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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식의 시대

다시 경제난이다. 전 세계적인 인플레이션, 미국발 금리인상, 원자재 값 상승 그리고 물가 폭등이 잇달아 벌어지고 있다. 특히 음식값이 많이 올랐다. 하루쯤 점심을 건너뛸까 고민하게 되는 요즘이다. 더는 자장면도 칼국수도 만만하지 않다. 서울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를 체감했다.

UpdatedOn May 11,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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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옆에 떡볶이집이 있다. 나름 줄 서서 먹는 곳이다. 싸고 양이 많은 게 인기 비결이다. 가성비 때문에 가는 건 아니고 맛도 좋다. 적당히 매콤해 종종 먹는다. 오후 4시 정도에. 급한 일은 어느 정도 해치웠고, 편집장도 외근 나간 사이에 떡볶이를 먹으러 간다. 이 사실을 편집장이 몰랐으면 좋겠지만 ‘팩트’를 위해 어쩔 수 없이 고백한다. 양해 바람. 아무튼 떡볶이 값이 올랐다. 후배와 둘이 먹었는데 2만원이 넘었다. 우리는 대식가가 아니다. 생긴 것만큼 적게 먹는다. 만원 좀 넘게 주던 떡볶이 값이 ‘금볶이’가 되자 카드를 내밀다 욕이 튀어나왔다. 이제는 떡볶이도 함부로 먹지 못한다. 지금 후배는 김밥을 사러 갔다. 쌀값은 밀가루보다 덜 올랐으리라 기대하며.

뉴스는 정치권 이슈로 도배되지만 그보다 시급한 문제는 서민 경제일 것이다. 물가가 치솟고 있다. 말 그대로다. 코로나19 사태로 연 0.05%로 낮췄던 기준금리를 슬며시 인상하고 있다. 경제활동이 제약된 시기에 기준금리를 최저로 낮췄으니 인상은 충분히 이해된다. 하지만 지난 하반기 두 번에 이어 올 1월까지 세 차례 인상이 이어졌다. 그리고 4월 14일 오늘도 금리를 올렸다. 기준금리는 1.50%가 됐다. ‘영끌’해 아파트를 산 지인들이 걱정됐다. 미국의 금리인상이 계속될 전망이라는 뉴스를 보니 우리나라 가계 부채 문제가 심화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깊어지는 와중에 후배가 김밥을 사왔다. 한 줄에 5천원이란다.

집도 없고 빚도 없는 빈털터리 직장인이 체감하는 변화는 식대다. 외식비가 오르고 있다. 돌이켜보면 지난해에도 밥값은 찔끔찔끔 올랐다. 그전에도 외식비는 우상향이었다. 음식값이 낮아진 경우는 없다. 중요한 건 속도다. 물가가 천천히 오른다면 그럭저럭 나쁘진 않을 것이다. 다른 경제와 같은 속도로 상승한다면 먹고살 만한 상황이라 하겠다. 그러나 내 임금보다 빨리 오르면 화가 난다. 김밥을 먹으며 기분이 좋지 않았다. 어떻게 김밥 한 줄이 5천원인가? 속이 알차긴 하지만 그래도 이건 좀 너무했다.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3월 외식 물가는 1년 전보다 6.6% 인상됐다고 한다. 이게 얼마나 큰 수치냐면, 1998년 이래 가장 큰 상승폭이다. 지금 20대 중반은 이 정도 물가 상승을 경험해본 적 없다는 뜻이다. 단골 국밥집 가격이 9천원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얼마 전에 가보니 1만1천원이었다. 그렇게 든든하지도 않더만. 국밥 먹고 아이스아메리카노까지 풀코스를 거치면 점심 식대로만 1만5천원쯤 쓴다. 너무 적다고? 아, 나는 저녁을 두 번 먹는다.

왜 메뉴판에 가격을 덧칠했냐고, 왜 갑자기 국밥값이 트렌디하냐고 사장님을 나무랄 수 없다. 재료 값이 뛰었다. 채소나 육류 같은 신선식품의 가격도 덩달아 올랐기 때문이다. 수입 품목 가격 상승은 유가 상승을 원인으로 지목할 수 있겠으나, 국내산 신선식품 가격이 오르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 국내산은 국내에서 만들어서 비싸고, 수입산은 수입해서 비싸다는 논리다. 재료가 비싸니 음식도 비싸진다. 원재료비 상승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배달 비용도 인상됐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건비도 올랐다. 임대료나 광고료 등 그 외의 비용도 영향이 있을 것이다. 그러니 월급 빼고 다 오른다는 말이 나올 수밖에. 한숨만 나온다. 국가통계포털에서 3월 국내 외식 품목 가격 상승률을 찾아보면 이렇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갈비탕은 11.7%, 죽은 10.8% 올랐다. 갈비탕은 질겨서 안 좋아하고, 죽은 뜨거워서 잘 안 먹는다. 하지만 서민, 특히 내 주식인 햄버거(10.5), 자장면(9.1%), 김밥(8.1%), 치킨(8.3%), 떡볶이(8.0%) 값도 많이 올랐다. 칼국수 8천원, 자장면 1만원 시대가 열렸다. 타임머신을 타고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가, 2년 뒤에 칼국수 한 그릇 8천원, 자장면은 1만원이 될 거라 예언해도 아무도 안 믿었을 것이다. 하여간 믿기지 않는 일이 계속되고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날에도 뉴스를 믿기 어려웠다. 21세기에 유럽 한복판에서 전면전이라니. 만화에서나 나올 법한 소리 아닌가. 하지만 전쟁은 지속되고 있다. 전 세계 곡물 창고인 두 나라의 전쟁으로 밀 선물 가격은 지난해보다 무려 76% 상승했다. 밀가루와 옥수수 값의 폭등은 예상보다 심각한 결과를 초래했다. 떡볶이 값이 올랐다고 툴툴댈 것이 아니다. 아르헨티나, 페루, 쿠바는 극심한 인플레이션을 겪는 중이다. 재료가 없는 제빵사는 빵을 못 만들고, 비료가 부족한 농부는 농사를 포기했다. 식량을 생산할 수 없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주변 국가에만 영향을 끼친 것이 아니다. 바다 건너 다른 대륙에 치명적인 상황을 초래했다. 나는 패스트푸드를 덜 먹으면 되지만, 개발도상국 사람들 중 일부는 이 전쟁으로 직장을 잃고 재산을 잃고 기아에 허덕이기도 해야 한다. 전 세계 농작물 수확량이 50% 감소할 것이란 예측도 나왔다. 전 세계적인 식량난이 발생한다는 것은 기정사실이다. 그게 얼마나 심각한 일인지 아직 체감하지 못할 뿐이다. 어쩌면 그건 미디어가 제한된 그들의 이야기가 외부로 잘 알려지지 않는 개발도상국이기에, 소위 제3세계라 불리는 지역이 선제적으로 그리고 더 심각하게 피해 볼 것이기에 덜 다뤄지는 것일 수도 있다. 바다 건너 불구경이다. 통계를 보면 이렇다. 아르헨티나는 3월 한 달간 소비자물가가 6.7% 올랐다. 1년 전보다 55.1% 오른 수치다. 우리나라로선 상상하기 어려운 숫자다. 중동과 북아프리카 등 식량난을 겪는 국가에게 우크라이나 전쟁은 직면한 위협이다. 먹을 게 없다.

다시, 서울에서 한 주간의 식비를 계산해본다. 점심은 가볍게 먹었다. 분식이나 중화요리, 가끔 생선구이. 여기에 커피값을 더하니 하루 평균 점심값으로 2만원을 소비했다. 하, 일주일간 점심값으로 10만원을 쓰는 셈이다. 비싼 것도 자주 찾아 먹으니까 실제는 이보다 더 쓸 것 같다. 앞서 말했듯 나는 주전부리도 자주 하고, 저녁도 두 번이나 먹는다. 왜 두 번 먹냐고 묻진 말자. 프라이버시다. 도시락은 1만2천원 정도 한다. 여기에 배달비를 붙이면 1만5천원 선. 요즘 천원대 밥은 찾아보기 어렵다. 일주일에 한 번은 저녁으로 치킨을 먹는다. 서너 번 먹을 때도 있다. 치킨 값은 얼마 전에도 논란이 된 바 있다. 휘발유값처럼 오른다. 무슨 양념치킨도 시가를 따지나. 또 야근하는 전우들과 함께 식사할 때면 밥값이 더 든다. 가볍게 먹어도 5만~6만원 선이다. 술값도 아니다. 한 주간 회사에서 쓴 식대가 30만원 가까이 나왔다. 내 식대를 보고받은 편집장은 이해하지 못할 거다. 근데 나도 이해가 안 된다. 적게 먹었는데 왜 이렇게 돈이 많이 나갔지? 오르는 게 물가뿐이라면 우리도 당장 치킨 튀기고, 금볶이를 볶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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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조진혁
Illustrator 송철운

2022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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