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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ritique

막다른 곳으로 향하는 혐오

세차고 거세게 아래로, 가장자리로 혐오가 밀려든다. 놀라운 건 1020 젊은 세대가 빠르게 우경화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여성 혐오부터 아이 혐오, 노인 혐오, 빈민 혐오, 조선족 혐오, 그리고 트랜스젠더 혐오에 이르기까지. 최근 세 명의 트랜스젠더가 세상을 떠났다. 청년들은 왜 더 이상 연대를 말하지 않고 약자와 소수자, 경계에 선 이들을 미워하게 된 걸까. 기득권에 저항하며 같이 살 둥지를 넓히는 대신, 남의 알을 떨어뜨리려는 뻐꾸기처럼 약자끼리 스파링하고 있는 걸까. 왜 인권운동을 ‘밥그릇 싸움’으로 치환하나. 김보명 연구자가 낮은 곳으로 향하는 혐오의 연쇄를 파헤치며, 세상의 경계에 선 모든 이들에게 글을 부쳤다.

UpdatedOn April 19, 2021


더 나은 세상은 오고 있는 걸까? 오늘의 삶에서 겪어내야 하는 고통과 분노는 과연 견딜 이유나 가치가 있는 걸까? 새삼 다시 묻게 되는 날들이다.
최근 트랜스젠더 이은용, 김기홍, 변희수가 차례로 세상을 떠났다. 스스로 떠난 것인지 밀려서 떨려난 것인지 알 수 없는 그 ‘끝’에 대한 소식을 차례로 전해 들으며 느낀 감정이 무엇인지 여전히 모를 일이다. 각각 극작가로, 인권 활동가로, 최초의 트랜스젠더 군인으로 우리에게 알려진, 누구보다도 용감하고 절박하게 대중과 소통하면서 희망을 말했던 이들은 왜 그렇게 떠났을까. 잡지 못한 손들과 돌아오지 못할 경계와 지우지 못할 흔적들이 질문한다. 남아서 오늘도 살아가고 애도하고 또 분노하는 이들은 세 사람의 떠남에 대해 어떤 책임을 질 수 있을까.

성소수자 인권운동의 역사가 한국보다 오래된 서구 사회에서도 퀴어 자살은 여전히 현실이다. 공식적인 규범과 제도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일상에 뿌리내린 이성애 규범성과 또래문화는 여전히 퀴어 청소년의 자존감을 위협한다. 상대적으로 빈곤과 폭력에 더욱 취약한 유색 인종 퀴어와 트랜스 여성들의 현실은 잡지와 스크린이 조망하는 매혹적인 트랜지션의 서사에 담기지 못하는 몸의 무게와 삶의 위험을 보여준다. 혐오와 폭력의 세상이 만들어내는 퀴어 자살의 오랜 역사를 넘어서기 위해 ‘괜찮아질 거야(It Gets Better)’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하지만, 쉽게 도달하지 않는 미래는 더 큰 좌절을 남기기도 한다.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오늘의 삶을 저당 잡히기를 거부하는 이들은 퀴어 자살을 포기나 종속이 아닌 궁극적 저항과 자유로 긍정하기도 한다. 끝없이 연기되는 ‘더 나은 내일’이라는 약속은 어쩌면 로렌 벌란트가 말하는 ‘잔인한 낙관주의’의 하나로 경험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오늘을 살아갈 힘은 어제로부터 나오는 것이 순리겠지만 그렇지 않은 세상에서 우리는 오늘도 또 내일을 기약하며 잠든다. 낙관주의는 잔인하다.

삶이 너무 힘들어서 이제 그만 쉬고 싶다는 몸이 경험하는 무게와 고통이 어느 정도일지 감히 가늠하기는 어렵다. 추정하건대 자살은 세상과 나의 부대낌으로부터 벗어나는 한 가지 방식일 것이다. 자살을 연구하는 이들이 입을 모아 말하듯 자살의 원인을 찾기란 어려운 일이다. ‘왜’라는 물음은 이미 모든 결정이 끝나고 실행에 옮겨진 되돌릴 수 없는 현실 앞에서 부질없이 흩어진다. 결국 ‘왜’라는 물음은 떠난 이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남아 있는 이들이 스스로에게 던지는, 그러니까 ‘왜 떠났어요’가 아닌 ‘왜, 그리고 어떻게 머물러야 할까’라는 질문일 것이다. 애도는 살아 있는 자들이 계속 살아가기 위해서 하는 노력이다. 미안함과 서운함 또한 오롯이 오늘 여기 있는 자들이 담고 살아가야 할 마음이자 무게다.

코로나19와 살아가는 비접촉 시대는 사회적 연결을 희박하게 만들고 사람들을 각자의 방에 고립시켰다. 더없이 쉬워진 디지털 연결은 유연하고 자유롭고 넓지만 그만큼 가볍고 어지럽다. 누군가를 지구 위에 정박시키는 힘은 서로의 온기에서 나온다. 그러나 시절이 어렵다 보니 서로를 챙기긴커녕 나 하나 건사하기도 버겁다. 각자도생의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 세대 사이에서 ‘자연사하자’는 말이 농담처럼 진담처럼 오간다. 이는 각자 자기를 잘 돌보자는 다짐인 동시에 험한 세상에서 서로의 무운을 빌어주는 동지애의 표현이다. ‘자연사하자’라는 농담 아닌 농담은 이렇게 서로를 붙잡고 또 흔드는 약속이 된다. 꿋꿋이 희망과 미래를 말하던 이들조차 더 이상 버티지 못하겠노라 포기하는 현실 앞에서, ‘자연스러운’ 삶과 죽음이란 대체 어떤 약속일까 묻게 되기도 한다. 자연스럽게 살다가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떠나자. 이보다 더 큰 약속과 요구가 있을까. 우리는 그렇게 자연스럽게 세상 속에서 나로서 살다가 갈 수 있을까.

1990년대에 시작된 성소수자 인권운동은 꾸준히 대중적 지반을 넓히면서 성장해왔다. 그러나 이 가시화의 역사는 또한 그에 반대하는 목소리의 정치화를 동반하였다. 특히 안타까운 일은 최근에 젊은 세대의 시스젠더 여성을 중심으로 트랜스 정체성을 부정하는 혐오 발화가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트랜스여성을 단지 불편해하는 정도를 넘어 적대적으로 공격한다. 여기에는 트랜스여성들이 사회적으로 규정된 여성성을 선망하고 소비하면서 코르셋을 강화한다는 오인 혹은 왜곡과 여성 정체성은 타고난 몸에 필연적으로 정박되어 있다는 믿음이 깔려 있다. ‘여성’의 경험, 의식, 정체성, 이해관계, 행위성에 대한 페미니즘과 퀴어 이론의 다양한 연구와 통찰, 트랜스여성의 살아 있는 목소리는 이들에게 들리지 않는다. 이들에게 있어서 여성의 ‘몸’은 자연적 본질인 동시에 특권과 배제의 자원이라는 모순적 위상을 갖는다. ‘태어나지 않은 여성’이라는 시몬 드 보부아르의 통찰은 ‘태어났기에 된 여성’으로 순치되며 몸과 정체성과 정치학 간의 복잡한 관계는 뭉뚱그려 납작해지면서 트랜스 혐오를 여성의 권리로 만들어낸다.

혐오가 존재를 지운다는 표현은 한낱 수사적 비판이 아니다. 혐오는 아프다. 혐오는 육체적이다. 혐오는 피부에 닿고 내 몸의 공간을 침식하면서 세계와 나의 경계를 날카롭게 불편하게 만든다. 트랜스 정체성에 대한 다양한 논의와 서사들이 우리에게 주는 가르침 중 하나는 존재의 물질성과 육체성일 것이다. 몸은 나의 껍질이나 표면에 그치지 않는다. 몸은 존재의 터전이자 정체성의 매개체이며 나와 세계 사이의 접경 지대다. 몸은 문화적 의미와 생체 기술로 포화된 전쟁터이자 때로는 폭력과 고통의 매개체이지만, 동시에 이러한 권력의 작용들에 온전히 포획되지 않는 물질성과 힘으로 새로운 정체성과 존재를 틔워내는 생성의 터전이 되기도 한다. 어쩌면 몸은 영혼의 감옥이 아니라 영혼의 출구이자 해방구다. 나다운, 나인, 나에게 편한 몸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희망이 억지나 과도한 요구가 아닌 삶의 가능성 자체인 이유다.

몸과 나는 하나이며 몸에 대한 부정은 결국 나에 대한 부정이 된다. 엘리자베스 그로츠의 말처럼 몸과 마음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몸은 세계와의 접촉면이자 나를 지구에 정박시키는 무게다. 그렇기에 누군가의 몸을 부정하는 행위는 그 누군가를 살지 못하게 하는 폭력이다. 그 몸으로 살아선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은 결국 그 몸을 떠나라는 혐오의 메시지를 전하며 몸을 떠난 이들은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언제가 우리는 트랜스의 자연스러움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정체성과 몸이란 세계 속에 던져진 이들이 살아가면서 쌓아 올린 세계와의 접촉면이자 상처로 가득한 얼굴이자 방어 기제이며 때로는 스스로에게도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는 무엇이며 따라서 언제나 다시 쓰일 수 있는 경계임을 인정할 수 있을까. 우리의 이러한 불완전성이 불안의 원천이 아닌 생성과 저항의 동력이 될 수 있음을 믿어볼 수 있을까.

미래라는 시간에 희망을 부여하는 것만큼 무책임한 일이 있을까 싶지만, 우리에게 남은 건 미래밖에 없다. 천천히 숨을 내쉬며 세계 속에 나를 정박시켜야 한다. 살아 있는 몸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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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EDITOR 이예지
WORDS 김보명(여성학 연구자)

2021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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