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검색

FEATURE MORE+

The Critique

폴 형제의 불쾌한 도전

제이크 폴과 로건 폴 형제는 격투계 이슈 메이커다. 본업은 유튜버다. 웃기는 영상으로 대형 유튜버가 된 폴 형제가 이번에는 복싱 선수에 도전했다. 그들은 이미 유튜브에서 슈퍼스타지만, 장기적으로 콘텐츠를 생산하고 유명세를 이어가려면 새로운 캐릭터가 필요했다. 그리고 스포츠 선수만큼 적합한 것은 없어 보인다. 인기 유튜버 형제는 어떻게 복싱계와 종합격투기계를 뒤흔들 수 있었는지 그 히스토리를 짚는다.

UpdatedOn July 21, 2021

/upload/arena/article/202107/thumb/48568-459889-sample.jpg

한국 시각 6월 7일 저녁 7시경, 필자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한 복싱 매치의 영상을 틀었다. 플로이드 메이웨더 주니어와 로건 폴의 경기. 복싱 역사상 최고의 챔피언 중 한 명과 인터넷 역사상 최고의 유튜버 중 한 명이 벌이는 빅 이벤트였다. 이미 그날 오전 10시경 벌어진 시합이지만 업무가 바빠 퇴근 이후에야 볼 짬이 났고, 그동안 격투 커뮤니티나 스포츠 뉴스를 클릭하지 않기 위해 무진 애를 써야 했다.

영상이 재생되고 마지막 8라운드가 마무리되기 전까지 내가 기대했던 것은, 당연히 플로이드 메이웨더가 ‘건방진 일반인’에게 복싱 한 수 제대로 가르쳐주는 장면이었다. 킥복서 나스카와 텐신에게 그랬듯이 말이다. 로건 폴이 얼마나 유명하고, 키가 크고, 근육질에 체급도 더 높은 데다, 운동 경력이 얼마나 되든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무술이란 본래 자신이 수련한 만큼 피지컬이 우위인 상대를 이기기 위해 고안된 것이며, 실제로 작은 체구의 고수가 몸집이 큰 일반인을 가지고 논 사례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그런 나의 기대와는 다르게 메이웨더는 졌다. 처참하고 무기력한 모습이었다. 정확히는 무승부지만, 프로 경기 50전 전승 챔피언이 일개 유튜버를 링 위에서 때려눕히지 못한 이상 패했다는 데 누구도 이견을 달지 않는다. 경기 내용으로도 메이웨더는 전혀 위협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메이웨더를 위한 변명을 해보자. 둘의 키 차이는 15㎝, 몸무게 차이는 16㎏이다. 즉, 피지컬은 로건이 유리하다. 일반적인 복싱 시합과 달리 이번 시합은 계약 체중조차 정하지 않은 이벤트다. 나이 역시 44세 대 26세로 상당한 차이가 난다.

신체적 문제와 더불어, 이번 매치의 특별 룰도 문제가 심각했다. KO가 나오지 않으면 판정 없이 무승부가 선언되는 3분 8라운드 매치. 상기했듯 무승부란 사실상 메이웨더의 패배를 의미하는 것이었고, 따라서 경기 초반 젊은 로건의 공세를 쉽게 방어하던 메이웨더는 후반으로 갈수록 초조한 모습을 보이며 거꾸로 전진 타격을 시도했다. 그의 현역 시절 보기 어려웠던 진기한 모습이었다. 무승부가 메이웨더의 패배를 의미한다면, 거꾸로 로건의 승리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 의미를 잘 이해하고 있던 영악한 로건은 자신의 체격적 우위를 살려 ‘메이웨더화’하기 시작한다. 긴 리치를 이용해 펀치 거리를 내주지 않고, 조급한 메이웨더가 앞으로 나오면 순식간에 클린치해 시간을 끌어 자신의 체력을 회복하는 전략. 클린치 높이는 점점 낮아져 시합 후반에는 마치 레슬링의 태클을 연상케 했다.

로건의 영악한 방어에 메이웨더는 정타 한 방 제대로 맞출 수 없었고, 마지막 라운드가 무정하게 끝나며 심판은 두 사람의 손을 같이 들어 올렸다. 공식 결과는 무승부일지언정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팬은 몇 없으리라.

‘50-1’. 동생 제이크 폴이 경기 직후 인스타그램에 남긴 말이다. 메이웨더가 사실상 1패를 기록했다는 의미다. 여기에 반론을 다는 사람은커녕 전 격투 종목 관계자와 팬들의 탄식이 인터넷을 장식했다. 차라리 메이웨더가 시합 제의에 응하지 않았던 편이 더 나았을 것이다.

이 시합은 단순한 ‘챔피언이 아마추어에게 개망신을 당했다’는 이상의 의미가 있다. 우선 지난 4월 원 챔피언십 챔피언 출신이자 UFC 웰터급 파이터였던 벤 아스크렌과 로건 폴의 동생 제이크 폴의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스크렌은 제이크의 복싱 매치 제안에 응했다가 1라운드에 KO패 당했으며 이 시합은 무려 프로복싱 공식전이었다. 종목은 다를지언정 두 명의 프로 파이터가 두 명의 아마추어 선수에게 격투 시합에서 연속으로 깨진 것이다.

심지어 이번 시합 자체가 가진 위상, 판돈이 웬만한 격투 시합과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이번 시합에서 로건은 1,400만 달러, 한화로 약 156억원을 받는다. 공식전 0승 복서가 이만한 돈을 받는다는 소식을 접한 현 UFC 헤비급 챔피언 프란시스 은가누 왈, “우린 뭐가 잘못된 걸까?(What are we doing wrong?)”

‘폴 형제는 아마추어’라는 말에 반론도 있을 것이다. 물론 그들의 운동 경력을 감추려는 생각은 없다. 형 로건 폴은 고등학교 시절 미식축구·레슬링·아마추어 복싱 선수 경력을 보유하고 있다. 동생 제이크 폴도 마찬가지로 아마추어 복싱 선수 경력이 있었고 프로 복싱 무대에 데뷔해 3전 3승의 성적을 보유하고 있다. 그중 1승이 벤 아스크렌과의 경기다. 즉, 폴 형제는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인 수준의 평범한 유튜버가 아니라 격투기, 적어도 복싱에 상당한 재능을 보유한 준프로 정도의 실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메이웨더와 아스크렌에게 면죄부를 줄 수는 없다. 벤 아스크렌은 대학 시절 4년 내내 미국 NCAA 올 아메리칸에 4차례 선정되고 올림픽에 참가한 레전드 레슬러, 종합격투기에서도 21전을 치렀으며, 한 단체의 챔피언을 지냈다. UFC 마지막 2연패를 당하기 전에는 19연승을 거둔 초특급이다. 플로이드 메이웨더의 전설적인 업적은 여기서 읊어대는 것조차 지면 낭비이자 실례다. 은퇴한 몸이라곤 하나 격투계를 대표하는 둘이 잘해야 복싱 준프로 정도인 폴 형제에게 패배한 것은 개인적인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온 격투계의 망신이자 선수와 팬들에게 자괴감을 안기는 것이다. 당장 메이웨더부터 “로건이 생각보다 잘한다”며 허탈함을 숨기지 않았고, 앞으로 링을 완전히 떠나겠다고 선언했다. 폴 형제의 복싱 도전은 이제 ‘유튜버의 판돈 크게 걸린 이슈 몰이’ 따위는 한참 범위를 벗어났으며, ‘격투계를 덮친 거대한 파도이자 중대한 도전’이라고 해야 옳을 테다.

이제 무너진 자존심을 회복할 기회는 전 UFC 챔피언 출신 타이론 우들리에게 넘어갔다. 지난 6월 5일 우들리는 제이크 폴과 공동 기자회견을 열어 복싱 매치 합의를 알렸으며, 시합은 8월 28일, 한국 시간 기준 29일로 확정됐다.

타이론 우들리도 벤 아스크렌과 마찬가지로 NCAA 올 아메리칸 출신 그래플러지만, MMA 무대에서는 강력한 라이트 스트레이트로 상대를 쓰러뜨려 왔다. 즉 아스크렌보다 타격에 우위를 가지고 있으며, 따라서 이번에야말로 승리를 기대하는 팬들이 많다. 다만 단순한 타격력과 달리 복싱 기술 자체가 좋다고는 말할 수 없어 회의적인 시선도 적지 않다. 이미 벤 아스크렌과 플로이드 메이웨더와의 일전으로 폴 형제의 도전은 전 세계의 이목을 잔뜩 끌어모았으며,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격투계의 부담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 버렸다. ‘프로 격투가’들의 명예 회복이라는 중대한 임무를 짊어지게 된 타이론 우들리가 8월 말 희생자들의 복수를 할 수 있을지, 아니면 더욱 큰 불명예의 수렁으로 빠뜨리게 할지 지켜보자.

<에스엠라운지>의 모든 기사의 사진과 텍스트는 상업적인 용도로 일부 혹은 전체를 무단 전재할 수 없습니다. 링크를 걸거나 SNS 퍼가기 버튼으로 공유해주세요.

KEYWORD

CREDIT INFO

EDITOR 조진혁
WORDS 성우창(격투기 칼럼니스트)

2021년 07월호

MOST POPULAR

  • 1
    이승윤이라는 이름
  • 2
    이 여름이 가기 전, 신상 숙소 4
  • 3
    커피와 시계
  • 4
    수제 버거 베스트 4
  • 5
    JAY B가 꾸는 꿈

RELATED STORIES

  • FEATURE

    메타버스, 욕망의 CtrlC-CtrlV

    마크 저커버그는 페이스북이 메타버스 회사가 될 것이라 선언했다. 모바일의 용도가 소셜 미디어에서 메타버스로 옮겨간다는 주장이다. 저커버그는 메타버스에 관한 소설을 읽은 중학생 때부터 메타버스를 생각했다고 한다. 그럼 메타버스는 환상적인 곳인가? 그렇다. 가상현실은 환상을 충족시킨다. 누구나 될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 권력에 대한 환상이 충족되는 곳이다. 그럼 메타버스는 유토피아인가? 권력욕을 비롯한 현실 욕망이 복제되는 곳이라는 점에서 디스토피아에 가까울 것으로 보인다. 메타버스에선 익명으로 권력을 가진 사용자들이 어떤 해악을 저지를 수 있을까? 상상만 해도 기대, 아니 걱정된다.

  • FEATURE

    웃는 얼굴, 우상혁

    24년간 2m 34cm에 멈춰 있던 높이뛰기 한국 신기록이 올해 도쿄 올림픽에서 비로소 깨졌다. 우상혁이다. 1997년에 이진택 선수와 함께 얼어붙어 있던 그 기록을 1996년생 우상혁 선수가 부쉈다. 7월 1일에 올림픽 출전권을 획득한 우상혁은 자신 있었고, 그 자신감은 앞으로 달려나가며 그가 띤 미소에서 발견됐다. 한국 신기록이 깨지기까지의 과정, 우상혁이 도쿄 올림픽에서 보여준 퍼포먼스를 돌아본다. 기대되는 우상혁에 대해 말해본다.

  • FEATURE

    BOTTOM TO THE STAR

    BTS의 빌보드 장기 집권 소식은 이제 놀랍지도 않다. 오히려 당연한 사실로 느껴질 뿐이다. 하지만 팝 본고장인 미국 시장에서, 그것도 63년간 탄탄하게 이어져온 빌보드 차트의 시스템을 허문 아시안 케이팝 스타 BTS의 퍼포먼스를 의심하는 축도 존재한다. 인기의 본질을 단순히 팬덤의 든든한 지원만으로 한정하기도 하며, 오히려 미국 시장에서 타 팝스타에 비해 활동이 제한적이라는 사실은 간과한다. 하지만 결과보다는 과정에, 바닥부터 별의 자리로 오르기까지 요구된 긴 시간과 노력에 집중한다면, BTS의 성공이 얼마나 정당한 것인지 비로소 알게 될 것이다.

  • FEATURE

    위버스, 경쟁을 거부하는 1인자의 힘

    위버스는 아티스트와 팬덤 간 소통의 장 역할을 하는데, 이 소통의 장이 점차 확장되고 있다. BTS를 비롯해 투모로우바이투게더, 세븐틴, 그리고 하이브 소속이 아닌 매드몬스터나 최근에는 블랙핑크까지 품었다. 이외에 맥스, 뉴 호프 클럽 등 해외 아티스트까지도. 거대해지는 위버스는 단순히 입점 아티스트 수로만 승부하는 게 아닌, 다양한 굿즈를 판매하는 위버스샵, 아티스트가 라이브를 선보이는 브이라이브 등 다양한 콘텐츠를 내놓고 있다. 위버스의 몸집이 어디까지 불어날지. 또 몸집만큼 위대해지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위버스를 들여다본다.

  • FEATURE

    제임스 건의 도발적인 유머에 접속하기

    전작보다 나은 속편은 없다지만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다르다. 제임스 건이 감독을 맡아서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로 마블 영화 패러다임을 흔든 제임스 건은 오락 영화의 문법을 잘 이해하고 쓰는 감독 중 하나다. 영화에 꼭 메시지를 담아야 한다면 웃기고 세련되게 담아내는 것도 그의 힘. 가장 큰 힘은 특유의 유머다. 등장인물이 많아도 웃음으로 꽁꽁 묶어 이야기가 새어나가는 걸 막는다. 제임스 건의 웃기는 기술을 파헤친다.

MORE FROM ARENA

  • ARTICLE

    Shoes Scenes

  • REPORTS

    Body Guru

    도구는 필요 없다. 맨몸으로 근육을 키우는 효율적인 운동법을 소개한다. 크로스핏, 필라테스, 피트니스 세 분야의 전문가가 등과 허리 근육을 강화하는 기술을 전수한다. #맨몸운동 #크로스핏 #필라테스 #피트니스 #등근육 #코어근육

  • FEATURE

    논란의 키워드

    페이크 퍼, 안티 레더, 에코 백, 지속가능한 패션, 종이 빨대, 그레타 툰베리, 친환경 자동차 등 지금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주제들에 대한 짧은 댓글들.

  • INTERVIEW

    스니커즈 리뷰어 태거

    지금, 사람들은 인플루언서를 꿈꾼다. 매일 새로운 인플루언서가 발견되고, 그들의 영향력은 나날이 증가한다. 새롭게 등장하는 수많은 인플루언서 중 깊고 정확한 정보 전달을 책무로 삼은 이들을 만났다. 이미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한 전문가들이 인플루언서의 세계에 뛰어든 이유는 무엇일까.

  • AGENDA

    삼인삼색

    서로 취향이 다른 세 남자가 이달 가장 주목해야 할 차를 시승했다. 의견이 분분하다.

FAMILY SI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