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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을 기억해?

첫사랑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를 좋아한다. 풋풋한 첫사랑의 과정이 현실적으로 담긴 <그 해 우리는>이 지난 1월 종영했다. 이런 드라마, 어디서 많이 봤다 했더니 <연애의 발견>이 그것이었고, 두 드라마가 첫사랑을 기억하는 우리에게 던지는 물음표와 우리를 공감시키는 방식.

UpdatedOn March 10,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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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교복 입고 하는 연애는 유독 간질거릴까. 손만 스쳐도 심장이 터질 것같이 뛰던 연애가 그립던 어느 날, 뒤늦게 드라마 한 편을 보았고 구멍 난 풍선처럼 푸쉬식 새어 나가던 내 연애 세포는 야무지게 테이프 칠 되었다. 드라마는 지난 1월 막을 내린 <그 해 우리는>이다.

전교 꼴등 ‘최웅(최우식)’과 전교 일등 ‘국연수(김다미)’는 ‘일등이 꼴지 공부시키기’라는 취지로 진행한 다큐멘터리 촬영을 통해 처음 만난다. 최웅과 국연수는 다큐멘터리 촬영 과정에서 서로 투닥거리다 결국 사랑에 빠지지만, 어이없는 순간에 어이없게 헤어진다. 그렇게 10년 후, 다큐멘터리는 유튜브의 희한한 알고리즘 덕에 역주행했고 두 사람은 성인 버전으로 재촬영에 돌입한다. 그러한 연유로 재회하는데…. 국연수는 회사 프로젝트에 미술가를 섭외해야 했고, 그 주인공은 다름 아닌 최웅이다. (우연의 연속이 비현실적이기보다 오히려 짜릿하게 다가왔다.) 그렇게 두 사람의 새로운 다큐멘터리가 시작된다. 그런데 이 드라마를 보면 볼수록 다른 작품이 자꾸만 떠올랐다. <연애의 발견>이다.

첫사랑에 대한 기억은 가슴에 이고 사는 짐짝 같은 거다. 첫사랑이 청춘이기에 가능한 거라면 청춘의 연애는 찌질함의 극치겠다. 돌이켜보면 끓어오르는 질투와 분노, 전쟁 같은 싸움, 감정의 밑바닥에 숨겨진 이기심과 집착을 겪었다. 그 끝에 남겨진 고통스러운 치유의 시간과 괴로운 마음은 덤이었고. 시간이 지난 후 이 끔찍한 과정을 똑바로 마주할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찌질한 시절을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 있기나 할까? 왜곡된 시선으로 볼 수밖에 없다. 우리가 <연애의 발견>과 <그 해 우리는>에 몰입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그래, 내가 저랬지. 맞어”라며 공감할 수밖에 없는 건 두 드라마가 첫사랑의 아련함을 미화하지 않기 때문이다. 첫사랑을 왜곡하지 않고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없는 우리를 대신해 두 드라마 직접 보여준다. 최웅과 국연수, ‘한여름(정유미)’과 ‘강태하(에릭)’는 질펀하게 싸우고 콧물 흘리며 질질 울기도 한다. 우리가 연애할 때 써내려 갔던 흑역사 같은 행위와 다를 바 없는 모습을 보인다.

여기서 또 하나, 우리가 두 드라마에 공감할 수 있는 이유는 기법 때문이다. 두 드라마는 다큐멘터리 기법을 차용했다. 1화부터 마지막 화까지 모든 장면이 다큐멘터리처럼 흘러가진 않는다. 다만 중간중간 삽입되는 인터뷰와 다큐멘터리적인 장면은 더욱 실화 같은 느낌을 더하고, 우리 내면에 자리한 콩알만 한 미련과 숨겨온 감정을 대신 표현해준다. 이를테면 한여름은 카메라를 똑바로 쳐다보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후회나 미련도 연애의 일부인 것 같아요”라고 말한다. 국연수는 유명인과 열애설이 난 최웅에 대한 질투를 “기분이 아주 거지 같다는 거예요”라며 시청자에게 말하듯이 읊조린다. 우리가 연애하며 말하고 싶었던 것, 표현하고 싶었던 것들을 두 드라마 속 주인공들이 ‘시청자를 똑바로 쳐다보며’ 대변해준다. 공감성 수치가 상승해 몰입도도 덩달아 오르지만, 어딘가 찔리는 마음은 피할 수 없는 인지상정일 테다.

여기서 생각해볼 점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성장했나? 누군가 내게 “먼저 좋아하는 게 얼마나 좋은 건데요”라는 말을 던진 적이 있다. 먼저 좋아할 줄 아는 마음은 성숙한 마음 상태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성숙한 마음을 갖추기 위해선 성찰의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는 첫사랑의 아픔을 겪고 난 후 충분히 성찰했는가? 이 질문을 두 드라마가 던진다. 주인공이 각자 이별을 스스로 치유하는 장면을 보여주며 말이다. 최웅은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몇 달을 식음 전폐하고 자신을 돌아본 후 비로소 미술가의 길로 접어든다. 한여름은 강태하에게 오열하며 매달리고 집으로 찾아가기도 한다. 그러다 슬픔을 극복하기 위해 뚜렷한 목표 의식을 가지고 꿈을 향해 달려간다. 그렇게 이들은 한걸음 성장한 후 몇 년이 지나 첫사랑에게 다시 제대로 고백한다. 격동의 시간을 지나 담담히 과거를 받아들였을 때 우리는 비로소 사랑에 집착하지 않을 수 있는 성숙함을 갖추게 된다.

결말에 다다르며 두 드라마는 헤어진 연인과의 재회에 대해 생각하도록 만든다. 첫사랑과 재회하는 상상은 늘 짜릿하지만 동시에 끔찍하다. 또 같은 실수를 반복할까 두려운 게 가장 큰 이유다. 과거에 대한 아련함과 현재 달라진 감정의 씁쓸함을 생각하면 만나지 않는 쪽이 좋겠다. 그럼에도 재회하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한 번쯤 들 때가 있다. 최웅과 국연수는 결국 사랑의 결실을 맺고, 한여름과 강태하마저 재회에 성공한다. 우리가 첫사랑에 대해 가진 왜곡된 시선을 풀어주기 위한 시도다. 내가 성장했다면 첫사랑도 성장하지 않았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과 가능성을 심어준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이 두 드라마에 매료될 수밖에 없다. 재회를 바라는 마음을 용감하게 전달하지 못하는 우리에게 용감하게 전달하는 방법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연애의 발견>은 종영 후 7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찾아 보는 드라마다. 지난 7년 간(내가 아는 한) 첫사랑에 대한 마음을 직관적으로 대변하고 내 생각을 관통했던 멜로드라마는 없었다. 자기들끼리 알콩달콩 사랑하는 것들엔 공감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찾아 헤매던 끔찍한 드라마, 즉 다시 말해 질척거리는 드라마 <그 해 우리는>이 내가 찾던 작품이다. 본 뒤로 건조한 삶에 낙이 생겼다. 지독한 사랑에 중독되고 싶으면서도 사랑 앞에 성숙해지고 싶은 우리의 모습을 발견하기 위함이었을까. <연애의 발견> 이후 7년 만에 제대로 몰입해서 볼 수 있었다. 결국 두 드라마가 사랑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이 때문이다. 청춘과 성장이 주된 소재, 첫사랑을 회고하는 방식, 객관적인 시각으로 풀어낸 서사, 덤덤하고 건조한 다큐멘터리적 시선. 이러한 기술들을 통해 우리가 사랑하는 방식을 가감 없이 보여줬고 공감을 끌어냈으며, 자신을 되돌아보게 만들었다. 첫사랑의 아련함과 씁쓸함을 회상하고 싶나? 그렇다면 두 드라마를 당장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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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정소진
Illustrator 송철운

2022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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