 응시하면 넓게 펼쳐진 천공만 보일 뿐이다. 뚫린 천장은 육신을 태우고 고인을 애도하는 이곳에서 집중해야 할 부분이다. 영혼을 천공으로 내보내는 근간이기 때문이다.” 스페인 건축 사무소 +UdeB의 건축가 ‘호세 카스틸로’의 말이다. 그가 말한 넓게 파낸 천장 아래, 예배당의 아트리움에 분수대 없는 분수가 불규칙적으로 물을 뱉어내고 있다. 바닥에 물이 고여 있고 분수가 멈춰도 마르지 않는다. 광장처럼 넓게 뚫린 천장과 그 아래 분수가 생경하기만 하다. 마르지 않는 분수를 둔 건 왜일까. “태양에너지와 공기, 수증기가 대기에서 만나 비가 되어 내린다. 이렇듯 물은 지구에서 가장 생명력 있는 액체이며 분수는 영구적인 생명력을 의미한다.”

다른 한편에 이어진 높은 천장과 긴 복도는 납골당이 줄을 잇고 있다. 납골당 천장은 금속 트러스 구조다. 트러스는 부재가 휘지 않도록 접합점을 핀으로 연결한 골조 구조로, 삼각형 모양으로 결합한 것이다. 트러스가 납골당의 성스러운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역할을 한다. 천장을 따라 이어진 각 트러스 사이에 틈이 있다. 그 틈새로 빛이 새어 들어온다. 납골당에 길게 이어진 복도를 따라 직선의 빛이 연속적으로 들어와 장관을 이룬다.

한편 밖에서 본 건물의 모습은 무심하고 퉁명스럽다. 건축물은 부지의 경사면을 활용하여 사원 천장이 부지를 뚫고 나온 듯 보인다. 네 개의 긴 금속 기둥이 대각선 방향으로 부지에 박혀 있다. 이는 앞서 말한 트러스가 건물 외벽까지 이어진 것이다. 직선과 각이 주를 이루는 이 사원에 삶과 죽음이 공존한다. “사람들은 묵도한 후 떠난다. 유연한 건축 형태는 그들의 딱딱하게 굳은마 음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호세 카스틸로가 덤덤히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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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넓은 예배당 천장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다. 건축가가 말한 건물의 근간이다.

드넓은 예배당 천장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다. 건축가가 말한 건물의 근간이다.

  • 드넓은 예배당 천장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다. 건축가가 말한 건물의 근간이다.드넓은 예배당 천장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다. 건축가가 말한 건물의 근간이다.
  • 외부에서 바라본 모습이다. 건물은 직선으로 길게 뻗어 있고 날카롭게 각이 졌다.외부에서 바라본 모습이다. 건물은 직선으로 길게 뻗어 있고 날카롭게 각이 졌다.
  • 납골당이 모여 있는 복도 벽면에 직선의 빛이 연속적으로 들어온다.납골당이 모여 있는 복도 벽면에 직선의 빛이 연속적으로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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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을 통유리창이 감싸 마치 지붕이 붕 뜬 모양이다.

벽을 통유리창이 감싸 마치 지붕이 붕 뜬 모양이다.

구마 겐고의 가치

우드/파일 사원

구마 겐고가 독일 뮌헨 외곽 숲에 오직 명상을 위한 시설을 설계했다. 건축물은 오스트리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남부 바이에른 알프스의 휴양지에 지어졌는데, 규모가 크지만 숲이 울창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울창한 침엽수림으로 둘러싸인 거대한 숲에 위치한 본관은 영국의 저명한 건축가 ‘데트마르 블로’가 설계해, 1915년에 완공됐다. 2007년까지는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었지만, 이후로는 호텔 기능만 하고 있다. ‘우드/파일(WOOD/PILE)’이라는 프로젝트로 진행된 구마 겐고의 건축물은 넓은 호텔 내 하나의 시설물인 셈이다.

구마 겐고는 건물을 지을 때 지역과 문화, 장소성을 고려하여 자연 재료로 설계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따라서 그가 설계한 건축물은 대부분 목재가 사용된다. 우드/파일도 마찬가지다. 현장 인근에서 자란 전나무를 선별하고 30mm 폭으로 맷돌질해 나뭇가지 형태로 만든 다음 촘촘히 포개고 쌓아 건축했다. 1천5백50개의 목재가 건물의 정면과 천장을 덮고 있다. 지붕을 감싼 재료는 아연이다. 두 재료만으로 만들었다. 구마 겐고는 이 건물을 두고 “숲이 주인공이기 때문에 검소한 건물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한 바 있다.

건물을 검소하게 지었다는 의미는 재료의 종류와 가짓수로 알 수 있고, 숲이 주인공이라는 말은 내부가 훤히 보이는 통유리 구조를 통해 이해할 수 있다. 고요한 숲의 특성은 건축의 의도와 연결된다. 내부는 히노키탕의 내음이 풍기고, 견고한 강철 기둥이 전나무 판자에 가려져 규모가 꽤 크다. 다도와 명상이 이루어지는 공간은 구마 겐고만의 패턴, 즉 나무판자를 사용해 다이아몬드 형태의 틈을 만들어 햇빛이 들면 내부에 기하학적인 그림자를 만든다. “현대 건축은 지속가능한 재료가 아닌 콘크리트에 크게 의존한다. 그러나 목재는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지구 온난화를 방지하는 데 도움이 되며, 현지 목재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는 구마 겐고의 가치가 담긴 건축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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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바라보면 구마 겐고의 독보적인 건축 양식이 돋보인다.

멀리서 바라보면 구마 겐고의 독보적인 건축 양식이 돋보인다.

  • 멀리서 바라보면 구마 겐고의 독보적인 건축 양식이 돋보인다.멀리서 바라보면 구마 겐고의 독보적인 건축 양식이 돋보인다.
  • 내부 벽에 나무판자를 서로 교차시켜 입체감을 주었다.내부 벽에 나무판자를 서로 교차시켜 입체감을 주었다.
  • 천장에는 깨끗하게 다듬은 나무판자를 다양한 각도로 꽂아두었다.천장에는 깨끗하게 다듬은 나무판자를 다양한 각도로 꽂아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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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물의 형태가 넓고 길어 장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건축물의 형태가 넓고 길어 장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조각가의 건축 설계법

고테이 사원

일본 후쿠야마시에 위치한 덴신잔 신쇼지는 해양 사고로 죽은 고인을 기리는 사원이다. 산 중턱에 지어져 전체 부지가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사원을 지나쳐 산을 오르면 거대한 날갯죽지 같은 건축물이 나온다. 유연한 곡선을 이루는 고테이로, 사원 내 쉼터다. 박제된 사슴에 크리스털 방울이 맺힌 형상의 작품으로 유명한 일본 조각가 ‘고헤이 나와’가 설계했다.

고헤이 나와의 설계도면은 깊은 동굴에 물이 작게 일렁이는 사진이다. 유연한 곡선 형태의 지붕이 뒤집힌 배를 연상시키는데, 사원의 설립 목적에서 영감받아 건물을 배 형태로 디자인했다. 이 건물은 정통성을 띤다. 설계 초기 단계에 건축 재료로 나무, 돌, 물 같은 자연의 산물을 선택했고, 교토에 본거지를 둔 16대 장인의 손길을 거쳤다.

구조물에서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는 지붕에서 정성을 발견할 수 있다. 10cm 두께의 기와 34만 장을 아홉 단씩 겹치고 중간에 대나무 못을 박아 고정했고, 촘촘히 쌓은 기와들을 얇은 사와라 나무판 25만 장으로 둘렀다. 희고 연한 노란색을 띠는 사와라 나무는 개울이나 저습지에 많이 자란다. 습기에 강하고 방부와 방충 효과가 뛰어나 온습도의 영향을 피하기 힘든 곳에서 버티는 힘이 강해 주변 환경에 최적화됐다. 나무판을 두르는 작업에 일본 전통 건축법인 고케라부키 기술이 적용됐다. 고케라 부키 기술은 얇은 나무판을 겹쳐서 만드는 건축 방식으로, 우리나라 너와집의 지붕을 짓는 방식과 비슷하다. 기와를 단단히 고정하고 나무를 한땀 한땀 엮고 다듬는 과정에는 지붕 장인의 정성이 깃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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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물 아래에서 바라본 자연 풍광.

건축물 아래에서 바라본 자연 풍광.

  • 건축물 아래에서 바라본 자연 풍광.건축물 아래에서 바라본 자연 풍광.
  • 산과 이어진 다리 건너 보이는 건물이 마치 아름다운 오브제를 연상시킨다.산과 이어진 다리 건너 보이는 건물이 마치 아름다운 오브제를 연상시킨다.
  • 건물을 설계한 고헤이 나와의 설계 도면과 같은 이미지다.건물을 설계한 고헤이 나와의 설계 도면과 같은 이미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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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중심에 신을 모셔둔 가운데 종교적인 의미를 담은 거북이 동상을 바닥에 설치했다.

내부 중심에 신을 모셔둔 가운데 종교적인 의미를 담은 거북이 동상을 바닥에 설치했다.

빛의 미학

마루티 만디르 사원

인도 서부 마하라슈트라주의 고대 성지 나시크는 힌두교 순례지 중 하나다. 지역 특성상 신을 모시는 사원이 많다사. 원 중에서도 낙후된 마을 중심에 위치했던 황폐한 사원 ‘마루티 만디르’가 대담한 디자인으로 개조됐다. 마루티 만디르 사원은 나시크 주민의 사회문화적, 영적 삶에 영감이 되어온 곳으로, 이곳에서 원주민은 차가운 맨바닥에 앉아 사유하며 마음을 정화한 뒤 덤덤히 걸어 나간다. 모래바람 때문에 누렇게 변색되고 낮은 건물 사이에서 마루티 만디르 사원의 풍경은 생경하다.

이 무뚝뚝하고 이질적인 사원을 받치고 있는 건 처음 세운 주춧돌이다. 주춧돌 위에 새로운 철골 구조물을 쌓고 향토석으로 마감했다. 사원의 꼭대기로 향할수록 각진 형태가 계단식으로 이어지는데, 정갈하고 장엄해 보인다 . 그 장엄함은 내부에서 정점을 찍는다.

신을 모셔놓은 내부는 현지에서 직접 조달한 석재를 사용해 어둡고 칙칙하지만, 연속된 그물 무늬로 뚫린 석재 벽을 통과한 햇빛이 바닥에 그 형태를 수놓는다. 해가 저물수록 기하학적 패턴은 사원 입구에서 점차 중심으로 향한다. 기둥에 가린 부분과 사원 뒤편으로 이어진 복도에는 햇빛이 약하게 새어든다. 건축 스튜디오 ‘위드인 앤 위드아웃’의 건축가 ‘샤일레쉬 데비’는 아름다운 건축의 결정적인 요소는 빛이라고 했다. “신을 숭배하고 스스로 사유하는 공간은 고요를 유지해야 한다. 참배자가 집중할 수 있도록. 그리하여 우리는 마루티 만디르에 설치할 미적 장치로 빛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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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샤일레쉬 데비가 말한 아름다운 건축의 결정적인 요소인 빛이 들어온 모습이다.

건축가 샤일레쉬 데비가 말한 아름다운 건축의 결정적인 요소인 빛이 들어온 모습이다.

  • 건축가 샤일레쉬 데비가 말한 아름다운 건축의 결정적인 요소인 빛이 들어온 모습이다.건축가 샤일레쉬 데비가 말한 아름다운 건축의 결정적인 요소인 빛이 들어온 모습이다.
  • 주변 풍경과 이질감을 자아내는 사원의 모습.주변 풍경과 이질감을 자아내는 사원의 모습.
  • 복도에 드는 빛은 그리 강하지 않다.복도에 드는 빛은 그리 강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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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Editor 정소진

2022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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