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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호러 리메이크

우려먹는 게 요즘 할리우드 트렌드라고 하던데, K-무비도 리메이크를 해봐야 하지 않을까. 현재의 시대상에 맞춰 되살리고 싶은 고전적 공포만 골랐다. 세 필자가 K-호러를 되살린다.

UpdatedOn July 30,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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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의 이중인간>

무덤에서 부활한 인간의 검은 욕망이 비트코인과 여성 연대로 각색됐다.

한국 최초의 공포 영화 전문 감독으로 꼽히는 이용민 감독은 한을 품은 처녀 귀신 대신 근대의 신문물과 과학을 접목해 새로운 차원의 공포를 만들어냈다. 그가 연출한 1974년 작 <공포의 이중인간>은 억울함을 풀어야 하는 원혼보다 인간의 탐욕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K-프랑켄슈타인’ 영화다. 내용은 이렇다. 비바람이 부는 어느 날 밤, 한 정신병원 연구실에서 죽은 자를 되살리는 실험이 한창이다. 정 박사는 조수들과 함께 간호사였던 박미련의 육체에 연쇄살인마의 영혼을 이식하려 하지만 실패한다. 그가 30년간 비밀 실험을 계속했던 이유는 전쟁 중 만난 일본군 오노가 죽기 직전 숨겨놓은 다이아몬드의 행방을 알기 위해서다. 한편, 죽은 줄 알았던 박미련은 살인마의 영혼이 깃든 채로 깨어난다. 다시 자신의 몸을 되찾기 위해 병원으로 돌아가고, 쫓고 쫓기고 죽고 죽이는 대환장 파티가 벌어진다.

<공포의 이중인간>은 1970년대라는 시대를 감안하면 굉장히 진보적인 영화다. 죽은 자를 되살리는 인체 실험을 소재로 삼은 것도, 여성의 신체에 깃든 남성의 영혼이라는 설정도 그렇고, 결국 여자가 여자를 탐하는 파격적인 연출까지. 2021년 리부트 버전에선 개봉을 위해 약간의 각색이 필요하다. 정 박사가 전쟁에서 만난 일본군이 숨긴 다이아몬드 행방을 알기 위해 실험한다는 설정은 2021년엔 이렇게 바꿀 수 있다. 요트에서 파티를 하고 놀다 익사한 비트코인 부자의 디지털 지갑 비밀번호를 알아내기 위한 실험으로 말이다. 극악무도한 연쇄살인마의 영혼이 깃든 여주인공은 지금 시대정신을 감안하면 캐스팅의 설득력을 갖추기가 어렵다. 따라서 한때 조직에 몸담았던 고독한 킬러 정도로 설정을 변주해본다. <낙원의 밤> 엄태구 느낌으로 누아르 요소만 보기 좋게 가미해서. 그러면 간호사 박미련의 몸에 영혼으로 들어갔을 때 폭력의 수위를 조절할 수 있다. 원작에서는 박미련이 정 박사 조수의 여자친구 옥경에게 욕정을 느끼는 장면이 등장한다. 이 설정을 조금 더 힙하게 살려서, 오히려 서로의 영혼을 알아보고 미련과 옥경이 사랑에 빠지는 결말도 괜찮겠다. 둘이 힘을 모아 비트코인 탐욕으로 미쳐버린 정 박사를 죽이고, 디지털 지갑 암호를 알아낸다. 여기서 부자가 된 두 사람이 몰디브에서 모히토 한잔하면서 끝나면 좋겠지만, 영화는 대중예술이므로 모방범죄의 우려도 고려해야 한다. 두 사람은 일론 머스크의 계략으로 비트코인에 물리게 되고, 결국 행복은 코인이 아니라 현실에 있다는 계몽적인 결말이 오히려 더 공포스러울지도 모른다. 일확천금을 노리고 싶은데 매일 성실히 살아야 한다는 결론만큼 무서운 일도 없으니까. 이렇게 각색을 하고 나면 캐스팅은 쉬워진다. 30년 동안 미친 실험을 계속해온 과학자, 정 박사 역할엔 배우 김상호가 적격이다. ‘죽어야 사는 여자’ 박미련 역할에는 요즘 최고의 폼을 보여주는 배우 전여빈을 적극 추천한다. 걸 크러시의 아이콘인 데다가 파격적인 캐릭터에도 걸맞는다. 옥경 역할에는 아름답고 당당한 캐릭터를 잘 살리는 고윤정이 좋겠다. 적당히 컬트적이고 굉장히 파격적으로 연출을 맡아줄 감독은 생선 인간의 슬픈 청춘 연가를 그린 <돌연변이> 권오광 감독이 좋겠다. 독특하고 이상한 이야기에서 힘을 발휘하는 그가 이용민 감독의 계보를 이어 <공포의 이중인간>을 리부트시켜주길 바란다.
WORDS 서동현(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이어도>

기후문제와 페미니즘. 시대의 화두를 안고 다시 태어난 2021년 <이어도>.

부산으로 여행을 가면 꼭 영도에서 하루를 보낸다. 2006년 영화제를 함께한 친구가 자신의 고향이라며 안내해준 것이 첫 번째 방문이었다. 부산은 해운대와 광안리 해수욕장밖에 모르던 나는 화물선이 바쁘게 움직이는 부산항을 바라보며, 이곳에 연고도 없는 조용필이 왜 그리 구슬프게 부산항으로 돌아오라 했는지 이해했다. 항구와 외진 섬 사이를 투박하게 이은 철교를 건너 영도에 도착했다. 산꼭대기부터 빽빽하게 쏟아지는 건물과 그림자색 하늘에 넋을 잃고 있을 때, 친구가 슬그머니 말을 걸었다. “삼신할매 전설이라고 아나?” 전설의 원안은 ‘영도 토박이가 이 섬을 벗어나 타지로 가면 3년 내로 망한다’는 내용이었는데 친구는 굳이 ‘영도에서 태어난 아이들을 지켜주는 할머니 신이 있는 것뿐’이라며 고쳐 덧붙였다. 좋았다. 어쩌면 그 말 때문에 매년 영도에 방문하는 것일지도 모를 만큼.

영도의 ‘삼신할매 전설’처럼 섬에 관한 이야기, 특히 섬과 여자가 얽혀 있는 이야기는 늘 미신적인 미스터리를 품고 있다. 1977년 김기영의 영화 <이어도>는 제주도의 민요 ‘이어도 사나’에 등장하는 설화 속 수중 섬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 ‘여자들만 살고 있는 섬’이라는 설정에 ‘이어도 출신 여성은 해녀가 되고, 이어도 출신 남성은 외지로 보낸다’는 미신이 더해지고, ‘외지의 남자가 발을 들이면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는 저주는 ‘외지인도 토박이도 남자라면 모두 죽는 섬’이란 공포로 연결된다. 자궁 모양의 섬 이어도에 정착한 여자들은 해녀로 물질을 하며 스스로 먹고살며, 가부장제의 종속을 거부하면서 여성의 몸이 가진 잉태라는 기능을 자연스럽게 욕망한다. 이 과정에서 한국 산업사회의 초고속 성장으로 인한 환경오염, 난개발을 남성성과 포개며 무속을 이용해 영화 속 남성들을 여성들의 번식 대상이자 도구로 희생시킨다.

기후위기 문제가 인류의 긴급한 해결 과제로 부상하고, 가부장제의 완전한 종식을 위해 페미니즘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는 지금, <이어도>만큼 시대에 어울리는 공포물은 없다. 굿을 통해 익사한 남성의 시신을 찾은 뒤 “이 시체는 누구 줄까!” 하고 섬뜩한 표정을 짓는 무녀(박정자)는 현대 한국 무녀의 얼굴을 대표하는 이용녀가, “몸은 썩어도 씨는 살아 있다!”며 그 시체와 관계를 가져서라도 아이를 잉태하고 싶어 하는 박 여인(권미혜)은 표독과 익살을 자유롭게 오가는 배우 김슬기가, 영화 속 설화의 주인공이자 화자이며 ‘이어도’ 그 자체인 술집 종업원(이화시) 역할에는 강력한 존재감과 절개를 지닌 배우 김태리를 떠올려본다. 시대와 싸우지만, 결국 내재된 가부장적 본능을 이기지 못해 섬의 저주로 비극을 맞는 천남석(최윤석) 역할은 어떤 배우가 해도 어울리겠지만 “지구가 절단난다! 바다가 썩고! 공기가 썩고!”라는 대사는 꼭 이제훈의 발성으로 듣고 싶다. 2021년의 <이어도> 속 여성들은 죽어서야 ‘원혼’이 되어 상대를 응징할 수 있는 공포스러운 환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를 타도하고 인식을 바꿀 수 있는 실존적 위협의 주체가 된다면 좋겠다. 한 폭의 붉은 치마저고리가 바람에 나부끼고, 짙고 두꺼운 해무 사이에서 하루를 꼬박 물 밑에서 버티고 나온 해녀들의 강인하고 질긴 욕망이 드러나는 순간, 두렵고도 희망적인 오묘한 공포가 지금의 관객들을 얼어붙게 만들 것이라 확신한다.
WORDS 복길(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육체의 문>

처녀들만 습격하던 슬래셔 무비의 살인마는 모두에게 평등한 죽음을 선사한다.

김기영 감독을 한국 영화의 컬트 괴인으로 떠올리는 건 너무 쉽고 시시하다. 당대의 흥행사로서 ‘신한문예영화’를 설립한 제작자 김기영을 살펴보면 훨씬 골치 아프고 재밌다. 1979년부터 82년까지, 매년 서너 편씩 개봉한 김기영 제작 영화들엔 멜로드라마뿐만 아니라 범죄, 무협, 전쟁, 공포 등 다양한 장르가 뒤섞여 있다. 나는 언젠가 돈벼락을 맞는다면, 이 시기의 작품들을 모두 수록한 신한문예영화 컬렉션을 호화로운 사양의 블루레이 한정판 박스 세트로 내는 상상을 한다. 누가 내줄 리 없는 물건을 죽기 전에 갖고 싶다면 직접 만드는 수밖에 없다. 1981년 작 <육체의 문>은 훔쳐왔을 제목과 풍기는 분위기로 에로물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한국에 몇 편 없는 정통 ‘슬래셔’ 무비다. 자신의 수제자이자 조감독 출신 이기환에게 연출 데뷔의 기회를 주기로 한 김기영 회장은 영화사의 기획전무로 앉혀둔 각본가 김용진에게 시나리오를 맡겼다. 그런데 완성된 영화는 온통 김기영의 취향과 흔적과 체취로 가득하다. 십몇 년 전 어느 날, 심야 케이블로 중간부터 영화를 본 내가 이건 아무리 봐도 김기영의 영화가 틀림없다고 느껴 찾아본 결과, 그가 바로 제작자였음을 알고 경악했을 정도니까. 

 

과거 서양 슬래셔물의 처녀들이 주로 시골의 한적한 호수나 수상한 별장에 가서 섹스하다 죽는다면, K-슬래셔는 서울로 상경한 가출 처녀들이 결혼하려다 죽는다. 자유연애와 수지 타산적인 성생활을 즐기던 미용학원 동기들이 취업과 동시에 결혼하면서 애인을 차고 과거를 지우기로 한다. 그런데 이들 중 한 친구가 신혼 첫날밤, 처녀가 아니라는 이유로 남편에게 살해당하고 남자 역시 투신자살을 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문제는 법의학 수사 연구실에 옮겨놓은 이 남자의 시체가 어째선지 되살아나 남은 여자들을 차례차례 살해하러 나타나는 것이다. 지금 시각에서 젠더 감수성은커녕 완전히 시대착오적으로 보이는 영화는 더 황당한 결말을 향해 폭주한다. 좀비도 악령도 아닌 살인마에게 주인공 여자마저 끝내 살해당한 직후, 이걸 숨어서 지켜본 남자 애인 녀석이 갑자기 관객을 향해 메타적 일갈을 날리는 것이다. 대략 남자의 순정을 짓밟으면 이렇게 혼쭐이 난다는 정신 나간 경고인데, 괴작과 쓰레기의 모호한 경계에서 다만 한 문장의 대사가 나를 붙잡았다. 그건 남자 관객을 향한 경고였다. “여자는 유행을 따르니까 신식이지만, 남자는 구두쇠니까 구식이라고! 남성 여러분~, 착각 마시도록!”

40년 전의 괴작을 리메이크하고픈 이유는 이 대사가 마치, 세상 모든 것에 ‘가성비’를 따지는 동시에 치졸한 젠더 갈등을 반복하는 요즘 세태를 예언한 듯 느껴지기 때문이다. 김기영의 세계는 사랑과 섹스 같은 인간의 원시적인 본질을 위협하고 파괴하는 현대 문명에 대한 공포다. 인간과 인간 사이 자연스런 관계마저 경제적 논리에 좌우하도록 몰아가는 자본주의의 병폐 말이다. 자, 2021년판 신세기 <육체의 문>에선 이성애자는 물론 성적 지향이 LGBTQ 중 뭐든 간에, 상대방의 순정을 짓밟은 죄가 있는 자 모두에게 평등한 죽음이 온다. 여혐과 남혐을 넘어, 인간 자체를 혐오하는 살인마로 업그레이드하자. 신인 배우를 기용하되, 원작에서 편협하게 희생된 주인공이었던 김해숙 배우님이 이번엔 살인마를 맡으면 좋겠다. 결말에 관객을 향한 메타 발언도 반드시 되살려야 한다. 그러나 겨우 나 정도의 작가가 어찌 감히 이 작품을 각색할 것인가. 신한문예 ‘스튜디오’를 설립하여 기획전무 자리에 앉혀주지 않는 한은… 못 쓰겠다.
WORDS 박수민(시나리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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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EDITOR 조진혁
ILLUSTRATION 유재형

2021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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