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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적 우월감

채식주의자들의 농성 기사에나 캣맘과 이웃의 다툼 기사에 달린 댓글들에선 ‘도덕적 우월감’이라는 표현이 보인다. 채식주의자도 캣맘도 아니지만 우리 역시 도덕적 우월감으로부터 자유로울 순 없다. 기사에선 도덕적 우월감을 느낀 경험을 토로한다. 그중 몇 명은 필자의 안전을 위해 익명으로 처리했다. 정말 솔직하게 썼다.

UpdatedOn August 31,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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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박과 쓰레기

캠핑장에서 남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를 치웠을 때? 갈 곳 없는 유기견을 입양해 잘 키웠을 때? 아니다. 굳이 의미 있는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사회가 정해준 최소한의 도덕적 테두리 안에서 행동하면서 미성숙 자아를 가진 다른 이들을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도덕적 우월감을 성취할 수 있다. 비교 대상으로 중국을 언급할 필요는 없다. 우리 주변을 쓱 한번 훑는 것만으로도 가능하다. 그만큼 지금의 대한민국은 도덕적으로 꽤나 오염이 진행됐으니까. 지난 7월 ‘차박’ 명소로 알려진 강원도 홍천강변 유원지 관련 뉴스를 본 사람이라면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금방 눈치 챌 것이다. 캠핑 온 야영객이 버리고 간 쓰레기가 강변에 잔뜩 쌓여, 그 양만 140톤이 된다는 뉴스였다. ‘캠핑장에 처음 왔을 때보다 더 깨끗하게 해놓고 떠나라’는 규칙을 배우는 초등학교 스카우트보다 무지한 행동이며, 친환경을 추구하는 전 세계적인 움직임에도 반하는 행동이다. 최소한의 양심만 챙겼더라면, 자기가 가지고 온 것만 그대로 가지고 갔더라면 저런 뉴스가 나올 일도, 내가 도덕적 우월감을 가질 일도 없을 것이다. 손 안 대고 코 푸는 느낌이 이런 거였구나.
WORDS 차쟁이(자동차 칼럼니스트)

좀 더 큰 꿈을 가지라고, 바보야!

나와 동생은 이란성 쌍둥이다. 그래서 그런가, 성격이 정반대다. 아이폰과 갤럭시, 세단과 SUV, 여름과 겨울 등 나의 대척점에 늘 동생이 있다. 이 차이점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냐 하면, 나는 다수의 해외여행 경험이 있고 동생은 전혀 없다. 내 주량은 맥주 500ml, 동생은 소주 2병을 너끈히 마신다. 나는 친구가 별로 없고, 동생은 무지하게 많다. 나는 생계 유지에 유용한 잔재주(글쓰기, 그림 그리기 등)를 부릴 줄 알지만, 동생은 그런 거 전혀 없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나는 지금 백수고 동생은 공무원이다. 이런 차이 때문에 어렸을 때 나는 동생에게 잔소리를 꽤 했다. “술 좀 그만 마셔라” “해외여행 좀 가라, 가서 넓은 세상을 배워라” 같은. 내가 마치 동생보다 인생을 더 많이 살았고 그보다 더 많이 안다는 것처럼 지껄였다. 그 중에 하이라이트는 이거다. 10여 년 전 공무원 시험에 몇 번 떨어진 동생에게 나는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해, 네 가슴을 뛰게 하는 걸 따라가라고! 좀 더 큰 꿈을 가지라고, 바보야”라고 했다. 푸하하! 그래서 그 결과, 지금 나는 왜 동생이 부러울까? 이거 쓰면서 나 왜 이렇게 창피하지?
WORDS 윤성중(프리랜스 에디터, 일러스트레이터)

착한 아이 콤플렉스 때문에

도덕적 우월감을 느끼기 위해 한 마지막 일은 아마도 학창 시절 담임선생님에게 ‘헌신적인 아이’로 보이기 위해 했던 노력이지 싶다. 착한 아이 증후군이라고 하는 것 같은데, 그 노력은 청소를 적극적으로 한다든지, 희생하는 일에 자원한다든지였다. 어른들 눈에는 그 노력이 얼마나 보였을지 모르겠다.
착한 청년이 되었을 땐 당시 ‘열정’ 문화와 맞물려 어디서든 유노윤호로 분했다. 그렇게 우월감을 노력으로 얻다 보니 어느덧 병이 났다. 공황장애로 응급실에 다녀온 이후, 나는 완전 다른 사람이 되었다. MBTI를 신봉하게 된 계기이기도 한데, 그냥 나답게 살기로 한 것이다.
종교인이 성추행을 하고, 사회복지 단체에서는 공금을 횡령한다. 욕심을 버리라던 스님은 풀소유를 하는 세상이다. 채식주의자 친구가 얄미워서 짜파게티 건더기 플레이크 속 고기를 빼고 먹는지 시험해본 적이 있다. 알고 보니 콩고기란다. ‘콩고기를 먹을 노력이라면 차라리 고기를 먹겠네’라고 생각했다. 아무튼 도덕적 우월감을 위해 노력하는 건 내게 너무 힘든 일이다.
WORDS 이종헌(영상제작자)

한강에서 달리다가

주 2~3회 한강공원에서 자전거를 탄다. 멀리서 보면 질서정연하고 평화로운 한강 자전거 도로. 하지만 그 도로 위에 서는 순간, 작지만 팽배한 도덕적 우월감의 행렬에 무임승차하게 된다. 대표적으로 “지나갈게요” 혹은 “지나갑니다”란 멘트가 있다. 최고 시속 20km/h를 권장하는 도로 위에서 예절이랍시고, ‘전 매너 있게 얘기했으니 이제 당신이 피하세요’를 포장한 멘트를 외치고 과속을 멈추지 않는 라이더들. 이들은 무리를 이루면, “길어요” “뒤에 더 있어요” 등으로 옥타브와 함께 겹겹의 도덕적 우월감을 쌓는다. 안전을 생각하며 헬멧까지 썼는데, ‘아이와 함께 학익진 라이딩 정도는 괜찮겠지’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보행자 도로 위 사람들이 방해될까 자전거 도로를 지배하는 러너들 역시 마찬가지. 그들과는 다른 방식이지만, 나 역시 도덕적 우월감이 가득한 라이딩을 피할 순 없겠다. 앞선 라이더를 기다리기도 하며, 조용히 노란 중앙선을 넘어 추월했으니 말이다.
WORDS 채희진(프리랜스 에디터)

농땡이 만렙들을 보면

사무실에 상사가 나오지 않는 일명 ‘무두절’에 다른 사람들이 땡땡이치고 노는 동안 혼자 회사에서 자리를 지키며 일을 처리해서 다 끝내고 났을 때 느끼는 묘한 감정이 바로 도덕적 우월감 아닐까. ‘나는 누가 보지 않아도 이렇게 스스로 일을 알아서 잘한다!’ ‘나는 농땡이 만렙인 너희들과는 수준이 다르다!’라는. 물론 ‘내가 회사에 출근해서 업무 시간에 업무를 했어’라는 게 어디 가서 쩌렁쩌렁 자랑할 수준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알다시피 옆자리나 앞자리, 뒷자리에 앉은 사람 중에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워낙 많지 않나. 상사가 자리에 없다는 이유로 반차도 쓰지 않고 점심 먹고 나서 3시간 넘게 사무실에 나타나지 않는 선배의 빈자리를 볼 때면 더 자주 느끼는 감정이다. 사무실에서 수시로 느끼는 도덕적 우월감은 내가 너무 호구처럼 일만 하나 싶을 때마다 자신을 다독이는 주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런 감정이 들 때마다 이런 생각도 곁들인다. 나는 저 연차 돼도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
WORDS 안호구(회사원)

비판 않는 저널리즘

기자를 빼놓고 도덕적 우월감을 논할 수 없다. 그들의 도덕이자 헌법은 저널리즘. 누가 감히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하는가. 그런데 요즘 들어 이 단어가 설득력을 많이 잃었다. 기자정신을 앞세워 특종이나 클릭 수 실적 쌓기에 돌입한 ‘소수’ 기레기들 때문이다. 이들은 주로 신문, 방송, 온라인 매체에 서식하며 가십과 루머, 자극적인 팩트에 집착한다.
기자라고 불리는 또 다른 집단도 있다. 소위 ‘에디터’라 칭하는 패션지 계열 월간지 종사자들. 잡지를 펼쳐보자. 젠더리스, 비거니즘, 동물권리 등의 키워드가 많은 걸 보니 이들이 사랑하는 도덕은 PC주의(Political Correctness, 정치적 올바름)다. 진심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좀 더 있어 보이는 화보, 더 많은 ‘좋아요’를 이끌어낼 칼럼에 대한 욕망도 살짝 엿보이는 건 기분 탓이리라.
월간지 업계의 이런 현상은 스스로 저널리즘을 갖다 버리면서 더욱 심화됐다. 저널리즘의 핵심은 비판 정신인데, 요즘 패션지에 그런 달달한 것이 남아 있을 리 없다. 말하자면 요새 잡지사란 패션/뷰티/ 라이프스타일 브랜드의 콘텐츠 하청업체. 그 와중에 PC주의는 잡지에 등장하는 제품을 더 있어 보이고 고귀하게 만드는 아이템이 되어준다.
아날로그와 친환경, 명상과 영적 치유가 가득한 유기농 로컬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기사, 탈꾸밈노동과 자기 몸 긍정주의로 가득한 플러스사이즈 모델의 화보, 늙음에 대한 긍정을 넘어선 찬사, 오리엔탈리즘으로 자국 문화를 바라보는 감각적인 시각. 새롭고 멋있고 트렌디하며 전복적인 패션을 쫓던 이들은, 이제 정의라는 아이템이 그렇게 가성비가 좋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WORDS 사양산업 종사자

인어공주가 너무해

요즘엔 말 한마디 하는 것도 쉽지 않다. 타인의 외모는 물론이고 특정 인종이나 국가 혹은 종교에 대해 언급하는 것도 조심스러워야 한다. 정치적인 올바름을 드러내야 ‘배운 사람’으로 인정받는 이 시대, 최근 엄청난 거짓말을 한 적 있다. 디즈니에서 <인어공주> 실사 버전을 제작한다고 했을 때, ‘에리얼’이 흑인 배우 할리 베일리라는 점에 솔직히 놀랐다. 아무리 할리우드가 PC주의에 민감하다 해도 이건 너무한 거 아닌가. 게다가 바다에 빠진 왕자를 에리얼이 구해주는 장면에서, 영화 속 에리얼은 무려 웨트수트를 입고 등장한다. 누군가 SNS로 이에 관한 의견을 물었을 때, 나는 “지금 시대상을 반영한 신선한 해석 같은데? 조개껍데기로 가슴만 겨우 가린 인어 공주는 남성적인 시각의 판타지일 뿐이야”라고 대답했다. 근데 사실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인어공주가 바닷속에 사는데 옷을 지어 입겠냐? 동심 생각해서 조개껍데기로 가린 거지. 지금 캐스팅은 개구리 공주 실사판 같으니까 안 볼래.” PC고 나발이고 인어공주는 예뻤으면 좋겠다. 진심.
WORDS 에리얼(회사원)

해변을 청소하다가 문득

4년째 서퍼로 살고 있다. 사계절 내내 파도를 탄다. 바다와 해변만큼 역동적인 동시에 차분한 놀이터가 없다고 믿는 자칭 비치보이다. 여름을 좋아하는 모두에게 해변은 공평한 곳이다. 하지만 그곳을 즐기는 방식과 시민 의식은 다르다. 여름 성수기 주말이면 쓰레기가 한 트럭씩 나온다. 해변은 아무나 가지만, ‘비치 클린’을 제대로 하는 건 소수다. 수많은 담배꽁초, 폭죽, 술병, 때때로 캠퍼들의 음식물쓰레기도 보인다. 비치 클린을 자처한 적이 있다. 이 바다를 즐기는 서퍼들 모두에게 함께할 것을 권했고, 어쩌다 여름의 중심에 ‘비치 클린 데이’가 생겨 벌써 3년째 1년에 두 번씩 수십 명이 모여 해변을 청소하고 있다. 현재 환경 관련 이슈가 뜨겁기도 하고, 시민 의식이 높아진 기분이다. 이런 걸 도덕적 우월감이라고 해야겠지.
WORDS 비치보이(프리랜스 에디터, 서퍼)

노노재팬하다가

“한국으로 돌아가.” 지금도 그날을 똑똑히 기억한다. 2019년 나는 일본 후쿠오카로 여름휴가를 떠났고, 공교롭게도 하카타역 광장에 도착하자마자 반한운동 무리와 맞닥뜨렸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시위야 보장된 자유지만, 어쩐지 그들의 시위 내용은 조금 억지스러워 보였다. 시끄럽고 쓰레기를 아무 데나 버리는 한국인들이 후쿠오카를 망치고 있다는 것. 당시 어눌한 한국말로 그들이 후창하던 것이 바로 “한국으로 돌아가”였다. (그들의 말대로) 한국으로 돌아온 나에겐 반일감정이라는 것이 싹트기 시작했고, 때마침 몇 달 후 불거진 일본의 수출규제 문제는 내 ‘심장’을 타오르게 했다. 누군가 ‘네가 쓰는 휴대폰에 일본 부품이 얼마나 들어가는지 아느냐’고 한다면 할 말 없지만, 그 이후 나는 일명 ‘노노재팬’에 이름을 올린 일본 브랜드 제품을 단 한 번도 구매하지 않았다. 아사히 맥주의 판매가 급락하고 유니클로 매장이 텅 빈 것을 보고 뿌듯해하기도 했다. 일종의 도덕적 우월감에 취한 것이다. 그래, 여기까지는 백번 양보해 내 ‘신념’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타오른 마음은 결국 과오를 낳고야 말았다. 신제품 소식을 발 빠르게 전해야 하는 잡지 기자이면서도 일본 브랜드 제품은 배제하려 한 것이다. 한번은 일본 제품 없이는 이야기가 성립될 수 없는 트렌드 분석 기사를 쓰면서도 의도적으로 일본 브랜드는 언급하지 않았다. 결국 알면서도 반쪽짜리 기사를 송출했다. 그것이 망각이었음을, 내가 하는 행동이 ‘애국’이 아닌 것을 깨닫는 데까지 꼭 2년이 걸렸다.
WORDS 애국자

사지 말고 입양해

개를 좋아한다. 자연스레 유기견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유기견을 임시보호한 적도 있고, 정이 들어 가족 삼기도 했다. 유기견과 가족이 된 이후로는 유기견 보호 및 입양에 더욱 활발히 매진하고 있다. 여기까지는 좋다. 나만 잘하면 되는 거니까. 남들에게도 권할 수는 있다. 내가 하는 활동이 좋은 것이긴 하니까. 그렇다고 남에게 강요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걸 알지만 때로는 잊는다. 유기견이 아닌 애견을 입양하는 걸 보면 눈살을 찌푸리기도 했고, 사지 말고 입양하라고 강요한 적도 있다. 각자의 사정이 있는 건데, 아는데, 알면서도 말했다. 내가 입양을 해서 그런 걸까. 애견을 사는 사람들에게 도덕적 우월감을 느끼기 위한 행동은 아니었을까.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반성했다.
WORDS 멍순이(회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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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EDITOR 조진혁
ILLUSTRATION 네르

2021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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