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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밍고를 쫓는 모험

헤르난 바스는 모험 앞에 놓인 소년들을 그린다. 고독한 얼굴을 한 그들은 풍랑이 거칠게 이는 바다, 도로변의 모텔, 네시를 찾는 캠핑밴, 플라밍고가 가득한 늪지대 등 낯선 세계로 자신을 던진다. 쿠바 이민 2세대이자 퀴어 아티스트로서 알 수 없는 것과 소외된 것, 기이한 것을 골똘히 들여다보고 거침없이 그려내는 헤르난 바스. 사시사철 쨍쨍한 플로리다에 살지만 햇빛보다는 그림자에 더 호기심을 지닌 미스터리 애호가에게 궁금했던 것들을 물었다.

UpdatedOn May 26,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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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nk Plastic Lures’ Acrylic on Linen, 303.5×504.8×5.1cm, 2016.

‘Pink Plastic Lures’ Acrylic on Linen, 303.5×504.8×5.1cm, 2016.

한국에서 연 개인전 제목 ‘모험, 나의 선택’은 선택지에 따라 결말이 달라지는 아동 도서 시리즈 ‘Choose Your Own Adventure’에서 따왔다고 들었다.
난 내 그림 속 순간이 연극에서 인터미션 직전의 연기 같다고 느낀다. 관객은 이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되고 어디에서 끝날지 상상의 여지를 갖게 된다. 모험이란 결국 새로운 발견을 불러오고, 우리의 선택은 어떤 것을 발견할지 결정할 것이다.

당신의 그림에는 항상 소년과 어른의 경계에 서 있는 청년들이 있다. 그들은 내성적이고, 외롭고, 퇴폐적으로 보인다.
내 주인공들이지. 여느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나는 인물이 사는 세상을 만들어낼 때 그들을 무척이나 섬세하게 다룬다. 그들이 대개 실존 인물이 아니기에 이상하게 들릴지는 몰라도, 그렇게 해야 내가 만든 가상의 세계에 관객도 애착을 지닐 수 있다고 생각한다.

‘Young Man and the Sea’는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재해석한 작품이다. 소년은 소설 속 노인이 상어에게 뺏긴 청새치를 잡는다. 소년이 어른이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다면, 그것은 어떤 일일까?
적어도 내 작품에 등장하는 소년들에겐 성인도 주저할 만한 일을 무모하거나 용기 있게 해내려는 의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쿠바 이민자 2세대로서 LGBTQ라는 정체성이 당신의 작업에 영향을 주었나?
시각예술가 펠릭스 곤살레스-토레스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아티스트 중 한 명인데, 그 두 범주에 모두 들어맞는다. 가장 간단한 제스처만으로도 산더미 같은 감정을 담아낼 수 있음을 그에게서 배웠다. 만약 내 부모님이 미국에 오지 않았더라면 지금 나의 삶은 결코 가능하지 않았을 것임을 엄밀하게 인지하는 건 아티스트로서도 한 인간으로서도 중요한 일이다. 특히 성소수자로 정체성이 확립됐다면 말이지.

‘A Blue Predicament’ Acrylic on Linen, 127×101.6×4.4cm, 2018.

‘A Blue Predicament’ Acrylic on Linen, 127×101.6×4.4cm, 2018.

‘A Blue Predicament’ Acrylic on Linen, 127×101.6×4.4cm, 2018.

올해 그린 ‘Monsters and Mariners’는 2003년부터 2020년까지 선원, 탐험가, 잠수부, 수중 괴물 등 23개의 그림으로 구성된 거대한 벽지다. 바다와 괴물, 그리고 바다 탐험가들에 대한 당신의 애정은 어디서 왔나?
나는 플로리다에서 자랐다. 이곳에선 바다가 굉장히 큰 존재다. 어릴 적부터 부두에서 아버지와 함께 낚시를 했고 반항심에 찬 10대 청소년이 되고 나서는 바다에 몸을 훌쩍 던져 수영하길 좋아했다. 하지만 바다 괴물에 대한 내 애착은 UFO부터 유령에 이르기까지 ‘설명되지 않은 모든 것’에 대한 사랑의 연장선에 불과하다. 좋은 이야기엔 언제나 약간의 미스터리가 필요하거든.

일반적으로 플로리다를 생각할 때 햇빛과 여유로운 사람들, 밝은 미소, 햇빛에 그을린 피부를 떠올리지만, 당신의 그림에는 매서운 바람과 거친 파도의 바다, 그리고 슬픔과 고독이 있다. 플로리다의 자연을 야생적이고 음울하게 묘사하는 이유가 있나?
관광객이 보는 플로리다의 모습은 기괴함을 감춘 껍데기에 불과하다. 나는 포장 아래쪽 도사린 것들에 더 끌린다. 여기엔 펠리칸과 햇빛과 해변들이 있지만, 이 해변에 닿기 위해서는 그 사이의 거친 자연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지나쳐 가야만 하지. 여긴 당신이 방금 알아챈 것보다도 훨씬 더 이상한 평행
공간이다.

플로리다가 어떤 면에서 기이한가?
이곳의 뿌리는 많은 모험적인 개척자와 원주민 부족의 문화 충돌에서 비롯됐다. 남부 고딕 양식의 전통을 지니고 있고, 라틴 아메리카의 미신과 문화적 영향 아래 있기도 하다. 우리는 플로리다 늪지 버전의 괴물 ‘빅풋’ 전설을 지니고 있고, 팬핸들 지역에 UFO의 역사가 있으며, 서쪽으로 가면 바로 버뮤다 삼각지대가 있다. 지구공동설을 믿는 신도들이 코레산 주립공원에 자리 잡았고, 심지어 한 남자는 늪지 한가운데 산호석으로 만든 산호의 성을 짓기도 했다. 이런 기이한 지역적 면모는 내 상상력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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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Young Man and the Sea’ Acrylic on Linen, 213.4×182.9cm, 2020.

‘The Popcorn Necklace’ Acrylic on Linen, 213.4×182.9cm, 2020.

‘The Popcorn Necklace’ Acrylic on Linen, 213.4×182.9cm, 2020.

‘The Popcorn Necklace’ Acrylic on Linen, 213.4×182.9cm, 2020.

플라밍고에 애착을 갖는 이유가 있나?
무엇보다 그들은 그림으로 그리기에 미적으로 매우 우아한 새다. 처음엔 플라밍고가 플로리다의 뻔하고 진부한 상징이라 생각하기도 했지만, 결국 나는 이 아름다운 새들을 완전히 받아들였다.

‘The Thought Flow’를 비롯한 당신의 초기작에서 인간은 자연에 압도된 작은 인물일 뿐이다. 하지만 인간의 형상은 점차 커져서 캔버스의 중심에 선다.
본격적으로 큰 규모의 작업을 하기 시작하면서 이전에 그렸던 작은 작품들을 프로젝터로 확대해봤다. “이거 참 큰일이네”라고 생각했다. 하하. 그림 속 인물들은 내 연극의 일부다. 그들은 점점 스스로 쇼에 등장하는 스타에 가까워져 중앙 무대를 차지했고, 풍경이나 세트 디자인은 줄어들었다. 자연스러운 변화였다.

‘Sip-In’은 1966년 동성애자 권리운동의 한 장면을 묘사한다. 매카신 협회의 게이 회원들이 바 줄리어스에 앉아 있는 이 그림은 게이 손님을 받지 않는 술집에 대한 저항이었다. 이 투쟁은 4<뉴욕타임스>에 보도되었고, 뉴욕 법원은 차별적 관행을 없앴다. 당신은 왜 이 역사적인 순간을 그림으로 재현했나?
이 당시 난 역사적인 그림을 그리는 데 관심이 있었는데, 할리우드의 관심을 받지는 못했지만 그만큼 영향력 있는, 덜 알려진 역사에 끌렸다. 난 나폴레옹 전쟁이나 스톤월 항쟁 장면 같은, 잘 알려진 역사엔 큰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역사상 가장 단순하고 작은 순간들이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

‘Monster Hunter(or, Desperately Seeking Nessie)’와 ‘The Start of The End of the Longest Drought’ 같은 작품은 한 장의 회화와 제목만으로 영화를 본 듯한 생생한 이야기를 담는다. 전자는 스티브 펠텀이라는 네시 사냥꾼을 그렸고, 후자는 아포칼립스 세계관의 TV 시리즈들에서 영감을 받았다. 어떤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리고 싶은가?
스티브 펠텀은 40년간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는 걸 찾아다녔다. 나는 그와 같이 미지의 것을 영원히 좇는 이들에게 끌린다. 관객들이 내 작품을 보고 펠텀처럼 탐험을 하고 싶어지거나, 작품 속 세계가 현실이 된 세상을 상상해봤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이 들게 하는 이야기를 그리고 싶다.

‘The Monster Hunter(or, Desperately Seeking Nessie)’ Acrylic, Ink Transfers and Distemper on Linen, 183×152.5cm, 2020.

‘The Monster Hunter(or, Desperately Seeking Nessie)’ Acrylic, Ink Transfers and Distemper on Linen, 183×152.5cm, 2020.

‘The Monster Hunter(or, Desperately Seeking Nessie)’ Acrylic, Ink Transfers and Distemper on Linen, 183×152.5cm, 2020.

‘The Start of The End of The Longest Drought’ Acrylic on Linen, 213.4×182.9cm, 2020.

‘The Start of The End of The Longest Drought’ Acrylic on Linen, 213.4×182.9cm, 2020.

‘The Start of The End of The Longest Drought’ Acrylic on Linen, 213.4×182.9cm, 2020.

헤르난 바스
미국 마이애미 출신의 회화 작가로 헤르난 바스는 초현실적이고 거친 풍경과 그 속을 모험하는 외로운 청년들을 그리며 쿠바 이민 2세대이자 퀴어 정체성, 플로리다 기반의 로컬 정체성을 작품에 녹여내왔다.
루벨 컬렉션에 소개되며 주목받기 시작해 LA 현대미술관(2005), 브루클린 미술관(2009), 베니스비엔날레(2009) 전시로 주류 미술계에 존재감을 드러냈으며 휘트니 미술관,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 등 주요 미술관에 작품이 소장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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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ip In, Acrylic on Linen’ 213.4×274.3cm, 2019.

‘The Sip In, Acrylic on Linen’ 213.4×274.3cm, 2019.

‘Four Bathers by a River’ Acrylic on Linen, 182.9×213.4×3.2cm, 2017.

‘Four Bathers by a River’ Acrylic on Linen, 182.9×213.4×3.2cm, 2017.

‘Four Bathers by a River’ Acrylic on Linen, 182.9×213.4×3.2cm, 2017.

당신의 그림은 폭풍우 치는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배, 가뭄 직전의 도로변 모텔, 플라스틱 플라밍고가 널린 마이애미 집의 앞마당 등 초현실적이면서도 구체적인 공간을 보여준다. 이 공간들은 어디서 유래했나?
그 출처는 아주 다양하다. 언젠가 내가 찍었던 사진 속에서 영감을 받기도 하고, 구글 맵을 둘러보다 영감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그 장소를 똑같이 구현하진 않는다. 여러 소스들을 콜라주하고 구체적으로 상상한 요소들을 덧붙이곤 한다. 말 그대로 구식 믹스테이프와 비슷하다.

작품에 레퍼런스가 된 소설들을 보면 다양한 책들을 탐독하는 것 같다. 거기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작가는 누구인가?
초기엔 프랑스의 소설가이자 미술 비평가인 조리스-카를 위스망스를 좋아했다. 그의 자연에 대항하는 태도는 내 인물들의 퇴폐적인 멋에 큰 영향을 끼쳤다. 오스카 와일드, 에밀리 디킨슨, 에드나 세인트 빈센트 밀레이, 그리고 에드거 앨런 포의 고딕 양에게선 여전히 영감을 받는다. 또한 나는 내 서재 ‘오컬트’ 섹션에 있는 논픽션들, ‘세계의 불가사의한 일들’ 같은 백과사전 등을 아주 좋아한다.

그렇다면 당신이 가장 좋아하거나 영향을 받은 화가들은?
그날그날 다르다! 마티스, 조안 미첼, 세실리 브라운, 카라 워커, 앤디 워홀 그리고 알렉스 캐츠를 비롯한 많은 화가들의 팬이다. 난 큰 규모의 아트 라이브러리를 지니고 있고, 그것들을 꾸준히 집어삼킨다. 목표는 너무 많은 이들의 영향을 받아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알아볼 수 없게 되는 것이다! 하하하.

당신의 색깔은 대담한 동시에 강한 비감을 지닌다. 색을 사용할 때 어떤 걸 가장 먼저 고려하나? 가장 좋아하는 색은?
이 또한 그때그때 바뀌는데 오늘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색은 칙칙한 회색이다. 색은 내게 아주 중요하다. 무대로 비유하자면 조명과 무드에 대한 모든 것을 세팅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제부터 당신의 모험은 어디로 향할까?
난 지금 새로운 일을 시작할 준비를 하고 있다. 정확히 어디로 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서재의 오컬트 섹션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최근엔 너무 현실적인 나날을 보냈다. 이제 내 삶에 작은 미스터리가 필요한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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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EDITOR 이예지
COOPERATION 스페이스K

2021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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