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검색

FEATURE MORE+

크래프톤, 자본주의인가 한탕주의인가

FPS 게임 ‘배틀그라운드’ 제작사 크래프톤은 7월 상장을 앞두고 몸집 부풀리기에 열중하고 있다. 기업 의장의 자서전을 출간했고, 라인프렌즈 및 손흥민과 협업을 선보였다. 최근에는 마동석 주연의 단편 영화도 공개했다. ‘배틀그라운드’의 새로운 맵을 주제로 한 단편 영화인데, 이쯤 되면 게임 회사가 아닌 엔터테인먼트 기업을 표방하는 듯하다. 달리 보면 상장 전 기업 가치를 최대한 높이겠다는 전략이 엿보인다. 이에 금융감독원은 크래프톤 상장에 제동을 걸었다. 하반기 주식시장 최대 관심사인 크래프톤은 기대만큼 성공할 수 있을까?

UpdatedOn August 11, 2021


주식판에 PDR(Price to Dream Ratio, 주가꿈비율)이란 용어가 있다. 주식의 전통적인 가치평가법인 주가수익비율(PER), 주가순자산비율(PBR)로는 해석할 수 없는 높은 주가를 설명할 때 사용하는 우스갯소리다. 대표적인 PDR 기업이 바로 테슬라다. 테슬라의 시가총액은 무려 7백26조에 달한다. 삼성전자보다도 2백50조원가량 높다. 물론 매출, 영업이익 등 실적은 삼성전자가 테슬라를 한참 상회한다. ‘언젠가 화성에 갈끄’라는 테슬라의 꿈에 사람들이 매료됐다는 설명 외에는 납득하기 어려운 주가다.

얼마 전 한국에서 테슬라의 계보를 잇는 또 하나의 PDR 기업이 등장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바로 게임사 크래프톤이다. ‘배틀그라운드’를 통해 종합 콘텐츠 기업으로 성장하겠다는 원대한 꿈을 품었다. 종합 콘텐츠 기업이 아니라 스타크 인더스트리를 만들어 아이어맨 수트를 입겠다고 해도 꿈은 어디까지나 꾸는 자의 자유니까 그러려니 할 수 있다. 문제는 시무식이나 회식 자리에서가 아니라 상장 과정에서 자사의 기업 가치를 부풀리는 도구로서 꿈이 사용됐다는 점이다.

이미 상장돼 있는 기업의 가치를 평가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시가총액이 곧 기업의 가치를 반영한다고 봐도 무리가 없다. 비상장기업의 경우는 어떨까. 통상 동종업계 상장기업의 시가총액을 바탕으로 기업 가치를 평가하는 상대비교법을 통해 기업 가치를 추론해낸다. 적절한 피어그룹(비교 회사) 선정이 적절한 기업 가치 평가와 직결된다고 볼 수 있다.

가장 빈번히 사용되는 비교가치법은 PER이다. 시가총액을 당기순이익으로 나누면 PER 배수가 나온다. PER 배수가 작을수록 시가총액에 비해 돈을 많이 버는 알짜 기업으로 볼 수 있다. PER 배수가 높으면 순이익 대비 시가총액이 높다는 얘기이므로 기업이 과대평가된 건 아닌지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다만 압도적인 시장 지배력, 탁월한 미래 성장성을 시장이 인정한 기업의 경우에는 PER 배수가 다소 높게 나오는 것이 일반적이다.

크래프톤도 상장 과정에서 PER 상대비교법을 통해 기업 가치를 도출해냈다. 문제는 비교 기업군이었다. 월트디즈니와 워너뮤직그룹을 크래프톤과 유사한 기업으로 슬쩍 끼워 넣었다. 이들의 PER 배수가 높은 것은 당연지사다. 크래프톤의 지난해 연매출은 1조7천억원으로 워너뮤직의 5조원에 크게 못 미친다. 한 해에 75조원어치를 파는 월트디즈니와 비교하는 것도 민망할 정도다.
실적보다 잠재 투자자들을 더 들끓게 만들었던 건 두 회사를 비교 기업으로 끌어안는 서사에 있었다. ‘배틀그라운드’로 영화도 만들고 여러 가지를 긍정적인 마음으로 잘해보면 우리도 종합 콘텐츠 기업이 될 수 있다. 과장을 좀 했지만 본질은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마동석 나온 단편 영화 찍는다고 크래프톤이 월트디즈니가 될 수 없는 건 명확하다. 졸업 작품 하나 찍어놓고 술자리에서 칸을 논하는 졸업 준비생과 큰 차이가 없다. 월트디즈니의 충격이 너무 컸기에 일렉트로닉아츠(EA), 테이크투인터렉티브, 액티비전블리자드 등 글로벌 게임사들을 피어그룹으로 넣은 것에 대해선 지적할 의지조차 잃어버렸다는 게 게임업계의 반응이었다.

논란이 거세지자 이례적으로 금융감독원이 크래프톤의 상장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금감원은 주가는 시장에 맡겨야 된다는 원칙을 따라 기업 공개 과정에서 웬만하면 태클을 걸지 않는다. 여기저기서 ‘오죽했으면’이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크래프톤 상장일 유통(거래) 가능 물량은 약 33%로 추산된다. 여기에 상장 이후 3개월이 지나 보호 예수(판매금지)가 해제되는 물량도 약 5.5%에 달한다. 자칫 잘못하면 ‘따상’을 바라보고 크래프톤 주주가 된 주린이(주식+어린이)들이 수익 실현을 위한 꾼들의 매도 물량을 받아내는 ‘쩌리’로 전락할 수 있는 구조다.

결국 크래프톤은 엔씨소프트, 넥슨, 넷마블 등 국내 대표 게임 3사에 펄어비스를 포함시켜 피어그룹을 재구성했다. 월트디즈니, 워너뮤직은 물론 2K, 블리자드 등 해외 게임사들의 이름도 사라졌다. 피어그룹 선정 이유에 대해 금감원이 자세한 설명을 요구하고 나서자 크래프톤은 마땅한 답을 찾을 수 없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일각에선 금감원의 개입이 기업들의 상장 의지를 꺾을 수 있다며 비판의 날을 세웠다. 본말이 전도된 것은 아닌가. 상장이란 서로 한탕 해먹고 빠지려는 도박판이 아니다. 기업은 투자금을 유치해 자본을 확충하고 주주는 기업의 성장을 도우며 이익을 나눠 갖는 것이 주식시장의 취지다. 빈약한 근거를 바탕으로 몸값을 부풀리는 기업을 견제하는 것 또한 자본주의의 논리다. 정보 비대칭과 비이성적인 인간의 한계로 인해 수요와 공급 논리만으로 자본주의가 돌아가지 않는다는 건 세계 대공황을 위시한 역사가 이미 증명했다.

디즈니 묻고 더블을 외치는 크래프톤을 옹호하는 이들에게 묻고 싶다. 과연 크래프톤을 파는 쪽이 아니라 사야 하는 쪽이었으면 마찬가지 목소리를 냈을지. 자본주의의 총아라고 하는 사모펀드와 벤처캐피털 등 수많은 투자 전문가들의 돈이 크래프톤에 묶여 있다. 적게는 수년, 많게는 10여 년 동안 버린 셈치고 묻어둔 돈이다. 크래프톤의 전신인 블루홀은 사실상 파산 예정인 기업이었다. ‘배틀그라운드’ 대박으로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찾아온 셈이다. 상장 규모에 따라 수수료를 받는 주관사(증권사)도 한 배를 타고 있다. 사모펀드, 벤처캐피털, 증권사 이 중 어느 누구도 크래프톤의 피어그룹 선정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는 내지 않는다. 코스피, 금감원이 언제부터 한 번 찔러나 보는 감이었나. 이것은 자본주의인가 한탕주의인가.

<에스엠라운지>의 모든 기사의 사진과 텍스트는 상업적인 용도로 일부 혹은 전체를 무단 전재할 수 없습니다. 링크를 걸거나 SNS 퍼가기 버튼으로 공유해주세요.

KEYWORD

CREDIT INFO

EDITOR 정소진
WORDS 신진섭(게임 칼럼니스트)

2021년 08월호

MOST POPULAR

  • 1
    올가을 한정판 아이템들
  • 2
    가을에는 골드 주얼리를
  • 3
    Line Up
  • 4
    특별한 동맹 #미도 와 김수현
  • 5
    2022 F/W 트렌드와 키워드 11

RELATED STORIES

  • FEATURE

    스포츠가 지구를 지킨다

    곧 카타르에서 월드컵이 개최된다. 세계 최대의 축구 이벤트가 사막에서 개최되면 탄소가 얼마나 많이 배출될지 가늠조차 하기 어렵다. 스포츠 이벤트가 기후변화에 끼치는 영향은 상당하다. 가장 인기 있는 프로 스포츠, 특히 유럽 축구 빅리그는 스포츠 기후 행동 협정에 참여해 적극적인 친환경 정책을 펼치고 있다. 스포츠와 기후변화의 상관관계를 짚는다.

  • FEATURE

    아담은 바이러스로 죽지 않았다

    ‘로지’ 같은 가상인간이 계속 등장하지만, 정작 이들에게 관심 갖는 건 뉴스 기사와 미디어 광고뿐이다. 반면, 얼마 전 지하철 광고판을 점령했던 ‘우마무스메’ 캐릭터와 최근 세빛둥둥섬을 침몰시킨 ‘원신’ 게임의 압도적인 팬덤 규모를 보면, 2D 미소녀 캐릭터에 대한 20대 남성의 관심은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워 보인다. 가상인간에겐 없고 2D 애니메이션 캐릭터에겐 있는 콘텐츠의 힘은 무엇일까.

  • FEATURE

    고전적 독후감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정원

    가을이라 독서를 하자는 건 아니지만, 가을이라 괜히 고전소설에 눈길이 간다. 세 명의 에디터가 각자 고전소설을 읽고, 자신을 돌아본다. 가을은 성찰의 계절이다.

  • FEATURE

    고전적 독후감 #달과 6펜스

    가을이라 독서를 하자는 건 아니지만, 가을이라 괜히 고전소설에 눈길이 간다. 세 명의 에디터가 각자 고전소설을 읽고, 자신을 돌아본다. 가을은 성찰의 계절이다.

  • FEATURE

    이승우와 철학

    이승우는 한국 축구의 미래가 되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한민국 축구는 이승우를 통해 논의할 게 있다.

MORE FROM ARENA

  • LIVING

    [How-to] Double Clip

    그동안 주머니 안쪽에서 뚱뚱한 지갑을 주섬주섬 꺼내 들었나요? 폼 안 나게 말이죠. 좀 더 심플해집시다. 매끈하고, 가볍습니다. 브라스 소재로 중후한 멋도 납니다. 20장의 지폐와 더불어 6장의 카드까지 수납 가능해 '더블 클립'이라 불립니다.

  • FASHION

    CHECK, CHECK!

    네 가지 체크 패턴 아이템을 비슷한 듯 다르게 입는 법.

  • INTERVIEW

    엑스맨의 시작과 끝

    〈어벤져스〉가 막을 내린 시점, 마블의 또 다른 레전드급 시리즈 〈엑스맨〉도 피날레를 장식할 예정이다. 2011년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에서 찰스 자비에 역을 맡으며 10여 년간 프로페서 X를 연기한 제임스 맥어보이와의 만남은 그래서 더욱 의미가 깊다.

  • LIFE

    위스키 활용법

    하이볼로 제조되고 다이닝과 매치되는 다양한 위스키 활용법.

  • REPORTS

    솔직한 정우 씨

    정우는 자기 자신에게도,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런 척’을 잘 못한다. 스튜디오 문을 열고 들어와 다시 나가는 순간까지도 그는 시종일관 솔직했다.

FAMILY SI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