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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에게

뒷좌석에 아들을 태우고 달리며 생각한다. 내 아버지도 이런 마음이었을까? 아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것이 많다. 자동차도 그중의 하나. 자동차 기자들이 말하는 아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자동차.

UpdatedOn May 05, 2021

1 미니 쿠퍼 3도어

어떤 자동차는 삶의 방향성을 알려준다. 탄생하고 발전하며 변모하는 과정에서 배울 게 많다. 모든 자동차가 나름의 가치가 있지만, 몇몇 차종은 특히 드라마틱하다. 미니 쿠퍼는 몇 안 되는 그런 자동차다. 영국의 국민차로 태어나 랠리에서 활약했다. 효율성을 우선하는 소형차가 자동차 경주에서 우승을 거머쥔 대사건. 귀여운 외모와 달리, 달리기 능력도 출중했다. 이런 반전은 사람들을 열광시켰다. 자동차에서 하나의 문화 아이콘으로 사람들이 즐겼다. 자동차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인식을 넓혔다고 할 수 있다.
처음에만 반짝, 주목받은 일회성도 아니다. 세상에 나온 지 60여 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반짝거린다. 누가 봐도 미니라고 알 수 있는 안팎과 미니다운 운전 재미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다. 물론 흐른 시간만큼 발전한 기술력 또한 반영한다. 고유한 매력을 고수하면서 시대에 발맞춘달까. 잊을 만하면 두근거리게 하는 이벤트나 에디션도 빼놓을 수 없다. 자동차를 딱딱한 이동 수단이 아닌, 삶을 풍요롭게 하는 요소로 확장한다. 크기와 편의가 아닌 개성과 재미에 집중한 결과다.
이제 미니는 효율 좋은 국민차가 아니다. 프리미엄 소형차로서 영역을 확보했다. 긴 세월, 한 우물을 팠기에 도달한 지점이다. 미니 쿠퍼를 설명하는 이런 말은 인생의 방향성에 대입해도 통한다. 효율 좋은 국민차지만 랠리에서 우승한 저력을 품은 의외성. 시대가 변해도 원형을 고수해 오히려 가치를 확보하는 주체성. 크기만 쫓는 시대에 작지만 특별한 요소를 품어 활약하는 유연성. 필요를 넘어 자동차를 즐기는 개념으로 바라보게 하는 감수성. 미니 쿠퍼의 매력은 곧 아들에게 얘기해주고픈 삶의 방향성과 같다. 수많은 말보다 직접 몸으로 느껴야 효과적이다.
미니 쿠퍼를 탄다면 느낄 수 있다. 특히 원형에 가장 가까운 미니 쿠퍼 3도어가 알맞다. 무엇보다 지금 내가 타는 자동차이기도 하니까. 아들에게 물려줄 때가 되면 30년쯤 된 미니 쿠퍼 3도어가 되려나. 그땐 클래식 미니 쿠퍼로서 새로운 가치까지 지닐 게다. 클래식 미니 쿠퍼 3도어를 즐길 수 있는 아들이 되기를 바라며 차 키를 넘기리라.
CONTRIBUTING EDITOR 김종훈

2 폭스바겐 골프 7세대

이것은 바람이다. 나는 아이는커녕 아직 결혼도 하지 않았다. ‘아직’이 아니라 ‘영영’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나의 바람이 맞다. 큰 차보다 작은 차, 온갖 기능으로 도배된 것보단 꼭 필요한 기능만 단출하게 추린 차, 나이에 맞지 않은 럭셔리 카 대신 분수에 맞고 합리적인 차였으면 좋겠다. 나의 아버지도, 나도 그런 차로 네 바퀴를 시작했다. 나의 아버지는 기아 프라이드를 탔다.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지만 그토록 기다린 아들을 데리고 이리저리 돌아다니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다. 아버지는 나를 항상 뒷자리에 앉혔다. 앞자리에 타려고 하면 위험하다며 항상 뒷자리에 앉길 고집했다. 물론 그때 차 시트는 없었다. 안전벨트만 잘 채워도 자각 있는 운전자였다. 당시 아버지는 교통신호에 따라 차가 정지하면 운전석에서 오른팔만 뒤로 쑥 뻗어 내 얼굴을 꼬집었다. 그때 아버지의 거친 손과 흐뭇한 표정, 꿀이 뚝뚝 떨어지는 눈빛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그 이후로 아버지는 사업 성공으로 값비싼 고급 차를 많이 탔지만 프라이드만큼 애착이 큰 차는 없었다고 지금도 말한다.
그 영향이었을까? 나 역시 첫 차로 해치백을 선택했다. 폭스바겐 골프 7세대였다. 운전면허 딴 지는 오래됐지만 차가 익숙하지 않았기에 다루기 편한 차가 좋았다. 도로든 골목길이든 부담스럽지 않았고, 작은 차에서만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이 넘쳐났다. 운전석과 조수석의 거리가 멀지 않았기에 여자친구의 옆모습을 더 가까이서 볼 수 있었고, 그녀의 재잘대는 목소리는 바로 옆에서 말하는 것처럼 생생하게 들렸다. 어느 날 이케아 데이트에선 충동구매로 산 그녀의 커다란 화장대가 차에 들어가지 않을 것 같아 노심초사도 했지만 뒤 시트를 접으면 문제없었다. 물론 지금은 그녀와 헤어졌지만 골프를 생각하면 그녀가, 그녀를 떠올리면 골프가 눈에 선하다. 아버지의 눈이 조금씩 흐려지고, 대형차의 크기가 부담스러울 때쯤 골프를 아버지에게 입양 보냈다. 아버지는 만족스러워하셨다. 골프를 운전하다 보면 프라이드 탔을 때가 생각난다고. 아버지와 내가 한 차에서 느낀 추억을 내 아이도 겪었으면 좋겠다. 과연 그 아이의 골프에선 어떤 추억이 쌓일까?
WORDS 김선관(<모터트렌드> 에디터)

3 포르쉐 964

아들에게 물려줄 차가 뭐 있겠어. 지금 타고 있는 카니발을 물려주겠어? 아니면 전에 타던 SM5를 물려주겠어? 타고 다니지도 않을 거고, 갖고 있는다 해도 의미도 없을 거야. 아빠가 차던 시계를 물려주더라도, 값어치 없으면 그냥 사라져. 부친께서 파이롯트 만년필 하나 물려주셨는데, 지금 어디 있는지도 몰라. 그런 의미에서, 아들에게 물려줄 차라면 ‘포르쉐’ 정도가 떠오르네. 시계 같은 것은 여러 개를 물려줄 수도 있겠지만, 자동차는 등록도 해야 하고 보험료도 내야 하고, 유지-보수도 계속해야 하잖아. 매월 주차비도 내야 하고. 그래서 딱 한 대 물려주는 것도 쉽지 않을 거야. 꽤 고된 일이니, 그만한 가치 없으면 안 하게 되잖아.
그 정도 감수하면서 물려줄 거라면 ‘포르쉐’ 정도는 돼야지. 포르쉐 중에서도 간판급 모델인 911이어야 하고, 기왕이면 1990년식 964 와이드 보디라면 좋겠지. 캬~. 생각만 해도 가슴이 웅장해진다. 몇 자 타이핑했을 뿐인데, 벌써 964가 지하 주차장에 들어온 것처럼 심장이 벌렁거리네. 하지만 964 구하기가 좀 어려워야 말이지. 이미 964 주인님들이 남들이 침 바르지 못하도록 주차장 깊숙한 곳에 꽁꽁 숨겨두었기 때문에 매물로 좀처럼 나오질 않아.
참, 내가 아들에게 물려주려고 벤츠 190E 파란색을 꽤 오래 갖고 있었던 거 알지? 딸에게 물려주려고 빨간색 사브 컨버터블도 함께 갖고 있었어. 지하 주차장에서 이 녀석들을 보고 있으면 아들딸을 바라보는 것처럼 흐뭇했었지. 그런데 얼마 전에 모두 팔았어. 괜히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아이들에게 물려줬는데, ‘괜히 짐스러운 걸 하나 물려주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 거야. 시계나 만년필 같은 것은 감성 한 조각 느낌으로 물려줄 수도 있어.
하지만 자동차는 그렇지 않아. 내게 포르쉐 964가 있다고 해도, 이걸 아들에게 물려주려다가 강제 폐차를 당할 수도 있어. 배출가스 등급이 일정 등급 이상이면 명의이전 등록 자체가 안 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하거든. 이런 의미에서 자동차를 아들에게 물려준다는 건 신중하게 생각해야 해. 내가 너무 진지했나? 맞아. 내가 분위기 파악을 못하고 찬물 끼얹는 짓을 하지. 미안해. 내가 원래 좀 그래.
WORDS 장진택(<미디어오토> 기자)

4 혼다 S2000 AP1

내가 자녀에게 물려주고 싶은 자동차는 혼다 S2000이다. 2003년형 AP1(전기형)의 경우 자동차를 가장 열정적으로 타던 20대 중반부터 총 8년이란 시간을 함께했었다. S2000은 2인승 뒷바퀴굴림 로드스터다. 국내에 정식으로 수입된 적이 없기 때문에 한국에선 소수 마니아들만 손에 넣도록 허락된다. 이 차가 특이할 수 있는 이유는 1990년대 자동차 레이싱에 심취했던 혼다의 도전 정신이 녹아 있기 때문. 가벼운 차체와 탄탄한 섀시(하이 X-본 프레임), 프런트 미드십 엔진 구조가 만들어내는 무게 균형이 아주 직관적인 주행 성능을 실현한다. 엔진은 본격 스포츠카치고 작은 자연흡기 2.0리터다. 하지만 최대 9000rpm까지 회전하는 고회전 유닛으로 최고출력 250마력을 분출한다. 자연흡기 고회전의 감각은 일반적인 자동차와는 다른 짜릿함이 있다. 운전자의 피가 끓어오른다는 표현이 적당하겠다.
하지만 여기엔 치명적인 위험 요소도 숨어 있다. 저회전과 고회전 사이 가변밸브타이밍 유닛(VTEC)이 작동하면서 엔진 파워가 급격하게 상승하는 구간이 있다. 그래서 이 차의 주행 성격은 꽤나 신경질적이고 날카롭다. 게다가 내가 소유했던 초기형(AP1)엔 주행안전장치 같은 전자제어 장비가 전혀 없어서 모든 움직임을 운전 실력으로만 조정해야 했다. 차의 특성을 이해하고 운전 실력으로 날이 선 움직임을 제어하기 전까진 많은 연습이 필요하다. 일반적인 소비자에게 이런 점은 스트레스일 수 있다. 하지만 운전을 잘하고, 혹은 좋아하는 드라이버에겐 실력을 꾸준히 키울 수 있는 연습 파트너이기도 하다. 이 차는 누구나 편하게 즐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이 위험한 차를 타면서 자동차의 본질에 가장 깊숙이 파고들어 탈것의 재미를 느꼈다. 그래서 내 자녀도 이 차를 꼭 경험했으면 한다. 앞으로 그들의 세상에는 이런 자동차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WORDS 김태영(자동차 저널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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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조진혁

2021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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