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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세계

기존에 있던 작품의 세계관에 색다른 인물이 침투한다면? 생소하지만 어딘가 익숙하다. 새로운 우주를 상상하며 멀티버스로 떠나는 버스에 탑승했다.

UpdatedOn July 14, 2021


  • 임창정 유니버스에 강형욱을

    이른바 ‘임창정 세계관’을 이루는 3요소가 있다. 절절하고 애틋한 고음 발라드 멜로디, 사랑 앞에 ‘찌질한’ 남자의 후회가 담긴 가사, 거기에 ‘못난 임창정’, ‘가난한 임창정’, ‘깡패 임창정’, ‘울보 임창정’이 등장하는 뮤직비디오까지. ‘임창정 세계’의 주된 정서는 ‘소주 한 잔’이라는 회한의 발라드를 통해 전국의 노래방에서 약 20년간 계승되다가 결국 ‘내가 저지른 사랑’이라는 제목의 죄책감이 되었고 나는 이 전위적인 흐름에 감탄했다.
    최근에 낸 노래의 제목이 ‘하루도 그대를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와 ‘힘든 건 사랑이 아니다’라는 것을 알았을 때가 특히 그랬다. 한 남자의 자기 연민이 넘치고 흐르다 못해 제목마저 지나치게 구구절절해졌단 사실이 나를 미치게 만들었다.
    남자가 이별하고 후회하고 자책하다 아파하기를 무한히 반복하는 ‘임창정 유니버스’에 나는 강형욱 훈련사를 초대해봤다. 임창정이 ‘잊고 잊혀지고 지우고 처음 만난 그때가 그리워진 사람’이라고 하면 강형욱이 ‘으르렁’하며 심기 불편한 표정을 짓는다. 그러다가 “분명히 앞에서 놓아준다고 했죠? 그런데 지금 뭐하는 거야!” 하고 반말과 존댓말을 섞어 호통친다. 개한테 화를 내는건지 사람한테 화를 내는 건지 혼란을 겪던 임창정이 “나의 과거와 너의 지금과 너무도 같기에 두려워 ‘겁시나’”라고 말하고 강형욱 훈련사가 외친다 “똑바로 말해! 따라 해요! 겁.이.나!” 다시 당황한 임창정이 비장의 무기를 꺼낸다. “이렇게 취할 때면 꺼.져.버.린 전화를 붙잡고~ 여보세요 나야~” 임창정이 ‘떼창’ 마이크를 넘기지만 강형욱은 도리어 그 마이크를 빼앗아 임창정을 제압한다. “취하면 그냥 자! 더 좋은 솔루션은 술을 마시지 않는 겁니다!” 하고 호통친다.
    다 웃자고 하는 소리다. 두 세계의 충돌이 일어나기도 전에 아마 임창정 세계의 치명적 스킬인 ‘사나이 뜨거운 눈물’이 그들을 뭉치게 만들지도 모른다. 나약함으로 결집된 임창정이라는 세계의 속성은 생각보다 막강해서, 다른 세계의 도전과 방해에도 절대로 쉽게 흡수되거나 소멸되지 않을 것이다. 임창정의 노래를 들어본 사람이라면 모두 알고 있듯이.
    WORDS 복길(칼럼니스트)


  • <결혼작사 이혼작곡>×오은영

    오은영 박사의 유튜브 채널 ‘딩동댕 대학교’의 코너 중에 ‘우리 연애가 달라졌어요’라는 미니 코너가 있다. ‘연애톡강 특별편’ 세 번째, ‘연애할 때 우리가 하는 흔한 착각’ 시간에는 93년생 동갑인 여성 1명, 남성 2명이 출연해 OX퀴즈를 한다. 두 번째 문항이 ‘똥차 가고 벤츠 온다’라는 말에 대해 OX를 드는데 오은영 박사를 포함해 넷 모두 X를 든다. 다만 이유는 제각각인데, 오은영 박사는 이렇게 말한다. “자기 자신에 대한 성찰과 반성이 빠진 말”이라는 것. 이날 방송분은 거의 ‘너 자신부터 알라’로 귀결되는데, 오은영 박사의 상담실에 가야 할 사람들이 모인 드라마가 있다. 임성한 작가가 각본을 쓴 <결혼작사 이혼작곡>.
    <결혼작사 이혼작곡>의 세계에 오은영 박사가 들어가 OX퀴즈든 상담이든 진행한다 치자. 이보다 더 재미있는 예능은 없을 것이다. 조부모 세대부터 자녀 세대까지, 모두 상담이 필요하다. 신유신(이태곤)의 병원에 신설된 소아청소년 클리닉 초대 파트장으로 오은영 박사가 취임한다. 유신의 이중생활을 간파한 데 이어, 유신의 새어머니가 유신을 남자로 보는 시선을 알아차린 오은영 박사. 유신을 상담실로 부른다. 남편인 유신이 상담실에 갔다는 말을 듣고 오은영 박사에게 항의하러 병원에 온 사피영(박주미)은 오히려 수영장에서 회사 엔지니어부장 서반(문성호)과 스킨십하는 꿈을 꾼 사실을 털어놓는다. 오은영 박사의 신통력(?)을 믿게 된 사피영은 자기 프로그램의 작가 이시은(전수경)의 두 자녀 상담을 권유하는데….
    등장인물 태반이 진지한 얼굴로 거짓말을 하는 이 드라마에는 생글생글 웃으며 눈에서 화염을 쏘는 오은영 박사가 필요하다. 오은영 박사가 캐스팅된 멀티버스 드라마에서는 매 회가 경쾌하게 종료될 것이다. 그리고 모두 오은영 박사를 피해다니기 시작하는데…. 성장기에 겪은 문제의 영향은 성인이 된 뒤에도 쉽게 가시지 않는다. 드라마 속 청소년들은 말할 것도 없이 문제 상황이다. 드라마 마지막회 혹은 종영 뒤 스페셜에서는 이 세계의 창조자 임성한 작가도 오은영 박사를 만나면 어떨까. 시청률 보장됩니다.
    WORDS 이다혜(씨네21 기자)


  • ‘05학번 이즈 백’과 KCM의 웅장한 패션 세계

    ‘뽀대’와 ‘간지’로 패션계를 평정한 05학번 형들이 동대문의 심장 밀리오레를 중심으로 펼치는 멋과 사랑 이야기. 유튜브 채널 피식대학 안의 작은 유니버스, ‘05학번 이즈 백’은 싸이월드 미니룸 꾸미기를 ‘오늘의 집’ 인테리어보다 더 신경 쓰던 그때 그 시절 감성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아디다스 빨간색 저지 점퍼와 부츠컷 청바지를 즐겨 입는 용남이 형과 남성 패션몰 로로코 모델이자 페도라로 한쪽 눈을 가리는 혁이, 그리고 하라주쿠 간지 작살 쿨제이까지. 2000년대 초반, 일본에서 건너온 구제와 미국 직수입 브랜드들이 호황을 이루던 그 시절의 아이콘들이다. 누구보다 패션에 진심인 이 형들은 밀리오레에서 스타일을 전파하며 대한민국 멋의 세계를 평정했다. 본더치 모자, 부츠컷 청바지와 푸마 스피드 운동화, 이마를 훤히 넘겨 착용하는 비니와 얇디얇은 콧수염, 때로는 과감하게 몸에 딱 붙는 슬리브리스를 착용한다. 할 수 있는 모든 멋을 다 부려야만 인정받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마침 동시대 비슷한 패션 아이콘이 있다. 365일 슬리브리스 셔츠와 베스트를 착용하고, 여기에 굵은 체인 목걸이와 그러데이션 선글라스, 가끔씩 팔 토시로 변주를 주곤 했던 가수 KCM. 05학번 이즈 백과 KCM이라는 웅장한 유니버스의 만남을 생각하게 된 건 유튜브 권혁수 감성 채널에서 동대문 형으로 분해 애드리브를 늘어놓은 KCM 때문이었다. 쿨제이와 용남이 형을 섞어놓은 듯한, 친절하지만 어딘가 위협적인 말솜씨로 강매하는 연기를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해냈다. 게다가 지난 20년간 KCM은 패션에선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었다.
    이미 만난 것으로 착각할 만큼 유사한 이 두 세계가 만난다면, 민들레 영토와 조끼조끼를 잇는 세기말 감성이 빅뱅처럼 폭발할 거다. 용남이 형과 쿨제이, KCM이 운영하는 밀리오레 매장에서 ‘17인데 15까지 해주는 대신 현금을 내야 하는’ 풀 착장을 하고 함께 준코에 흥을 방출하러 가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웅장해진다. 마치 사탄들의 학교에 루시퍼가 등장한 것처럼.
    WORDS 서동현(칼럼니스트)


  • <마더> 김혜자에게 <미나리> 윤여정이라는 친구를 선물한다면

    엄마의 자식 사랑이 꽃길만 걷길 바라는 마음으로 앞서 안내하는 거라면, 할머니의 사랑은 손주가 걷는 길이 어디든 뒤에서 웃으며 따라 걷는 게 아닐까. 엄마는 자식이 잘되길 훈계할 때도 있지만, 할머니는 대체로 손주의 일이라면 웃어넘기니까. 의 마더(김혜자)는 아들 도준(원빈)을 향한 맹목적인 신뢰를 바탕으로 아들이 살인 사건 유력 용의자로 몰리자, 혈혈단신 범인을 찾아 나선다.
    그런 마더 곁에 순자(윤여정) 같은 친구가 있었다면 어떨까. 삶의 대소사를 함께하고, 다만 들어주고, 언제나 곁을 지키는 친구. 순자는 마더와 다르게 손주가 둘이나 있다. 호기로운 손자 데이빗(앨런 킴)이 오줌을 먹여도 혼내지 않고 “괜찮아, 나도 할머니 노릇 제대로 할게”라고 말하는 대인배다. 만약 마더와 순자가 친구였다면, 도준이 어렸을 때 박카스에 농약을 타 먹여 죽이고 자신도 따라 죽으려고 했던 일을 이야기하지 않았을까? 자식 있는 부모라면, 범죄라는 사실에 앞서 부모의 마음에 동감했을 테니까. 이후 별말 없이 삶의 모든 일을 공유하지 않았을까? 그러고는 마더의 말만 믿고 도준이 용의자로 몰리면 범인을 찾겠다며 동네를 함께 쏘다녔을 것이다. 마더와 순자는 방식은 다르지만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만은 같을 테니까.
    결정적으로 순자는 마더가 고물상 노인(이영석)을 찾아가는 길을 함께해 도준이 아정(문희라)을 죽이는 걸 본 목격자라는 걸 알았다면 어땠을까? 순자는 노인을 해하려는 마더를 말렸을까? 아들을 위한다는 겉잡을 수 없는 불길 같은 마음을 통감하며 범죄 사실을 은폐하는 걸 도왔을까?
    확실한 건 순자는 도준이 출소해, 마더와 효도 관광을 함께 갔을 것이다. 그리고 의 마지막 장면처럼 “나쁜 일, 끔찍한 일, 속병 나듯이 가슴에 꾹 맺힌 거, 깨끗하게 풀어준다”는 허벅지 안쪽 침 자리에 함께 침을 놓고, 버스 안에서 함께 춤추지 않았을까? 부둥켜안고 울지 않고, 다정하게 손을 잡진 않고, 조금 거리를 두고서.
    WORDS 양보연(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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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EDITOR 정소진

2021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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