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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치기 예능의 불편

공혁준표 웹예능 <생존남녀 : 갈라진 세상>이 관심을 끌고 있다. 이 블록버스트 웹예능은 남자팀, 여자팀으로 나뉘어 게임이 진행된다. 민감한 시기다. 성별 구도 게임에 대한 시청자 반응이 <가족오락관> 같지 않다. 왜 하필 지금, 남녀를 갈라야만 하는가? 시청하는 동안 재미와 불편함 사이를 오갔다.

UpdatedOn April 27,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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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금된 남성과 여성 10명. 이들은 고립된 공간에서 10일간 한정된 자원을 활용해 살아남아야 한다. 개인전은 아니지만 서로 협력하는 관계도 아니다. 성격, 직업, 취미, 라이프스타일 등이 각기 다른 이들이 유대감을 느끼는 건 ‘성별’. 10일이 지나고 남성과 여성 중 생존자가 많은 쪽이 상금 1억원을 받는다. 즉 개인전이자 팀 대항전인 셈인데 기존의 유사 예능 프로그램과 다른 점이 있다면 남성팀과 여성팀, 성별 대결이라는 점이다.

카카오TV 오리지널 서바이벌 예능 프로그램 <생존남녀 : 갈라진 세상(Gender Survival: Divided World)>(이하 <생존남녀>)의 설정이다. <가짜사나이> <파이트클럽> 배출선 CP와 <와썹맨> 이건영 PD가 연출을 맡았고, 화제의 웹예능 프로그램 <머니게임>의 출연자로 활약한 구독자 34만의 유튜버 공혁준이 기획한 프로그램이다. <머니게임>은 출연진을 극한으로 몰아넣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혐오와 갈등으로 돈을 벌던 그 콘텐츠 맞다. <생존남녀>는 부제에서 볼 수 있듯 대놓고 세상을 성별 이분법으로 갈라버린다.

<생존남녀>는 프로그램 론칭 첫 주 만에 2백50만 조회수를 기록하며 화제의 중심이 됐다. 카카오TV와 공혁준 유튜브를 통해 공개된 1~4회 통합 조회수다. 사람은 극한에 몰리면 본성이 드러난다고 한다. (모든 예능 프로그램에 연출과 대본이 있을 거라는 합리적 가정을 배제하면) 이 프로그램에서는 참가자 10명의 밑바닥, 날것 그대로의 모습을 접할 수 있다. 살아남고자 상대에 대한 혐오를 필터링 없이 쏟아내고, 이는 제작진이 딱 원하던 ‘편집 포인트’가 되어 세상에 자막과 편집을 통해 드러난다.

실제로 <생존남녀>는 참가자 신청을 접수할 때부터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받았다. 프로그램 방송 전 참가자를 모집하는 게시글이 올라온 소위 남초 커뮤니티와 여초 커뮤니티 반응을 두루 살펴봤다. 특정 성별이 몰린 커뮤니티라고 해서 반응이 다르지는 않았다.

“왠지 뇌절 느낌인데” “어그로는 오지게 끌리겠네” “포스터에 치트키 박아놓고 시작하네”와 같은 반응 외에도 “그래도 재미는 보장될 듯” “관찰 예능보다 이런 게 재밌더라” “난 기대되는데 넌 보지 마라”와 같은 반응이 오갔다. 그리고 ‘보겠다’는 사람들이 조회수 2백50만을 만들어줬다. 대망의 1화가 공개된 01날, 한 누리꾼은 “느슨해진 남녀 갈등에 긴장감을 더해줄 콘텐츠가 나왔군요”라고 감상 평을 남겼다. 그 말대로 프로그램 리뷰를 빙자한, 보다 자유롭고 노골적인 남혐과 여혐의 세계가 열린 것이다.

1화에서 제작진은 출연자에게 자기소개를 시키고 어느 쪽 팀이 더 많이 살아남을 것 같은지 묻는다. 그야말로 ‘답정너’ 그 자체인 질문이다. 이런 프로그램에 출연해 전 세계 불특정 다수에게 얼굴을 팔고 상금을 받길 원하는 사람 중 어느 누가 상대 팀이 살아남을 것 같다고 하겠는가? 출연자의 답변은 결국 제작진이 만든 혐오의 프레임 안에서 맴돌 뿐이다. 다음은 출연자 답변 중 일부다.

출연자 A “여자팀이요. 남자들이 확실히 냄비 같은 성향이 강하다고 해야 되나? 감정에 불타서 분노 조절 장애 같은 행동 양상을 많이 보이는 것 같고.”

출연자 B “남자팀이죠. 이건 무시하는 게 아니라 군대 경험을 무시할 수가 없어요. 온실 속의 로즈메리 같은 분들은 힘들 수 있죠.”

예상대로 프로그램 공개 후 예능 리뷰를 빙자한 참가자에 대한 악플이 쏟아졌다. “OOO 님은 마치 남자에게 관심과 사랑 제대로 못 받아봐서 불만 가득한 사람처럼 말에 날이 너무 서 있으시네 ㅋㅋㅋㅋ” “OOO 씨 모르면서 아는 척하고 확신하는 모습에 벌써 빌런 등극 확정 같네용” “OOO 도대체 어떤 삶을 살았길래 분량 내내 대사들이 저따구냐 ㅋㅋㅋㅋ” 같은 반응. 문제는 이런 반응이 프로그램 리뷰에 그치지 않고, 실제 우리 곁의 남성과 여성에 대한 혐오로 확장된다는 점이다. 우려한 대로 일부에서는 “여자들은 걍 받는 거에 익숙함” “남자는 어쩌고 하더니 다 맞네”처럼 참가자 한 사람의 언행을 주변의 남성과 여성 전체에 투영하고 있다.

보는 사람만 본다는 온라인 막장 예능 프로그램이 돈을 많이 버는 건 당장의 내 삶과는 아무 상관이 없어 보인다. 다만 과거 tvN <더 지니어스>가 큰 인기를 누리며 여러 시즌이 나오자 다른 방송사에서도 우후죽순으로 비슷한 느낌의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웹예능 <머니게임>이 화제가 되자 너나 할 것 없이 극한 갈등 예능 프로그램을 만든 것처럼 성별 갈라치기가 돈이 된다는 걸 안 사람들이 이런 좋은 먹잇감을 놓칠 리 없을 것이다. <머니게임>이 현실 파국 게임이 된 것처럼 <생존남녀>도 현실 파국 게임2가 되지 않길 바랄 뿐이다.

화제가 되니까 프로그램을 만드는 걸 뭐라 할 수는 없다. 실제로 지난해 골프를 즐기는 MZ세대가 늘자 지상파, 종편, 케이블 할 것 없이 제작한 골프 프로그램만 10여 개에 달했다. 이제는 ‘사골’이 된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이나 먹방도 마찬가지. 다만 가뜩이나 남녀 갈등이 극에 달한 시기에 부채질하고 장작 넣고 꺼질세라 가림막 쳐가며 꺼지지 않는 불을 만들어야 했을지 타이밍이 아쉽다. 26부작인 <생존남녀>의 종영은 6월 3일로 예정돼 있는데, 그때까지 얼마나 많은 혐오 발언이 ‘참가자 욕’으로 포장돼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쏟아지고 공유될까.

극과 극은 통한다는 말에 깊이 공감한다. 혐오는 관심의 발현이라는 말에도 공감한다. 언어학자는 아니지만 누군가의 이성에 대한 혐오 발언을 뜯어보면 누구보다도 상대 성별에 대한 관심이 많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예능은 예능대로 즐기되, 한 사람의 행위를 전체 남녀의 그것으로 확장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는 게 중요할 것이다. “왜 혐오를 하느냐”라는 물음에 “쟤가 먼저 (혐오를) 시작했으니까”라는 답을 넘어서야 혐오의 무한 고리를 끊어낼 수 있다. 최근 BTS RM이 콘서트 엔딩에서 한 말은 지금의 ‘갈라치기 장인’들에게도 시사점을 준다. 물론 그들은 듣고 싶은 것만 듣겠지만.

“근데, 뭐, 신경 쓸 필요 있나요? 미워하는 건 그들의 자유고 권리지만, 저라면 그걸 트윗하거나 인터뷰에서 말하기보다는 카페에서 친구들이랑 대화하면서 잊어버리겠어요. 저는 어른이니까요. (중략) 헤이터들은 미워하라고 해요. 사랑하는 자들은 사랑합시다. 정말 사랑합니다. Pe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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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Editor 조진혁
Words 구희언(<주간동아> 기자)
Illustrator 송철운

2022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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