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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에 잃었네

너에게 쓰는 편지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다. 크리스마스라고 다를 것 없다. 에디터들이 축복의 밤에 잃은 것과 얻은 것을 고백한다. 담담한 어조로 솔직하게.

UpdatedOn December 23,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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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색 가죽 지갑 몽블랑 제품.

잘 지내? 요즘 어디서 뭐하고 지내는지 궁금해. 어떤 사람 곁에 있어? 잘해줘? 네가 그리워진 걸까, 아니면 미련인 걸까…? 아마 재작년 크리스마스였지. 우리가 마지막으로 본 게. 그날 내렸던 눈보라보다 내가 흘린 눈물이 더 많았을 거야. 얼마나 슬펐는지. 아니다. 우리의 첫 만남부터 떠올려보자.

너와의 만남을 고대하던 초겨울, 나는 그 사람과 만나는 중이었어. 너도 기억할 거야. 그는 특별한 날이 아니고선 항상 투엑스라지쯤 되는 거대한 패딩 재킷을 입고 주머니에는 다 낡아빠진 지갑을 넣고 다녔어. 그때 그 지갑도 아버지 차 살 때 받은 거라나? 그는 매사에 그런 식이었어. 지갑도 자기 손으로 골라본 적이 없어. 공짜로 받은 지갑을 얼마나 오래 썼으면 실이 내장 튀어나오듯 다 터져 나왔다니까. 음식과 게임 외에는 취향이랄 게 없었고 쇼핑도 무지 싫어했어. 이제 와 떠올려보면 그와 나는 4년간 서로 공유한 게 없더라. 그럴 거면 왜 만났을까.

아무튼 크리스마스를 맞이해 가죽이 닳고 색 바랜 그의 회색빛 지갑을 반드시 바꿔놓으리라 마음먹고 얼마 없는 용돈을 모으기 시작했어. 30만원씩 두 달. 60만원 꽤 힘들게 모았는데 사라지는 건 금방이더라. 북적대는 백화점을 들뜬 마음으로 휘젓고 다니다 너를 발견했지. 매번 뜯어질 것 같은 가죽만 보아 그런지 극세사처럼 부드러운 넌 왠지 든든하게 느껴졌어. 관 속에 함께 묻어줄 테니 영원히 쓰라는 마음으로 그 사람 이름의 각인 서비스도 받았어. 지금 생각하면 바보 같은 짓이었지. 사고 돌아오는 길, 그에게서 전화가 왔어. “스테이크 먹게 시청 앞에서 만나자!” 하여튼 먹을 것만 생각하면 유난을 떨더라. 분명 이번 크리스마스 선물도 내 취향과 영 딴판인 것으로 골랐겠지 하며 그에게 전달할 너를 품에 꼭 안았어. 그에게 주기 전 너를 열어 오른편에 내 얼굴이 담긴 폴라로이드 사진을 넣고 5만원 지폐도 한 장 곱게 넣어뒀어. 시청에서 만난 그는 두 볼이 빨개진 채 해맑은 미소와 함께 옷은 여전히 투엑스라지 패딩 재킷을 입고 있었어. 특별한 날에는 코트 입기로 했으면서.

우린 크리스마스 때면 관습처럼 지켜오던 약속이 있었어. 아웃백에서 스테이크 먹기.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였던 우리는 생일 파티를 꼭 아웃백에서 했거든. 그때의 추억을 살리고자 크리스마스 때면 늘 아웃백에서 스테이크를 먹었지. 그날도 스테이크에 투움바 파스타를 시키고 선물 교환식을 진행했어. 그가 건넨 선물은 내가 갖고 싶어 했던 화장품 세트와 니트웨어. 나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며 내 선물을 건넸어. 받고선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어 보이며 연신 내 이름만 외쳐댔어. 하지만 울진 않더라.

즐겁게 저녁 식사를 한 뒤 후식으로 간단히 알통 닭강정을 또 먹으러 갔어. 그게 아마 선물 교환식이 있고 두 시간 후였을 거야. 닭강정을 사 들고 시청에서 40분 거리인 우리 집 놀이터에 앉아 두런두런 대화했지. 흡입하듯 먹던 그가 갑자기 목이 마르다며 콜라를 사오겠다더라. 그게 불행의 시작인 줄 알았더라면 너를 떠나보내지 않았을까…. 그렇게 떠난 그는 30분이 되도록 오지 않았어. 40분 뒤 죽을 듯 헐떡이며 달려오더니 한다는 말이 “내 지갑 어디 갔어?”였어. 그 느낌 알아?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 CT 촬영 때 주입한 약물이 온 혈관을 타고 흐르는 느낌. 그의 투엑스라지 패딩 재킷 주머니를 구석구석 뒤졌고 내 가방, 그 사람 차까지 뒤져봤지만 결국 널 찾지 못했어. 우리는 명탐정 코난이 된 기분으로 시간을 거슬러 들렀던 장소들도 샅샅이 뒤졌어. 알통 닭강정이 범인이라 생각했지만 넌 어디에도 없더라.

정확히 세 시간이었을까. 우리가 함께한 시간은. 나는 죽일 듯이 노려봤고 그렇게 살지 말라며 고래고래 소리쳤어. 그 사람이라고 별수 있겠어. 그저 한숨만 푹푹 내쉬지. 크리스마스는 우리에게 나름 특별한 행사 중 하나인데 그날따라 그는 내가 싫어하던 투엑스라지 패딩을 입고 나왔고, 내가 준 선물을 또 그 패딩 재킷 주머니에 넣었고, 그게 모든 사단의 발단이었어. 가족이 아닌 누군가에게 50만원이 넘는 선물을 해본 적도 없는 내게 세 시간 만에 날려버린 60만원은 피 같은 돈이고. 너를 잃은 채 우린 덩그러니 서 있었고 긴 침묵이 흘렀어. 그 침묵 속에 내 마음은 정리되었고 다시는 저 투엑스라지 패딩 재킷 입은 꼬락서니를 안 봐도 된다는 생각에 후련하기까지 하더라. 60만원과 맞바꾼 그와 나, 그리고 너와의 이별은 꽤 가치 있었어. 주웠을 사람에게 선물한 5만원과 내 사진, 새 지갑 그리고 참 특별했던 나의 2018년 크리스마스.
GUEST EDITOR 정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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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조진혁

2020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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