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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레나>가 사랑한 영웅들 PART 2

장 미셸 바스키아

가장 비싼 미국 화가, 바스키아와의 값싼 잡담.

UpdatedOn March 19, 2021

나의 영웅은 누구인가. 창간 15주년 특집 기사 기획안을 받고 고민했다. 기획은 에디터들이 지대한 영향을 받은 인물을 인터뷰하는 것이다. 취향도 말투도 걸음걸이조차 서로 다른 에디터들은 스스럼없이 자신만의 영웅을 꼽았고, 각 영웅의 면면에서는 그 에디터의 화보와 문체가 어렴풋이 느껴졌다. 이번 기획은 현재 <아레나> 콘텐츠가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추적하는 계기가 될 것이기에. 기사 진행이 쉽지 않았다. 에디터들은 자신들의 영웅을 영접하고자 메일과 왓츠앱, 전화와 줌 등 온갖 수단을 동원해 세계 각국에 퍼져 있는 영웅들과 접선했다. 영웅들은 단번에 인터뷰를 승낙하진 않았다. 바쁜 일정으로 인터뷰가 불가능하거나, 연락이 닿지 않는 이들도 있었다. 가까스로 인터뷰에 응해 뒤늦게 답변을 받은 경우도 있었다. 뒤에 이어지는 인터뷰이들의 이름을 보면 섭외에 난항을 겪은 이유가 이해될 것이다. 평소 우리가 갈망했지만 만나지 못한 인물들이다. 옷으로 낭만을 이야기하는 디자이너, 무뚝뚝한 에디터의 감정을 뒤흔든 사진가, 독일 현대 미술을 이끄는 작가, 방황하는 청춘을 그려내는 영화감독, 남극점과 북극점을 모두 정복한 최초의 인간 등 그들에겐 아직 묻고 싶은 말이 많이 남아 있다. 기사는 9명의 실존 인물과 6명의 가상 인물 인터뷰로 구성된다. PARTⅠ에는 실존 인물들과의 감도 높은 대화와 사진이 담겼다. PARTⅡ는 만날 수는 없지만 에디터들이 큰 영향을 받은, 롤모델로 삼기도 한 인물들과의 가상 인터뷰다. 자신이 누구로부터 영향을 받았는지, 자아 형성의 토대를 찾아 방황하는 이들에게 <아레나> 창간 15주년 특집 인터뷰가 나침반이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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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저 포트레이트가 마음에 들어. 저 삐뚤어진 칼라가 특히. 일부러 저런 거야?
왜 저런 걸 일부러 하겠어? 그냥 그런 거야. 나도 이 사진을 좋아해. 나의 앤디 워홀이 찍어준 사진.

줄리언 슈나벨과 복싱 경기를 하고 싶다고 했다며.
아, 그를 만나기 전에. 아니나의 갤러리에서 그를 마주쳤을 때, 스파링할 거냐고 물어보기도 했어, 사실. 그는 꽤 센 상대거든. 뭐, 만약 지더라도 쪽팔리진 않겠다 싶었어. 아무튼 그가 나중에 내 영화를 만들었던데, 내 헤어스타일이 엉망이더라. 그 느낌이 아니라고! 역시 그때 한판 붙었어야 했어.

모데나에서의 첫 전시는 어땠어?
생애 첫 전시, 첫 유럽 여행. 그리고 이탈리아, 부족할 게 없었지만, 결과적으론 바보짓만 했어. 업자만 좋은 일 시킨 전시였으니까. 그 그림들이 돌고 돌아 다시 내 그림을 보게 된 적이 있는데, 아, 충격!

당신이 현시대의 젊은 아티스트들에게 얼마나 강렬한 영향을 주고 있는지 반드시 알았으면 해.
그러니까. 이럴 줄 알았으면 멘탈 관리 잘해서 조금 더 오래 살걸.

‘바스키아가 현시대를 살았으면 어땠을까?’란 생각을 해. 패션위크에 정말 많이 초대됐을 거 같아. SNS 계정은 늘 DM이 폭발하고, 틱톡도 잘했겠지? 흥이 좀 있잖아. 전혀 새로운 방식의 예술성을 선보였을 거야. 당신의 ‘SAMO’, 현시대가 추구하는 방향이 바로 그것이야.
난 이미 그 자체로 미술계의 혁명적인 존재야. 물론 2021년을 살았다면, 얘기가 좀 다를 수 있지. 당신들이 상상하는 것 이상을 해냈을 거야. 그때도 패션쇼는 참석했어. 1987 S/S 꼼 데 가르송 패션쇼를 보라고. 내가 모델로 등장했었지. 러플 장식의 셔츠와 더블브레스트 재킷, 하렘 팬츠, 스트랩 슈즈 룩이 정말 끝내줬었지.

머드 클럽 시절을 그리워해?
물론. 내 리즈 시절. 근데 그때 내가 마돈나랑 잠깐 만났던 거 알고 있나? 난 이미 그녀가 크게 될 거란 걸 알았어. 사람들한테 항상 그렇게 소개했지.

키스 해링이 당신을 좀 더 채찍질했으면 어땠을까 생각해. 그가 할렘 강변 도로에 ‘마약은 인생을 망친다’를 그렸었잖아. 당신이 가장 힘들었던 시기와도 같던데.
난 너무 쇠약했어. 날 버티게 하는 건 헤로인밖에 없었지. 마돈나가 “내가 진심으로 부러워했던 사람 중 하나였지만, 이 세상을 견뎌내기엔 너무나도 연약했다”란 얘길 했는데, 맞는 말이야. 난 너무 연약한 존재가 되어 있었어.

바스키아답지 않게 왜 그래. 당신 작품들은 유머러스하고, 쿨한데, 왜 파고들수록 슬퍼지는 걸까?
일찍 죽어서.

됐어. 다들 당신을 자유로운 힙스터로 보지만, 사실 굉장히 치밀한 기회주의자 아닌가? 성공을 위해서 앤디 워홀한테 접근하고, 그림도 돈을 위해 열심히 그렸잖아.
그건 영리하다고 하는 거야. 내 천재성의 일부일 수도 있지. 난 열일곱 살 때부터 스타가 될 것을 알았어. 근데 어떻게 하는 건지는 몰랐고, 그러다 우연히 앤디 워홀을 만났지. 그런 기회는 웬만한 바보도 놓치지 않아.

내 주변에만 해도 왕관 타투를 한 사람들이 셀 수 없이 많아. 심지어 지디도 했다고. 만약 그 왕관을 돈을 받고 팔았다면, 지디를 통해 삽시간에 팔린 후 어마어마한 리셀가가 책정됐을 거야.
지디가 누구지?

아무리 시대가 달라도, 현시대 스타일 아이콘이자 뮤지션 지드래곤을 모른다고?
글쎄. 내 최고의 뮤지션은 찰리 파커, 지미 헨드릭스라고. 그리고 나의 마돈나! 아무튼 지드래곤도 ‘리셀가’도 몰라. 근데 소식 못 들었나? 내 작품 ‘전사’가 크리스티 경매를 통해 아시아에서 가장 비싸게 책정된 서양 작품으로 선정되었다고. 그런데도 나보다 대단한 아티스트가 있다고?

그러게. 인정. 근데 그 비싼 그림에 발자국이 왜 그리 많아?
너무 크면 바닥에 깔아놓고 그려야 되니까. 뭐 어때. 별수 없지.

작품을 말하는 당신의 태도가 참 내 스타일이야. “내 작품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네. 마일스 데이비스에게 ‘당신의 악기는 어떻게 소리가 나나요’라고 묻는 것과 같아”라고 했잖아.
그러니까. 사람들은 도대체 왜 그런 걸 계속 물어보는 거지? 그냥 생각나는 것들을 그리는 거야.

앤디 워홀의 일기에서, 당신이 급하게 들어와 바닥에 드러누워 자더니, 갑자기 일어나서 대작을 두 개나 그렸다고 했어. 천재란 그런 거야?
그땐 그랬어. 생각나는 걸 마구 그렸으니까. 그리는 대로 디에고가 가져갔고, 모두 큰돈이 됐지.

천재라는 건 어떤 기분이야?
글쎄. 천재가 아닌 기분을 알지 못해서. 자신이 천재가 아니라는 건 어떤 기분이야?

‘검은 피카소’라는 별칭 마음에 들어?
이런 얘길 했었지. 난 유명한 흑인 예술가가 아니라 유명한 예술가다.

사생활이 그림에도 영향을 미쳐?
가끔 내가 어떤 여자한테 화가 나면, 그녀에 관한 형편없는 그림을 그리곤 해. 한때 사귀던 여자랑 헤어지고, 한동안 감정이 안 좋을 때 그녀를 ‘올랭피아’로 그려버렸지.

‘바스키아 컬래버레이션’ 제품들이 미친 듯이 쏟아지고 있어. 과자 봉지에도 그림이 그려져 있다고.
흠. 나쁘지 않아. 예술은 쉽고 가까워야 해. 있어 보이려고 발버둥 치는 것들은 웃기기 짝이 없지. 내 그림은 어디에나 존재할 수 있어. 가난했던 시절, 친한 친구 집에 얹혀사는 주제에 냉장고, 문짝, 상자 할 것 없이 죄다 낙서하고 다니다가 쫓겨난 적도 있는데 뭐. 그림이 덮이면 그게 어디가 됐든 상관없어지니까.

당신이 살았던 뉴욕의 이스트 12번가 527번지에 갔었어. 당신의 흔적은 없지만, 낙서는 여전히 난리더라. 내가 건물주라면 진짜 가만 안 뒀어.
내가 이런 얘기도 했어. 우린 정신적인 가치를 중요하게 여겨야 해. 하루 종일 길 위에 서서 똑바로 살라고 소리칠 순 없으니 벽에 글을 쓰는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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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EDITOR 최태경
ILLUSTRATION 두원

2021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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