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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보아야 예쁘다, e-스포츠 광고가 그렇다

‘롤드컵’을 보고 나면 메르세데스-벤츠가 생각난다. 경기장에서 메르세데스-벤츠 깃발이 휘날려서다. 게임에 웬 수입차 광고냐 할 수도 있겠지만 최근 e-스포츠에선 명품 브랜드 광고가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명품 브랜드들이 e-스포츠로 시선을 돌린 이유는 무엇일까? 마케팅 시장으로서 e-스포츠의 매력과 위험 요소를 짚는다.

UpdatedOn May 10, 2021


프랑스의 대문호 기 드 모파상은 에펠탑에서 식사하길 즐겼다. 에펠탑의 아름다움에 반해서였을까. 에펠탑이야말로 에펠탑이 보이지 않는 유일한 장소였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에펠탑은 건립 당시 파리의 흉물로 불렸다. 파리 시민은 문화의 도시 파리에 들어선 300m가 넘는 철근 구조물을 천박하다고 여겼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에펠탑을 사랑하게 됐다. 특별한 사건이 있었던 건 아니다. 그저 보고 또 보다 보니 정이 들었다. 단순 노출 효과의 위력은 이토록 강력하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 연인 간에 국한된 얘기는 아니다. 소비자의 마음을 열어야 하는 기업들도 그렇다. 그들이 CF, 플래그십 스토어에 막대한 예산을 쏟는 건 소비자가 신규 브랜드와 바람이 나는 변고를 방지하기 위함이다.

스포츠 마케팅엔 단순 노출 효과의 정수가 집약돼 있다. 제품에 대한 별다른 설명도 없이 브랜드가 경기 사이사이 그저 명멸하듯 팬들의 시선을 스쳐 지나간다. 여기에 선망의 대상인 스타플레이어까지 끼워 넣으면 더할 나위 없다. 상승한 브랜드 친숙도는 나중에 소비자의 지갑을 여는 마중물이 된다. 조던의 페이더웨이가 불을 뿜을 때마다 에어조던은 날개를 단 듯 팔려나갔다.

최근 가장 각광받는 스포츠 마케팅 분야는 단연 e-스포츠다. 마우스나 모니터 등 주변기기만 끼워 팔던 왕년을 생각하면 곤란하다. 나이키, 코카콜라 등 글로벌 대기업은 물론 BMW, 메르세데스-벤츠, 루이 비통 등 게임과 거리가 있어 보이는 명품들까지 e-스포츠를 통해 자사 브랜드를 홍보하기 시작했다. e-스포츠계의 슈퍼스타 페이커는 ‘리그 오브 레전드(이하 롤)’ 경기장까지 BMW를 타고 움직인다. 소수만 살 수 있는 명품이라고 노출 압박에서 자유로울 거라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모두가 선망하지만 갖기는 어려운, 그 희소성의 이미지를 창조해내는 건 결국 광고의 몫이다. 애들이나 보는데 장사가 되겠느냐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기업들의 투자엔 브랜드 인지도를 선점하기에 e-스포츠만 한 것이 없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시청자 규모 면에서 e-스포츠는 눈부신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지난해 전 세계 e-스포츠 시청자 수는 4억 명을 넘었다. NFL, NBA, MLB, NHL 등 미국 4대 메이저 스포츠 시청자 수를 더해도 e-스포츠에 미치지 못한다. 10대부터 30대 중후반에 이르는 e-스포츠 팬들의 연령층도 매력적이다. 미래에 돈줄이 될 잠재 수요층과 현재의 소비자들을 아우르는 보기 드문 광고 플랫폼이다. 베티나 페처 메르세데스-벤츠 마케팅 총괄 부사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e-스포츠 팬의 주요 연령대는 18~34세로 이는 우리의 타깃 그룹과 일치한다”면서 “e-스포츠는 우리가 젊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완벽한 플랫폼”이라고 했다. e-스포츠 마케팅 시장을 주도하는 건 단연 ‘롤’이다. 매월 롤에 접속하는 이용자만 1억 명에 달한다. 지난해 열린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롤 프로 결승전인 ‘롤드컵’은 누적 시청 시간이 10억 시간을 돌파했다. 최고 동시 시청자 수는 4천5백95만 명으로 대한민국 인구에 육박한다. 이뿐 아니다. 생방송이 끝나고 유튜브, 트위치 등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경기는 복사되고 또 회자된다. 기존의 어떤 스포츠보다 더 높은 노출도를 자랑한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디지털 기반이라는 e-스포츠의 매체 특색도 광고주의 구미를 당긴다. 전광판과 중간광고 등에 한정됐던 스포츠 마케팅 기법의 한계를 e-스포츠는 가볍게 뛰어넘는다. 게임 내 재화를 지급하는 디지털 리워드 프로모션을 통해 소비자에게 구매나 방문을 유도하는 ‘팬 인게이지먼트(fan engagement)는 e-스포츠가 여타 전통 스포츠보다 앞서 있는 영역이다. 스폰서의 제품을 본뜬 게임 내 아이템을 제작하거나 전장에 가상 광고를 송출하는 것도 이미 e-스포츠에 자리 잡은 광고 기법 중 하나다. 현대자동차는 넥슨과 손잡고 레이싱 게임 ‘카트라이더’에 쏘나타 N라인 차량 아이템을 선보이기도 했다. e-스포츠는 광고주의 니즈에 따라 소비자를 핀포인트 공략하는 유연성을 제공한다. 설령 경기가 진행되지 않는 중이라고 해도 다채로운 프로모션을 통해 브랜드 노출을 지속할 수 있다. 가상현실과 증강현실 등 기술 발전에 따라 광고 기법이 발전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물론 단점이 없는 건 아니다. 혹자는 전통 스포츠와 달리 e-스포츠는 태생부터 하나의 기업에 종속된 운명이라는 점을 불안 요소로 지목한다. 때문에 선수단의 구성부터 경기 룰까지 게임사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않다. ‘스타크래프트’가 그랬듯 아무리 잘나가는 듯 보여도 영원히 인기 있는 게임이란 존재하기 어렵다. 실제로 블리자드의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의 경우 인기가 주춤하자 게임사가 한순간에 리그를 폐지해 선수들이 길거리에 나앉기도 했다. 전 세계 e-스포츠 지분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롤도 벌써 출시된 지 10년이 넘었다. 스타크래프트처럼 어느 순간 인기가 줄어 리그가 사라질 가능성도 존재한다.

하지만 분명 e-스포츠 산업의 미래는 장밋빛이다. 골드만삭스는 전 세계 e-스포츠 시장 규모가 지난해 8억6천9백만 달러에서 2022년 29억6천3백만 달러, 우리 돈 3조3천2백15억원으로 가파르게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중국, 인도 등 인구가 많은 국가에서 고르게 인기를 얻고 있다는 점도 향후 지속 가능성에 안정성을 더한다. 양적 성장 못지않게 질적 성장도 눈에 띈다. e-스포츠는 2022년 중국 항저우에서 열리는 아시안게임에서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다. ‘손가락만 까닥이는 게 무슨 스포츠냐’는 비아냥을 듣던 20년, 이제는 누구도 토를 달기 어려운 명실상부한 스포츠로 자리매김했다. 코로나 시대 자리 잡은 비대면 문화 또한 e-스포츠가 성장하는 든든한 우군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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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조진혁
WORDS 신진섭(게임 칼럼니스트)

2021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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