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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잼인가, 노잼인가

웹예능 <바퀴 달린 입> 시즌1이 막을 내렸다. 가벼운 주제로 논리가 다소 떨어지거나 욕설 섞인 B급 토론을 벌이는데, 재밌다. 하지만 보고 나면 찝찝함과 쓸쓸함만 남는다. 유익한 정보를 얻지 못해 자책하면서도 다음 회차를 튼다.

UpdatedOn May 25,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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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 ENM에서 선보인 웹예능 <바퀴 달린 입>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바퀴 달린 입>에서는 개그맨 이용진, 래퍼 뱃사공, 유튜버 풍자, 곽튜브가 출연하여 ‘깻잎 논쟁’, 결혼 전 동거 가능 여부, 부모님이 반대하는 결혼 가능한지, 첫사랑은 잊을 수 있는지 등 SNS에서 뜨거운 여러 논쟁에 대해 편안한 자리에서, 편안한 방식으로 토론을 펼친다. <바퀴 달린 입>은 각 편마다 조회수 수백만을 기록할 정도로 누리꾼들의 각별한 관심을 받고 있다.

<바퀴 달린 입>이 웃음을 유발하는 이유는 뭘까? 심리학자들은 유머의 핵심 요소 중 하나로 ‘의외성’을 지적한다. 듣는 이의 기대를 무너뜨리는 정도가 클수록 웃음을 경험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바퀴 달린 입>은 웹예능이므로 소위 ‘선’을 넘나드는 것이 공중파 등에 비해 자유롭다. 한술 더 떠 아예 ‘무근본 무논리’를 표방하며 의외성을 전면에 내세운다. <바퀴 달린 입>은 정보성 프로그램이 아니다. 거창한 주제 의식을 갖춘 것도 아니다. 하지만 웃기다. 너무나도 웃기다. 무근본 무논리를 지향하는 만큼 의외성의 정도가 각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필자가 관심을 가진 부분은 따로 있다. <바퀴 달린 입>에 달린 댓글들을 보니 입맛에 맞는 듯, 맞지 않는 듯하다는 사람들의 의견이 보였다. ‘한창 재밌게 보고 있다가, 문득 현타가 왔다’ ‘내가 이런 유치한 드립에 웃었다니 가끔은 분하기도 하다’ ‘볼 때는 재미있었는데 막상 다 보고 나니 머릿속에 남는 건 없다’ ‘생각보다 웃기지 않았는데, 나도 모르게 이상하게 계속 틀어놓게 된다’ 등의 내용이었다. 마치 ‘좋아요’와 ‘싫어요’를 넘나드는 듯한 이 오묘한 반응들 속에 숨은 심리가 궁금해졌다.

재미있는 심리학 용어 한 가지를 소개할까 한다. 혹시 여가강박(Leisure Obsession)이라는 말을 들어보았는가? 여가강박이란 쉽게 말해 만족스러운 여가, 유익한 여가, 효율적인 여가, 거창한 여가를 보내야 한다는 집착, 고정관념을 일컫는 말이다. 여가강박 개념의 등장은 최근의 시대 흐름과 맞물려 있다. 첫째, 여가 시간의 확대. 주5일제를 넘어 주4일제 담론이 등장할 만큼 ‘워라밸’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실제로 개인이 누릴 수 있는 여가 시간 또한 늘고 있다. 둘째, 즐길 거리의 확대. 우리는 콘텐츠 범람의 시대를 살고 있다. 유튜브, 넷플릭스 등 영상은 물론 게임, 웹툰, 음악, 여행, 레저 등 온갖 즐길 거리가 넘쳐난다. 요약하면 여가를 즐길 시간도, 즐길 거리도 늘어났다. 그로 인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문제가 있다. 바로 여가 계획, 선택에 대한 부담감이다.

여행 계획을 짜본 적이 있을 것이다. 큰마음 먹고 연차휴가를 몰아 신청했다. 여행 가서 쓸 자금도 넉넉히 준비했다. 이제 여행 계획을 세울 차례. 하지만 왠지 부담스럽다. 내 소중한 휴가, 아깝게 보내지 않으려면 어디를 여행지로 골라야 할까. 여행 코스와 맛집, 교통편, 포토존을 미리 알아봐야 하지 않을까. 분명 여행은 최고의 여가 활동 중 하나이고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일이다. 하지만 여행을 가는 것과 여행 계획을 세우는 것은 다른 문제다. 전자는 즐겁지만 후자는 은근히 스트레스와 부담과 압박이다. 여가강박의 전형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꼭 거창한 휴가가 아니어도 된다. 여가강박은 퇴근 후 밥 먹고 씻고 침대에 누워서도 시작된다. 예를 들어보겠다. A는 늘 그렇듯 습관적으로 유튜브를 틀었다. 유튜브는 지난 시청 기록을 참고하여 추천 영상을 잔뜩 보여주고 있다. 무엇을 보면 좋을까 싶어 슥슥 스마트폰 화면을 밀어본다. 그러나 영 손 가는 것이 없다. 이번에는 넷플릭스를 켜본다. 메인 화면부터 드라마, 영화 등 콘텐츠가 빽빽하지만 무얼 시청해야 ‘유익’하고 ‘가치’ 있게 여가 활동을 할 수 있을지 몰라 시간만 보낸다. 이른바 ‘넷플릭스 증후군’이라 하는데, 이 또한 여가강박의 사례다.

이제 <바퀴 달린 입>에 달린 ‘오묘한 반응’에 답할 차례다. 원초적인 재미에 이끌려 시청하다가 ‘이걸 내가 왜 보고 있지?’ 하고 회의감이 들었다면, 그건 여러분의 마음속 깊이 자리한 여가강박의 영향일 수 있다. ‘여가는 유익해야 한다’ ‘여가는 활동적으로 보내야 한다’ ‘여가는 생산적이어야 한다’ ‘여가는 가치와 의미가 있어야 한다’와 같은 숨은 심리가 있을지도 모른다. 안 웃기면 꺼야 하는데 그렇게 못한다면? 이는 어쩌면 여러분의 본능은 즐기길 원하지만, 정작 냉철한 이성과 합리가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 인지부조화의 상황에 빠져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바퀴 달린 입>은 무근본 무논리를 표방하는 예능이다. 다시 말하지만 유머의 중요한 성립 조건 중 하나가 의외성인 만큼, 의외의 전개 상황을 극대화해 웃음을 유발하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그런데 무근본 무논리에는 ‘근본과 논리’로 대응할 수 없다. 맥락이 다르기에 말도 통하지 않을뿐더러 자칫하다 ‘갑분싸’된다. 무근본 무논리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똑같이 무근본 무논리로 대응하는 것뿐이다. 여가에 대한 잠재된 강박이 원초적인 유희를 억제하지 못하도록 하자. 원초적인 도전에는 원초적인 평가로 맞서면 그만이다. ‘웃긴가, 안 웃긴가.’ 단지 그것만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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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Editor 정소진
Words 허용회(심리학 작가)
Illustrator 송철운

2022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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