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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버스가 온다

가상세계를 뜻하는 메타버스 시대가 시작됐다. 온라인 게임에서 공연을 보고, 친구를 사귀고, 직업을 갖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제는 게임 세계에서 마케팅을 펼치는 글로벌 기업들의 로고를 발견하는 건 놀라운 일도 아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메타버스는 새로운 개념이다. 새로운 기술로 만들어진 여느 낯선 세계가 그렇듯 메타버스에 대한 환상도 꿈틀대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인터넷이 처음 등장했을 당시를 복기시킨다. 인종차별, 빈부 차이, 갈등과 폭력이 없는 이상적인 세계로 묘사되었던 당시를 생각하면, 메타버스 또한 기대보다 우려가 앞선다. 세 명의 전문가와 함께 메타버스에 대해 기대되는 점과 우려되는 점을 짚었다.

UpdatedOn December 16,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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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TAVERSE MAN 3
김상균 게이미피케이션 전문가 김상균은 인지과학 박사이며, 현재 강원대학교 산업공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기억 거래소>가 있다.
신진섭 게임을 하고, 게임에 대한 글을 쓰는 신진섭은 게임 칼럼니스트다.
이장주 심리학 박사 이장주는 첨단 기술이 만들어낸 문화 현상을 심리학적으로 읽어낸다. 개인 연구소인 이락디지털문화연구소 소장을 겸하고 있다.


내가 원하는 나를 만든다?

내가 원하는 나를 만든다?

메타버스에서 사용자는 스스로 원하는 모습을 선택한다. 메타버스에서 아바타가 갖춰야 할 요건이나 윤리는 무엇일까. 왜 사람들은 아바타에 끌려 메타버스의 세계로 진입하나?

 김  상균 ‘사람들은 왜 아바타에 끌리는 걸까?’라는 질문은 두 개로 나눠서 살펴봐야 한다. 먼저 ‘왜 내 모습을 아바타로 만드는 것을 좋아할까?’에 대한 답은 자신의 실제 모습을 보여주되, 좀 더 매력적으로 꾸미기 위해서다. 카트리나 퐁과 레이먼드 마가가 학술지 에 발표한 실험에서 두 집단에게 ‘당신의 아바타를 만들어라’와 ‘당신의 개성을 잘 나타내는 아바타를 만들어라’는 미션을 각각 주고 결과를 보니 사람들이 만든 아바타의 특성은 서로 다르지 않았다. 모두 자신의 개성을 잘 나타내는 아바타를 만들고자 노력했다. 실제보다 좀 더 큰 눈, 큰 키, 매력적인 헤어스타일로 꾸미기는 하지만, 성별, 인종, 연령, 머리 길이, 옷 입는 스타일을 크게 바꾸지는 않았다. 현실에서 화장을 하고, 병원에서 피부 시술을 받는 이유와 다르지 않다. 다음으로 ‘우리는 왜 상대방의 실제 모습이 아닌 아바타와 거리낌 없이 소통할까?’를 보면,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내가 선호하는 상대의 특성이 아바타를 통해 쉽게 노출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신과 인종, 종교, 연령, 외모 등의 특징이 비슷한 이와 쉽게 친해진다. 실험해보면, 메타버스에서도 사람들은 상대방의 아바타가 나타내는 인종, 종교, 연령, 외모 등의 특징이 자신과 비슷할 때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둘째, 새로운 이와 소통하는 데는 물리적 위험이 따르기 마련인데, 아바타를 통한 소통은 그런 위험을 낮춰준다. 반면에 아바타를 통한 소통에서 사람들은 쉽게 공격적으로 변하는 경향도 있다. 현실에서보다 더 많은 비난과 모욕에 노출될 위험도 공존한다. 이상적인 아바타는 자신의 실제 모습을 바탕으로, 자신이 바라는 이상적인 자아를 담으면 좋다. 현실의 내가 소심한 편이라면, 아바타의 덩치를 크게 만드는 것이다. 아바타의 덩치가 큰 이들은 메타버스에서 자신 있게 행동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프로테우스 효과라 한다. 그렇다고 자신과 너무 다른 모습으로 아바타를 만드는 것은 좋지 않다. 아바타를 움직이는 주체는 현실의 나다. 아바타가 현실의 나와 너무 다르면, 정신적 피로도가 높아지고, 내 아바타에 대한 애착을 오래 유지하기 어렵다.

 신  진섭 헤겔은 자기의식이 욕구하는 자기에서 인정하는 자기로 발전한다고 말한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스스로 ‘자기’를 완성할 수 없다. 객관성을 담보한 자기 확신을 위해선 타자의 인정이 있어야 한다. 유아기를 벗어난 인간은 생사를 건 인정투쟁의 장에 놓이게 된다. 아바타는 현실에서 도달하지 못한 욕구하는 자기를 실현할 수 있는 대안적 자아로 기능한다. 유전적, 경제적, 때론 성격적 결핍마저도 아바타를 통해 보완할 수 있다. 영화 는 현실을 치유하는 아바타(화신)를 그린 작품이다. 주인공 제이크는 장애가 있는 2등 시민이지만 나비족의 몸(아바타)을 거쳐 부족이 우러러보는 전사로 현현한다. 현실(지구인)은 이상(나비족)에게 끊임없는 폭력을 가한다. 장애와 부조리로 가득한 지구인의 자아를 포기하고 제이크는 나비족의 일원으로 영원히 살기로 결심한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지금도 이미 나비족을 택한 제이크들이 넘쳐난다. 약해 보이지만 사실은 강하다는 ‘힘순찐’ 밈이나 게임 캐릭터의 성별을 바꾸는 ‘넷카마’, 일본에서 유행하는 ‘전생류 소설’들은 현실의 인정투쟁에서 비켜나고자 신음하는 자아를 방증한다.

현실의 내가 아바타에 종속된다면?

현실의 내가 아바타에 종속된다면?

메타버스의 세계에 머물다 보면 아바타와 자아를 동일시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아바타에 묶여 메타버스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수도 있다. 아바타에 우려되는 것은 무엇인가?

 김  상균 메타버스 속 아바타는 사적인 자아와 대중적 자아의 합체 또는 중간쯤이다. 문제는 아바타가 사적인 자아를 전혀 담고 있지 않을 경우다. 현실의 자신을 버린 채 메타버스 속 아바타에만 집착하고, 메타버스로 도피하는 경우는 큰 문제다. 현실의 내가 내 자아의 본질이다. 메타버스가 현실을 완전히 대체해서는 안 된다. 모두가 뉴럴링크를 통해 메타버스에서 살아가고, 인간에게 필요한 양분은 현실 세계의 휴머노이드와 인공지능 시스템이 자동으로 만들어서 공급하는 세상, 인류의 주된 삶이 메타버스로 옮겨진 세상을 꿈꾸는 이들이 있다. 어찌 보면 물질적 속박에서 벗어나 더 깊은 정신세계에서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런 삶은 물질세계에 대한 탐구나 도전을 포기한 것일 뿐. 인간에게 정신이 없다면 물질은 무의미하겠으나, 물질 없이 우리의 정신도 존재할 수 없다.

 신  진섭 메타버스의 관계는 편하지만 신뢰하긴 어렵다. 상대가 내세운 정체성을 사실이라고 가정하는 것일 뿐 진위는 구별하기 어렵다. 몇 해 전 발생했던 ‘선릉역 칼부림’ 사건이 그렇다. 게임과 현실의 자아가 달라서 생긴 사건이다. 한 사람이 본래 자아를 드러내자 상대방이 거부했고, 폭력으로 발전했다. 옛날식으로 비유하면 ‘펜팔’과 유사하다. 실제 자아를 숨길 수 있으니 상대방을 유혹하기 위해 거짓말도 스스럼없이 하게 된다. 그러다 만남의 순간이 오면 대부분 가짜 자아가 무너질까봐 연락을 끊고 잠수를 탄다. 메타버스의 관계는 이중으로 구축된다. 나와 대안적 나, 그리고 대안적 나와 상대방이 구축한 대안적 자아. 현실에 기반을 둔 일부 커뮤니티를 제외하곤 메타버스의 관계는 카드로 만든 집처럼 위태로울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이러다 보니 최근 트위터에선 ‘인친(인터넷 친구)’을 구할 때 소통율을 미리 체크한다. 쉽게 관계를 맺다 보니 단절 빈도도 높기 때문이다.

 이  장주 메타버스에 종속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는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다. 게임 중독이나 인터넷 중독과 같은 이름으로 많이 연구되었지만 그런 우려는 다소 과장되었음이 현재의 결론이다. 현실에서 도피해 간 그곳도 오래 지내면 또 다른 현실이 되기 때문이다. 만일 메타버스에서 사회적, 경제적, 인간관계 측면에서 원만하게 활동한다면 현실 세계보다 메타버스에 더 잘 어울리는 성향이라고 하는 편이 당사자나 가족에게 이롭지 않을까. 요약하면, 현실 세계가 중요하고 메타버스는 취미 정도로 잠깐 즐겨야 한다는 사고방식 자체가 새로운 가능성을 외면하는 낡은 생각일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관계 맺기의 즐거움?

관계 맺기의 즐거움?

메타버스에서 다양한 아바타와 인간관계를 맺고, 나와 맞는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은 메타버스의 가장 큰 장점일 것이다. 메타버스에서 맺는 관계는 현실과 어떻게 다를까?

 김  상균 아바타는 본래 힌두교에서 사용하는 개념이다. ‘하강’을 의미하는 산스크리트어인데, 지상으로 하강한 신의 모습을 뜻한다. 지상에 내려온 신이 아바타를 통해 사람과 소통한다는 의미다. 신은 인간과 소통하기 어려운 존재다. 그러나 아바타를 통해 그 소통의 벽을 허문다. 아바타에 담긴 핵심 가치는 ‘소통’이다. 현실보다 더 많은 이들과 소통의 기회를 가질 수 있는 점이 메타버스와 아바타의 큰 매력이다. 현실에서 누군가를 탐색하는 데는 적잖은 노력과 용기가 필요하지만, 메타버스에서는 쉽게 접근하고 편하게 멀어질 수 있다.

 신  진섭 올해 MBTI를 위시한 심리 테스트가 크게 유행했다. MBTI는 직업 적성 테스트용으로 개발됐는데 이제는 소개팅에서 자기소개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필수 요소가 됐다. Z세대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스스로 정의하고자 하는 강한 욕망이 있다. 커뮤니티의 부재로 인해서 그들을 명명해줄 관계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남들이 정해준 정체성에 발붙일 수 있었던 X세대와는 차이가 있다. 관계의 형성은 놀이로부터 시작한다. 술래를 맡고, 얼음땡하고, 고무줄놀이, 스타크래프트를 하면서 꼬마는 우리 속에서 나를 자각한다. 리더십이 있다거나, 상냥하다거나, 싸움을 잘한다 등의 칭호를 집단으로부터 받는다. 대학에선 ‘동아리짱’ ‘카사노바’ ‘공부벌레’ 등 여러 정체성을 획득한다. Z세대는 개인을 정의하는 집단의 힘이 상대적으로 줄어든 세상에 살고 있다. 대학교 시간표도 선배가 아니라 ‘에브리타임’이 짜주는 세대다. 주된 친교의 장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옮겨갔다. 현실 관계의 부재를 온라인에서 충족한다. 하나의 가면(페르소나)을 돌려가면서 썼던 X세대와는 다르다. 커뮤니티마다, 플랫폼마다 성격에 맞춰 각기 다른 다면적 자아가 요구된다. 프로필을 통해 자신을 정의하고 온라인 커뮤니티 집단을 빠르게 형성한다. 빠른 속도로 자신이 희망하는 자아를 세워 집단에 편입될 수 있다.

 이  장주 메타버스는 자신과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들을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늘 만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매력이다. 현실 속의 관계는 얼굴을 맞대고 생활을 공유하는 측면이 강하다면, 메타버스에서는 실제로 한 번도 만날 가능성이 없는 이들과 맺는 관계라는 점에서 다르다. 즉 구속력이 매우 약하다는 점은 메타버스 속 관계의 강점이자 약점이다. 기대되는 점이라면, 현실의 친밀한 관계는 가끔 서로 부담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즉 상대방이 걱정될까봐 나의 문제를 털어놓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가족에게 이성 친구 문제를 털어놓기 어려운 것과 유사하다. 그러나 메타버스에서는 이런 부담이 적기 때문에 문제를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있다. 현실 인간관계의 빈틈을 채워줄 수 있다는 점이 메타버스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싶다.

내가 왕따가 된다면?

내가 왕따가 된다면?

메타버스가 현실 사회를 닮았다면 따돌림, 배신, 치정과 소문 등 인간관계에서 발생하는 문제도 메타버스에서 벌어질까?

 김  상균 일부 메타버스에서 사람들의 공격성이 강하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메타버스에서는 개인의 신상 정보를 서로 공유하지 않은 채 소통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익명성에 숨으면 자신이 저지르는 일에 책임감을 덜 느끼는 문제가 생긴다. 또 메타버스에서는 현실 세계의 오감 중 일부만 사용해서 소통한다. 감각기관도 현실 세계보다는 낮은 수준의 정보를 받는 경우가 많다. 정보가 제한된 상황에선 실재감과 상대에 대한 공감 능력이 동시에 낮아진다. 괴롭히는 입장에서 느끼는 공포감도 훨씬 덜하다. 상대와 멀리 떨어진 위치에서 익명성에 숨어 공격하기에 나는 안전하다는 생각을 뇌의 전전두피질이 해낸다. 그 순간 공격자가 느끼는 공포감은 일종의 재미로 인식된다. 익명성으로 인해 낮아진 책임감,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상황, 공포감을 덜 느끼는 환경은 현실 세계보다 사람들을 더 공격적으로 만드는 요소다.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메타버스에서 익명성을 제공하되, 시스템적으로 그에 따른 책임도 부여해야 한다. 둘째, 우리 모두가 공격받는 이의 감정에 공감해주고, 공격하는 이에게 그런 감정을 함께 표현해줘야 한다. 이런 감정의 공감대는 공격받는 이를 감쌈과 동시에 공격하는 이의 무뎌진 공감 능력을 깨우는 데 도움이 된다. 셋째, 억압된 욕구를 메타버스 내에서 다른 방법으로 해소하는 수단을 제공해야 한다. 사회적으로 용인되고, 다른 이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방법을 말이다.

 신  진섭 온라인에선 정보의 교차 검증이 어렵다. 현실에선 A가 소문을 퍼트리면 당사자인 C가 A를 찾아가 진위 여부를 따질 수 있다. 메타버스에선 진실을 말해야 한다는 도덕적 책무가 희미해진다. 리스크가 적기 때문이다. 왕따는 ‘저격’이란 말로 대체됐다. 좌표가 찍히면 관계도 없는 불특정 다수가 와서 누군가의 아바타를 폭격한다. 현실의 왕따가 약자를 따돌리면서 강자의 정체성을 형성했다면, 저격은 강자를 끌어내림으로써 약자가 자신의 힘을 뽐내는 데 집중된다. 보스몬스터를 잡는 게임의 ‘레이드’와 닮아 있다. 상대방이 강할수록 사냥이 흥한다. 익명성, 투명망토를 쓴 다수의 약자들 앞에 현실의 거대 권력이 무너진다. 사이버 세계의 권력이 현실 권력을 전복하는 방식으로 메타버스가 실현된다. 저격의 반동 형성으로 팩트 체크가 등장했다. 요즘엔 기자뿐 아니라 유저들도 정보의 진위 여부를 판별하는 데 관심이 높다. ‘나무위키’ 같은 집단 지성 플랫폼이 그렇다. 초반 문서엔 마타도어나 거짓 정보가 섞여 들어가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브라질 땅콩 효과’처럼 진실이 도드라진다. 이익 관계가 없는 사람들이 호기심과 정의감을 도구로 진실을 발굴해낸다. 인간은 착한가 나쁜가. 메타버스가 인간 본성에 대한 결론을 내주지 않을까 싶다.

 이  장주 인간이 사는 곳에서 따돌림, 배신, 악의적 소문이 없는 곳은 없다. 메타버스도 현실 세계와 별반 다를 바 없다. 그러나 메타버스는 현실과 좀 다른 특성이 있다. 대표적인 사례는 투명성이다. 메타버스는 거의 모든 것이 기록된다. 그렇기에 빠르게 진상을 밝힐 수 있고, 그렇기에 억울한 누명을 벗거나 누명을 씌운 사람을 밝혀내기도 용이한 편이다. 하지만 이런 것이 메타버스를 넘어서 현실까지 연결된다면 이에 대한 현실 세계의 제도 정비도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메타버스에서 벌어지는 분쟁의 조정이나 처벌 혹은 배상 등에 대한 현실 세계의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한 시점인 듯하다.

게임 즐기는 업무?

게임 즐기는 업무?

메타버스에서 일의 형태는 어떠할까? 게임을 즐기고, 다른 아바타와 관계를 쌓고, 미션을 완수하고, 이벤트에 참여하는 것들이 곧 일이 된다면? 메타버스 세계에서의 일을 예상해본다.

 김  상균 메타버스에서 노동은 게임의 미션과 비슷하거나 다를 수 있다. 산업용 기계 장치를 생산하는 공장이라고 가정하면, 여러 작업자가 협력하여 2천 개의 부품을 도면 순서에 따라 조립해야 제품이 완성된다. 전통 작업장에서는 근로자가 이런 내용을 문서나 파일 형태로 확인하며 공정을 진행한다. 그러나 증강현실 메타버스를 적용하면 근로자의 헤드셋을 통해 작업 과정에 맞춰서 필요한 부품과 도면 정보가 자동으로 제공된다. 일례로 전투기 조립 공정에 증강현실 메타버스를 도입하면, 엔지니어는 여러 부품 정보를 확인하고, 그 부품을 조립해야 하는 위치와 작업 방법까지 실시간으로 파악하게 된다. 전투기 조립 과정에 증강현실을 도입한 사례에서 작업 정확도와 생산 속도는 각각 96%, 30% 향상됐다. 실제로 에어버스에서는 미라(MiRA)라는 증강현실 시스템을 통해 제작 중인 항공기의 모든 정보를 엔지니어에게 3차원으로 제공한다. 에어버스의 경우 미라를 통해 브래킷 검사에 필요한 소요 시간을 3주에서 단 3일로 단축한 사례가 있다. 보잉은 747-8 항공기의 배선 작업 공정에 증강현실 메타버스를 적용해 작업 시간을 25% 단축하고, 작업 오류 비율 0%를 기록했다.

 신  진섭 내용이 아니라 형식이 본질을 결정짓는다. 강제성을 부여받는 순간 게임은 타락한다. 이미 메타버스에서 일을 얻은 사람들이 있다. 소위 말하는 작업장들이다. 게임 내 재화를 얻기 위해 사이버 세계로 출근하고 고용주의 명령 없이는 게임에서 이탈하지 못한다. 하루이틀이야 게임을 하면서 돈을 버니 즐겁겠지만 오래가지 못한다. 자유의지에 의한 플레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프로게이머 세계도 마찬가지다. 아마추어 시절에는 재미로 했겠지만 프로는 다르다. 재미있는 빌드가 아니라 가장 강하고 효율적인 방법론을 반복 숙달해야 한다. 일이라는 꼬리표가 붙는 순간 메타버스는 현실에 포섭된다. 게임 리뷰를 쓰기 위해서 직장에서 게임을 할 때가 있다. 누군가는 부럽다고 하겠지만 실제로는 고역일 때가 많다. 재미있는 게임을 원하는 시간에만 골라 하는 자유가 박탈됐기 때문이다. 메타버스가 일과 동의어가 된다면 대부분의 유저는 비트코인을 캐는 채굴기 정도로 격하되지 않을까.

 이  장주 게임을 즐기는 것만으로도 일이 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것은 표면적인 이해라고 생각한다. 게임을 잘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심리나 기대 같은 것을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그에 맞추어 잘 대응해야 원활한 게임에서 성취나 승리가 보장된다. 이런 점에서 메타버스 속의 심리와 기대는 현실과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이런 점을 잘 간파한 사람들이 메타버스 속에서 자신이 즐기는 일을 통해 즐거움과 경제적 이익을 함께 얻는다. 예를 들면, 유튜버들은 좋아요, 구독, 알람 설정을 해달라고 요구한다. 인기가 있던 유튜버도 자칫 구독자들과 마찰이 생기게 되면 구독자가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일이 흔하다. 트렌드는 빠르게 변한다. 메타버스에서 즐거움과 경제적 이익을 함께 취하는 것은 현실 세계보다 분명 쉽지 않을 것이다.

메타버스가 즐겁기만 할까?

메타버스가 즐겁기만 할까?

아이템을 얻기 위해선 노동이, 이벤트에 참여하기 위해선 광고 시청이 요구될 수 있다. 기존 업무에서 겪는 스트레스를 메타버스에서도 겪지 않을까?

 김  상균 두 가지로 정리하겠다. 첫째, 큰 기대와 큰 실망의 문제다. 메타버스에서 사람들과 소통하는 방식, 메타버스 시스템과 소통하는 방식은 매우 빠른 피드백과 불규칙한 보상 구조로 짜여져 있다. 소셜 미디어에 글을 올리고, 이런 생각이 드는 경우가 있지 않은가? ‘왜 댓글이 빨리 안 붙지? 이 정도 반응이 다야?’ 우리는 현실 세계에서의 소통보다 메타버스에서의 소통에 더 큰 기대감을 갖는 면이 있다. 큰 기대에는 큰 실망과 피로가 따라오기 마련이다. 둘째, 지나친 수치화의 문제다. 만약 현실에서 우리의 머리 위나 가슴 부위에 능력치를 표시하는 숫자판이 붙는다면 어떨까? 직장인의 머리 위에 기획력, 문서 작성력, 리더십, 문제해결력 등이 수치로 표현되어 떠 있다면 어떨까? 디지털을 기반으로 돌아가는 메타버스에서는 모든 것들이 숫자로 표현되고 관리된다. 우리가 메타버스 안에서 다른 사람을 만나거나, NPC와 소통할 때는 그런 숫자가 효율적이라 여길지 모르지만, 막상 내가 다른 이에게 숫자로 인식된다고 생각하면 불쾌하다. 숫자화하는 항목은 서로에 대한 인식의 폭을 매우 좁게 만든다. 누군가를 성적과 등수라는 항목으로 보는 순간 그 사람의 특성은 관심에서 멀어진다. 그런 항목을 숫자로 보는 순간, 그 사람을 쉽게 평가하게 된다. 메타버스는 소통의 효율성을 위해 많은 것들을 숫자화했으나, 더 넓고 깊은 소통을 저해하거나, 모두를 피곤하게 만들 수 있다.

 신  진섭 스트레스 총량 보존의 법칙이라는 게 있다. 인간은 항상 일정한 수준의 스트레스를 느끼며 산다는 거다. 힘들 때 인간은 과거 좋을 때를 상상하는 회귀 반응을 보인다. 고3은 고2를 부러워하고, 직장인은 대학생을 부러워한다. 하지만 과거를 직시하면 인생의 어느 순간이든 스트레스가 존재했음을 깨닫게 된다. 반대로 말하면 스트레스가 없으면 삶은 완성되지 않는다. 스트레스가 절대악이었다면 인간은 스트레스를 느끼지 못하는 종으로 진화했어야 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스트레스 민감종이 지구를 지배하고 있다. 과도한 스트레스는 삶을 붕괴시키지만 적절한 스트레스는 목표를 향해 나가는 추진력을 제공한다. 생리학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으면 부신피질이 ‘코르티솔’을 생성해 에너지를 태워 신진대사를 활성화하는 부스트 상태에 들어간다. 과연 게임에서 스트레스 포인트, 노가다를 제외한다고 더 재미있어질까. 장애물 없이 쉽게 도달할 수 있는 목표에 사람들은 희열을 느끼지 않는다. 에너지 볼트 한 대로 최종 보스를 때려잡는 게임은 분명 ‘망겜’이다. 남들이 못하는 걸 이뤄냈을 때 명성을 얻고, 기쁨을 느끼는 건 메타버스나 현실 세계나 동일하다. 적절한 허들과 스트레스를 유저에게 제공해 실력이 발전하고 있음을 느끼게 하는 걸 우리는 좋은 레벨링(난이도 설계)이라고 부른다.

 이  장주 모든 순간이 즐겁다는 말은 아무 순간도 즐겁지 않다는 의미와 같다. 이런 점에서 게임 노가다는 그로 인한 결과를 얻기 위한 중요한 사전 장치가 된다. 예를 들면, 맛난 음식을 먹기 위해서는 훌륭한 요리사도 필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먹을 사람이 배가 고픈 상태가 되어야 한다. 사람의 쾌감은 불쾌감과 조화로운 관계를 형성할 때 가장 매력적이다. 현실 세계에서 인기 있는 게임들은 흔히 말하는 노가다와 그 결과물로 얻어지는 성과물의 감동 간에 조화가 잘 이루어졌다는 공통점이 있다. 메타버스 속에서도 얼마나 조화로운 경험을 만들어내는가가 성패의 열쇠가 될 것이다.

게임으로 돈을 번다?

게임으로 돈을 번다?

사람들이 메타버스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메타버스 세계에서도 경제활동이 펼쳐질 수 있을 것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상상해보자. 메타버스에서 어떻게 돈을 벌 수 있을까?

 김  상균 메타버스에서 돈을 벌 만한 일거리는 크게 네 가지다. 첫째, 전통적 노동을 메타버스에서 수행하는 방식. 노동의 종류는 그대로지만, 공간이 메타버스로 바뀐 상황이다. 둘째, 메타버스에는 여러 아바타와 NPC(Non-Player Character)들이 함께 살아간다. 아바타는 사람이 조종하고, NPC는 컴퓨터의 인공지능이 조종하는 게 보통이지만, 인공지능이 맡기 어려운 역할을 사람이 맡기도 한다. 앞으로 메타버스를 즐기는 다른 아바타의 경험을 풍성하게 해주는 NPC 역할의 일자리가 증가할 것이다. 셋째, 메타버스에서 소비되는 각종 디지털 콘텐츠를 제작하는 일이다. 아바타가 입는 의상, 액세서리를 메타버스 안에서 만들어 판매하고, 아바타가 사용하는 공간을 대신 꾸며주거나, 아바타가 사용하는 물건 등을 튜닝해주는 콘텐츠 창작자가 늘어날 수 있다. 넷째, 메타버스에서 영향력 있는 아바타들은 현실의 다양한 물건을 메타버스에서 판매하거나, 기업을 홍보해주는 역할을 하면서 수수료를 얻는다.

 신  진섭 소비자의 ‘페인포인트’를 포착하고 맞춤 상품을 제공하는 자가 승리한다. 이것이 자본주의의 성공 방정식이었다. 인간의 욕망을 대리 충족하는 메타버스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가능성은 무한하지만 현실의 벽이 완고하다. 1세대 MMORPG(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에선 청소년이 노가다를 통해 얻은 재화를 현금으로 바꿔 계정비를 충당했다. 청소년 시간을 지불해 계정비를 구매한 것이나 다름없다. 메타버스의 이정표가 된 게임 <세컨드 라이프>에선 좀 더 현실과 닮은 수익 모델들이 출현했다. 부동산 알박기로 떼돈을 번 사람이 출현했고, 매춘이 성행했다. 아디다스, 델 등이 홍보용 로드숍을 세웠다. 게임사가 게임 머니를 린덱스라 불리는 환전소에서 달러로 교환해준 게 상거래가 폭발적으로 발생한 원인이었다. 메타버스 상거래의 한계는 현실의 제도적 장치들이 결정짓는다. 한국만 해도 게임 머니의 환전은 게임법상 사행성 행위로 엄격하게 규제된다. 기술적으론 이미 현실과 메타버스의 경계가 무너졌다. 블록체인 기반으로 콘텐츠를 제작해 사이버 머니를 전자지갑으로 전송해 현실에서 사용하면 그만이다. 그 역도 성립한다. 카카오뱅크나 토스보다 어려울 게 없다. 다만 현실에 미칠 충격을 감안해 변화는 아주 더디게 진행될 거다. 가상세계와 현실 세계의 경제적 결합은 누군가에겐 브레턴우즈 체제 도입, 닉슨 쇼크보다 더한 공황을 초래할 수 있다.

 이  장주 메타버스에서 돈을 버는 법과 현실에서 돈을 버는 법이 크게 다르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상대방에게 원하는 것을 주고, 그 반대 급부로 돈을 직간접적으로 얻는다. 메타버스에서 돈을 번다면 현실과 경쟁해서는 곤란하다. 메타버스에서만 가능한 서비스나 재화를 제공하는 것을 고려하고, 현실보다 메타버스의 매력이 더 부각될 수 있는 것이라면 충분히 가능하리라 생각한다. 현실에서는 수천 명 혹은 수만 명 이상의 관중 앞에서 콘서트하기 어렵지만 메타버스에서는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다. 수십, 수백만과 퍼포먼스를 벌이는 기획이 있다면 오로지 메타버스에서만 가능한 공연이 되리라고 본다.

메타버스 에서도 빈부 격차가 발생할까?

메타버스 에서도 빈부 격차가 발생할까?

과금 유저와 일반 유저 사이의 괴리, 참여할 수 있는 영역, 아이템 차이 등으로 인한 빈부 격차가 메타버스에서도 불거질까? 메타버스 사용자는 평등할 수 있을까?

 김  상균 메타버스는 현실 세계를 모티브로 만들어진다. 현실의 문화, 사회 시스템, 제도를 완전히 벗어난 메타버스는 없다. 그렇다 보니 그곳에도 불균형, 불평등, 불공정은 존재한다. 엔비디아는 옴니버스라는 플랫폼을 제공한다. 기업들은 옴니버스 플랫폼을 통해 메타버스에 가상 공장을 만들고, 그 속에서 생산 과정을 100% 미리 시뮬레이션한다. 메타버스에서 이런 과정을 수없이 반복하는 경험을 통해 극단의 최적화를 이루고, 이를 실제 생산에 반영하는 방식이다. 결과적으로 메타버스에서 시뮬레이션해 현실을 완벽에 가깝게 만든다는 전략이다. 메타버스에서 발생하는 불균형, 불평등, 불공정을 잘 관찰하고, 개선하여 그 결과를 현실 세계의 불균형, 불평등, 불공정을 개선하는 데 쓸 수 있다. 반대로 인류가 현실 세계의 불균형, 불평등, 불공정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를 메타버스 세상을 좀 더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써도 좋다. 불균형, 불평등, 불공정은 현실 세계와 메타버스, 둘 중 하나에만 존재하는 문제가 아니다. 아마도 한쪽 세상에서 그런 문제가 사라진다면, 다른 세상에서도 없어질 것이다.

 신  진섭 모든 유저가 평등할 수 없음은, 그런 사회가 굴러가지 않음은 마르크스와 레닌이 이미 증명했다. 인간 상상력의 한계가 곧 메타버스의 한계다. 메타버스가 인간의 머리에서 나오는 한 유토피아는 어원 그대로 현실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이상의 나라일 뿐이다. 누구나 알 듯 현실은 밸런스 조절에 실패했다. 누구는 초등학교 때 주식으로 10억씩 증여받고, 또 누구는 직장 들어가서도 학자금 대출에 허덕인다. 양극화된 현실이 ‘이생망’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멀티버스를 찾는다. 모두 은수저가 되는 태평 사회를 꿈꾸는 게 아니다.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금수저, 랭커가 되고 싶은 욕망으로 멀티버스에 접속한다. 중요한 건 결과적 평등이 아니라 공정한 출발이다. 누구나 티셔츠 한 벌, 단검 한 자루로 시작한다면 그 끝이 어떻듯 멀티버스의 시민은 수긍할 것이다. 최초의 온라인 게임은 그랬다. 한 달 정액료 외에는 현실의 정체성과 가상의 아바타가 철저하게 분리된 구조였다. 하지만 게임사가 아이템을 판매하는 부분 유료제가 시장의 주요 수익원으로 자리 잡으며 P2W(Pay to win)이 고착화됐다. 현실 권력, 돈으로 찍어 누르는 지갑전사들이 멀티버스의 패권도 가져가게 됐다. 대안 세계로서 충분히 기능하지 못하고 현실 세계에 종속된 형태다. 10대, 20대가 한국 게임에 극도의 분노를 표시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현실의 부조리를 메타버스가 반복 재생산하고 있으니까. 현재의 기조가 오래가진 않을 거다. <리그오브레전드>부터 <폴 가이즈> <어몽어스> 등 최근 젊은 층에게 사랑받은 게임들의 공통점은 현실의 재화가 게임의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공평한 출발선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이  장주 경제활동이 있는 곳에서 빈부 차이는 당연히 발생할 것이다. 노력에 따라서 차이가 발생하지 않는다면 누가 메타버스를 위해 열심히 할까 싶다. 핵심은 빈부 차이가 발생하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아니라, 빈부 차이가 노력에 의해서 극복 가능한 구조인가 여부가 더 중요하다. 많은 사람들이 메타버스에 열광하는 이유는 노력한 만큼 대가를 받고, 누군가의 성공은 이런 노력의 결과라는 점으로 인해 존경을 받는다는 것이다. 만일 메타버스에서도 현실 세계와 같이 노력으로 넘을 수 없는 빈부 격차가 발생한다면 아마도 또 다른 메타버스로 대량 이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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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조진혁
ILLUSTRATION 유재형

2020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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