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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변 백일장

천변을 걷다 문득 떠오른 아주 개인적인 이야기들. 세 명의 필자가 저마다의 천변을 말한다.

UpdatedOn May 07,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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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이 씨

어릴 때 개울가에 살았더랬지. 환경보호라는 말을 똥구멍으로도 안 듣던 과거여서 개울엔 컬러풀한 폐수가 흐르고 있었지. 나는 그곳에 종이배나 뗏목을 만들어 띄워놓고 순항을 기원하며 놀았지. 돌이켜보면 무슨 퍼포먼스냐 싶은데 물길 따라 배와 나란히 달리던 순간은 매 순간 흥미진진했지. 툭하면 쓰레기 더미에 걸려 침몰하는 내 선박을 양초로 방수 처리하고, 걸림돌을 피하도록 뱃머리에 동그란 범퍼를 대며 그 똥물가에서 시간을 잘도 죽였더랬지. 그러고 보니 ‘잼민이’ 시절에도 늘 혼자였구나. 난 어째서인지 승패가 갈리는 경기만 하면 갖은 웃긴 방식으로 졌는데 그래도 정신 못 차리고 어떻게 하면 더 기발하게 질까 연구만 하다 소외되었지. 또래 친구들은 승운이나 승부욕이 코딱지만큼도 없는 내가 재미없었겠지. 상관없었지. 혼자 개천에서 놀다 보면 어딘가로 흘러가던 내 조각배가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모험가의 탐험선 같았거든. 배가 개량된 뒤론 개천을 따라 너무 멀리 가버려 귀갓길이 깜깜해지곤 했지만 상관없었지. 그건 또 오디세우스의 귀환 쇼 같았거든―은 뭔 소똥 같은 소리야. 코흘리개 시절에 호메로스를 읽었을 리 없잖아. 어쨌거나 집에 오면 엄마에게 어디 갔다 이제 오냐며 등짝을 맞다가 맛있는 칼국수를 먹었지.

어릴 때 생각을 하니 지금 인생이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게 느껴졌지. 우이 씨, 하고 나직이 내뱉다 집 근처 우이천으로 산책 나갔지. 우이천 얘기하면서 우이 씨 같은 말장난만은 피하자고 다짐했건만 실패해버린 아재가 우레탄이 깔린 길을 우중충하게 걸었지. 우이천엔 원래 산봉우리가 떡하니 배경에 걸리는 특징이 있지. 굽잇길을 따라 배경 각도가 변하면 북한산 인수봉이나 도봉산 선인봉이 출현하곤 하지. 산과 물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우이천의 매력은 제법 감각적이지. 그런데 이 글을 쓸 무렵은 우라질 미세먼지가 경치를 너무나 이겨먹으려 드는 봄날이었지. 산이고 마운틴이고 야마고 나발이고 보이지 않았지. 우이 씨. 남은 천변 풍경이란 별다른 개성 없이 고만고만한 조경이긴 했지. 그나마 백로나 컬러풀한 원앙들이 노니는 걸 보니, 생태 하천을 내세우며 생명성 복원에라도 성공한 게 어디냐 싶었지.

그건 그렇고 무엇이 나를 재미도 감동도 없는 아재가 되게 만들었을까. 한 번 거슬러 가봐? 하는 심정으로 소귀처럼 생긴 도봉산 봉우리 어딘가에 있다는 물의 발원지를 찾아 연어 흉내를 내보기로 했지. 연어는 멋지게 하천을 거슬러 올라가지만 개뿔 내 워킹은 그냥 거슬렸지. 게다가 산속까지 가자니 길이 멀고, 최근 봄비 오는 날 펼친 슬랩스틱 몸개그로 갈비뼈에 금이 가 오래 걸을 보디감이 없었지. 몇 발짝 못 가고 머뭇거릴 때 갑자기 우이천 왜가리가 씨부렁거리는 환청이 들려왔지. 이봐,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가는 방법은 없는 거라고. 소귀에 랩하는 기분 들게 하지 말지. 듣고 보니 합리적인 충고 같아 나는 우이천변의 유명한 칼국수 가게 쪽으로 발가락 각도를 바꿨지. 그 식당엔 손님이 너무 많아 내 차례가 영영 오지 않을 것 같은 긴 줄이 있었지. 아득했지. 세월을 이따만큼 살아오는 동안, 친구들이 교수다, 부장이다, 대표다, 아빠다, 자기 자릴 만들어가는 동안 변변한 명함도 못 만든 자신이 문득 초라해 보였지. 스스로에게 힐링보단 힐난을 하고픈 기분이 되었지. 무명 작가 나부랭이로 옥탑방 책상에서 몹쓸 문장이나 써 재끼고 사는 일이 외로운 종이배 놀이처럼 여겨졌지.

하지만 난 여전히 이기고 싶지 않지. 내가 혼자 쓰는 글은 아직도 미지의 세계로 출항하는 재미가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저 졸졸 흘러내려갈 뿐 승패와는 상관없는 태도를 취하는 우이천이 좋아요 버튼을 누르는 것 같았지. 우이천을 친구로 추가하고 기분은 나아졌지만 난 개 끌고 나온 사람, 운동하는 사람, 자전거 타는 사람들에 섞일 패션은 아니라서 청둥오리들 곁으로 자리를 옮겼지. 한참 멍 때리다 보니 오리고기=맛있다=맛있는 건 칼국수. 이런 의식의 흐름이 지랄하더니 그 옛날 엄마가 끓여준 칼국수, 그 구수한 육수를 목구멍에 좀 다시 흘려봤으면 하는 빌어먹을 바람이 생겼지. 코로나 걸렸다가 회복된 뒤에도 가끔씩 따끔거리는 목구멍이 그 순간 최대로 따끔거렸지. 나는 허겁지겁 다시 칼국수 가게로 달려가 줄의 맨 뒤에 섰지. 인생도 그저 졸졸졸 흘러가는 것이라면 아무리 늦어도 언젠가 내 차례가 오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말이지.
WORDS 박상(소설가)

탄천소고(炭川小考)

의무경찰로 군 복무했을 당시, 부대가 송파구에 있었다. 도심 속에 있어서 좋았나? 그렇지 않았다. 괴리감이 컸으니까. 혼자서 섞이지 못하는 느낌이 들었으니까. 그때의 기억 하나를 꺼내야 한다면 나는, 부대 코앞에서 흐르던 탄천을 따라 매일 아침 구보했던 일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뛰는 게 세상에서 제일 싫었으니까. 덩달아 탄천을 싫어했다. 이른 아침의 창백한 강물과 그것을 따라 걷거나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 그 풍경을 보면서 내가 흐르는 시간과 그들에게 흐르는 시간이 서로 섞이지 않는 기분을 가장 싫어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숨이 차오르고, 남들보다 뒤처질까 봐 마음 졸이면서 탄천이 흐르는 방향으로 뛰어야 했던 그 시간 속의 각인이다. 축축한 아침을 맞이하고, 상쾌함 대신에 달리는 일마저도 실패를 겪어야 했던 탄천에서의 씁쓸했던 시간은 오래도록 내 안에 새겨져 있었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났을까. 우리는 자전거를 타고 한강을 달렸다. 목적지는 정해두지 않은 상태였다. 어디서 출발했는지도 모를 만큼 즉흥적인 일이었으니까. 한참을 달렸다. 달리는 동안 우리는 서로를 앞지르고 뒤따르며 말없이 페달을 밟았다. 그게 좋았다. 말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그리고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다는 게. 너는 자전거를 멈춰 세우며 말했다. “탄천이야. 탄천까지 왔다.” 나는 생각지도 못한 단어를 들어 깜짝 놀랐다. “여기가 탄천이라고?” 탄천이라는 이름에 반응해버리고야 만 것이다. 몸속 깊숙이 저장되었던 어둡고 흑빛 돌던 그 시간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이제 여기서 구보하는 의무경찰들은 없겠지. 그때의 부대가 이전했기 때문에. 그러나 아침을 가로질러 탄천을 뛰던 그때 그 시간을 떠올리는 사람들은 어딘가에 있겠지. 그 시간을 떠올리며 가끔 숨을 헐떡이고, 헛구역질이 나올 것 같은 과거에 멀미하는 사람들도 있겠지. 나처럼. 내 앞에서 말없이 달리던 그 선임처럼. 내 뒤에 누군가가 있어서 다행이란 생각을 심어준 뚱뚱한 그 후임처럼. 벤치에 앉아 이런저런 떠오르는 얼굴들을 세어보다가 친구에게 그만 돌아가자고 말했다. 그는 얼마나 더 갈 수 있을지 궁금하다고 말했지만, 그 궁금함을 간직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고 헐떡이는 숨을 참으며 말했다. 나는 탄천을 걷고, 천변 풍경을 바라보며 캔맥주를 마시거나, 잠깐 마스크를 벗고 사진을 찍는 사람들과 섞여 있었다. 우리의 시간은 강물이 흐르는 방향처럼 곧이곧대로 흘렀다. 물과 기름처럼 나를 갈라놓았던 탄천에서의 시간이 서서히 섞여들자, 과거의 기억이 물러지고야 말았다. 마치 과거를 용서라도 한 것처럼. 아침 구보에 힘겨워하며 매일 실패를 겪었던 그때의 나에게, 현실과의 괴리감 속에서 흔들리고 있었던 나에게, 이제 그만 돌아오라는 인사를 전하고 싶어진 것이다. 탄천에서의 마지막 기억은 그렇다.

가끔 시간의 행방을 찾고 싶을 때 강이나 바다에 간다. 뜻하지 않게 기억이 쌓여버린 곳도 있고, 그곳을 우연찮게 들어서게 되기도 한다. 강과 강이 이어져 흐르는 일을 생각한다. 내 기억 속에서 파다한 지난 시간들이, 삶을 궁금해할 때마다 서로 힌트가 되어주며 연결됨을 종종 느낀다. 정직한 강물을 곁에 둔 천변에 앉아서 우리 앞에 흐르는 이 시간을 실감할 수 있다는 것이 좋다. 무색한 시간 속에서 함께 출렁일 수 있는 것이 기쁘지 않니? 사실 기쁨과 슬픔은 하나의 물결에서 일렁였다가 다시 출렁이는 것이지. 내가 우연찮게 다시 탄천에 와서 그때의 시간을, 그때의 나를 용서하게 되는 것처럼. 기쁜 마음과 슬픈 마음이 하나의 강으로 흐른다. 우리가 지을 수 있는 모든 표정이 이 강변에 있다. 탄천을 거꾸로 돌아오면서 나는 오랫동안 곁을 떠나게 된 누군가를 배웅하고 오는 기분이 들었다.
WORDS 서윤후(시인)

돌아가는 청계천

그때는 노트북이 무거웠다. 두껍기도 했고, 발열도 심했다. 나중에는 배터리가 부풀었다. 과제용 폭탄 같은 것. 하여튼 노트북 가방에는 노트북 말고도 이것저것 잡다한 걸 많이 넣고 다녔다. 노트북 충전기랑 마우스, 지갑과 노트, 시집과 필통, 영화 티켓과 영수증 같은 것들. 지금은 다 사라지고 없는 것들을 한데 모아서 한쪽 어깨에 짊어지고 다녔다. 절름발이처럼 걸었던 것 같다. 노트북을 멘 쪽으로 몸이 기울어졌는데, 그래서인지 세상이 기울어져 보였다. 나는 유독 한쪽 편만 들었다. 청계광장의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작업했다. 노트북을 앞에 두고 딴생각을 오래 했다. 딴짓도 했다.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다 새벽이 다 되어서 일을 시작했다. 일이라는 게 대단한 건 아니었다. 포토샵으로 하는 간단한 작업인데, 양이 많았다. 시간이 많은 사람만 할 수 있는 일을 시간을 쪼개 했다. 마감을 미루고 미룬 다음 마지막에야 겨우 했다는 뜻이다. 나태해지지 말자는 좌우명이다. 근데 지금 이 원고도 미루고 미루다 쓴다. 사람 참 안 변한다. 작업은 새벽에야 끝나곤 했다. 하루는 날이 밝을 때까지 일했다. 출근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들 사이에서 노트북 가방을 메고 걷다 보면 위선자가 된 기분이 들었다. 취업도 못했는데, 이렇다 할 직업도 없는데. 그냥 앞으로 뭐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학생 신분이라는 게 불안하고 나른할 뿐이었다. 나는 거짓말을 잘 안 하는데, 그건 내가 진실되어서가 아니라 말수가 적어서다. 출근 인파를 피해 청계천으로 내려갔다. 오래 앉아 있었더니 걷고 싶었다. 평일 아침의 청계천은 무심하다. 조깅하는 외국인도, 산책하는 직장인도 없다. 관광객도 없고. 왜 여기 있는지 모를 사람들만 조금 보인다. 그때가 아마 삼일교를 지날 때였던 것 같은데, 청계천 풀숲에 서 있던 왜가리가 말을 걸었다. 무턱대고 말 건 것은 아니고, 눈이 마주쳤다. 왜가리가 먼저 쳐다봤다. 뭔 생각인지 알 수 없는 공허한 눈. 먹잇감만 찾는 그 눈이 살벌해서 나도 째려봤다. 왜가리와의 눈싸움은 처음이었지만 지기 싫었다. 더는 패배하기 싫었다. 그러다 왜가리가 ‘왜?’ 하길래 ‘뭐?’라고 답했다.

그 후로 무슨 얘기를 주고받았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그게 뭐 중요한가. 우리가 천변을 함께 걸었다는 것만 알면 된다. 왜가리는 수면 위를 소금쟁이처럼 통통 튀듯 걸었고, 나는 거북목에 등을 꼽추처럼 구부리고, 한쪽 어깨는 노트북 무게에 비스듬히 기운 채 절뚝거리며 걸었다. 자라. 왜가리는 나를 그렇게 불렀다. 자라는 건지 가라는 건지 생긴 게 자라라는 건지 알 순 없었지만 그것도 중요한 건 아니었다. 우리는 그 상태로 나란히 걸었다. 한참을 이동한 것 같은데 고개를 들어보니 겨우 관수교였다. 나는 서먹함을 없애려고 을지로3가에서 심부름하던 시절을 이야기했다. 엄마의 사무실에 가면 나는 신문을 펼쳐놓고 기사를 읽었고, 자주 못 챙겨주던 게 미안했는지 엄마는 탕수육을 시켜주곤 했다. 그때 먹은 탕수육은 요즘 것과는 달리 튀김이 바삭하고 소스는 새콤했다. 생각만 해도 군침이 돈다. 나는 지금도 공허할 때면 엄마 사무실로 돌아가 낡은 의자에서 지루하게 시간을 보내던 날을 생각한다. 하지만 그 사무실 터에는 고층 빌딩이 들어섰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사라진다고 얘기하는데, 왜가리가 날갯짓을 하며 인도로 올라왔다. 대뜸 날갯죽지를 내미는데 그냥 무시하기에는 나도 배운 사람이라 좀 그렇고. 가볍게 악수만 하려 했는데 그대로 왜가리는 내 손을 잡고 차로로 올라갔다. 그러자 청계천은 아스팔트로 덮이고 하늘에는 고가도로가 펼쳐졌다. 빌딩은 단층 상가로 바뀌고 앞에는 애완동물 가게들이 생겨났다. 가게 앞에는 새끼 토끼, 햄스터, 십자매, 이구아나 같은 것들이 전시됐다. 중학생 시절의 나는 심부름을 하고 엄마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에 한참을 애완동물 숍 거리에 머물렀다. 동물 구경이 좋았다. 새끼 토끼는 어찌 저리 예쁜 걸까. 십자매의 재잘거림은 음악 같았다. 다시 펼쳐진 애완동물 가게 앞에서 나는 엄마를 생각했다. 컴퓨터 앞에서 안경을 닦던 엄마의 모습. 그런 엄마 뒤에 앉아서 모니터를 지켜보던 나. 깜빡이는 커서의 무정함 같은 것들이 떠올라, 엄마에게 탕수육을 시켜달라고 조르고 싶어졌다. 그런 내 마음을 읽었는지 왜가리가 토끼 앞에서 군침을 흘렸다.
EDITOR 조진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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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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